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1월 통권 제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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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상 나들이

[과학 세상 이야기]
세상과 생명을 사랑하는 과학

손영운 | 2007년 01월

1. 이 세상에 책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안녕하세요? 어린이들에게 최근에 나온 좋은 과학책을 추천하기 위해 글을 써 달라는 청을 받았지만 먼저 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제가 어떤 마음과 눈으로 책들을 소개할지 생각을 조금 열어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책과 인연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분명 저는 전생에 책벌레였을 겁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말해 보겠습니다. 저는 30여 년 전, 부산에 있는 경남중학교를 다니면서 학교 도서부장을 했습니다. 당시 학교 도서관은 아주 컸습니다. 교실 네 개 정도의 넓이에 장서만 약 10만 권이 넘었고, 사서 선생님이 따로 계셨을 정도였으니까요.

처음에는 예쁘고 상냥한 사서 선생님이 좋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 도서관과 그 안에 있는 책이 더 좋아졌습니다. 저는 도서관 열쇠를 따로 가지고 다니면서 아침에 도서관 문을 열었고, 저녁에는 늦게까지 도서부원들과 함께 도서관을 지켰습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도서관에 남아 책을 보고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아 밤 10시까지 학교 도서관을 운영했습니다. 저는 매일 늦게까지 도서관을 지키면서 보고 싶은 책을 얼마든지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장서 뒤에 숨어 있는 오래된 책들을 꺼내 닦고 정리하면서 책에서 나는 고리타분한 향기를 맡는 것이 좋았습니다. 도서부원들과 새로 도착한 신간 추리소설들을 서로 먼저 읽으려고 경쟁을 한 것도 즐거운 추억입니다. 덕분에 저는 참 책을 많이 보았습니다.

1학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닥치는 대로 책을 읽다가, 중학교 2학년 때는 사서 선생님의 권유로 우리나라 소설책을 다 읽기로 결심하고 이광수의 작품들에서 시작하여 박종화의 역사소설까지 두루 섭렵했습니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김래성의 추리연애소설에 정신이 쏙 빠져 시험 전날까지 시험공부는 하지 않고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그리고 수업 중에 몰래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다가 선생님께 들켜 책을 빼앗기고, 그 책을 찾기 위해 사흘 동안 매를 맞으면서 교무실에 들락거린 아픈 기억도 있습니다. 3학년 때는 세계문학 전집을 다 읽자는 목표를 정하고 또 열심히 읽었습니다. 3월에는 헤밍웨이, 4월에는 헤르만 헤세, 5월에는 도스토예프스키, 6월에는 토마스 하디의 소설을 쭉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활은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모두 흐트러졌습니다. 대학 입시가 지상 목표였던 고등학교에서는 교과서나 참고서 외 다른 책을 보는 것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어른들 몰래 헌책방에 가 지나간 문학잡지를 사는 등, 소설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제 소원은 빨리 대학 입시를 치르고 한적한 절에 가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만 보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가졌던 꿈을 구체적으로 이루겠다고 결심한 것은 나이 마흔이 되던 해였습니다. 그때 저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하고, 교직 생활을 그만두고 전 재산을 털어 김포에 약 6만 권의 책을 보유한 조금 규모가 큰 서점을 열었습니다. 저는 서점을 하면 얼마든지 책을 많이 볼 수 있고, 또 제가 가졌던 책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사랑하는 제 두 딸아이도 가지리라 생각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보고 싶은 책들을 실컷 보게 되었고, 두 딸아이들은 제 욕심에는 차지 않지만 그래도 책을 많이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과학책을 쓰는 작가가 되어 바쁘게 지냅니다. 그래서 가끔 저는 이 세상에 책이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하게 된답니다.

