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3월 통권 제28호
속 깊은 책 이야기
책으로 보는 우리 세상
즐거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즐거운 책 읽기

[책 읽기 지도의 이론과 실제]
좋은 책이란 무엇인가

김서정 | 2005년 03월

좋은 어린이 책이란 무엇일까요. 뭐, 거창하고 복잡하게 멀리 갈 것 없이 내가 좋아했던 책을 돌이켜 봅니다. 지난 호에서도 말했듯이 독서란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이어서, 어떤 책이 얼마나 좋은 책인가는 상당 부분 개인적인 취향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좋은 책의 기준을 어떤 절대적인 잣대로 제시하기보다는 상대적인 독서 체험에 의해 다양하게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나를 어린이 문학에 관련된 일을 하도록 만든 계기가 되었던 책들, 내 인생에 가장 중요했던 책들, 내가 고맙게 생각하는 책들, 그러니 나에게는 좋은 책이 되는 책들을 더듬어 봅니다.

가장 먼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전래 동화를 좋아했습니다. 전래 동화는 어른들이 흔히 권장하는 종류의 책입니다. 그 이유로는 조상들의 삶의 흔적과 지혜를 배우고, 전통을 이해하고, 한국적 정서와 사유 방식에 대한 원형적 체험을 할 수 있다, 등등이 거론됩니다. 외국 전래 동화에는 물론 세상을 더 넓게 보고 이해할 수 있다는 이유가 붙겠지요. 맞는 말이지만, 솔직히 내가 전래 동화를 좋아했던 이유는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나는 아름다운 공주와 용감한 왕자에 매혹되었고, 반짝이는 금은 보물, 찬란한 드레스에 넋이 나갔고, 무서운 마녀와 고약한 거인과 심술궂은 난쟁이에 숨을 죽였고, 버림받고 죽음의 위협 앞에 놓인 아이들에 가슴을 조였습니다. 인물과 사건들이 엽기적이고 잔인하고 기상천외할수록 그 이야기는 재미있었습니다. 한동안(지금도 그렇지만) 전래 동화는 그런 엽기성과 잔인성, 극단성과 편견 같은 요소들 때문에 여성학자들이나 교육학자, 사회학자들에게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나는 왕자 공주가 나오는 전래 동화는 아이들에게 읽히지 않는다.”고 자랑스럽게 밝히는 독서 지도사도 있었습니다.

물론 전래 동화에 공포스러운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인간의 한 부분, 인생의 어떤 측면이 공포스럽기 때문입니다. 전래 동화가 공주니 왕자니 보물 같은 최고의 것만을 지향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존재와 삶이 최고의 상태를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래 동화는 그런 것들을 의식과 이성의 언어가 아니라 무의식과 감성과 상징, 압축의 언어로 말하는 장르라고 여러 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 삶의 원리, 변화하는 언어와 사회, 이런 것들이 전래 동화에는 깊고도 풍성하게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전래 동화를 읽으면서 아이들은 의식 표면에서는 혹시 두려움을 느끼고 편견을 배울지 모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더 복합적이고 강렬한 진실을 느끼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린이 문학(그리고 그 영역에 편입된 다른 장르의 문학) 중에서 전래 동화만큼 논란이 많고 연구가 많이 되는 분야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 사실 자체가 전래 동화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가치를 반증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학설에 대해서 몰랐다 하더라도 여전히 나는 전래 동화를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책으로 간주했을 것입니다. 전래 동화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매혹적인 책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그 책들이 인간과 인생의 불가해성, 엽기성, 가혹함, 추악함, 또한 반면에 아름다움, 너그러움, 고귀함, 신비함 같은 것들을 가르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책들을 보면서 나는 뭐든 함부로 믿지 않는 법, 혹은 굳게 믿는 법, 선택하고 책임지는 법, 후회하고 돌이키는 법, 받아들이고 버리는 법,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는 법, 무엇보다도 모든 절망적이고 비관적인 현실을 넘어서는 희망을 간직하는 법을 배웠다고 믿습니다. 아이들이 책에서 배워야 할 게 있다면 바로 그런 게 아닐까요?

전래 동화가 인간과 인생에 대해서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좋은 책이었다면, 언어에 대해서 가르쳐 준 좋은 책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습니다. 이 책 재미있는 줄 잘 모르겠다는 사람을 나는 많이 만났습니다. 다 못 읽고 밀어 놓았다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법합니다. 나는 어렸을 때 『어린 왕자』가 그랬습니다. 50권짜리 전집 중에서 유일하게 끝까지 안 읽은 책이 바로 『어린 왕자』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 책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되었지만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 권하지는 않습니다. 누가 뭐래도 어린 나는 재미없었으니까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어렸을 때 읽었는지, 재미 있었는지 없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 책의 진짜 재미를 알게 된 건 대학생 때였습니다.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영어 공부 삼아서 원서를 읽고 난 후였지요.(그 덕에 나는 영어에 재미를 붙일 수 있었고, 그 덕에 번역으로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나한테는 정말 소중하고 좋은 책입니다.)

