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2월 통권 제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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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지도의 이론과 실제]
문학을 즐기고 기뻐하자

김서정 | 2005년 02월

독서 교육이라……. ‘독서 교육으로 아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에 관해 글을 쓰라는 청을 받고 처음에는 난감했습니다. 저는 원래 독서 교육이라는 말을 그다지 안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열린어린이 독서 지도사 양성과정’에서도 어린이 문학이 대체 어떤 것인가, 어린이 책을 누가 왜 쓰는가, 내가 재미있게 읽은 어린이 책은 어떤 것이 있는가, 하는 것들을 주로 이야기했습니다.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른 강의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린이 책에 대해서 느꼈던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어른인 학생들과의 사이에 일었던 교감은 참 뿌듯한 것이었습니다. 어른들은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 읽어 주는 책을 재미있어 했고,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 때로는 속시원하다며 통쾌해하기도 했고, 때로는 ‘나는 이랬는데.’ 하고 앞다투어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몰랐던 어떤 세상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에 대해 어린 아이들처럼 좋아했습니다.

그러면 된 거지요.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거기까지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명색이 동화 작가이지만, 나는 아이들과 직접 대면하면서 아이들의 마음 속과 머리 속을 들여다보려고 애쓴 적이 별로 없습니다. ‘내가 바로 앤데, 뭘!’ 하는 생각이거든요. 나만 아니라 내 주위의 동화에 관련된 어른들 중 아이 같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동화는 어른과 아이 양쪽을 다 움직여야 하는 문학이기 때문에, 마음 속에 아이를 살려 두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 훨씬 편하고, 도움이 더 많이 됩니다. 오히려 아이들과 책 이야기를 나눌 때는 아이들이 뭔가 모범 답안을 말하려고 하는 태도, 질문자의 마음에 드는 대답을 하려고 눈치보는 기색이 드러나 심기가 불편한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고 편안하고 솔직하게 책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멍석을 깔아 주는 일, 독서 교육은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아이들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정도 말이지요. 독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는 지난 호의 글에 훌륭하게 피력이 다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선 어린이 문학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짚어 보려고 합니다. 언젠가 강의 중에 어떤 학생이 “어린이 문학은 어린이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문학인데…….” 하길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나는 어린이 문학에 관계된 사람들이 어린이 문학에 대해서 그렇게 감상적으로만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아이 정신없이 사랑스럽듯이 세상 모든 사람이 세상 모든 어린이를 사랑스러워하기 때문에 어린이 문학이 나온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더 복잡한 배경과 역사가 얽혀 있습니다. 어린이 문학은 오히려 어른 문학보다 더 음흉한 의도를 숨기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릴리안 스미스는 『아동문학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동문학의 짧은 역사를 살펴보면, 각각 그 시대의 어린이 책에는 그 시대에 가장 나쁜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은 시대적 관심에 너무 지배를 받아서 어린이들한테 주는 책에까지 나쁜 영향을 미친 예를 알고 있다. (……) 이런 책은 테마가 어린이들 본래의 흥미를 자극하기보다는 사회 문제에 대한 어른들의 진지한 관심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어린이 문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어린이 문학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어린이 문학은 참 묘한 문학입니다. 전적으로 그것을 누가 읽어 주느냐에 따라 정체가 판가름되는 분야의 문학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문학, 독일 문학, 일본 문학처럼 사용되는 언어에 따라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시, 소설, 희곡처럼 장르에 의해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로맨스 소설, 추리 소설, 공상 과학 소설처럼 그 내용의 관습에 따라 나뉘는 것도 아니지요. ‘어린이’라고 추정되는 독자들에게 읽히는 문학이라는 것이 어린이 문학의 경계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린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어린이’라는 개념이 인류가 생겨나면서부터 붙박이로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인간에게 어린이라는 특별한 시기가 있다고 인식된 것은 겨우 16세기에 들어와서였지요. 그 전까지는 영유아기를 벗어나 자기 몸을 자기가 지탱할 만한 힘을 갖게 되면 인간은 바로 성인 취급을 받으며 자기 몫의 노동과 책임을 짊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회가 점점 복합적으로 변해가고 성인 역할을 하는 데 특별한 기술과 교육이 필요해지면서 그 준비 기간인 아동기라는 개념이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그러면서 어린이라는 존재를 하나의 인격체로 다루어야 한다, 그 기간 안에 겪는 특수한 상황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특질이 따로 있다는 인식이 퍼져갔다는 것입니다. 그런 특성을 고려하면서 어린이가 훌륭한 성인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임을 어른들이 깨닫게 됐다는 거죠.

