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통권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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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할아버지, 할머니

한주연 | 2005년 11월

대학 전공 수업인 노인복지 시간이었다. 첫 과제로 받은 것은 가족이 아닌, 내 주변의 노인 인터뷰하기. 띠용~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할머니, 할아버지와 그다지 친밀한 관계가 아닌 나는 노인 분들을 대하는 데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모르는 어르신에게 말을 거나……. 걱정이 앞섰지만 숙제를 해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주변 노인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인식하지 못해서 그랬지 내 주변에도 참 많은 어르신들이 계셨다. 아파트 등나무 아래에서 담소를 나누시기도 하고, 손주들을 돌보고 계시기도 하고 지하철 주변에서 작은 장사를 하고 계시기도 했다. 어르신들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던 시절에는 그 분들이 없는 생활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과제는 놀이터에서 손녀를 돌보고 계시는 할머니를 잠깐 인터뷰하는 것으로 무사히 마쳤고, 그 날 이후로 노인에 대한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동안 내 마음에서 노인들을 배제하고 있었다는 죄스러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노인에 대한 편견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지하철에서 큰소리로 말씀을 나누시는 어르신들이 너무 예의 없어 보였지만 그것은 청각 능력이 떨어져서 생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이해하게 되었다. 노인들이 보행할 때 가장 무서워하는 계단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다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내가 아직 늙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들이 사회에서, 젊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배제되는 것이 상관 없다는 생각, 그럴 수밖에 없는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쁘다고 단정짓는 것. 이런 것들이 우리가 노인을 생각하는 보편적인 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과연 어린이 책에서는 노인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인터넷 서점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키 워드로 책을 검색해 보고, 어린이들에게 많이 읽힌 책들을 중심으로 골랐다. 책을 살펴보며 새로운 관점으로 노인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할머니랑 달강달강』 표지
제목부터 정겨운 『할머니랑 달강달강』을 보자. 이 책은 저학년을 위한 창작 동화이다.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지현이가 이웃의 뻐꾸기 할머니, 팝콘 할머니와 함께 겪는 재미있는 사건들을 담고 있다. 현실과 상상 세계를 넘나드는 구성도 흥미롭고 그림도 무척 재미있다. 이 책에서 지현이의 할머니는 ‘발꼬락 냄새’가 나는 청국장 찌개도 잘 드시고 이웃 할머니들이나 갈 곳 없는 아저씨들에게 후덕한 인심을 쓰는 착한 할머니이다. 하지만 회초리를 딱 짚고 나타났다 하면 모두들 무서워하면서 도망갈 만큼 엄하기도 하다. 또 지현이가 토라져 있으면 ‘미리미리미리 뽕’으로 지현이를 달래 주시기도 하는 따뜻한 할머니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지현이, 이웃 할머니들의 모습, 주변 이웃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 준다. 지현이와 할머니는 세대를 넘어서 친구처럼 지내기도 한다. 책에서는 독거 노인인 뻐꾸기 할머니의 모습, 엄마와 할머니의 관계 등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한 묘사도 빠트리지 않고 있다. 또한, 노인을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자 주변 사람을 챙기는 후덕함과 나쁜 사람에게 호령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 더불어 윗사람이기 때문에 깍듯한 예의를 차려야 한다기보다 지현이와 함께 대화하고 노는 친구 같은 할머니의 모습이 참 정겹다.

『할머니가 남긴 선물』 표지
이번에는 『할머니가 남긴 선물』을 읽어 보자. 주인공은 할머니 돼지와 손녀 돼지이다. 밥 먹는 것도 집안일도 언제나 같이하는 할머니와 손녀는 정겨운 사이이다.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가 기운을 잃고 자리에 눕게 되고 할머니와 손녀는 예전처럼 모든 일을 같이 할 수 없게 된다. 이제 할머니는 손녀에게 천천히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나무, 꽃, 하늘을 즐기는 잔치, 나뭇잎이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 따스한 흙냄새와 같이 어린 사람들이 잘 알 수 없는 소소한 아름다움을 전해 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손녀 돼지는 할머니 돼지를 꼭 안아 주며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킨다. 어렸을 적 나쁜 꿈을 꿀 때면 할머니가 손녀를 꼭 안아 줬던 것처럼…….

