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통권 제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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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어린이가 있는 풍경]
내가 처음 겪은 죽음, 황금박쥐

김환영 | 2006년 10월

어쩌면, 그 나이 때면 누구나 겪는 흔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 정도 나이면 학교 앞에서 사 온 노란 병아리나 집에서 먹이던 개, 아니면 가까운 친척의 죽음이라도 겪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열두 살 적에 겪었던, 죽음 이야기랍니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합니다. 제가 5학년 때 가장 인기가 좋았던 애니메이션이 「황금박쥐」였어요. 「우주소년 아톰」과 「요괴인간」과 함께 우리를 사로잡았던, 금빛 해골 마스크에 붉고 검은 망토를 한 ‘정의의 사도’ 황금박쥐가 아직도 제 눈에 선합니다. “황금박쥐, 어디 어디 어디에서 오느냐 황금박쥐. 빛나는 해골은 정의의 용사다. 힘차게 나르는 희망의 꿈. 우주의 괴물을 전멸시켰나. 어디 어디 어디에서 오느냐 황금박쥐. 박쥐만이 알고 있다.” 으하하하……! 복화술 같은 웃음으로 시작하는 「황금박쥐」 주제가를 우리들은 가사를 바꿔 이렇게 부르곤 했어요. “황금박쥐, 어디 어디 어디에서 오느냐 황금박쥐. 빛나는 대머리에 빤스 하나 걸치고 부지깽이 하나 들고 나섰다. 우주의 괴물을 전멸시켰냐. 아니, 아니, 매만 맞고 돌아왔다 황금박쥐. 박쥐도 이제는 늙었구나.”

그 당시 반 아이들이 저에게 그려 달라고 한 것이 모두 황금박쥐였어요. 한 손에는 손잡이가 둥근 금빛 지팡이를 들고 검은 망토를 펄럭이며 하늘을 나는 황금박쥐! 「황금박쥐」가 아이들 사이에 최고 인기 애니메이션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교문 앞에서는 처마나 동굴에서 잡아온 박쥐들을 한 마리에 30원씩 받고 아이들에게 팔았어요. 아이들은 박쥐 파는 아저씨를 에워싸고 눈이 빠지게 구경하거나 호주머니의 돈을 헤아려 박쥐를 사기도 했지요. 아쉽게도 저는 박쥐를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어요. 차 삯이 15원 하던 시절이니 초등학교 아이에게 30원이면 적은 돈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어린아이에게 코앞에서 고물대던 살아 있는 박쥐를 포기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예요. 어머니 잔심부름을 하거나 아버지 구두를 닦아 겨우겨우 30원을 모은 어느 하교 길에, 가슴을 콩닥거리며 상자에 담은 박쥐 한 마리를 안고 집으로 왔답니다. 집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버스 안에서도 꼬옥 가슴에 품은 채 말이에요. 박쥐를 품에 안는 그 순간부터 숙제나 학교 생각은 가방과 함께 방구석에 처박혀 버렸을 거구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박쥐의 한쪽 다리에 무명실을 묶었어요. 그러고는 공터로 나가 연을 날리듯 그렇게 달렸습니다. 한쪽 다리가 묶인 박쥐도 푸득푸득 잘 날아 주었어요.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요. 검은 빛깔의 박쥐가 제게는 의심할 나위 없이 황금빛으로 보였을 테니 얼마나 벅차올랐겠어요! 실컷 놀고 돌아와서는 박쥐 집을 마련해 줘야 했어요. 멋지게 나는 모습을 언제고 볼 수 있는 자리에 말이지요. 궁리 끝에 현관문 처마 위에 작은 상자를 올려 거기에 박쥐를 집어 넣었어요. 파리나 벌레들을 잡아 상자 안에 넣어 주었구요.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머릿속은 온통 집에 두고 온 박쥐에 쏠려 있었거든요. 현관문 위 박쥐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지, 퍼덕거리다가 실에 엉켜 버린 건 아닌지, 실을 끊고 멀리로 날아가 버린 것은 아닌지……. 운동장에서 놀다 가자는 아이들 말이 들릴 턱이 없었지요. 학교를 파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가 버스를 타고 무조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 박쥐를 확인하고는 공터로 달려갔지요. 어제처럼 연을 날리듯 박쥐를 허공에 띄우고 함께 달렸습니다. 기운이 없는지 박쥐는 어제만큼 잘 날지 못했어요.

