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통권 제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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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책 이야기]
추억의 재구성

최신혜 | 2005년 12월

참 신기하게도 해마다 12월이 되면 학교에서 배운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저마다 1년을 돌이켜 볼 준비를 한다. 실행 여부와는 상관없이 적어도 ‘그래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것은 거의 강박증에 가까울 정도다. 『나의 사직동』이란 책은 여기에다 숙제 하나를 더 얹어 놓는다. 바로 추억의 되새김질이 그것이다.



나는 책을 고를 때 비주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주옥 같은 내용을 담아 놓고 아무렇게나 포장했을 리 없을 거라는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 이 나름의 원칙은 내 책을 고르든 아이 책을 고르든 거의 언제나 선택의 판단 기준이 되곤 한다.

『나의 사직동』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한국어린이도서상을 받았다는 은딱지보다는 노란 띠지에 있는 일러스트레이션 수상을 언급하는 내용의 글씨가 먼저 눈에 들었다. 그리고 담쟁이 덩굴로 덮인 고풍스런 2층 가옥. 사직동이란 동네 이름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와 너무나 어울리는 이 책을 사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나의 사직동』 표지
새로 산 책을 던져 주고 외출 했다 돌아온 내게 3학년짜리 딸아이가 뛰어 나오며 하는 첫 마디다. “엄마, 되게 감동적이야.” “뭐가?” “이 책! 엄마두 한 번 읽어 봐.” ‘자랑 거리 많은 동네에서 자란 작가가 자기 동네 자랑한 거 아니었나?’ 이렇게 생각하며 딸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읽어 나가는 데 ‘별스러울 것도 없는 얘기구만 주책같이 눈물은 왜 나는 거야!’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가며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쯤엔 뭐라 딱히 꼬집어 말하기 힘든 아련함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그런데 이런 느낌은 딸애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본래 독후 활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우리 모녀지만 이번만큼은 아이가 느꼈을 감정이 궁금해졌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사직동』은 어른 취향의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열 살짜리 아이는 이 책에서 무얼 느꼈을까? 허름한 구멍가게의 향수를 아이가 알기나 할까? 익숙한 시공과의 헤어짐이 가져다주는 그 허전함을…….

“예빈아, 너 이 책 감동적이라고 했지? 어떤 느낌이 들었는데?”
“으음, 정겨워. 옆집 아줌마를 보는 것 같아. 그리고 좀 쓸쓸해.”

요즘 애들 어휘 사용이 조숙한 거야 익히 알고 있지만 옆집 아줌마의 정겨움을 자기가 어찌 안다고.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옆집에 살았던 아줌마는, 그리고 새로 이사 오신 아줌마 역시 날씬하고 세련된 커리어 우먼이거나 적어도 그런 분위기를 풍기는 분인데 말이다. 게다가 쓸쓸함까지? 아이가 너무 웃자랐나 싶다. 그런데…… 어라? 또 읽네!

『나의 사직동』 본문 중에서
‘사직동’과의 첫 만남을 그렇게 보내고 몇 날과 몇 달이 흐르는 사이 이 별스럽지도(?) 않은 책은 거실과 식탁에서 화장실과 침대 위에서 심심찮게 목격되었다. ‘음…… 뭔가가 있나 보군.’ 그리고 어젯밤 다시 물었다. “재밌어?” “어.” ‘으이그, 저 단답형. 글 쓰는 데 도움 좀 되게 자세히 좀 말하지.’ 아이는 요즘 사춘기의 초입에 들어섰는지 단답형 대답이 부쩍 많아졌다. 때로는 너무 시끄러워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재잘거리다가도 막상 뭘 물으면 ‘어, 아니, 몰라, 그냥’ 넷 중 하나다.

다시 사직동으로 돌아오자. 어쩌면 추억이나 향수 같은 과거 지향적 감상들이 꼭 늙수그레한 어른들만의 전유물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세월의 깊이에 따라 좀 더 자주 드러날지언정 지난 것을 기억하고 그리워할 줄 아는 마음이야 태어나는 순간 조물주가 이미 인간 속에 넣어 둔 본능이 아닐지. 정겨움이나 쓸쓸함 또한 같은 맥락일 것이다. ‘쓸쓸함’이란 단어를 쓰지 않는 것이 쓸쓸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어렸을 때부터 자기 내면의 여러 감정들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아이는 행복하다. 그런 아이는 절대 ‘울 줄 모르는’ 불쌍한 어른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사직동』은 고맙고 특별한 책이다. 어린이 책 치고 쓸쓸한 마무리를 감행(?)하는 책은 흔치 않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은 지난 추억을 수동적으로 회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현재를 눈부신 추억으로 재구성하고 싶게 만드는 데 있다. 책을 덮는 순간 디지털 카메라라도 둘러메고 나가 골목골목 다니며 지금, 여기를 담아 놓고 싶어지는 마음은 나만의 충동이 아닐 것이리라.

