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3월 통권 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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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보는 다른 나라 그림책]
복도에서 싹틔운 그림쟁이의 길, 대브 필키(2)

서남희 | 2005년 03월

Captain Underpants and the Atack of the Taiking Toilets 표지
거칠 것 없이 장난질만 했던 작가의 어린 시절은 『빰빠라 밤! 출동, 빤쓰맨!』 시리즈의 조지(깜씨)와 해롤드(꼬불이)의 모습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만화와 글과 그림이 뒤범벅된 이 시리즈에서 이 아이들도 작가처럼 날이면 날마다 온갖 장난질을 하다가 복도로 쫓겨나기 일쑤죠. 어른의 권력을 대표하는 교장 선생님은 누군가가 손가락을 마주 튕기면 갑자기 빤쓰를 입고 빨간 망토를 휘날리며 제멋대로 뛰어다니는 힘찬 빤쓰맨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작가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은 알고 있나 몰라요. 자기가 이 시리즈에서 배가 툭 튀어나온 우스꽝스런 빤쓰맨으로 바뀌어 많은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그 ‘빤쓰’는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리는 The Dumb Bunnies (멍청한 토끼들) 시리즈의 빨래 건조대에도 얌전히 걸려 있습니다. (주로 아빠 토끼가 여러 색깔 빤쓰를 입고 활보하지요. 이 빤쓰는 ‘권위’를 삽시간에 추락시키는 도구일까요?) 이 토끼 가족은 모든 걸 거꾸로 하고 뒤죽박죽 엉망진창으로 만듭니다. 표지 그림의 방은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의 『잘자요, 달님』(Goodnight Moon)의 방과 매우 비슷하지요. 거의 패러디 수준이라고나 할까요? 초록색 벽, 주황색 창틀, 창 밖의 별들까지 똑같지만, 보름달 대신 살이 통통하게 찐 초승달이 보이고, 벽난로 안에 어항이 놓여 있고, 그 위의 시계는 숫자 판의 순서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되어 있습니다. 토끼는 책을 거꾸로 들고 읽고 있지요.

The Dumb Bunnies 표지
뭐든 거꾸로 하기 좋아하는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 아주 신나할 것 같네요. 엄마 토끼와 아빠 토끼는 손에 손을 잡고 ‘물 속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아기 토끼는 롤러 스케이트를 타지요. 더우니까 세차장에 가서 신나게 샤워를 하며 즐깁니다. 작가는 책 속의 책 제목을 비틀어서 익살을 부립니다. 엄마가 차 안에서 읽는 잡지 제목은 Better Holes and Garbage (더 나은 구멍들과 쓰레기). 유명한 잡지인 Better Homes and Gardens (더 나은 집과 정원)을 패러디한 거죠. 또 공공 도서관에 진열되어 있는 책들의 재목도 재미납니다. 닥터 수스의 Green Eggs and Ham (초록색 달걀들과 햄)은 Green Eggs and Tofu (초록색 달걀들과 두부)로,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은 Charlie and the Carob Factory (찰리와 캐럽 공장)으로 뒤집어져 있습니다. 심스 태백의 The House That Jack Built (잭이 지은 집. 한글 번역본 제목은 『잭이 지은 집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옆에는 The Condo That Jack Subleased (잭이 빌린 콘도)가 나란히 진열되어 있지요. (‘sublease’는 셋집에 또 세를 든다는 뜻인데 짧게 옮기기가 어렵군요.) 아기토끼와 놀려고 찾아오는 여자애는 빨간 모자 아가씨(Little Red Riding Hood)와 골디락(『곰 세 마리와 골디락』(Goldilock)에 나오는 여자애)을 합친 ‘Little Red Goldilock’입니다.

