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통권 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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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책 이야기]
올 가을엔 시를 써요

정방종향 | 2004년 10월

가을이 되면 볼 것도 많고 느껴지는 것도 많아요. 길 가에 죽 늘어선 느티나무에서 바람을 타고 떨어진 붉은 단풍잎과 부채 모양을 한 노오란 은행잎을 모아서 책 사이 사이에 끼우기도 하고요. 공원 놀이터에 있는 커다란 감나무 잎은 홍시보다 더 빠알갛고 붉게 물들어 우리들 시선을 자꾸 잡아당겨요. 가을이 되면 곱게 물든 나무만 제 맘을 가져가는 게 아니에요. 높고 푸른 하늘은 어떻구요? 또 차갑고 시원한 바람, 그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수수, 하늘하늘한 코스모스가 제 맘을 흔들어요. 가을엔 아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 시 한 편 멋지게 써 보라고요.

재작년에 유치원 다니던 혜리가 입학할 초등학교에서 도서 바자회를 열었어요. 친한 분이 어머니 사서로 일하고 계셔서 도와 드릴 겸, 몇 달 후면 학부모가 되어 어머니 사서로 일할 예정이라 미리 일도 배울 겸 자원 봉사를 하게 되었지요.

『가을을 만났어요』 표지와 본문

그 때 많고 많은 책 중에서 제 눈길을 확 당긴 책이 있었어요. 『가을을 만났어요』예요. 표지에 작은 남자아이가 잠자리채를 들고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파스텔 톤으로 그려져 있어요. 다시 한 장을 넘겨 본문에 있는 그림을 보면 그림이 모두 밤색 톤이에요. 가을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색감이지요. 그림도 가을에 느낄 수 있는 자연을 참 예쁘게 담았어요. 그림에 어울리는 글은 말 그대로 한 편의 아름다운 가을 시에요.

저는 이 책을 보고 그 다음 해 가을까지 아이들과 함께할 아름다운 독후 활동을 참아야만 했어요. 다음 해 가을에 뭘 했냐면요. 아이들에게 이 책의 글을 읽어 주고, 그림도 감상한 후에 저희 마을을 구석 구석 돌아다니면서 단풍잎 모으기를 했어요. 단풍잎을 모아 자신만의 책갈피도 만들고, 단풍잎을 가지고 자신이 쓴 시에 어울리는 꾸미기를 하여 전시도 했어요. 시화전은 어디서 했는지 아세요? 제가 사는 아파트가 복도식이거든요. 그래서 저희 집 문 앞 복도에다가 쭈~욱 붙여 놨죠? 그랬더니 아이들이 쑥스러워하면서도 기분 좋아하더라고요. 자기 작품 앞에서 사진도 찰칵! 『가을을 만났어요』는 아이들과 아름다운 독후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준 참 고마운 그림책이에요.

가을엔 왠지 시 한 편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렇지만 시 한 편 쓰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잖아요. 저는 예전에 학교에서 배웠던 시를 생각하면 의성어, 의태어, 은유법, 점층법…… 따위가 생각나요. 그러면서 뭔가 멋진 표현을 해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이 맴돌면서 갑자기 머리가 텅 비어 버려 아무 것도 쓰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런데 아이들은 달라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자신만의 언어로 꾸밈없이 표현할 줄 알지요. 그 시가 얼마나 예쁜지 아마 아이들이 쓴 시를 읽어 보신 분들이라면 다 아실 거예요.

『침 튀기지 마세요』 표지와 본문

혜리가 유치원 다닐 때 마주이야기 시를 같이 읽으면서 아이들의 기발한 상상력과 순수한 표현력에 혜리와 함께 낄낄거렸던 생각이 나요. 『침 튀기지 마세요』 『튀겨질 뻔 했어요』. 이 책 두 권을 읽으면서 순수한 우리말은 참 곱고 쉽다는 생각을 했어요. 『침 튀기지 마세요』에 나온 글을 함께 볼까요?

“재형아, 유치원 친구들도 아파트에 사니?”
“아니, 용진이는 요 아래 쭉 가면 땅집에 살아. 그리고 홍래도 계단 위에 땅집에 살아.”

‘땅집’이 어떤 집을 얘기하는지 아세요? 네, 바로 주택을 말해요. 전 이 글을 읽고, ‘맞아. 정말 땅집이네.’ 하면서 제 무릎을 탁 쳤어요. 아니, 무릎만 친 것이 아니라, 혜리랑 얘기할 때도 주택이란 말 대신 ‘땅집’이라고 썼어요. 외할머니가 바로 땅집에서 사시거든요. 아이들에게 주택(住宅)이란 한자어는 사실 좀 어렵잖아요? 주변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주로 살아 주택이란 말도 잘 쓰지 않아요. 그래서 그 뜻을 이해시키기도 참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땅집’이라 얘기하니 아이가 단번에 알아들어요. 특별한 설명을 해 주지 않았는데도요.

여러분이 들을 때도 주택이란 말보다 ‘땅집’이란 말이 더 쉽고 예쁘지 않아요? 혜리가 학교에 들어가 2학년이 되어 주택이란 말을 배우기 전까지 우린 ‘땅집’이란 말을 썼어요. 지금은 학교 교과서에서 주택이란 낱말이 나와 배우는 바람에 이젠 ‘땅집’이란 말을 쓰지 못해 무척 아쉬워요.

