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3월 통권 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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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알아가기]
일하다 죽는 복

서지선 | 2005년 03월

언젠가 시골에 갔을 때였다. 아침에 물을 보러 논에 간 동네 어르신 한 분이 덜컥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딱히 앓아누운 적도 없었고, 아직은 정력적으로 일을 하시는 분이었다니, 유족들이 얼마나 안타깝고 당혹스러웠을지 가히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그때 일은 오랫동안 이따금 내 마음 속에 찾아와 화두가 되곤 했다. 그 이유는,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그 사실 때문이 아니라 뒤이어 어머님이 하신 말씀 때문이었다. “자식들 마음이야 좀 안됐지만, 일하다가 죽었으니 그만한 복이 또 어딨노?”

잠깐 동안 난 그 말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만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부러움이 섞이긴 했지만, 일에 대한 어머니 나름대로의 철학을 또렷이 드러내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내가 이제껏 갖고 있던 ‘일’에 대한 선입견을 일시에 흔들어 놓았다. 일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고됨, 어려움,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이란 이미지들이었으니, 그때의 당황스러움이 생뚱스럽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우스갯소리 삼아 ‘뭣 때문에 사냐?’는 말을 가끔 한다. 그러면 대부분 사람들은 ‘먹기 위해’ 또는 ‘놀기 위해, 즐기기 위해’라며 역시 우스갯소리 삼아 대답한다. 좀 더 진지한 대답을 기대하는 자리에서는 ‘꿈을 이루기 위해’라는 정도일까? 대체로 꿈이라는 것이, 좀 더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 주는 어떤 물질이나 자리를 얻는 것일 테니, 결국 ‘잘 먹고 편안하게 지내기 위해’ 산다(일을 한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일하다가 죽는 것을 최대의 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니! 특별나지 않고, 그저 평범한 촌로에 지나지 않는 어머님이 가지고 계신 이 놀라운 철학은 어떻게 해서 얻어진 것일까? 깊은 차의 맛을 음미하듯 오랫동안 마음 속에서 궁굴리며 그 의미를 생각해 보곤 했다.

『나무를 심은 사람』 표지와 본문

『나무를 심은 사람』은 이미 여러 자리에서, 다양한 통로로 많이 소개되고 추천된 책이다. 내겐 특히, ‘일하는 삶’에 대한 화두를 다시 되새김해 보게 한, 감동의 여운을 오래 남기는 책이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고,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 혼자 남게 된 양치기 노인이 나였다면 난 어떻게 살았을까? 그저 하루하루를 절망과 외로움에 허우적대거나 비관하면서 지내지 않을까? 조금 더 의연하다면, 지금까지 살아오던 삶을 정리하고 마무리 짓는 일에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존경받는 위대한 사람들의 삶이 대부분 그렇듯이,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에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이 다른 것 같다. 모든 것을 다 잃었고, 모두가 떠났다고 생각되는 노년의 어느 시기에, 다시 세상에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양치기 노인’의 모습이 그래서 더욱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일 게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도 몇 사람 정도는, 생의 마지막에 서서 뭔가 특별한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일이, 아무 연고도 없는 황폐한 황무지에 씨앗을 심는 것이 되기는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일(노동)의 정직함을 믿지 않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탄탄하지 않으면 도저히 생각해 내지 못할 일이다.

사람은 물론이고 식물조차 제대로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 묵묵히, 끊임없이 씨앗을 심고 있는 노인의 모습은 그대로 강렬한 영상이 되어 마음을 사로잡는다. 도토리를 고르고, 다듬고, 심는 할아버지의 행동이 마치 기도나 주문처럼 숙연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 책은 젊은 여행가의 눈에 뜨인 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담담히 서술해 나가는 형식을 갖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대조와 대비의 효과를 잘 녹여 내고 있다. 이것이 읽는 맛을 더욱 깊게 해 준다.