아, 그렇게 하루하루 박쥐는 시들어갔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은 거의 날지를 못했어요. 손 끝에 실을 매고 하늘 위로 붕붕 날려 보아도 힘없이 땅바닥으로 떨어질 뿐이었어요. 닷새를 못 넘기고 박쥐는 결국 죽고 말았답니다.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나와서 현관문 위를 보니 아무런 기척이 없겠지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니 박쥐는 바닥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어요. 손으로 만져 보아도 차갑고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어요. 공부 시간과 학교에 오고 가는 내내 마음이 그렇게 괴롭고 슬프고 허탈할 수가 없었어요. 집에 오면 날마다 박쥐와 놀려고 했던 것인데, 공터와 관악산을 뛰어 다니며 박쥐와 신나게 날아다니려 했던 것인데…….

한 집에서 살던 동갑내기 사촌과 사촌의 여동생이 함께 박쥐를 묻어 주기로 했어요. 공터 한 켠에 있는, 대문을 열면 집에서 가장 가까운 텃밭에다 묻어 주기로 했습니다. 마른 나뭇가지로 땅을 팠어요. 그리고 미리 준비한, 속옷을 담아 두던 납작한 종이 상자를 꺼냈지요. 빈 상자를 열고 박쥐의 멋진 날개를 펴서 핀으로 고정한 다음 상자의 뚜껑을 닫았습니다. 속옷을 담는 종이 상자 앞면은 투명한 비닐로 되어 있으니 뚜껑을 닫아도 상자 안에서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박쥐는 다 보이는 거지요. 편편하게 파 놓은 땅에 내려 놓고 기도를 한 다음 푸슬푸슬한 흙을 뿌려 주었어요. 흙이 다 덮일 때까지 뚫어져라 박쥐를 들여다보았어요. 날개를 펼친 박쥐의 멋진 모습을 영원히 잊고 싶지 않았거든요. 다 묻고는 마른 나뭇가지로 십자가를 만들어 ‘황금박쥐의 무덤’이라고 적은 다음 무덤 위에 세워 주었습니다.

며칠이 지났을까요? 박쥐가 궁금한 거예요. 사촌을 불러 지금쯤 박쥐가 어떻게 되었을지 상의해 보았지만 알 도리가 없었고, 궁금증은 갈수록 커져만 갔습니다. 확인해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지요. 그래서 결국 무덤을 파 보기로 합의했답니다. 우리가 만든 십자가가 바람에 기우뚱해지긴 했어도 박쥐를 묻었던 장소를 확인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우선 나무 십자가를 뽑고 막대기로 흙을 떠 내었어요. 이쯤에 묻었을 거야 하면서 종이관이 나올 깊이에 가서는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흙을 덜어 냈어요. 드디어 손 끝에 박쥐를 묻었던 종이 상자의 비닐이 느껴졌어요. 거슬거슬한 흙 사이로 빠닥빠닥한 비닐의 촉감! 오오, 그러나 나는, 정말이지 나는 그것을 보지 말았어야 했을지 모릅니다. 아니, 무덤을 다시 파 보는 일을 결코 하지 말았어야 했을 겁니다. 박쥐는, 흙모래 사이사이로 언뜻 보이는 비닐 속에서 멋지게 날개를 펼치고 있던 박쥐는, 가슴팍과 머리가 썩어 가고 있었고, 허연 구더기들이 박쥐의 몸 여기저기를 뚫고……. 사촌 여동생은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고 사촌과 나는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로 그 자리에서 도망쳐 버렸답니다. 뒷마무리도 하지 못한 채 황급히…….