그 책에는 내가 그 전에 전혀 몰랐던 말 재미가 넘쳤습니다. 그건 영어로 봐야 재미있지, 우리 말로 번역해 놓으면 하나도 재미 없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심리학적, 논리학적, 상징적, 정치적, 형이상학적, 프로이트적 해석 등등 온갖 학구적 해석의 ‘제물’이 될 정도로 다층적 의미가 풍부한 작품입니다만, 그 중 으뜸이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말장난일 것입니다.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필독서로 권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말장난을 구사하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말장난’이 너무 가볍게 들린다면, ‘언어 구사력’, 혹은 ‘언어 장악력’이라는 표현으로 바꿔 부를 수도 있습니다.

문학은, 말을 가지고 노는 놀이입니다. 미술은 선과 색, 음악은 소리, 무용은 몸을 가지고 노는 놀이인 것처럼요. 그런데, 다른 예술에서는 그 놀이의 도구를 얼마나 솜씨있게 다루느냐, 즉 ‘어떻게’가 작품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는 데 반해 문학에서는 그보다는 주제가 무엇이냐, 무슨 메시지를 주느냐, 그러니까 ‘무엇을’이 ‘어떻게’보다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는 예가 흔히 있습니다. 어린이 책에서는 특히 심합니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초보 미술학도가 그린 흐뭇한 ‘구제의 손길’이 고흐의 시든 ‘해바라기’보다 주제가 좋다는 이유로 권장되는 경우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좋은 어린이 책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그 작품이 얼마나 말을 잘 다루고 있는가를 우선 보아야 합니다. 얼마나 적확한 말, 힘있는 말, 아름다운 말, 개성적인 말을 쓰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군더더기는 없는지, 모자라거나 넘치는 부분은 없는지, 공허한 구호인지 꽉 찬 진심인지를 판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제나 인물이나 구성 같은 건 그 다음에 살펴볼 문제입니다. 하지만, 말을 뛰어나게 다루는 작품이 주제나 인물이나 구성이 형편없는 경우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주제는 그럴 듯해도 구성이나 인물이나 문장이 엉망인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 책일수록 메시지는 아주 훌륭한 걸로 토해 놓지요. 소름 끼칠 만큼 삑삑거리는 소리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연주해 놓고서, 그래도 내가 연주한 게 바흐였노라고 큰소리치는 꼴입니다.

작가야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독자는 그런 엉터리를 가려 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음악회에 “바흐니까 들어야 해! 듣고 감상문 써!” 하면서 아이들을 어거지로 몰아넣어 괴롭히는 일은 없어야지요. 어린이 책도 문학의 한 분야이며 문학은 무엇보다도 언어 예술 작품이라는 인식이 없는 사람, 문장으로 그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려는 자세가 없는 사람, 어린이 책에서는 좋은 메시지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문장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이 없는 사람이 어린이 책에 관련된 일에 섣불리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그 외에도 나는 안데르센의 작품을 통해 어린이 책도 작가가 자기 자신을 치열하게 드러내는 자기 표현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모든 어린이 책 작가들이 동화를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몽하기 위한 도구로만 여겼을 때 안데르센은 자신의 전 존재와 전 생애를 동화로 표현했습니다. 일그러진 세속적 욕망과 성스러운 종교적 열망, 터질 듯한 기쁨과 죽을 듯한 슬픔, 끝없이 부푸는 자만심과 끝없이 떨어지는 자책감 사이를 극단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찢기던 마음을 안데르센은 작품에 그대로 고백했고, 그것이 안데르센을 동화의 아버지로 불리게 한 결정적 요인이었습니다. 동화를 쓰는 사람은 교사가 아니라 작가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자세가(드러내든 숨기든 간에) 자신을 표현하겠다는 자세보다 앞에 나와 있는 글은 진짜 문학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쯤에서 결론을 정리하자면, 좋은 어린이 책은 진짜 문학이어야 한다는 말이 될 것 같습니다. 한숨이 나옵니다. 누가 그걸 모르나요. 결국은 동어반복이고 추상입니다. 어려운 일이지요. 어깨 무겁고, 머리 무겁습니다. 그런데, 독서 지도사들은 그래야 합니다. 몇 달 간의 수업과 몇 권의 권장 도서 목록을 가지고 어떻게 좀 해 볼 생각이라면 절대로 독서 교육에 나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은 건 진짜 문학, 좋은 어린이 책이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이 자신의 전 존재 안으로 스며들도록 하겠다는 각오 이외에는 없습니다.
김서정 / 동화를 읽고, 쓰고, 옮기고, 가르치고, 평론하는 일로 몹시 바쁜 (척하는) 아줌마입니다. 지은 책으로 『용감한 꼬마 생쥐』 『나의 사직동』 『믿거나 말거나 동물 이야기』 평론집 『어린이문학 만세』 『멋진 판타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어린이문학의 즐거움』 『용의 아이들』 『일주일 내내 토요일』 『미오 나의 미오』 등이 있습니다. 숙명여대 겸임교수이고, ‘김서정동화아카데미’에서 동화를 가르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