물론 이런 생각은 아주 긍정적이고 낭만적인 견해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그런 착하고 점잖은 학설에 찬물을 끼얹는 소리도 합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은, 아이들을 다스리기 편하도록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와 규칙과 틀 안에 견고하게 가두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음모 이론이죠. 아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교육시킬 생각을 한 것도, 산업혁명 이후 아이들을 일꾼으로 써먹기 위한 기술이 더 이상 예전 농경사회에서처럼 집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공장의 힘들고 지루한 노동, 비인간적인 대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일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군대식으로 교육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어린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함께 발생한 어린이 문학은 바로 그 음모의 앞잡이 노릇을 충실하게 해왔다는 논문들도 있습니다. 신을 공경하라, 나라에 충성하라,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라, 부모에 효도하라,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라, 모험심을 키워라, 어려운 이웃을 돌보아라, 착한 어린이가 되어라…… 어린이 문학이 목청 높여 강조했던 이런 덕목들에는 모두 힘을 가진 어른들이 힘없는 아이들을 고분고분하고 쓸모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만들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들어 있었음을 조목조목 밝히고 있지요.

다행히도(그리고 당연히도) 어린이 문학의 역사는 그렇게 속셈이 뻔한 책보다는 문학적 성취가 뛰어난 책들이 주도해 왔습니다. 문학의 본성에 충실한, 그러니까 언어 면에서든 내용 면에서든 기존 틀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거부하고 뛰어넘는 새롭고 파격적인 세계를 보여 주는 작품들 말이지요. 다시 릴리언 스미스의 말을 인용하자면, “그 당시의 사회적 틀에 너무 맞아 있었기 때문에 후에는 그 의의를 많이 잃어 버린”책들이 많습니다.

어린이 책의 역사는 그렇게 사회적 틀에 따르는(그래서 아이들을 옭아매려는) 책과 그것을 뛰어넘는(그래서 아이들을 자유롭게 풀어 주려는) 책 사이의 싸움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싸움은 어른 책보다 어린이 책에서 훨씬 더 치열하게 그러나 더 은밀하게 펼쳐집니다. 그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고 그른가가 아닙니다. 도덕적, 윤리적인 옳고 그름은 너무나 뻔한 것이고 역사적, 사회적인 옳고 그름은 시대에 따라 평가가 너무나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너무 추상적인 것 같지만, 문학적으로 얼마나 튼튼하고 아름다운가, 아이들을 얼마나 깊이 일깨워서 높이 올려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여전히 나는 독서 교육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일은 지극히 개별적이고 내면적인 일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관심있는 분야의 책, 재미있을 듯한 책을 찾아 읽고, 혼자 생각에 잠기면서 책이 자기에게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감각에 놀라워합니다. 그것들을 말과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나눌 때도 있습니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공감의 기쁨을,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토론의 즐거움을 얻습니다. 그럴 때는 내 생각의 지평을 더욱 넓힌다는 만만치 않은 소득도 따라옵니다. 만약에 책에 문제집이 딸려 있어서 읽은 뒤에는 반드시 문제를 풀어야 하고, 정답을 맞혀야 하고, 요구되는 형식에 맞을 독후감을 써야 한다면 책 읽기가 얼마나 지겨운 일이 될까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책 읽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어합니다. 무슨 책을 읽을 것인가, 이 책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공식을 만들고 책의 가치와 즐거움을 계량화하여 어떤 수치로 측정하고 싶어합니다. 혹시 이런 일이 문학의 자율적인 권리와 영역, 그것을 개인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기쁨을 침해하게 되지는 않을까요? 책 읽기를 가르치고 싶어하는 어른들이 기본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 끊임없이 되돌아보아야 할 원리일 것입니다.
김서정 / 동화를 읽고, 쓰고, 옮기고, 가르치고, 평론하는 일로 몹시 바쁜 (척하는) 아줌마입니다. 지은 책으로 『용감한 꼬마 생쥐』 『나의 사직동』 『믿거나 말거나 동물 이야기』 평론집 『어린이문학 만세』 『멋진 판타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어린이문학의 즐거움』 『용의 아이들』 『일주일 내내 토요일』 『미오 나의 미오』 등이 있습니다. 숙명여대 겸임교수이고, ‘김서정동화아카데미’에서 동화를 가르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