2004년 09월 통권 제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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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나누어요]
내가 그림책을 보여 주는 몇 가지 엉큼한 속셈

최은희 | 2004년 09월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저어, 그림책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나 동화를 읽을 때 우리는 단 한 번도 ‘소설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또는 동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아이들은 그림책을 보여 주면 그저 즐거워할 뿐이지 그림책에 대해 말할 때 주저하거나 기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그림책에 대한 이러저러한 이론이나 개론서를 본 어른들만이 오히려 그림책에 대해 기죽어 있고, 그래서 으레껏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게 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림책 앞에만 서면 은근히 주눅 들던 마음을 툭툭 털어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림책 앞에만 서면 수그러드는 마음의 고개가 당당하게 곧추 세워진 것이 아님을 고백한다.

이제부터 내가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보여 주는 엉큼한 속셈을 고백하는 이야기에는 그림책에 주눅 든 내 생각을 어찌하든 극복해 보고 싶은 마음 역시 포함되어 있다. 그림책을 보여 주는 엉큼한 내 속내를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내 입으로 불어 버렸다. 그림책을 보여 주는 기쁨과 즐거움이 너무 커져서 스스로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 때 아이들 눈빛은 얼마나 의기양양하던지.

첫번째 엉큼한 속셈 : 아이들 상상력을 훔쳐다가 앙상한 내 상상력 살찌우기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보여 주는 첫번째 속셈은 몇 번을 보아도 앙상한 내 상상력과 허술하기 그지없는 관찰력으로 빈곤한 책 읽기를 아이들 것으로 채워 보려는 것이다. 고백하건대 이런 내 속셈은 언제나 넘칠 만큼의 효과를 본다. 『아기늑대 삼형제와 못된 돼지』를 볼 때였다. 아기늑대 삼형제가 높다란 철 구조물 위에 앉아 맛있게 무언가를 먹는 표지부터 아이들은 제 각각 이야기를 하느라 바쁘다. 책 제목과 그림의 관계를 나름대로 상상하는 것이다.

“저게요, 돼지가 숨겨 놓은 걸 늑대들이 몰래 훔쳐서 먹는 거에요. 근데 돼지는 먹는 것 뺏기면 못 참거든요. 그래서 돼지가 못되게 된 거예요.” 수학 시간에는 영 죽을 표정을 하고 있는 길성이지만 그림책을 보여 줄 때는 얼마나 신선한 생각을 해 내는지 나를 깜짝 깜짝 놀래킨다. 표지 그림만 보고 돼지가 왜 못된 돼지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을 이끌어 내는 게 놀랍다.

“저기, 돼지는 원래 먹는 걸 좋아하잖아요. 근데 늑대들이 지네들끼리만 맛있는 거를 먹으니까 삐져서 심술 부릴 것 같아요.” 평소에는 수줍어서 자기 생각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나영이도 그림책을 보여 줄 때는 서슴없이 자기 이야기를 한다. 정답이 없는 그림책 보기가 나영이의 숨통을 열어 주는 것이리라.

『아기늑대 삼형제와 못된 돼지』 표지와 본문

“지들끼리만 맛있는 거 먹구, 얄미워. 민성이같이.” 헌용이가 민성이를 돌아보며 한 마디 하자 “야!”하고 소리를 지르는 민성이 얼굴이 벌개지고 입이 한 보퉁이나 나온다. 이렇게 저마다의 상상력에 발동을 걸기 시작한 아이들은 요술 램프처럼 생긴 속표지에 그려진 주전자와 찻잔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을 알아채기에 이른다.

“어, 저기 늑대가 주전자 들고 도망간다!” 명인이가 벽돌이 와르르 무너지기 직전에 밖으로 빠져 나오는 그림을 보며 손가락질을 한다.

“어, 근데 큰 형인 늑대가 가지고 가네? 역시 형아가 최고다.” 재성이의 말을 들으며 나는 책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앗! 나는 못 보았는데……역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나는 검은 색 늑대가 찻주전자를 가져가는 것까지는 알아채지 못했는데, 아이들 눈은 얼마나 예리한지.

