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3월 통권 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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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창작 동화 들여다보기]
못난 내 모습을 동무 삼아 보아요

김은천 | 2005년 03월

어떤 아기가 옷 짓는 선녀의 정성스럽지 못한 바느질 때문에 솔기 터진 옷을 입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삼신은 삼칠일 동안 세상 독이 닿지 않게 지켜줄 부모를 찾던 중 날마다 산에 올라 치성을 드리는 아주머니에게 아기를 내려보냅니다. 하지만 계집애라며 서운해하는 말이 독이 되어, 터진 옷 솔기로 아기의 영혼 한 조각이 빠져 나와 구렁이가 되었습니다. 제 영혼의 일부인 구렁이가 한 곳에 머물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도 구렁이와 함께 세상을 떠돌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머리카락 일만 팔백 올을 모아 옷을 짜서 구렁이에게 입히면 비로소 영혼이 완전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물동이에서 태어난 ‘물이’가 길을 떠나게 된 거예요. 물이는 그렇게 숙명적으로 떠돌며 여러 가지 일들을 겪습니다. 정안수를 떠놓고 하늘에 빌어 삼신이 아이를 점지해 준다는 이야기는 우리 옛이야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아주 친숙한 느낌으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작가의 감칠맛 나는 입담도 옛이야기라는 형식과 잘 어우러지지요. ‘팥쿵팥쿵, 철없이 뛰던 심장’ ‘굼닐굼닐거리며 춤을 추고’처럼 의성·의태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한 표현들이 재미있어 우리말의 맛이 느껴집니다. 말의 리듬을 타고 다양한 표현으로 인물들의 행동과 심리를 묘사하는 것, 말꼬리를 잇는 대화법은 판소리로 된 소설을 떠올리게 합니다. 군데군데 물이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가 나올 때면, 이런 노래가 아닐까 흥얼흥얼 음을 붙여 보기도 하지요.

사람들은 누구나 ‘나는 왜 이렇게 모자란 구석이 많을까’ 하며 좌절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모두들 어떻게 다시 일어날 힘을 얻을까요? 저마다의 경험이나 환경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해답을 찾아가겠지요. 이 책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그럴 때 한 번쯤 물이의 인생을 떠올려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이는 구렁이 때문에 사람들에게 환대 받지 못하고 번번이 오해를 사고 구박을 받지만, 제 영혼의 일부인 구렁이와 언제나 함께 지내려고 합니다.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모아 옷을 짜서 구렁이와 완전한 하나가 되기 위해, 더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고 어려운 문제들도 꿋꿋이 이겨내지요. 알고 보면 모든 사람들이 구렁이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구렁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더 예쁘고 좋은 것으로 생각해 보고요. 구렁이를 구박하는 것은 곧 자신을 아프게 하는 것일터이니, 어떤 태도로 그와 함께 살아갈 것인지도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면서 말예요.

물이의 이야기를 곱씹어 볼수록 여러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집니다. 때로는 이야기에 담긴 상징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느라, 때로는 그런 생각에 대한 나의 의견을 견주어 보느라, 생각은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갑니다. ‘물이는 왜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 모습으로만 나올까?’ ‘완전한 영혼이란 어떤 것일까?’ ‘꼭 완전한 영혼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불완전한 물이와 완전한 물이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인생, 영혼, 운명 등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린이들도 이러한 주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생각의 깊이를 더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옛이야기는 이러한 보편적인 주제를 담기 적절한 형식일 것입니다. 하지만 주제와 상징의 무게가 너무 컸던 탓일까요? 이야기가 갈팡질팡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사랑 많고 헌신적인 어머니일 것 같던 물이 어머니가 구렁이 때문에 물이를 매몰차게 대하는 부분은 다소 어리둥절합니다. 모험 중에 만난 ‘재주 많은 아이’는 세상의 이치를 다 아는 척하지만 재주 없는 물이보다 똑똑하지 못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물이와 비교의 대상이 되며 비중 있는 역할을 할 것 같더니, 의외로 조용히 퇴장해 버립니다. 들쥐들을 소탕하는 마지막 모험에서 사람이 두목 쥐로 둔갑하게 한 여우 구슬이 ‘재주 많은 아이’와 함께 머물렀던 여우 아가씨의 구슬이라는 것도 어색합니다. 물이가 완전한 영혼이 되는 방법을 전해 듣고 마침내 구렁이의 옷을 완성한다는 전체 줄거리와 여러 모험들이 정교하게 들어맞지 않기 때문인지, 이야기의 맥락을 자꾸만 따져 보며 읽게 되었습니다. 줄거리 중심으로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었다면 좀 더 명쾌하고 신나는 모험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이는 자신의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주어진 길을 갑니다. 그런데 ‘나는 나는 밥버러지. 동무 찾는 떠돌이. 잃어버린 영혼 한 조각, 어디서 찾아올까?’라고 부르는 자조적인 노래의 분위기처럼, 물이에게서 좀처럼 밝고 힘찬 기운을 찾아 보기가 어렵네요. 물이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 인생은 불완전함에서 완전함을 이루기 위한 힘겨운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습니다. 부족한 제 모습인 구렁이를 꼭 감싸는 물이의 모습이 더욱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은천 |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어린이책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점점 아이가 되어 갑니다. 아이들과 어린 마음을 나누기 바라면서 오픈키드에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