그리고 또 한 가지. 밤마다 요상스런 소리를 내는 검은 도둑고양이를 대낮에 집 앞에서 맞부딪칠 때면 서로 기절초풍하여 도망치던 것이 이제는 그 녀석도 엄연한 주민의 하나로 여겨짐은 모두 사직동 덕분이라 하면 아부의 초절정이 되려나?

재개발 바람 속 비까번쩍 아파트에 밀려난 우리의 정겨운 이웃, 성공한 비즈니스 맨과 더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 되기 위해 자기 계발이라는 이름으로 내쫓아 버린, 초라했지만 순수했던 나. 또 한 해를 접으며 아이와 함께 추억 속의 이웃과 잃어 버린 나를 재구성해 봄은 어떨까? ‘범죄의 재구성’이라는 영화도 있지만 재구성되어야 하는 것은 비단 범죄만이 아니니까.



IMF 때보다 더 살기 힘들다는 말이 엄살이 아니라 사실인 요즘이다. 어느 책에선가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때일수록 모으기보다는 보람된 무언가에 투자해야 한다는 글을 읽고 용기를 얻어 지난 봄 처음으로 온 가족이 해외 여행을 다녀왔다. 심하게 무리를 한 덕분에 곤궁한 여름을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폭풍 소년』을 만난 건 그 여름의 한가운데쯤에서였다.

『폭풍 소년』 표지
거의 숙제처럼 읽게 된 책. 계절이 겨울이었다면 절대로 손이 가지 않을 만큼 겉표지부터 서늘한 책이었다. 주인공으로 보이는 아이의 분위기는 거의 흑백 톤에 가까운 책의 컬러와 어울려 묘한 쓸쓸함을 자아냈는데 『나의 사직동』도 그런 기분이 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에게 익숙한 잔잔한 쓸쓸함이었다면 『폭풍 소년』의 그것은 폭풍처럼 강렬한 그 무엇이었다. 소년에게선 짧지만 평범치 않은 인생 이력이 느껴졌다. 미술 방면에 문외한인 나이지만 감동적인 그림책에는 글보다 먼저 말하는 훌륭한 일러스트레이션이 반드시 함께한다고 믿는다. 이 책 역시 스토리 전체를 아우르는 정서를 표지에서부터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서민에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피서지인 도서관에서 우리 모녀는 이렇게 범상치 않은 책과 소년을 만나게 됐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딸과 나는 소년의 상황 알아맞히기를 했다. 그것도 숙제를 아주 아주 의식하면서. “어…… 얘는 성격이 아주 막무가내인 것 같아. 그리고 가난한 집이 싫어서 집을 뛰쳐나와 방황하고 있는 거 같아.” “또 말해 봐” “아유~ 그냥 읽으면 안 돼?” “그럼, 읽고 나서 네 느낌을 꼭 말해 줘야 해!” “알았어, 알았어.” 엄마의 어설픈 독서 지도를 못마땅해하며 마지못해 응수해 주던 아이는 그제서야 신이 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이 되게 심심하게 생겼는데 어떡하지? 발표도 해야 하는데…….’ 내심 걱정을 하며 아이의 책 읽는 표정을 살펴보니 의외로 책에 빠져드는 눈치여서 한 시름을 놓았다.

다음 날, 방학이라 마음 놓고 늦잠 자는 아이를 일찍부터 흔들어 깨웠다. “예빈아, 일어나서 빨리 얘기해 줘. 엄마 오늘 발표해야 돼. 빨리!” 짜증날 만도 하건만 고맙게도 아이는 순순히 일어나 비틀거리며 소파로 나와 앉았다. “엄마는 아침 밥 준비할 테니까 넌 빨리 말해. 상 차리면서 들을게.” 엄마의 호들갑에 딸은 잠 덜 깬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잠에서 덜 깬 아이들의 목소리는 참 귀엽고 사랑스럽다.

“……소년이…… 바닷가에 사는데…….” 느리느릿 이야기를 해 나가던 딸아이는 펠리컨 가족이 나오는 부분부터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속도가 붙자, 갑자기 소년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잠깐만! 그 애 이름이 뭐래?” “그냥 폭풍 소년이야.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 아이는 별 불만이 없어 보였다. 근데 여기서 왜 갑자기 『어린 왕자』의 글귀가 생각나는 것일까? 어른들은 자기 아이 친구의 목소리나 나비 수집에는 관심이 없고 나이나 아버지의 수입 같은 것을 알아야 그 아이를 안다고 생각한다는. 도무지 철이 안 든다고 대한민국 대표 빈혈 환자로 가족들에게 낙인된 자칭 순수 아줌마이건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어른이구나 싶었다. “미안, 계속해.”