“야, 이번에는 막내 동생이 가지고 도망간다.” “근데 막내 꼬리에 불 붙었어. 아, 다 타면 어쩌냐?” “얼른 시냇물에 가서 꼬리 담그면 될 텐데…….” 아이들은 마치 실제 상황이 벌어진 것처럼 야단이다. 잔디밭에 뒹굴어도 된다고 하는 아이, 쟤들은 죽어도 주전자는 안 잃어 버린다는 아이. 다음 장면으로 책장을 넘기기까지 족히 몇 분은 흘렀다.

“야, 돼지한테 꿀차 타 주는 저 돼지는 둘째 맞지? 그치?”라는 동욱이의 한 마디는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이다. 나는 눈이 무뎌서 흘려 보낸 그림의 장면 장면을 아이들은 이렇게 섬세하고 예리하게 찾아 내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의 반응을 보며 내 속셈은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는 것이다. 아이들 때문에 흐리고 경직된 내 눈이 조금씩 조금씩 열리고 닦여지는데 내 어찌 우리 아이들에게 그림책 보여 주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있겠는가?

두번째 엉큼한 속셈 : 꽁꽁 감춰 둔 아이들 마음 들여다보기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기 마음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어린 학년일 때는 묻지 않는 말도 종알종알 해 대서 때론 선생을 피곤하게도 하는데 점점 묻는 말에도 건성이고 좀체 제 속내를 보여 주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아이들 마음 속을 잘 읽어야 하는 선생은 아이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 어려움이 많다. 그런데 그림책을 보여 주면서 아이들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조금 수월(?)해졌다. 그림책을 가운데 두고 생각을 나누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제 속내를 이야기하게 된다. 때론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림책을 가지고 에둘러 말하기도 한다.

『으뜸 헤엄이』 표지와 본문

우리 반에는 영리하고 눈치도 빠르고 공부도 잘 하고 게다가 운동까지 잘 하는 그야말로 눈에 띄는 아이가 있다. 앞에서 동무들을 이끄는 능력도 있는 아이인데 좋지 않은 면이라면 승부욕이 많아 지는 것을 무척 싫어해 능력이 뒤처져서 허덕이는 아이를 잘 용납하지 못하는 구석이 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 눈물 바람도 많이 하고 일기장에 하소연도 종종 한다. 그렇지만 아무도 나서서 그 아이의 부당함이나 힘의 횡포(?)에 대항하지 못한다. 어른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랄 뿐 아이들 스스로 맞서지 못하는 것이다. 선생의 고민은 바로 그 지점이다. 드러내 놓고 아이를 꾸짖을 수도 없고, 또 원칙적인 이야기로 아이를 훈계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 때 내가 선택한 방법은 그림책 보여 주기였다. 『으뜸 헤엄이』를 보여 주며 아이들이 감춰 둔 이야기도 듣고 내가 하고 싶은 말도 하려는 속셈이다.

“상어나 고래처럼 큰 물고기가 많은 바다에서 요렇게 작은 물고기들은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을까?” “그럼, 너희들 가운데 상어나 고래처럼 혹 다른 동무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없을까?” “어떻게 해야 힘센 동물을 이겨 내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나라면 어떻게 할까?” 나는 그림책을 보여 주며 장면마다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이제까지 그 아이 앞에서 자기의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을 드러낸 적이 없는 아이들이 입을 열었다.

“저도 언젠가 ○○이가 축구 못 한다고 자기 편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냥 울기만 했거든요. 그 때 너무 억울해서 전학 가고 싶었는데 이제 또 그러면 왜 그러냐고 축구 못 하는 사람은 축구도 할 수 없는 거냐구 따질 것 같아요.” 일수가 억울한 듯 얼굴이 벌개져서 이야기하자 ○○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모른 척하고 일수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저도 ○○이가 ‘지나 똥’ 하면서 내 별명을 불러서 뭐라구 그랬더니, 미안하다고도 안 하구 날 때렸어요. 근데 다른 친구들이 아무도 나한테 위로를 안 해 줘서 더 속상했어요.” “니 편 들어 주면 ○○이가 안 놀아 주니까 그렇지.” 혜원이가 미안한 얼굴로 말하자 몇몇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말을 꺼낸 지나는 억울했던 그 때 일이 떠올라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운다. 옆에 있던 정원이가 지나 어깨를 도닥거려 준다.

