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3월 통권 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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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구의 그림책 읽기]
서로 다른 관점을 교차 서술한 그림책

윤한구 | 2005년 03월

그림책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사건들은 언어적이거나 시각적인 기호들로 재현된다. 그리고 이러한 재현 행위는 넓은 의미에서 ‘서술’ 또는 ‘이야기하기’이다. 그림책의 서술은 말하지 않고서도 행위를 보여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소설과 다르다. 예를 들어 그림책 『넉 점 반』에서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 하고 아기가 물었을 때, 그림 속 시계는 이미 ‘네 시 반’임을 독자에게 알려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순간 작중 인물인 아기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처럼 그림책이 말하지 않고도 행위를 보여 줄 수 있다는 점은 우리가 보는 것과 작중 인물들이 본 것으로 간주되는 것 사이의 격차를 만든다. 그리고 이야기가 ‘누구의 관점을 서술하고 있는가’에 따라 독자가 서술 정보를 다르게 인지하기 때문에 생긴다. 그렇다면 그림책에서 이야기는 ‘누구의 서술 관점을 서술하고 있는가’를 무엇으로 알아볼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독자들은 그림책이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당연해 보이는 이상 이런 질문을 거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순진한 독자에게조차 당연해 보이는 이러한 문제를 제기해 보면, 그림책의 서술이 만들어 낸 다양한 의미들을 보다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 이수지의 그림책 『동물원』은 이러한 문제 즉, ‘누구의 서술 관점을 재현하고 있는가’를 이용하여 서로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대비시키고 이를 하나의 맥락으로 엮어 낸 그림책이다.

『동물원』에서 타이틀이 있는 첫 그림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동물원 입구 장면이다. 이 그림은 대부분 무채색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동물원’이라는 타이틀 밑에 공작새와 아이의 볼은 유채색으로 그려져 있다. 아이는 동물원 입구에서 풍선을 손에 든 채 공작새를 바라보고 있다. 이 시선은 독자들에게 이 그림책의 이야기는 작중 인물인 아이의 관점에서 서술될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오늘 나는 엄마 아빠랑 동물원에 갔어요.”라는 글을 읽는 순간 이러한 추측은 올바른 것으로 확인된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아이의 관점, 즉 아이가 보고 겪고 상상한 것들이 서술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글과 유채색으로 그려진 그림들로 재현된다. 아이는 공작새를 따라 동물들에게 가고 동물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동물원은 정말 신나는 곳이에요.”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만이 이 그림책의 이야기를 모두 서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동물원 입구 장면으로 가 보자.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동물원에 들어가기 위해 분주하다. 동물원 안에서 아이들은 싸우거나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고, 어른들은 사진을 찍거나 벤치에 걸터앉아 있고, 엄마 아빠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게다가 회색빛 시멘트 건물, 촘촘한 철창, 동물에 무관심한 관람객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동물 우리에는 동물이 없다. 딱딱하고 단조로운 직선과 무채색으로 그려진 동물원 전경 그림은 동물원에 대한 작가의 단상을 드러낸다. 그리고 자신의 관점에서 본 동물원 전경 안에 아이를 잃어 버린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관찰자적 시각으로 담아 낸다. 이는 작가 자신이 또 하나의 서술자임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본 동물원 이야기를 강조하여 서술하지 않고, 오히려 작중 인물인 아이가 서술하는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부각시키고 의미를 강화하는 데 이용한다. 이는 주로 그림의 특성으로 나타난다. 내포적 서술자인 작가가 말하는 현실의 세계는 회색빛 시멘트 건물과 촘촘한 철창으로 둘러싸인 동물 우리, 동물이 없는 동물 우리, 엇갈리는 시선, 무채색, 딱딱하고 단조로운 직선으로 그려진 반면, 명시적 서술자인 작중 인물 아이가 말하는 상상의 세계는 천연색, 거침없고 자유분방한 곡선, 함께 놀고 함께 즐기는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들이 하나의 맥락 안에서 통합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을 것이다. 이수지의 『동물원』은 이 점에서도 적절한 효과를 구현하고 있다. 그는 명시적인 서술자인 아이와 내포적 서술자인 작가 자신이 서술의 주체를 넘겨 주고 넘겨 받으면서 동일한 장소와 상황에서 서로 다른 두 이야기를 균등하게 전개하고, 이를 하나의 맥락 안에 교차 편집함으로써 하나의 이야기로 통합한다. 이를 위해 그림책 전체의 흐름은 글로 서술된 이야기의 순서를 따라간다. 아이가 ‘하마 수영장’에서 하마와 놀고 있을 때 엄마 아빠는 같은 장소에서 아이가 없어졌음을 알게 되고, 아이가 코끼리와 놀고 있을 때 엄마 아빠는 ‘코끼리 궁전’ 앞에서 아이를 찾아 헤맨다. 즉, 서로 다른 사건과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관점의 사건들이 동시에 일어난다. 그 결과 사건들은 장소에 의해 하나의 문맥 안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아이의 옷이나 신발이 점점 채색된다. 이는 아이가 동물원 나들이를 통해 얻게 되는 즐거움이나 만족감 또는 동물과의 교감 등을 표현한 것으로, 아이의 심리 변화를 드러내고 이야기를 진전시켜 나간다. 마침내 “동물원은 정말 신나는 곳이에요.”라는 글이 있는 그림에서는 아이는 활짝 웃고 있으며 고릴라는 아이가 잃어 버린 빨간 신발을 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교감이 아이의 상상만은 아니라는 듯이, 면지 그림에서 고릴라의 몸짓으로 이를 보충 기술한다.

