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3월 통권 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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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를 인정하는 관계 맺기

한주연 | 2005년 03월

3월!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에서의 생활이 시작되는 달이다. 학교에 들어가거나, 학년이 바뀌어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이다. 이렇게 낯선 환경에 적응할 때 아이들은 관계 맺음에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선생님에게 칭찬 받고 싶고, 돋보이고 싶고, 친구들 중에서 인기있는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아이가 원하는 만큼 흡족하게 관계 맺음이 이뤄지지 않는다. 학교 생활은 ‘1 : 1’의 관계가 아니라 ‘1 : 여럿’의 관계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이룰 수 없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여럿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바람과 타인의 바람을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계기를 맞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교 교육은 앞서 말한 인간 관계에 대한 교육과 훈련보다는 아이들의 학업 성취 쪽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어 관계 맺음이 서투른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사회 문제가 바로 ‘왕따’이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왕따 문제가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장애나 가난으로 반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했던 친구는 있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200명을 넘지 않는, 시골의 작은 학교였다. 우리 반에는 안수현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우리보다 나이도 몇 살 더 많았고 키도 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수현이는 정신 지체였던 것 같다. 우리보다 키는 훨씬 컸지만 학교 공부를 잘 따라오지 못했고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않아서 차림새도 깔끔하지 않았다. 머리에 이가 있어 나를 비롯한 반 아이들에게 옮겨 한바탕 난리를 치르기도 했었다. 수현이는 지금 표현으로 말하자면 우리 반 ‘왕따’였다. 어떤 아이들은 수현이를 때리거나 놀리기도 했었다. 나도 수현이를 놀렸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그냥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재밌는 놀이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수현이에게는 큰 아픔이었을 것이다. 수현이를 적극적으로 놀려먹던 무리는 아니었지만 그것을 방관하기도 하고, 수현이는 왜 저럴까 이해하지 못했던 나도 수현이를 아프게 했던 가해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철이 들었던 어느 날부터 수현이가 가끔 생각난다. 수현이가 울던 모습, 내가 친구들과 함께 수현이를 놀렸던 장면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그때마다 나는 수현이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만 한다면 달려가서 사과하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된다.

나도 이런 경험이 있어서 왕따 문제를 뉴스로 접할 때 남의 얘기 같지 않았다. 친구를 괴롭히려고 작정한 아이가 아니더라도 잠시 잠깐의 판단 착오로 누군가 왕따가 되기도 하고 친구를 따돌리기도 할 수 있기에…… 그것이 바로 내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소개할 세 권의 책은 어린 시절에 내가 읽었다면 좋았을 책들이다. 또한 현재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모르는 척』 표지와 본문

수현이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방관했던, 때로는 그 무리에 가담했던 나의 행동들이 『모르는 척』에 모두 나와 있다. 『모르는 척』은 일본의 이지메 현상을 다룬 책이다. 책의 화자로 나오는 ‘나’는 야라가세의 무리가 돈짱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도 모르는 척하며 괴로워 한다. 야라가세 무리가 돈짱의 그림을 함부로 망치는 것도, 문방구에서 샤프를 훔치게 하는 것도 목격한다. 그때마다 돈짱의 힘겨워 하는 모습도 보지만 나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랬다가는 나도 야라가세 무리의 괴롭힘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조금만 달리 생각하고 유심히 지켜보면 야라가세 무리의 못된 짓을 발견할 수 있는 선생님도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여기에서는 작가가 학교 시스템에도 문제를 제기한 듯하다. 돈짱이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선생님이 등장하는데, 돈짱의 그림이 야라가세 무리의 물감 장난으로 엉망이 된 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친다. 자신의 그림을 물감으로 범벅당하는 아이는 마음을 다치거나 아니면 다른 아이들의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분명한데 ‘어쩌다 이렇게 됐니?’라는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상황과도 다르지 않은 듯하여 공감가는 부분이었다.

돈짱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의 갈등을 겪는 나는 돈짱이 도와드리는, 어묵을 파는 포장마차에 들르게 된다. 돈짱이 야라가세 무리의 괴롭힘에 전학을 갔기 때문이다. 아저씨는 불의를 보고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몸소 알려 준다. 아저씨는 깡패들의 나쁜 짓을 보고 혼내 주다가 포장마차가 박살이 나는 불이익을 당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도와 줘서 전보다 더 훌륭한 포장마차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포장마차 아저씨로부터 힘을 받은 나는 졸업식장에서 고백한다. “나는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 전학을 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데……. 이대로 모르는 척하면서 졸업을 하게 되는 게 ……, 이런 기분을 가지고 중학생이 되는 게 싫어서……, 그래서…….” 비로소 나도 괴롭힘을 당할까 무서워 돈짱의 고통을 모르는 척하고 그 때문에 괴로웠던 마음을 홀가분하게 던져 버린 것이다. 한편, 돈짱은 전학한 학교에서 잘 생활을 하고 반대로 야라가세는 중학교에 가서 다른 친구들에게 이지메를 당한다. 책 학 권 전체가 일본의 이지메 문제에 대한 너른 통찰로 이뤄져 있었다. 이지메를 당하는 돈짱의 마음, 그것을 보고 모르는 척하는 나의 괴로움, 또 가해자와 피해자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상황, 돈짱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학교 시스템까지 말이다. 작가가 이지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문제를 모르는 척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강렬히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책의 두께는 두껍지만 한 쪽에 몇 줄의 글과 다른 한 쪽에 글에 대한 상황을 표현하는 그림이 나와 있는 구성이어서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또한 붓으로 그린 검정색 그림은 시원시원하면서도 작가가 전달하려는 핵심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어 독자로 하여금 깊은 인상을 남긴다. 더불어 책이 주려는 메시지를 그림과 함께 기억하도록 만드는 묘한 매력도 있다. 다른 책의 삽화처럼 상황에 관심을 두기보다 그 상황에 돈짱이나 극중 화자인 내가 느꼈을 심리적 공포를 강한 붓 터치로 표현한 것이 인상깊고 특이했다. 구체적인 내용이나 그림의 색채는 우리 정서와 약간 다르지만 우리나라 상황에서도 어렵지 않게 이해될 만한 책이다.