'보리 어린이 노래 마을'(전질) 표지
이런 순수한 표현을 하는 아이들 마음을 시로 표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이 고민하고 있을 즈음에 백창우 선생님께서 어린이 시를 노래로 만든 것을 듣게 되었어요. 『아이들 시로 백창우가 만든 노래 / 딱지 따먹기』 『섬진강 아이들이 쓰고 백창우가 만든 노래 /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김용택이 쓰고 백창우가 만든 노래 / 우리 반 여름이』 『권태응이 쓰고 백창우가 만든 노래 / 또랑물』 『좋은 우리 동시로 백창우가 만든 노래 / 꽃밭』 『마주이야기로 백창우가 만든 노래 / 맨날 맨날 우리만 자래』 이렇게 여섯 권으로 나와 있어요. 시와 그림과 악보가 그려진 멋진 시 노래책과 노래 테이프(CD도 있어요)가 함께 들어 있어요.

저는 이 여섯 권을 다 사서 들었는데, 무척이나 이 시 노래가 맘에 들어요. 요즘 흔히 듣는 가벼운 곡이 아니고, 제 마음을 울리는 노래예요. 그래서 그런지 들으면 들을수록 더 좋아져요. 저는 아이들도 저와 같은 맘일 줄 알고 이 시 노래 가운데 「딱지 따먹기」를 시 쓰기 전에 들려주었어요. 하지만 아이들 반응은 의외로 별로인 거 있죠? 흥겨운 노래 몇 개 빼고는 심드렁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선택을 잘못한 줄 알고 아이들에게 얼마나 미안해했는지 몰라요. 하지만 이 시 노래를 듣고 난 후 시를 쓴 아이들은 모두 시인이 되더라고요.

작년에 이 시 노래를 듣고 혜리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약수터가 있는 산에 올라가 가을을 느껴 보고, 살펴 봤어요. 그런 다음 혜리가 시를 이렇게 썼지요.

청설모

신정혜리

청설모
청설모는 나보다 빠르다.
청설모는 바쁘다.
뭘 할까?

아마도 겨울 채비를 하느라 바삐 이리저리 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는 청설모의 모습이 혜리 인상에 많이 남았나 봐요. 혜리보다 시를 더 예쁘게 쓴 친구들도 많았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시가 없어 여기엔 싣지 못해 아쉬워요.

시 노래 말고도 아이들이 쓴 시로 낸 책이 서점에 가면 많이 있어요. 같은 친구들이 쓴 시라 아이들이 서로 공감을 많이 해서 그런지 참 재미있게 읽더라고요. 같이 시 쓰기를 할 때 시 쓰기 전에 같이 낭송하면 아이들 시가 아이들답게 많이 깨끗해지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비오는 날 일하는 소』 표지
제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 어린이가 쓴 시집으로는 『비오는 날 일하는 소』 『호박 도둑놈』 『학교야, 공차자』 『달팽이는 지가 집이다』 『엄마의 런닝구』가 있어요. 저는 아이들이 쓴 시를 읽으면서 아이들이 지금 느끼는 맘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저도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이제 어른이 되니 어렸을 때 느꼈던 그 맘을 잊어 버려 아이들 편에서 생각을 많이 못하거든요. 그리고 지금 친구들이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 생활하는 것들이 25년 전의 생활과는 많이 달라 제가 잘 모르는 부분도 많고요. 그런데 이 어린이 시를 읽으면서 ‘아! 맞아. 그 때는 나도 그렇게 느꼈는데.’ ‘아, 맞아! 나도 그랬는데.’ ‘아, 맞아! 나도 그랬었지.’ ‘아하, 요즘 애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면서 아이들 생활을 많이 엿보게 되어, 제가 아이들에게 쓰는 맘이 많이 너그러워졌어요.

올 가을에는 여러분들도 아이들과 함께 가을을 충분히 느껴 보시고, 시를 써 보세요. 참, 아이들 시를 보기 전에 김녹촌 선생님이 쓰신 『어린이시 쓰기와 시 감상지도는 이렇게』라는 책을 읽어 보면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저도 가을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 시를 써서 아이들 시와 함께 복도 시화전을 열 테니 여러분들도 놀러와서 봐 주세요.
정방종향 / 제 이름이 어색하다고요? 하지만 벌써 눈치 채신 분도 있네요. 맞아요. 어머니 성 함께 쓰기를 하고 있어요. 저 뿐만 아니라, 도서관과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도 부모님 성을 함께 써요. 저는 사라 스튜어트의 『도서관』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가정 도서관을 만들어 모든 이들에게 책을 빌려 주고, 나이가 들면 꼬마 친구들에게 책 읽어 주는 할머니가 되는 야무진 꿈을 가진 아줌마예요. 도서관과 학교 특기 적성 강사로 나가 아이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고, 딸아이가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 사서 어머니로 봉사하면서 날마다 책 냄새를 맡으며 살고 있어요. 옷 사는 것보다 책 사는 것을 더 좋아하고, 책 읽을 때 울기도 잘 울어 혜리한테 놀림을 받기도 해요.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