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3월 통권 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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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책 이야기]
좋은 선생님, 좋은 학교와의 만남을 위해

이민수 | 2005년 03월

둘째를 낳고 육아 휴직을 할 때 큰아이랑 약속을 했었다. 삼 년 후에 엄마가 다시 학교에 나갈 때는 너도 ‘꼭’ 학교에 가야 한다고.(내가 휴직을 하니까, 딸아이는 학교를 가다 말다 해도 되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둘째가 네 살이 되면서, 요즘 큰애의 네 살 무렵 사진을 다시 보니 유난히 작고 가냘프다. 솔직히 그때는 아침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한 번도 아이가 안쓰러웠던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게 다 일하는 엄마를 둔 네 팔자다.” 하며 어찌나 당당했는지. 그랬던 내가 지금은 둘째가 다닐 어린이집을 제대로(?) 고르기 위해서 여기저기 발품을 팔고 다니고, 상담하러 간 어린이집마다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을 발견하는 ‘의심 많은 엄마’로 변했다. 취학통지서를 받고 신기해하는 딸아이를 보면서도 “거봐, 학교 가기 싫다더니. 기분 좋지?”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이런저런 걱정이 꼬리를 문다. ‘아이들이 키가 작다고 놀리지는 않을까? 붙임성이 없고 소심한데 친구는 잘 사귈 수 있을까? 알림장은 제대로 쓸 수 있을까? 급식 당번 할 때 엄마가 학교에 못 온다고 서운해하지는 않을까? 무엇보다도 좋은 담임 선생님을 만날 수 있을까?’

『우리 선생님이 최고야!』 표지
그러던 참에 슬링어 선생님을 만났다. 작년 말 입학 준비 삼아 산 몇 권의 책들 중에서 『우리 선생님이 최고야!』를 아이는 가장 좋아한다. 깔끔한 편집에 발랄하고 귀여운 그림, 엄마가 아이에게 읽어 주기 편한 구어체 문장, 무엇보다도 멋쟁이 슬링어 선생님을 좋아하던 릴리가 자신의 잘못으로 보랏빛 가방을 선생님께 빼앗긴 뒤 겪는 갈등과 화해가 어찌나 생생하고 재미있게 표현되었는지, 아이는 ‘학교’라는 말만 나오면 이 책을 읽어 달란다. 자꾸 읽다 보니 반복되는 문장 “이럴 때에 릴리한테서 나오는 말은 정말 이 말뿐이야.”를 내가 읽으면 아이는 “우와!”로 호흡을 맞춘다. 읽으면 읽을수록 아이와 나의 마음이 환해진다. 학교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굳게 빗장을 걸었던 아이의 마음에 조금씩 밝은 빛이 새어 들어가는 느낌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기본적으로는 애증관계다. 개성이 강하고 감정 표현이 직설적인 요즘 아이들 서른 명을 가르치는 것이 예전에, 우리가 학교 다니던 시절 일흔 명을 가르치기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선배 교사들은 종종 고백한다. 나도 뒤늦게 교직을 시작해서인지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 하나하나가 더없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그들을 모아 놓고 보면 상황이 다르다. 슬링어 선생님처럼 “책상 줄을 맞춰 앉는 건 케케묵고 따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수업 시작 종이 울리고 막상 교실에 들어갔을 때, 운동장에서 노는 것처럼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엉망이 된 책상을 보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이때부터 아이들과의 줄다리기는 시작된다. 30대 1이라는 불리한 숫자가 보여 주듯 이 게임은 교사에게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요구한다. ‘강자 앞에서 약하고, 약자 앞에서 강한 아이들’에게 엄하고도 친절한 선생님이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슬링어 선생님은 자율과 타율의 외줄타기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분이다. 평소에는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아이가 수업에 방해되는 행동을 할 때는 엄격히 통제하고, 또 그런 선생님의 행동에 상처받는 아이의 마음을 다독이고 위로해서 스스로 잘못을 깨달을 수 있게 하는 분이다. 릴리와 슬링어 선생님의 갈등과 화해는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 간에 미운정 고운정이 들어가는 과정이요, 릴리에게는 진정으로 학교를 좋아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여기서 잠깐, 책의 맨 앞으로 가서 제목 바로 뒷장을 보라! “난 학교가 좋아!”라며 행복하게 웃는 릴리. 아이들에게 ‘우리 선생님이 최고야.’와 ‘난 학교가 좋아.’는 결국 같은 말임을 알 수 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표지와 본문