『짜장 짬뽕 탕수육』 표지와 본문

『짜장 짬뽕 탕수육』과 『까막눈 삼디기』는 우리 현실을 잘 그려 낸 동화이다. 『짜장 짬뽕 탕수육』은 우리나라 초등학교 학생의 일상을 푹 담가 책에 찍히게 한 듯한, 그만큼 일상을 잘 드러낸 책이다. 특히 그림이 참 정겹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주인공 종민이에게는 중국집을 운영하는 어머니, 아버지가 있다. 학교 전학 후 적응 단계의 종민이에게는 친구가 많지 않다. 쉬는 시간 종민이는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게 되는데 어떤 덩치 큰 아이가 들어와서 소변기를 ‘왕’과 ‘거지’로 나눈다. 종민이가 보던 소변기는 거지가 되어 엉겹결에 종민이는 아이들에게 거지라는 놀림을 받게 된다.

이런 에피소드는 아이들에게 흔히 생기는 상황이다.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특별한 문제가 있다기보다 이런 장난들이 ‘왕따’의 계기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종민이와 같은 계기로 장난처럼 따돌림을 받다가 그 상황이 극복되지 않으면 왕따로 굳어지게 된다. 따라서 본인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가 관건인데 종민이는 이런 예를 잘 보여 준다. 화장실 사건으로 ‘거지’가 된 종민은 점심 시간에 엄마가 정성스레 싸 주신 짜장을 밥과 비벼 먹는다. 그런데 아까 화장실에서 왕, 거지를 분류했던 덩치 큰 아이가 와서 짜장이 담긴 커피 병을 보며 “야, 이거 커피 병 아니야. 넌 도시락 통도 없냐?” “하긴 거지니까. 다르긴 다르다. 그래, 실컷 먹어.”라고 놀려 댄다.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한 종민이는 다음 시간 화장실에 가서 변기를 순서대로 가르치며 “짜장, 짬뽕, 탕수육, 짜장, 짬뽕, 탕수육…….”한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의아해했지만 곧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지정된 변기에 가서 소변을 보게 된다. 이렇게 기지를 발휘한 종민이는 친구들과 곧 친한 친구가 된다. 이 책에서는 왕따의 시초가 될 수 있는 작은 사건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구체적이고 재미있는 예를 들어 보여 준다.

『까막눈 삼디기』 표지
『까막눈 삼디기』는 글자를 모르는 삼디기가 마음 착한 짝꿍 보라를 만나면서 글자를 알게 되고 학교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제목과 같이 책의 내용과 그림도 매우 정겹다. 연필과 물감, 색연필로 그린 수채화 느낌의 그림이 따뜻하고 좋다. 삼디기는 글 모르는 할머니와 살면서 공부에 대한 자극을 받지 못한 어린이다. 삼디기는 반의 다른 아이들에게 무시당하게 되자 책을 던진다든지, 친구의 머리카락을 당긴다든지, 수업 시간에 이상한 소리를 내며 수업을 방해한다든지 하는 심통을 부린다. 선생님도 삼디기한테는 손, 발을 든 상태다. 이때 삼디기를 천사같이 도와 줄 보라가 나타난다. 보라는 삼디기가 심통을 부려도 다 받아 주면서 재미있는 동화책 한 권씩을 가져다 준다. 삼디기는 동화책을 읽으면서 글씨를 알아 가고 다른 반 친구들도 보라의 모습을 보면서 삼디기를 도와 주게 된다. 비로소 삼디기는 더듬더듬 교과서를 읽게 된다.

삼디기를 그대로 방치했다면 삼디기는 계속 반의 골칫덩어리 왕따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삼디기처럼 글 모르고 심통 부리는 친구를 요즘 교실에 데려다 놓으면 바로 왕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보라 같은 친구의 존재는 참 중요하다. 삼디기가 글씨를 모르는 것은 삼디기가 할머니랑 사는 상황 때문인 것이고 감정 표현을 적절히 못하는 것 또한 다양한 친구 관계를 경험해 보지 못하고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럴 때 길을 터 주는 도움자가 꼭 필요한데 보라가 그 역할을 맡아 주었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도 참고 수용하는 보라의 모습이 너무 어른스럽고, 흡사 엄마의 모습인 것 같아 현실 속에서도 과연 저런 친구가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왕따 문제를 고민하면서 차별과 차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야 했다. 나와 남이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이 차이라면 다르기 때문에 불이익을 주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차별이다. 하지만, 차이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 또한 왕따의 한 가지 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위의 책들이 차이를 인정하고 차이의 거리를 넘어설 수 있는 관계 맺음에 대한 훈련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한주연 /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안양 여성의전화’에서 여성과 남성이 함께 행복한 세상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각 학교로 성교육 강의를 나가면서 어린이 책과 가까워졌습니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성에 대한 올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어린이 책을 읽으며 고민합니다. 단체 소식지에 ‘밴디드 걸의 새로 쓰는 성 이야기’를 연재하며 글 쓰는 재미에도 푹 빠져 있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