한편, 아이 신발이 아이와 동물들의 교감의 징표라면 공작 풍선은 엄마 아빠와 아이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한다. 무채색의 공작 풍선과 유채색의 신발은 시각적으로 대조적인 현실 세계와 상상의 세계를 넘나든다. 아이 신발은 무채색으로 그려진 현실 세계에서 더 두드러지고, 공작 풍선은 유채색으로 그려진 상상의 세계에서 더 두드러진다. 그리하여 독자의 시선을 끌면서도 하나의 문맥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이의 물건인 신발과 풍선은 『동물원』의 이야기가 작중 인물인 아이의 서술 관점에서 서술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서술 관점에서 볼 때, 작가 자신이 보고 느낀 동물원 전경은 배경처럼 보이게 된다.

종합하여 말하면, 이수지의 『동물원』은 명시적 서술자인 아이의 이야기와 내포적 서술자인 작가 자신의 동물원에 대한 단상을 하나의 이야기 속에 엮어 내면서, 현실과 상상의 공간을 무채색과 유채색으로 대비시킨다. 또한 아이의 물건인 신발과 공작 풍선을 이용해 두 공간을 하나로 연결하고 그 잔상이 새로운 의미를 드러내도록 했다. 이러한 서술 기법은 매우 유용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이수지의 그림책이 밋밋하고 심심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 작가는 『동물원』을 통해 독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저 아이의 상상 속에 살아 있는 즐거운 동물원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 그림책의 이야기는 단조롭고 평이하다. 작가 자신의 동물원에 대한 단상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나 이를 주제라고 하기에는 이야기가 너무 불명확하고 가볍게 처리된 것 같다. 이는 앤서니 브라운의 『동물원』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독자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앤서니 브라운의 『동물원』도 가족의 동물원 나들이를 소재로 하고 있다. 그 역시 동물원에서 보고 느낀 바를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동물원은 자연의 다양함과 거룩함을 맛보게 하고 자연을 존중하게 만들 수 있는 배움의 장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과 야만성을 드러내는 곳이다. 우리 독자들은 이 그림책을 통해 동물원에 대한 작가의 성찰뿐만 아니라 인간과 동물에 대한 철학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에 독자들은 감동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한데 왜 이수지의 그림책은 나에게 이 같은 감정적 울림을 주지 못할까. 작가는 ‘어떻게 이야기를 전달할지’에 대한 형식적 고민만큼, ‘하고자 한 이야기’에 대해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이는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에 앞서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말하는 것이다. ‘무엇’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작가의 삶 속에서 얻은 지혜나 철학에서 또는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는 작가의 시각 언어로 어떻게 독자와 소통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파생시킬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독자는 그 깊이에 감동받고 그 울림에 즐거움을 얻게 될 테니까.
윤한구 | 어렸을 시절 꿈은 훌륭한 화가가 되는 거였어요. 어른이 되어서는 금융계에서 경제 전문가로 일했지만 언제나 그림을 좋아하고 그림책에 관심이 많았지요. 평생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는 없을까 고민하다 '도깨비'라는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앞으로도 언제나 어린읻르이 아주 좋아하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