그 끔찍한 장면을 보고 저는 무슨 큰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그 날로 앓아누워 버렸어요. 며칠 동안 학교도 가지 못한 채 누워 버린 거예요. 온몸에 땀을 뒤집어쓴 채 잠이 들고 또 잠에서 깨어났어요. 깨어서도 힘들고 고통스러워 눈을 감으면 얇은 두랄루민 껍질을 한 비행기가 잿빛 하늘을 납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아주 천천히, 은빛을 반짝이며, 아득히 멀리서 비행기가 날아가요. 그러다가 기운이 없어 맥을 풀면 비행기는 구깃구깃 구겨졌어요. 나는 또 그것이 고통스러워 구겨지면 이를 악물고 다시 펴고, 그러면 펴지는가 싶다가 또 다시 구겨지고. 거기에다가 몸은 자꾸만 땅속으로 가라앉았어요. 까마득하게 밑으로, 밑으로, 까마득하게……. 앓아누웠는데, 가만히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죽겠는데 감은 눈 앞으로는 비행기가 날고, 날다 구겨지고, 다시 펴려고 이를 앙다물고, 몸은 땅속으로 끝도 없이 꺼져 가고. 우우우웅……. 낮고, 고요하고, 저 멀리로 아득하고, 까마득하던 그 소리…….

그렇게 며칠을 앓고는 비개인 들판처럼 몸이 반짝 살아났겠지요. 예전처럼 동네 아이들과 집 뒤 관악산을 오르면, 비 개인 날 산언덕에 물기를 머금은 주황빛 나리꽃이 그렇게 싱그러울 수가 없었어요. 대개의 커 가는 아이들이 그렇듯, 다시 학교에 가고,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오징어’나 ‘십자가 이상’ 따위의 놀이를 하면서 박쥐 무덤에 대한 생각도 차츰 차츰 잊혀졌겠지요. 다만 아주 강렬한 한 장면만이 제 무의식 깊숙이 박힌 채로 말이에요. 천연덕스러웠던 어린 시절이 그렇게 멀어져 가면서 말이에요.

지난 봄, 한낮의 볕살이 따끈따끈해지기 시작했을 때 민들레 한 포기를 그린 적이 있어요. 볕이 좋아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봄볕을 쬐고 있는데, 대문 한 켠에 아가 주먹만이나 할 하얀 민들레가 피어났어요. 이른 봄볕에 눈부신 하얀 민들레를 보는 일은 얼마나 큰 기쁨인가요. 물끄러미 그 작고 하얀 민들레를 보다가 그냥 보고 있기가 아까워 한 올 한 올 그렸지요. 그림을 그리다가, 그 민들레의 뿌리가 뻗어 있는 바로 그 자리가 지난 해에도 지지난 해에도 하얀 민들레가 피었던 바로 그 자리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볕이 적어 이파리도 작고 꽃도 작았는데, 그 포기 아래로는 지난해 사그라들었던 이파리가 허옇게 희나리로 남아 있었습니다. ‘아. 그 자리에 다시 피어나는구나.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로구나!’

벌써 가을입니다. 개체의 생명 단위로 보면 이 가을은 모든 것 사위어 가는 죽음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또 한 움큼 부활의 씨앗을 남기는 찬란하고 웅장한 계절이기도 하지요. 제가 어렸을 때 홍역처럼 앓았던 죽음도 그렇게 놓고 보면 소멸이거나 단절은 아니었을 겁니다. 시골은 아직 자연이 덜 망가져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제 생각에 동화의 세계가 다른 갈래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애니미즘에 관련한 세계 인식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의당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들, 풀벌레나 나무와 바위들이 서로 상관하고 이야기하는 세계, 모든 물질들에 정령이 있다고 믿는 세계, 삶과 죽음을 경계 없이 넘나들고 넘나들 수 있다고 여기는 세계, 그 가운데 한줌 사람이라는 인식 말이지요. 저는 그렇게 인식하는 세계가 좋고 또 바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세계 인식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별은, 지구별의 평화에 대한 꿈은 무망할 테니까요.

※ 이 글에 실린 그림은 『나비를 잡는 아버지』(김환영 그림, 현 덕 글, 길벗어린이)에서 가져왔습니다 ━ 편집부.
김환영 /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였습니다. 그림을 그려 펴 낸 어린이 책이 많습니다. 대표작으로 『마당을 나온 암탉』『종이밥』『나비를 잡는 아버지』『호랑이와 곶감』『해를 삼킨 아이들』을 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