『안녕 할아버지』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할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할아버지와 어린 손녀가 보낸 사계절이 담겨 있는 책이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손녀와 함께 했지만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할아버지가 항상 앉아 계셨던 자리는 빈 자리로 남는다.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죽음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좋은 추억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포근한 책이다.

『안녕 할아버지』 표지
할아버지,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한 책 가운데 ‘죽음’을 주제로 한 책들이 많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삶의 역사성을 가진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만남이 더욱 소중함을 알게 해 준다. 하지만 노인과 죽음을 연관시킬 때는 좀 더 조심스러워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노인은 죽음을 준비하거나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왜 아닌가?’란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사람들이 언젠가 한 번쯤 겪어야 할 일이다. 노인을 죽음의 예비 단계에 있는 사람으로 단정하는 것은 그 분들의 삶을 함부로 규정짓는 것이다. 노인은 『할머니랑 달강달강』에서처럼 내 친구이기도 하고, 『할머니가 남긴 선물』에서처럼 생활의 소소한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도와 주며 나와 함께 살아가는 분들이다. 우리보다 오래 사셨기 때문에 전해 주실 수 있는 이야기와 삶의 지혜는 많지만 젊은 사람들보다 세상을 먼저 떠날 수도 있는 분들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할아버지가 보내는 편지』이다. 주변 사람들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해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며 권해 준 책이다. 이 책은 김창원 할아버지가 자신의 글을 읽고 편지를 쓴 여러 명의 어린이들에게 답장을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편지를 보낸 친구들의 이름과 그 친구들의 질문에 자신의 경험을 담아 설명하는 할아버지의 글과 연필로 세밀하게 그린 그림이 따뜻하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옛날에 할아버지가 살던 때의 생활과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할아버지가 보내는 편지』 표지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 더우면 어떻게 했냐는 동규의 질문에 우물 속에 두레박을 던져 물을 퍼 올리는 것부터 물을 끼얹고 다시 대야에 물을 받아 툇마루에 앉아 발을 담그고 있으면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경험까지 말씀해 주신다. 일을 하러 나가신 어머니가 간식으로 만들어 놓은 찐 옥수수를 먹으며 숙제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회충에 대해 물어 본 은지에게는 파리와의 추억을 말씀하신다. 지금처럼 파리약이 흔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파리약을 뿌리고 나면 파리와 사람이 동시에 숨을 못 쉴 정도로 냄새가 독했다는 이야기나 파리가 수직으로 나는 특성을 이용해 물에 빠져 죽게 하는 ‘파리 잡는 병’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지금도 맨손으로 파리를 잡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파리의 소리를 듣고 수직으로 나는 파리의 특성을 이용해서 파리보다 먼저 파리가 날아오르는 방향에 손을 대고 기다리면 된다고 비법을 설명하신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할아버지의 다리를 베개 삼아 누워서 부채 바람을 맞으며 옛날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느낌이 든다. 나는 살아 보지 못한 나의 할아버지나 아빠, 엄마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 본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주제로 한 다른 책들에서도 역시 살아 있는 역사 전달자로서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 책의 김창원 할아버지 역시 그러하다. 나의 할머니도 일제 시대 이야기나 한국 전쟁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다. 어렸을 적에는 그저 재미있기만 했는데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지금의 나와 사회의 모습을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재산이 된 것 같아 든든하다.

어린이 책에 드러나는 노인의 모습은 앞서 밝힌 모습이 대부분이다. 죽음을 예비한 사람들이나 역사를 전해 주는 사람들의 모습. 『할머니랑 달강달강』 정도만 조금 새로운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내가 노인복지 과제를 마치고 가장 많이 배운 점은 비로소 내가 그 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어린 사람, 젊은 사람, 늙은 사람이 다 같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훌륭한 몫을 하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서도 어린이 책에서도 노인들을 ‘특별한 대상’으로 구별한다. ‘이런이런 사람’이란 굴레는 씌우는 것만큼 편견의 벽을 높이는 일도 없다. ‘죽음이 가까운 사람’과 같이 노인을 규정지을 것이 아니라 노인들도 다양한 사회 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임을 자연스럽게 인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주연 /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안양 여성의전화’에서 여성과 남성이 함께 행복한 세상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각 학교로 성교육 강의를 나가면서 어린이 책과 가까워졌습니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성에 대한 올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어린이 책을 읽으며 고민합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