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3월 통권 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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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균의 동화 읽기]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오석균 | 2005년 03월

구약성서를 보면 예언자 요나 이야기가 나온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도시의 멸망을 예언하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다. 요나에게 예언을 들은 니느웨 사람들은 그간의 타락한 생활을 반성하고 여호와께 회개의 기도를 올린다. 니느웨가 멸망하기로 예언된 날, 이 도시에는 아무런 재앙도 일어나지 않는다. 졸지에 거짓 예언자가 되어 버린 요나는 허둥지둥 니느웨를 떠난다. 벌판을 배회하던 요나는 아주까리 나무 그늘에 몸을 눕히지만, 여호와가 곧 그 나무를 시들게 한다. 이를 원망하는 요나에게 여호와가 말한다. “너는 작은 불편을 겪는 것만으로도 원망하지만, 만일 그들이 회개하지 않아 생명을 빼앗긴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이냐.”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 대목만큼 예언의 본질을 깊이 있게 담아 낸 이야기도 드물 것 같다. 형식 논리로만 예언을 받아들이면, 니느웨는 멸망하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처음의 말씀과 나중의 말씀 사이에 숨겨진 의미를 깨닫는 게 중요하다. 진정한 예언은 파멸의 확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정성을 다해 파멸을 막고 생명을 보존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인간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물들 가운데 하나의 종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은 너무 자기 중심적이고 오만하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연을 무분별하게 파괴하고 무수한 생명체의 목숨을 빼앗아 왔다. 인간의 욕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파괴의 속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마치, 우리들 모두가 제동 장치가 고장 난 기관차를 타고 낭떠러지를 향해 질주하는 것 같다. 미친 듯이 질주하는 욕망의 다른 이름은 ‘개발’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경고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자연은 자기 스스로를 치료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그 신호가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뚜렷한 징후로 나타날 무렵이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하라다 마사즈미의 『미나마타의 붉은 바다』는 무분별한 개발이 자연에게, 그리고 자연에 의존하여 살고 있는 인간에게 끼친 상처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세계 최초의 공해병을 다룬 다큐멘터리 동화’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제목과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일본의 미나마타라는 고장에서 발생한 공해병의 실태와 그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신경정신과 의사인 작가는 이 병의 실상을 접하면서 환경 문제의 심각성에 눈을 떴다.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마을 사람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겼다. 『미나마타의 붉은 바다』는 작가가 이 기록들을 바탕으로 쓴 환경 동화이다. 다시는 이 고장 사람들이 받았던 고통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쓴 작품이다.

미나마타는 일본에서 손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그런데 이곳에 비료 공장이 들어서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비료 공장에서 대량으로 방출한 폐수를 조개류와 물고기들이 먹고, 그것을 다시 마을 사람들이 먹으면서 연쇄 중독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처음 이 병의 징후가 나타날 때만 해도 사람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바위딱딱이 새가 바위에서 데구루루 굴러 떨어지고, 하늘로 날아오르려던 까마귀가 그물에 고개를 처박고 주저앉을 때까지만 해도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러나 뭔가에 씌워지기라도 한 것처럼 고양이가 발작을 일으키다가 바닷물로 뛰어들고, 가축들이 잇따라 원인 모를 죽음을 당하면서 사람들은 불길한 예감을 갖는다.

이런 예감은 곧 현실로 드러난다. 걸음마를 시작하면 곧 안마당 같은 바닷가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힘없이 쓰러지는 것이다. 아이들은 손발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심각한 언어 장애를 겪는다. 사람들은 처음엔 이 고장에 전염병이 발생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래서 마을 둘레에 새끼줄을 치고, 입구에는 ‘출입금지’ 팻말을 세운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바닷가 마을의 이름이 ‘편견과 배제’를 상징하는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미나마타 병’이 비료 공장에서 내보낸 유기 수은 때문에 생긴 공해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까지는 긴 시간이 흐른다.

