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2월 통권 제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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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나서는 밤 나들이

최수연 | 2005년 02월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밤새도록 놀고 싶은 친구와 함께, 처음으로 같이 잠드는 날! 여기, 아이라와 레지가 처음 맞이하는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반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두 아이가 들뜬 표정으로 뭔가 꿍꿍이를 주고받는 모습을 담고 있는 책 표지만 봐도 ‘처음 친구 집에서 자는 날’의 설레임을 짐작할 수 있지요. 그도 그럴 것이 친구 집에서 잠을 함께 잘 수 있다면 재미있게 놀던 중에 헤어지지 않아도 되고 밤늦도록 잠들지 않고 신나게 놀 수 있으니까요. 이런 것이 한 번도 친구 집에서 자 본 적이 없는 아이에게는 무척 큰 매력으로 다가오겠지요.

그런데 레지네 집에 자러 갈 생각에 들떠 있는 아이라에게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레지네 집에 곰 인형을 가져갈 거냐고 누나가 물었기 때문이지요. 만날 끌어안고 잠드는 곰 인형이지만 친구 집에 가져가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아이라는 펄쩍 뜁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아이라는 고민에 빠지고 말았어요. 그날 밤은 친구 집에서 처음 자는 날이기도 하지만 만약 곰 인형을 가지고 가지 않는다면, 곰 인형 없이 자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 되니까요. “괜찮을 거야. 아무렇지도 않을 걸. 어쩌면 곰 인형 없이 자는 게 더 좋을지도 몰라. 그러니 그런 걱정일랑 하지도 마.” 자존심 때문에 누나에게 일단 이렇게 큰소리부터 치고 넘어갔지만 그렇다고 고민이 해결되지는 않았지요.

부모님은 너무도 태연하게 “가져가렴.”이라고 말하지만 아이라는 레지에게 아직도 곰 인형을 안고 자는 아기라고 놀림이라도 받을까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웃지 않을 거야.” 이번에도 부모님은 확신합니다. 하지만 “레지가 웃을 거야.”라는 누나의 한 마디에 아이라는 곰 인형을 가져가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그날 오후에 만난 두 아이는, 밤새도록 “진짜 진짜 재미나게 놀자”고 단단히 벼릅니다. 아이라는 그 와중에도 레지에게 “곰 인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슬쩍 묻습니다. 그런데 레지는 자꾸 딴청을 부리며 대답을 피하네요.

드디어 레지네 집에 갈 시간입니다. 아이라는 가방 하나를 들고 나지막한 울타리를 넘어 바로 옆집인 레지네 집으로 갑니다. 낮에 계획했던 놀이들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있다가 잠자리에 든 두 아이는 이제 “귀신 얘기나” 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레지가 귀신 얘기를 하다 말고 서랍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는 게 아니겠어요? 아이라는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가 곰 인형 ‘빠빠’를 데려옵니다. 레지도 밤마다 ‘푸푸’라는 곰 인형을 안고 잠든다는 것을 알았고, 그게 웃을 일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아이라가 잘 알지요. 아이라가 ‘빠빠’를 데리러 간 사이 레지는 자기 곰 인형을 안고 잠들어 버렸습니다. 아이라 역시 ‘빠빠’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난 뒤에야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습니다. ‘처음 친구 집에서 자는 날’이 ‘처음 곰 인형 없이 자는 날’이 되지는 않았지만 두 아이에겐 우정을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 줄, 새로운 비밀과 공감대가 생긴 셈이지요.

이 책은 ‘처음’ 겪는 일에 대한 아이들의 설레임과 아기 때부터 지니고 있었던 물건에 대한 애착, ‘쓸데없지만 나름대로 심각한’ 고민들을 섬세하고 재미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 아이라는 작가가 주로 그리는 캐릭터 가운데에서도 유명한 아이라고 하네요. 걱정도 많고 소심하지만 밝고 따뜻한 아이라, 곰 인형에 대한 생각을 묻는 아이라의 말을 못 들은 척하면서 속으론 곰 인형 때문에 아기처럼 보일까 한걱정을 하고 있었던 레지 모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버나드 와버가 글과 그림을 모두 맡아 글·그림 읽기가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어린 아이를 친구네 집에서 자라고 보내는 일을 일면 ‘남의 집에 폐를 끼치는 일’로 생각하거나 심지어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는 것을 부모들이 더 걱정하기도 하는 우리 정서에는 이 이야기가 말 그대로 ‘딴 나라 아이들 얘기’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단순한 선에 빨강, 노랑, 초록 계통의 색깔만 써서 간략하게 그린 그림의 따스한 느낌, 놀 궁리하기에 바쁜 아이들의 모습이나 부엌 일을 함께하는 부모님의 모습 등을 보는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듯합니다. 그리고 아이라 누나의 마음을 읽어 보는 것도 재미납니다. 왜 자꾸만 레지가 아이라를 놀릴 거라고 말하고, 곰 인형 없이 잘 수 있겠느냐고 하며 아이라를 걱정에 빠지게 하는지……. 어린 누나에게도 ‘동생 없이 자는 날’이 처음이기 때문은 아닐는지요. 아이라의 부모님도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라가 곰 인형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갔을 때 누나까지도 여태껏 자지 않고 식구들이 다 나오는 장면에서 슬며시 웃음이 나옵니다. 마냥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는 듯 보이면서도 이런저런 걱정이 많은 아이들과 가족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렸습니다. 친구 집에서 자 본 일이 없는 아이나 친구와 함께 자는 날을 기대하는 아이, 친구나 가족에게 말 못할 걱정들에,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애태우는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책입니다. “너도 아이라 같지?” “레지처럼 그렇지?” 하며, “나도 그래.” “다들 그렇지, 뭐.” 하며 한바탕 웃고 싶어집니다.
최수연 | 『열린어린이』 편집부에서 일하며 어린이책을 읽어 갈수록 어린 시절과 새롭게 만나고, 의연하게 작별하기도 하는 특별한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좋은 책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창이 된다는 믿음을 어린 친구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도서관』의 엘리자베스 브라운처럼 벽마다 책꽂이를 세워 놓고 환한 창가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좋은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로운 마음으로 사는 것이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