“힘 센 사람이 힘만 믿고 친구를 따돌리면 우리 반 전체가 힘을 합쳐서 그 친구를 물리쳐야 해요. 으뜸 헤엄이처럼요.” “그래, 근데 친구를 물리친다는 것은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어, 어, 그 친구가 다른 친구를 무시하면 그렇게 하지 말라고 단체로 편지를 쓰든지, 또 말을 하든지 해서 깨닫게 해 주는 거예요.” “저, 힘만 믿는 애랑 안 놀아 주면 돼요.” “근데 그러면 걔가 너무 불쌍해요. 그냥 말로 잘 타이르면 돼요.” 아이들끼리 의견이 분분하다.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들어 주면 된다. 다만 한 아이에 대한 인신 공격으로 나아가지 않게 적절하게 이야기를 끊어 주거나 흐름을 돌려 주면서 말이다.

아이들이 마음에 맺힌 이야기를 털어 놓으며 속이 후련해지면 그림책 보여 주기는 이미 충분히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또 동무들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떨군 그 아이도 당장은 속상하고 분하겠지만 자기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동무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내가 노린 속셈은 이루어진 셈이다. 평소에는 아이들이 털어놓기 어려워하는 이야기를 나는 이렇게 그림책을 보여 주며 듣는다. 아이들은 이야기의 흐름에 동화되어 자연스럽게 자기 속내를 털어놓는 것이다. 다만 그림책 한 권으로 아이들 삶이 금방 달라질 리는 없지만, 아이들이 써 낸 감상글이나 그림을 보면 조금씩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세번째 엉큼한 속셈 : 따분한 공부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 제재는 가르치는 선생이나 배우는 아이들이나 모두 재미없어 한다. 그야말로 가르치겠다는 자세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어 따분하고 참신성이라고는 찾아 보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선생이나 아이들이나 교과서 제재에 흥미나 호기심을 나타내지 않는다. 흥미나 호기심이 없다는 것은 곧 공부가 수동적이고 평면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나는 그림책을 교과서 제재 대신 활용한다.

『왕치와 소새와 개미』 표지와 본문

뒷이야기 상상하기를 공부할 때는 아이들이 잘 알지 못하는 그림책을 고른다. 『100만 번이나 산 고양이』 『녹슨 못이 된 솔로몬』 『곰 인형 오토』 『아모스와 보리스』 『왕치와 소새와 개미』 따위나 새로 나온 그림책 가운데 서사 구조가 탄탄한 것을 고른다. 그림책을 활용하여 수업을 해 보면 아이들의 무궁무진한 상상력 앞에 감탄사가 나올 뿐이다.

또 인물의 마음 알기나 인물에 어울리는 목소리로 이야기 읽기를 공부할 때는 『샌지와 빵집 주인』 『부루퉁한 스핑키』 『똥벼락』 『팥죽할멈과 호랑이』 따위로 제재를 재구성하면 아이들이 무척 즐겁고 적극적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샌지와 빵집 주인』 표지와 본문

그림책은 완결된 구조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분량이 적어 수업 시간에 활용하기가 안성맞춤이다. 아울러 아이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이끌어 주어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게 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이렇게 내가 그림책으로 제재를 재구성하여 수업을 한 덕분인지 우리 아이들은 국어 시간을 가장 재미있어 하고 또 수업에 무척 적극적이다. 그래서 우리 반 국어 시간에는 공부를 잘 하는 아이나 힘들어하는 아이 모두 자기의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드러내 놓는다. 이것이 내가 수업 시간에 그림책을 보여 주는 세번째 속셈이다.

그림책 보여 주기에 대한 엉큼한 내 속셈은 몇 가지가 더 있으나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고백하기로 하고 이만 줄인다. 끝맺으며 고백하는 마지막 한 마디는 ‘나는 가르치기 위해 그림책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배우기 위해 그림책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최은희 / 충남 아산에 있는 산골 거산분교에서 3학년 꽃잎마을 아이들과 뒷산 나무처럼 서로 기댄 채 아웅다웅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한테 책을 읽어 주다 먼저 울기도 하고, 또 그림책 보여 주며 깔깔 웃다가 의자가 넘어져 벌러덩 나뒹군 적도 있는 철없는 선생입니다. 2002년에 월간 잡지 초등 『우리교육』에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라는 꼭지를 일 년 동안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