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통권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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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구의 그림책 읽기]
형태와 무늬를 결합한 그림책

윤한구 | 2005년 11월

현대 미술은 화가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야 한다'는 단순한 요구에 모순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것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인상주의 이래로 수많은 모색과 실험의 결과, 우리는 지식으로 '아는 것'과 '보는 것'을 서로 확실하게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원시시대의 미술가들은 실재하는 얼굴을 모사하기보다는 단순한 형태로 얼굴을 그렸다. 또한 이집트인들도 그들이 눈으로 본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것을 그림 속에 표현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의 미술 전통이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린다는 방식(모방)을 철저히 배제하였다거나, 표현이 미숙하거나 유치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미술 전통은 현대미술의 수많은 모색과 실험을 통해 얻은 '표현성과 구성, 그리고 단순성의 추구'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이 같은 생각에 동조하는 현대미술가들은 아주 단순하게 묘사된 어린이의 그림에서 원시시대의 미술과 같은 표현성과 단순성을 발견하고, 표현의 본연을 찾고자 노력한다.

어린이의 그림은 원시미술에서 볼 수 있는 고도로 형식화된 것들, 즉 '기하학적 미술'과는 다르다. 가장 오래되고 또 오늘날 널리 퍼져 있는 아동미술에 대한 설명에 따르면, 어린이들은 그들이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을 그린다고 한다. 다시 말해 어린이들은 그들이 눈으로 관찰한 것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전체적인 구조적 특징을 그린다고 한다. 한편 지각심리학자들은 이와 달리, 어린이도 어른과 마찬가지로 '보는 것'을 그린다고 주장한다. 다만, 어린이의 그림은 본 것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대표적인 특징을 선택하고 재구성해서 보여 준다고 한다.

어린이 그림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이분법적이다. 전자는 '지각적 개념' 즉, 시각에서 포착되는 전체적인 구조적 특징을 중시하고, 후자는 '표현적 개념' 즉, 지각된 대상의 구조가 주어진 매체 특성과 더불어 표현될 수 있는 형태 개념을 중시한다. 그러나 지각 개념과 표현 개변의 적절한 총합이야말로 완전한 표현적 개념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지각 개념과 표현 개념을 적절히 총합한 그림책으로 단연 김동수의 그림책, 『감기 걸린 날』과 『천하무적 고무동력기』가 눈에 띈다. 적어도 내 눈에는 솔직하고 단순한 기법으로 그린 김동수의 그림과 박혜준의 명쾌한 디자인이 결합하여 보다 강렬한 표현성을 거두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우선, 김동수의 그림은 단순한 외곽선만으로 머리는 둥글게, 팔다리는 뻣뻣하고 곧게 그려져 있고 사물의 대표적인 특징만이 단순하게 그려져 있어, 디테일도 원근법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종이 위의 유희처럼 솔직하고 담백하며, 유아기 어린이의 그림처럼 단순하다. 그리하여 『감기 걸린 날』과 『천하무적 고무동력기』에서의 김동수의 그림은 마치 어린이의 그림일기를 보는 듯한 인상을 자아낸다. 만일 『감기 걸린 날』과 『천하무적 고무동력기』와 같은 그림책에 어린이가 그린 듯한 김동수의 그림이 아니라 어른이 그린 것 같은 그림이 그려졌다면 이야기의 진실성을 의심케 하거나 톡톡 튀는 상상력을 이처럼 잘 수용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수의 어린이 그림 같은 스타일은 지나치게 단순하여 그림책 그림으로 빈약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그의 그림 스타일이 '그림으로 이야기하기'에 적합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보기 좋게 만들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놀랍게도 그의 그림책은 그 해결책을 찾아 냈다.

첫째는 그림책 여기저기에 긁적여 놓은 낙서이다. 주인공의 기발하고 엉뚱한 생각을 기록한 낙서는 그림책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한다. 또한 이것은 주인공의 성격을 묘사하고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만든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낙서는 어린이 그림 같은 김동수의 그림 스타일을 매우 적절한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둘째는 이야기의 형식에 적합하면서도 김동수의 그림 스타일의 표현성을 더욱 강렬하게 만든 그림책의 디자인이다. 이는 형태와 무늬 또는, 형태와 색깔의 결합에 의해 구현된다. 『감기 걸리 날』에서 글 자리의 배경으로 사용된 공책 무늬는 일기 형식의 글과 낙서를 그럴듯하게 담아 내고 있으며,『천하무적 고무동력기』에서의 빨강, 노랑, 파랑의 원색과 면 분할은 자칫 단순해 보이는 김동수의 그림에 표현성을 강화시킨다. 또한 주인공의 엉뚱한 상상력에 걸맞은 자유분방한 배치와 말풍선 등은 김동수의 그림을 더욱 어린이 그림처럼 느끼게 하며 그림책의 구성을 명쾌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림책 그림의 '그림으로 이야기하기' 기능과 그림의 심미적 깊이를 더한다. 이러한 디자인 기법은 기능과 미 사이에 숨겨진 조화를 발견하고, 목적에 맞게 디자인되어야만 형태도 아름답게 보인다는 바우하우스의 신념을 실천한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미술의 역사가 끊임없는 실험의 역사이듯이 우리의 그림책 또한 끊임없는 실험과 도전의 역사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역사는 그림책 작가의 역사뿐만 아니라 아트디렉터, 편집자, 디자이너 등 그림책을 만드는 모든 사람들과 그림책 비평가, 또는 독자의 역사일 것이다. 그리고 『감기 걸린 날』과 『천하무적 고무동력기』를 통해 거둔 김동수와 박혜준의 괄목할 만한 성과는 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 분명하다.
윤한구 | 어렸을 시절 꿈은 훌륭한 화가가 되는 거였어요. 어른이 되어서는 금융계에서 경제 전문가로 일했지만 언제나 그림을 좋아하고 그림책에 관심이 많았지요. 평생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는 없을까 고민하다 '도깨비'라는 어린이책 전문 출판사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앞으로도 언제나 어린읻르이 아주 좋아하는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