이런 식의 뒤죽박죽 이야기에 어른들은 대개 거부감을 보이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다른 것 같아요. 자기가 뻔히 아는 내용인데 그게 엉망으로 되어 있으면 어? 원래는 이건데, 어? 원래는 저건데, 하며 마치 ‘나도 알 수 있는’ 퍼즐을 푸는 것처럼 신나하지요. 작가는 이런 면에서 아이들의 심리를 매우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기공룡의 뒤죽박죽 하루』 본문 중에서
대브 필키는 오하이오 주 켄트에서 살다가 개와 함께 오레건 주 유진으로 자리를 옮겼지요. 그곳으로 이사 가서 어느 날 비가 내릴 때 개를 데리고 강을 구경하며 서 있다가 갑자기 이 말도 안 되는 토끼들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대요. 그 추운데서 한 시간이나 비를 맞으며 온갖 우스꽝스런 상상을 다 하면서 숨넘어갈 듯이 웃어 젖혔다니 제가 그 옆을 지나갔으면 ‘아, 상당히 맛이 간 사람이군.’ 하고 생각했을 거여요.

이 책의 그림 작가는 대브 필키지만, 글 작가는 수 데님으로 나와 있습니다. 대브는 이 이름을 갖고도 장난을 쳤지요. 수 데님 (Sue Denim)이라는 이름이 좀 묘하지 않나요? 이건 바로 ‘Pseudonym (수도님 ― 익명, 필명)’의 발음에서 따온 거랍니다. 늘 이름을 숨기고 책을 쓰고 싶었던 그는 (이런 심리는 또 뭘까요? 문득 『이 아무개의 장자산책』이라는 책이 생각나는군요. 그 ‘이 아무개’가 이현주 목사님인 건 책에도 다 나와 있구만.) 수 데님이라는 이름을 짓고, 가짜 경력을 만들어 놓고, 아예 검은 가발과 웃긴 안경으로 변장하고 작가 사진까지 찍습니다. 그리고 이 멍청한 토끼 책을 내 놓았더니만, 꼬맹이들이 작가에게 편지를 우수수…… 대브 필키는 자기가 만든 수 데님에게 질투가 날 지경이었다는군요.

『아기공룡의 뒤죽박죽 하루』 표지와 본문

작가의 엉뚱한 뒤죽박죽 이야기는 『아기공룡의 뒤죽박죽 하루』(Dragon Gets By), 『아기공룡의 메리 크리스마스』(Dragon’s Merry Christmas) 등의 공룡 시리즈에서도 이어집니다. 이 공룡 씨 역시 달걀 대신 신문으로 프라이를 하고, 신문 대신 달걀을 읽고, 창문 대신 옷장 문을 열고 깜깜하니까 ‘어? 아직 밤이네.’ 하며 다시 잠을 잔답니다. 그래도 우스꽝스런 토끼 시리즈에 비하면, 가끔씩 잔잔하고 귀여운 감동도 주는 책이지요. 뭐랄까, 토끼들은 좀 악동 같은 행동을 하는 데 비해 공룡은 귀여운 1학년짜리 꼬마같이 엉뚱한 행동을 하거든요.(번역에는 ‘아기공룡’이라고 되어 있지만, 내용상 전~혀 ‘아기’가 아닙니다. 자동차도 운전하는데요, 뭐.) 이를테면 식료품을 사러 갔다가 너무 많이 사서 차에 실을 수 없자, 그 자리에 앉아서 다 먹어치운답니다.(술 한 부대를 지고는 못가도 뱃속에 넣어 갈 수는 있다는 우리 속담의 진리를 깨닫는 순간입니다. 웃음.) 또 크리스마스 트리로 쓸 나무를 베러 갔다가 차마 마음이 아파서 도저히 벨 수가 없어 아예 장식품을 다 그 나무에까지 이고 지고 와서 불을 밝히고 종을 매다는 공룡을 보면 그 다정한 마음에 아릿하고 미안해집니다. 여태 제가 본 그림책 중에서 이렇게 크리스마스 트리로 쓰이는 나무 자체의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내용을 담은 건 처음 보았거든요.