이야기는 흘러흘러 막바지에 이르렀다. “똑똑하고 건강한 펠리컨들은 이제 다 떠나고 얌전이만 남았는데…… 근데…… 사냥꾼들이…….” 목소리가 이상했다. 안 그래도 목구멍이 아파 오는 걸 참고 있었는데. “예빈이, 우니?” 터졌다. 아침부터 아이는 방성대곡을 하고 엄마는 수저 놓으랴, 눈물 훔치랴 그 날 아침 식탁에선 진풍경이 벌어졌다.

자연과 교감하던 소년은 결국 친구들을 잃고 외지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도시 학교로 떠난다. 과연 학교는 소년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엄마 없이 자란 소년에게 엄마 품이었던 바다를 그 소년은 되돌려 받았을까? 소년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폭풍 소년』 본문 중에서

‘정말 우리가 호주라는 나라에 갔었던 걸까?’ 친구 아들내미에게 기념 선물로 사다 준 셔츠를 고 개구쟁이 녀석이 입고 눈 앞에서 알짱거릴 때면 그런 일이 정말 있었는지 모호해지곤 한다. 호주 어느 이름 모를 바닷가에 산다는 그 소년을 알게 된 뒤론 그 모호함이 한층 더해져 문득 ‘소년은 지금 뭘 할까, 얼마나 컸을까, 아직도 바닷가에 살까?’ 궁금해지곤 한다. ‘진작 알았더라면 호주 갔을 때 소년을 찾아가 보는 건데.’ 하며 철딱서니 없는 생각도 한다.

우리 딸은 무슨 생각을 할까? “소년이 어떻게 됐을 것 같니?” 이 질문에 두 가지 시나리오를 내 놓는다. 한 가지는 학교 때려치우고 바다로 돌아왔을 거라는 것. 또 한 가지는 학교를 졸업하고 정치가가 돼서 사냥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을 거라는 좀 더 모범생 같은 내용.

또 다시 그 먼 곳을 가 볼 수 있을까 싶지만 그리고 또 설혹 다시 그런 기회는 없을 거라 해도 다갈색 피부의 근육질 몸매와 호주의 바다를 닮은 맑고 서늘한 눈을 가진 호주 청년을 보게 된다면 나는 아마도 틀림없이 폭풍 소년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우길 것이다. 폭풍 소년이 분명하다고.



우리 가족으로서는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떠났던 여행, 잘한 일이었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것은 아마 무엇에 더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날 것이다. 어디 돈뿐이겠는가. 시간도, 마음도, 독서도 그러하리라. 자신의 가치에 따라 낭비일 수도, 의미 있는 투자일 수도 있는 일들이 세상엔 참 많다.

『폭풍 소년』을 읽은 아이의 입에서 ‘엄마, 이 책은 추워.’라는 표현이 나온 것에 나는 엄마로서 뿌듯함을 느낀다. 느끼고 표현할 줄 아는 것에 큰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이는 아기 때부터 시간 낭비, 돈 낭비 해 가며 책을 읽어 준 이유다. 옛 사직동 이웃들이 정겨운 까닭은 무엇인가? 그들은 마음을 낭비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쓸데없는 참견과 간섭으로 치부되어 버리는 바로 그 마음. 소득의 분배가 고르지 못할 때 사람들 사이엔 미움이 싹틈을 본다. 마음도 그럴 것 같다. 마음이 나와 내 가족에게만 편중될 때 우린 외롭고 쓸쓸해진다.

12월이다. 연말이 외롭지 않으면 좋겠고 새해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이 겨울, 『나의 사직동』과 『폭풍 소년』은 그들의 쓸쓸함 묻어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살얼음 낀 우리 마음 속 수은주를 따뜻하게 데워 줄 것이다.

추천대상: 뭘 좀 아는 아이들과 뭘 좀 모르는 어른들
추천 활동:
1. 온 동네 돌아다니며 사진 찍기
2. 할머니랑 『나의 사직동』 읽기
3. 할머니 나고 자란 동네 가 보기
4. 밤 기차 타고 겨울 바다 가 보기
5. 갈매기에게 말 걸어 보기
추천 배경음악: 「향수」 「Try to Remember」
최신혜 / 책 읽기와 음악을 사랑하며 대학원에서 상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가족으로는 비행기 조종을 하고 싶어하는 남편과 ‘국경 없는 의사회’ 의사가 되고야 말겠다는 딸 예빈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