그런가 하면 『고맙습니다, 선생님』은 교사인 엄마와 글을 깨치는 데 늦된 트리샤, 이 두 인물 설정이 우리 집과 같아서 골라 본 책이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 더욱 흐뭇한 감동을 준다. 트리샤는 책을 사랑하는 분위기에서 자라났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1학년이 되어서도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 주변에서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어 주었더니 어느 날 저절로 아이가 한글을 떼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얼마나 소외감을 느꼈던가! 트리샤는 나와 딸에게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선행 학습이다. 지금도 미시건에서 살고 있다는 작가의 어린 시절이라면 도대체 어느 시절을 말함인가? 트리샤가 1학년이 되었을 때 트리샤를 제외한 반 아이들은 대부분 읽기에 불편함이 없었나 보다. 트리샤는 벙어리가 된 듯한 느낌으로 학교 생활을 하게 되고, 엄마의 전근으로 정든 시골집을 떠나 전학을 가게 되면서 학교 생활은 최악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5학년이 되어 만난 폴커 선생님은 트리샤의 삶에 전환점을 마련해 준다.

하지만 선생님이 나서서 아이들의 괴롭힘을 막아 주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폴커 선생님은 트리샤에게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게 한다. 기본적인 글자조차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트리샤에게 “너는 숫자나 글자를 다른 사람하고는 다르게 보고 있어.” “그건 영리하고, 똑똑하고, 그런, 그런 용기 있는 아이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격려한다. 그날 이후, 수업이 끝나면 트리샤는 폴커 선생님과 독서 지도 선생님인 플레시 선생님을 만나 개인 지도를 받는다. 모래 위에 원 그리기, 칠판에 스펀지로 원 그리기, 스크린 위에 글자 비추기, 나무 블록으로 낱말 만들기 등 선생님의 정성과 트리샤의 노력이 하나가 된 지 서너 달이 흘렀을까? 트리샤는 어느 날 “거의 마법처럼, 머릿속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처럼” 책의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두 선생님의 눈에 눈물이 맺힌 줄도 모르고 책을 읽어 나가던 트리샤는 그날 밤 집으로 달려와 자신이 일곱 살이 되던 해, 할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을 다시 되새긴다. 그때 할아버지는 표지에 꿀을 끼얹으며 ‘지식의 맛은 꿀처럼 달콤하지만, 지식은 꿀을 만드는 벌과 같아서 책장을 넘기면서 쫓아가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하셨다. 책과 꿀을 들어 가슴에 끌어안는 트리샤는 마침내 행복의 눈물을 흘린다.

딸아이는 이 책을 읽고 자기도 어린이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물론 ‘소심한’ 엄마가 책에다 꿀을 쏟아 붓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표정을 보니 지식의 맛이나, 왜 지식이 꿀을 만드는 벌과 같은지는 이해하지 못한 눈치다. 나 또한 우리 애는 왜 다른 집 아이들처럼 스스로 한글을 깨치지 못할까 안타까워하며 아이와 함께 한글을 잡고 씨름한 지난 일 년이 떠올랐다. 한편 교사로서 지난 날을 돌이켜보니 내게도 5년 전 트리샤 같은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 있었다. 난 그때 폴커 선생님처럼 헌신적인 노력을 하지 못했다. 이런 생각 때문일까? 처음 아이와 함께 이 책을 읽을 때는 「TV는 사랑을 싣고」 한 편을 본 듯 훈훈한 마음이었는데, 복직할 날이 가까워 올수록,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까마귀 소년』 표지와 본문