『아기공룡의 메리 크리스마스』 표지와 본문

어렸을 때 남다르다는 이유로 놀림을 매우 많이 받았다는 작가는 외모가 특징적인 탓에 따돌림과 놀림을 당하는 오스카라는 개를 주인공으로 할로윈 책인, The Hallo Wiener (할로위너 ― ‘할로윈’을 ‘할로위너’로 패러디한 것임. ‘위너’는 ‘비엔나 소시지’라는 뜻.)을 만듭니다. 이 오스카는 남보다 키는 반 토막이고 길이는 반 이상 쭉 잡아 늘인 것처럼 긴 닥스훈트 종이지요. 그렇게 소시지 같이 긴 등을 가진 건 마르그레트 레이의 『내 이름은 프레즐』(Pretzel)에 나온 프레즐도 마찬가지지만, 프레즐이 그 긴 등 때문에 어깨가 으쓱한 데 비해 오스카는 고개가 푹 꺾여 늘 풀이 죽어 지내지요. 온 동네 개들과 고양이들이 오스카만 보면 낄낄거리거든요. 오스카의 엄마는 자식이 그저 귀엽기만 해서 ‘비엔나 소시지’라는 애칭으로 부르는데, 다른 개들은 이 말을 들으면 낄낄거리지요.

할로윈 날이 되었어요. 어떤 옷을 입고 할로윈 행사를 할까 궁금했던 오스카는 학교가 끝나자 얼른 집으로 달려갔어요. 하지만…… 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비엔나 소시지가 든 핫도그 빵 의상이 아니겠어요? 샛노란 겨자까지 가운데 쭉 짜여 있고 말이죠. 밤에 다른 아이들은 할로윈에 어울리는 박쥐, 마녀, 미이라로 변장하고 나타났는데, 불쌍한 오스카는 핫도그 빵 모양에, 그래도 꼬리에는 사탕을 챙길 가방을 매달고 있네요. 다른 개들은 이 모습을 보고 깔깔거리며 웃어 댔어요.

남들은 자기네들끼리 집집마다 몰려다니며 사탕을 받는데, 불쌍한 오스카는 헉헉…… 뒤늦게 가보면 사탕은 동이 났네요. 그런데 호박귀신 괴물이 갑자기 나타나자 개들이 놀라서 도망가다가 연못에 다 빠지고 말았지요. 오스카는 뒤늦게 ‘낮은 포복으로’ 왔다가 괴물의 옷 밑에 있는 꼬리와 발을 보고 뭔가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 옷을 잡아당기니 호박귀신들은 다름이 아니라 사탕을 뺏으려던 고양이들이었던 것. 이제 오스카는 연못에 풍덩 뛰어들어 친구들을 구해 냅니다. 허리가 워낙 길어서 친구들이 뗏목 타듯 오스카 등에 앉아 무사히 연못을 빠져나온 거죠. 이제 오스카는 친구들에게 영웅으로 대접받게 되었답니다!

The Hallo Wiener 표지와 본문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은 노란 보름달 속에 까만색으로 아이들의 실루엣이 처리된 장면입니다. 그 위의 하늘은 빙빙 돌아가는 고흐의 하늘이네요. The Paperboy (신문 돌리는 소년)에서나 『아기공룡의 메리 크리스마스』에서도 고흐의 그림을 빌려 온 부분이 있죠. 그는 좋아하는 화가들로 고흐, 루소, 샤갈을 꼽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샤갈을 제일 좋아하는데 그의 그림에는 직선도, 중력도 없고, 물리의 법칙은 아예 창 밖에 던져 놓았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는군요.

개들과 고양이와 함께 지금 워싱턴 주의 한 섬에 살면서 해변을 산책하고 카약도 즐긴다는 대브 필키. 그는 여행을 하게 되면 늘 배가 아파서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저자 강연 약속은 되도록 안 한답니다. ‘어떤 동물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하늘을 나는 원숭이가 되고 싶다’는데…… 원숭아, 떨어지지 말고 쭉…… 그렇게 엉뚱한 이야기를 많이 지어내렴.

<참고 사이트>
http://www.pilkey.com/index.php
http://www.bookpage.com/0002bp/dav_pilkey.html
http://www.kidsreads.com/authors/au-pilkey-dav.asp
서남희 / 미국 유치원 교육에서 활용하고 있는 ‘꼬마 책(Mini―Books)’을 아이와 함께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게 구성한 『아이와 함께 만드는 꼬마 영어그림책』을 만들었고, 뉴베리 상을 받은 작품 『별을 헤아리며』와 『꿀벌 나무』를 번역했습니다. 그림책과 시, 바위산, 걷는 것과 잠자는 것을 아주 좋아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