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3월 통권 제28호
속 깊은 책 이야기
책으로 보는 우리 세상
즐거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열린어린이 서평

[새로 나온 창작 동화 들여다보기]
무센게지를 거슬러 올라

김지현 | 2005년 03월

다양한 대중 매체와 과학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한번도 가 보지 못한 곳을 방에 앉아 구경합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 신문과 잡지는 밖을 내다보는 창이 되었고, 우리는 그 창을 통해 세계 곳곳을 마치 옆 골목인 양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 그곳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설고 신비한 이름입니다. 물론 수많은 동물 프로그램은 사바나를 달리는 사자와 얼룩말을 보여 주고, 잡지 곳곳에서도 반라의 아프리카 부족을 만날 수 있지만 정작 그들의 삶은 빽빽한 밀림 아래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카메라와 마이크가 들어가기 힘든 자연 환경과 한번도 세계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못했던 그 땅의 역사가 맞물린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프리카 전체는 아니지만 숨겨진 그 땅의 한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아프리카 소녀 나모』는 매력적인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나모는 모잠비크 무센게지 강 유역 마을에 살고 있는 영리한 소녀입니다. 동시에 외로운 아이입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짐바브웨로 쫓겨 갔다는 아빠도, 표범에 물려 죽었다는 엄마도 나모의 기억 속에는 없습니다. 이모들의 미움과 차별, 계속되는 힘든 노동 가운데서 그나마 나모를 위로하는 건 자애로운 외할머니의 손길과 엄마에 대한 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콜레라가 마을을 휩쓸고, 나모는 원한을 품은 영혼과 결혼할 희생양으로 지목됩니다. 절망에 빠진 나모를 구한 건 ‘떠나라’는 할머니의 음성이었습니다. 진저리나는 구습에서 도망쳐 아빠를 찾아 떠난 나모, 하지만 나모를 기다리고 있는 건 장밋빛 모험이 아닌 삶과 죽음을 잡고 흔드는 수많은 역경들이었습니다.

낡은 배 한 척에 몸을 의지해 여행하는 동안 나모는 굶주림, 외로움, 야생 동물의 습격, 죽음의 위험을 겪습니다. 옥수수를 빻던 손으로 돌을 들어 바위너구리의 머리를 내려쳐야 했습니다. 나무 열매를 따던 손으로 나무 위에 집을 지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무심하기만 한 우리 독자들은 극한에 놓인 나모의 고난보다는 그 안에서 빛을 발하는 원시의 생명력에 마음이 끌립니다. 다른 동물이 죽인 얼룩영양의 뒷다리를 잘라 끌고 가는 굶주린 나모의 모습에서, 당연하게 씨를 뿌리고 거두는 모습에서, 먹이를 놓고 야생 동물과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에서 때로는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지만 그와 함께 알 수 없는 시원함에 소름이 돋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나모도 마찬가지입니다. 돌로 사냥감의 머리를 내려치며 그 끔찍함에 눈물을 터뜨리면서도, 곧 “내 창은 날아다니는 파리도 잡을 수 있단다. 너를 잡아 맛있게 먹고 말 테야.”라고 노래하는 나모 안에는 강한 생명력과 인간의 본능, 아프리카의 원시성이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죽은 영혼이 나타나 앞길을 일러 주고, 뱀으로 변한 물의 요정들이 환상을 보여 주고, 표범 속에 영혼이 들어가 산 자를 보호하는 등 여러 주술적 요소와 나모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아프리카 옛이야기와 전설은 이야기에 신비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신비함은 아프리카 밖의 세계나 기독교와 부딪쳤을 때 구습이 됩니다. 나모는 모잠비크와 짐바브웨 경계뿐 아니라, ‘영혼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 경계에도 서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그 중 한 곳만을 택하게 하지 않습니다. 나모가 두 세계의 성질 중 각각 이로운 것들을 취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희생을 강요하는 미신은 버리지만, 조상의 영혼은 존중합니다. 신식 교육과 물질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영혼의 가르침도 받아들입니다. 나모는 개코원숭이들의 섬에 사는 동안 아이에서 여자로 성장하지만, 과학자들이 모여 있는 에피피 마을에서도 새로운 삶의 형태를 배워 갑니다. 참으로 합리적인 방법이고 모나지 않은 결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결말이 정말로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요?

성장은 인간의 내부에서 일어나야 힘이 있습니다. 물론 환경이 바뀌고 그 환경으로 인해 새로운 경험과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도 일종의 성장입니다. 하지만 환경이 그대로일지라도 내부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환경을 개척하거나, 혹은 그 자리에서 어려운 환경을 대담하게 받아들이는 게 힘있는 성장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나모의 진정한 성장은 혼자 사냥하고 혼자 배를 만들었던 섬 생활에 있습니다. 그 에너지 넘치는 행진이 서구식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과 부유한 가족과의 만남, 그리고 새로운 생활과의 조화로 끝맺음되는 것을 보며 힘이 빠졌습니다. 모아둔 힘을 막 발산하려던 여성이 갑자기 얌전한 소녀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랄까요? 성급한 해피 엔딩 대신 전통과 새로운 가치관에 대한 고민, 자아를 찾기 위한 몸부림을 더 치열하게 그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성장 소설로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모의 이야기가 매력적인 것은 작가가 17년 간 살며 경험했다는 아프리카의 풍경과 그 환경 그 기후에서만 겪을 수 있는 독특한 에피소드들 때문입니다. 악어, 하마, 스라소니, 표범, 바위너구리, 개코원숭이의 생태는 우리 눈앞에 생생히 살아나고, 나모와 그들 사이의 교감은 원시 자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쉽게 접하지 못했던 아프리카, 그곳의 이국적인 분위기에 빠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지는 책입니다.
김지현 | 대학에서 문예창작학을 전공하고 오픈키드 컨텐츠팀에서 즐겁게 어린이책을 읽고 있습니다. 자신이 느꼈던 글이 가진 좋은 힘, 그 힘을 믿으며 자라는 아이들이 이 땅에 많아지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