『미나마타의 붉은 바다』에는 이 병을 앓았던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하나둘씩 목숨을 잃고, 살아 남은 아이들도 후유증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다. 세상을 미처 알기도 전에 슬픔부터 알게 된 아이들이지만, 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생명의 불꽃을 태워 가면서도 아이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열심히 살아간다. 아이들은 자신의 아픔을 통해 이웃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고, 더 나아가 서로 돕고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엄마 몸 안에 있을 때부터 수은에 중독된 채 태어난 시노부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국제 환경회의에 참석해서 환경의 소중함을 알린 이야기, 의사소통이 힘든 친구들의 말을 통역해 주는 교꼬 이야기, 그리고 이 아이들이 힘을 합해 열게 된 ‘작은 음악회’ 이야기 들은 참으로 읽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가족은 회사와 국가를 상대로 책임을 묻는 힘든 싸움에 들어간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얼마간의 금전적인 보상이 아니라, 다시는 환경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약속과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일자리를 보장받는 것이었다.

이 아이들이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회복하고 세상의 빛이 되어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길이 무척 따뜻하다. 이렇게 정성과 사랑이 깃든 글이기에, 나지막한 목소리이면서도 독자들의 가슴에 스며드는 동화의 힘을 갖게 된 것이다. 진실한 기록은 사실들의 단순한 전달이나 묶음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의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호소력을 갖는다. 나는 『미나마타의 붉은 바다』를 읽다가 문득 언젠가 친구에게 선물로 받았던 유진 스미드의 사진집을 떠올렸다.

미국의 기록 사진 작가인 유진 스미드는 수년 동안 미나마타에 머물면서 산업 공해가 주민들에게 남긴 상처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가 남긴 감동적인 사진들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작품이 있다. 제목은 「도모꼬를 목욕시키고 있는 어머니」. ‘태아성 미나마타 병’을 갖고 태어난 아이와 그의 어머니를 찍은 이 사진에는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담겨 있다. 스러져가는 자식의 생명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길보다 더 안타깝고 애절한 것이 있으랴.

얼마 전에 천성산 터널 공사에 반대하여 100일 동안 단식을 감행했던 지율 스님에 관한 소식이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다행히도 잠정적으로 공사를 중단하고 환경 영향을 재평가하겠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지율 스님은 단식을 중단하셨는데, 그 과정을 건네 들으면서 정말로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무관심과 비난이었다. ‘그깟 도롱뇽 때문에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하느냐.’는 것이 반대하는 견해의 골자였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상황이 이 땅에서는 너무도 빈번하게 되풀이된다.

나는 무조건 개발을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그러기엔 나의 지식이 너무 짧고, 편안함과 안락함을 모두 떨쳐 낼 만큼 의지가 강하지도 못하다. 하지만 개발을 하기에 앞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예상되는 문제점을 충분히 검토하고 고민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무엇 때문에 그리도 급하고 바쁜가, 어차피 우리 인간은 지구라는 별에 잠깐 살다 갈 손님인 것을. 우리에게는 다른 생명들을 함부로 내칠 권리가 없다. 게다가 인간의 무분별한 욕망이 부른 자연 파괴는 인간 자신의 파괴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지율 스님이 단식을 끝내면서 발표한 내용의 일부를 옮겨 적는다.

“저는 모든 생명과 우리들이 둘이 아니라는 데서 천성산 이야기를 시작했으며, 지금은 대립되는 듯 보이는 정책과 저희들이 동화처럼 쓰는 도롱뇽 이야기가 둘이 아니라는 데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싶었습니다.”
오석균 | 대학에서 독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어린이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으며, 틈틈이 외국 어린이책을 우리 말로 옮기고 있습니다. 『인간은 얼마만큼의 진실을 필요로 하는가』『책과 인쇄의 역사』『호야와 곰곰이의 세계지도 여행』『나도 엄마처럼 클 거야!』 『스타킹을 뒤집어쓴 미미』 등을 우리 말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