이렇게 엄마보다 교사로서의 자괴감이 앞서 불편했을 때, 동네 도서관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까마귀 소년』을 만났다. 트리샤는 글을 못 읽는다는, ‘왕따’가 된 이유라도 있지만, ‘땅꼬마’는 누가 놀리거나 괴롭히는 것도 아닌데 처음부터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학교에 간 첫날부터 마룻바닥 밑에 숨어 있고, 공부할 때도 놀 때도 늘 꼴찌라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이런 땅꼬마를 6학년이 되어 맡게 된 이소베 선생님은 폴커 선생님처럼 땅꼬마의 뒤떨어진 학습 능력을 만회하기 위해 개별 지도 시간을 내지 않는다. 다만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학교 뒷산에 올라가는데 그때 “머루가 열리는 곳은 어디고, 돼지감자가 자라는 곳은 어딘지 죄다 알고 있”는 땅꼬마를 좋아하게 된다. 땅꼬마가 그린 그림을, 땅꼬마의 삐뚤빼뚤한 붓글씨를 좋아해서 벽에 붙여 주고 아무도 없을 때면 자주 땅꼬마와 이야기를 나눈다. 드디어 졸업 전 학예회, 무슨 재주가 있어 무대에 나왔을까 의아해하는 관중들 앞에서 땅꼬마는 까마귀 울음소리를 흉내낸다. 알에서 갓 깨나온 새끼 까마귀 소리, 엄마 까마귀 소리, 아빠 까마귀 소리, 아침에 우는 까마귀 소리, 마을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즐겁고 행복 할 때, 고목나무 위에 앉아서 울 때……. 나는 딸아이에게 재미있게 읽어 주느라 상황마다 어떤 소리일까 상상하며 다른 까마귀 소리를 만들어 보았지만, 어느새 가슴은 먹먹해졌다. 6년 간의 학교 생활에서는 물론, 멀고 외딴 집을 오가는 그 많은 시간 동안 느꼈을 땅꼬마의 외로움이 한순간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건 학예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지독하게 외로웠으면서도 6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동틀 무렵 학교로 타박타박, 해질 무렵 집으로 타박타박” 걸었던 땅꼬마를 이제는 그 누구도 땅꼬마라 부르지 않는다. 졸업을 하고 식구들이 구운 숯을 팔러 가끔씩 읍내로 오면 사람들은 그 애를 ‘까마동이’라고 부른다. 처음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까마동이의 걸음걸이가 ‘타박타박’에서 ‘뚜벅뚜벅’으로 좀 더 어른스러워졌다는 것일까? 그 걸음소리가 희미해지는 내 마음 한 자락에서는 지금도 즐겁고 행복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이웃집 한 엄마는 자기 아들에게도 이 책을 읽어 주었는데 읽기를 끝내자, “엄마, 난 이 책이 참 좋아요.” 하며 자신의 품 안에 책을 꼭 안았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내심 우리 딸의 반응도 기대했었는데, 책장을 덮자 아이의 입에선 “까마동이, 대단하네.” 한 마디였다. 난 딸아이의 반응에 약간의 허전함(?)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이 그건 바로 내 감상이기도 했다. 대단한 것은 이소베 선생님이 아니라 까마동이다. 학창시절 친구에게든, 교사에게든 상처 한 번 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학교란 곳은 어쩌면 나와 다르거나, 혹은 적대적인 타인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외로움을 자기 방식으로 견뎌 내는 지혜, 누가 뭐래도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성실함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덕목이다. 물론 친구가 없는 까마동이에게는 ‘자연’이라는 듬직한 친구가 있었고 이소베 선생님은 단지 모두가 까마동이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까마동이와 산골 마을 자연, 그리고 이소베 선생님의 절묘하고 아름다운 만남은 긴 여운을 준다.

딸아이에게 입학에 대한 부담을 덜어 주고자 읽어 주기 시작한 몇 권의 책은 결국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복직을 할 것인지에 답을 주었다. 아이들은 절대 교사에게 먼저 다가오지 않는다. 특히 교사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일수록. 다정다감하면서도 원칙을 지키는 슬링어 선생님, 아이의 상처를 감싸 주고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폴커 선생님,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아이만의 개성과 능력을 인정해 주는 이소베 선생님은 모두 아이에게 먼저 다가섰다. 새 학기에는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 곁으로 한걸음 더 가까이 가고 싶다. 우리 아이를 맡게 될 담임 선생님의 마음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민수 / 서울에서 중학교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이며 유진, 유겸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육아 휴직 기간에 읽은 좋은 책들을 학생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서 3월을 설레며 기다렸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