우선 서술자인 젊은이와 주인공인 할아버지의 연령 대비이다. 기본적으로 떠돌아다니는 여행가의 역동적인 젊은 모습과 한곳에 머물면서 정적인 삶을 일구어 가는 노인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젊은이 ― 여행―동적인 것(세상과 소통) ― 자유로움 ― 삶
노인 정착 ― 정적인 것(세상과 단절) ― 쓸쓸함 ― 죽음

삶의 생기로 충만해 있는 젊은이는 뭔가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에서도 훨씬 우위에 있음이 틀림없다. 삶보다는 죽음 곁에 가까이 다가서 있는 노인은 미약한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이 전혀 뜻밖의 결과가 독자에게 훨씬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러기에, ‘전쟁’과 ‘숲’이라는 두번째 대비 요소는 주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데 기여하게 된다. 한쪽에서는 젊은이가 ‘전쟁’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늙은이가 ‘숲’을 만들고 있는 장면은 백 마디 말보다도 깊은 의미와 이미지를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젊은이 ― 타의 ― 전쟁 ― 파괴시키는 일 ― 인공(폐허) ― 누리는 것
노인 ― 자의 ― 씨앗 심기 ― 생산하는 일 ― 자연(숲) ― 베푸는 것

노인이 일군 숲은 인위적이고 파괴적인 것에 대항하는 자연적인 것, 생산적인 것의 전부를 말한다. 물론 여기서는 한 개인으로서 젊은이라기보다, 세상 만물에 대해 인간 중심의 우월 의식에 젖어 있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여전히 이런 상징적인 의미들보다 한 개인으로서 노인의 모습이다. 일을 즐기고, 기꺼이 일에 파묻히기를 저어하지 않은 노인의 모습에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면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했던가? 그 말뜻을 오롯이 가슴으로 느끼게 해 주는 책이었기에 더욱 진한 여운으로 되새겨 본다.

『우리 집 밥상』 표지
서정홍의 「우리 집 밥상」은 일의 의미를 사회 구조 속에서 생각해 보게 하는 동시이다. 매일 세 끼, 아무 생각 없이 받고 물리는 밥상에는 사람(일)의 사회 관계가 그대로 담겨 있다.

“황석산 우전 마을 / 성우 아재가 보낸 쌀”로 지은 밥, “진해 바닷가 효원 농장 / 이영호 선생님이 가꾼 배추”로 만든 김치, “황매산 깊은 골짝에서 /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기르고 / 옛날 사람처럼 살아가는 / 상평이 아저씨가 만든” 무말랭이, “함양 월평 마을 / 일하다가 무릎을 다쳐서” 박경종 아저씨가 “절뚝거리며 딴” 매운 고추, 밥상에 오르는 모든 것이, 누군가의 일을 통해 내 앞에 다가온 것임을 잘 짜여진 형식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 준다.

사회 속의 수많은 사람들의 관계는, 실제로는 일들의 관계인 것이다. 우리가 쓰는 옷이나 물건, 집, 문화적인 모든 것까지 사람들의 노동으로 엮이지 않은 것이 있을까?

『우리 집 밥상』 본문 중에서
우리 집 밥상 앞에 앉으면
흙 냄새 풀 냄새 땀 냄새 가득하고
고마우신 분들 얼굴이 눈앞에 떠오른다.
(「우리 집 밥상」 6연 전문)

일이란 우리 생에서 마지못해 해야 하는 것, 피해갈 수 있다면 피해가는 것이 좋은, 그런 것일까? 사람에게 일을 안 해도 되는 세상이 있다면 고통은 없고, 행복만 가득한 지상 낙원일까? 조금만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한다는 것,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려서 무엇인가를 일구어 낸다는 것이, 인간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축복이라는 것을 공감하게 된다.

일하다가 죽을 수 있는 복을 비는 마음, 그것만 있으면 세상에 무엇이든 두려울 게 있을까? 물론, ‘일하는 삶’ 속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바탕을 이루고 있어야 함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밥상 앞에서 “흙 냄새 풀 냄새 땀 냄새 가득하”다는 것을 느끼는 마음만 있으면 어떤 일인들 즐겁지 않고, 어떤 사람인들 소중하지 않으랴.

어디선가 부시럭대는 소리가 들린다. 웅크리고 있던 뭇 생물들이 기지개를 켜고, 아이들이 재재거리며 뛰어논다. 부대끼며 움직이는 부지런한 몸짓들이 느껴진다.

와! 봄이다!
서지선 /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글쓰기 가르치는 일을 해 왔습니다. 지금은 진주 ‘콩세알 어린이문학연구회’에서 동화 읽고, 쓰는 것을 공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