2. 어린이들에게 책은 가장 훌륭한 장난감이다
파브르의 노년 모습
저는 주로 과학에 관련된 책을 쓰는 작가여서, 세상을 바꾼 과학을 발견한 위대한 과학자들의 일생에 대해 연구를 할 기회가 많습니다. 각각 별난 성격을 가지며 살아간 과학자들에게도 딱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모두 책벌레였다는 사실입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초등학교 1학년도 제대로 다니지 않았지만 책 속에서 과학과 기술에 대한 지식을 얻었습니다. 그는 기차 안에서 신문을 팔 때도 틈틈이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었는데, 도서관 장서에 꽂힌 책들을 주제와 상관없이 아래 칸부터 위 칸까지 모두 읽었습니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마리 퀴리도 책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부모님은 일부러 밖으로 쫓아내어 놀게 했습니다. 화학 혁명의 선구자였던 영국의 과학자 로버트 보일은 의사에게 책을 너무 읽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답니다. 갈릴레이나 뉴턴 그리고 아인슈타인 등과 같은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미국의 빌 게이츠는 어릴 때 책을 너무 많이 읽어 혹시 자폐증에 걸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샀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과학자가 아닌 다른 위인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저의 삶을 통해서나, 다른 위대한 과학자들의 삶을 보았을 때, 책은 사람에게 글이 새겨진 종이 묶음 이상의 큰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책은 인생의 등대와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게 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아이들의 주위에 책을 많이 두거나, 책이 많은 곳으로 데려 가는 겁니다. 제가 책을 좋아하게 된 것도 아마 중학교 때 우연히 도서부원이 되어 책이 많은 곳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마리 퀴리가 책을 그토록 좋아하게 된 것은 주말마다 아버지가 가족과 함께 가졌던 문학의 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이들을 앞에 두고 마리 퀴리의 아버지는 자신이 지었던 시를 읊어 주었고, 새로운 문학과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답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책의 필요성을 스스로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면 그 속에서 가난을 딛고 일어설 용기를 얻을 수 있고, 스스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얻을 수 있고, 또 미래의 꿈을 다듬을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책에 욕심을 내도록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의 필요가 아니라 아이의 필요에 의해 책을 선택하도록 하는 일 말입니다.

저는 서점에서 가끔 어린이들과 엄마들이 책을 사는 일을 두고 다투는 광경을 봅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은 재미가 있는 책이고, 부모들이 좋아하는 책은 ‘영양가’ 있는 책이지요. 그래서 재미가 있는 책을 손에 든 어린이와, 영양가 있는 책을 든 부모와의 신경전은 아이들의 두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으로 끝날 때가 많습니다. 가끔은 아예 책을 사지 않고 나가는 일도 벌어집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저는 어른들에게 ‘영양가 있는 책이 꼭 좋은 책은 아니다.’라든지, ‘어린이들에게 책은 가장 훌륭한 장난감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나이와 심리 발달 단계에 따라 책을 읽는 어린이의 행위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3. 저학년 때는 지식이나 감동보다 책 읽기 자체가 더 중요하다
초등학교 1~2학년 시기의 어린이들은 책 자체를 즐기려고 합니다. 책 속의 등장인물에 관심을 보이고, 주제를 파악하고, 이야기의 내용의 순서를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글의 내용이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판단하고, 새로운 단어를 배우려고 하는 때입니다. 3~4학년 어린이들은 모르는 단어도 사전을 찾지 않고 뜻을 알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는 시기로, 이야기를 읽은 후 결론을 내릴 수 있으며 아직 읽지 않은 내용도 어느 정도 예측하며 읽을 수 있는 시기입니다. 책의 내용 중에서 어느 것이 중요한 것인지 찾아 내려는 주제 의식을 가지고 책을 읽으려고 합니다. 5~6학년 시기는 글 읽기 능력이 성숙한 단계에 도달하는 시기입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함께 지적 이해에 대한 욕구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책을 읽을 때는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면서 같은 주제에 대한 여러 사람의 견해를 비교하여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조금씩 갖추어 갑니다. 이 시기에는 생각이 깊어지고, 감정도 성숙해지는데, 모험담이나 현실 문제를 어린이 시각에서 다룬 책들을 많이 보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님들이 어린이들의 책을 선정할 때는 위에서 말한 단계별 독서 능력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에게는 책을 읽으면서 지식이나 감동을 얻는 것보다는 책 읽기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또 어린이들은 책 속에서 학습적인 지식보다는 새로운 단어를 배우고, 다음 이야기에 대한 상상력을 가지고, 책 속 내용에 대한 비판 의식을 가지는 일을 순서대로 하려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4. 꼭 읽으면 좋을 두 권의 과학 책
이번 달에는 초등학교 고학년들이 읽을 책 두 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책들입니다. 인류의 커다란 등대가 되어 준 두 과학자와 그들의 진지한 삶과 생명 사랑의 정신이 들어 있는 책들입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은 스스로 읽으면 좋겠고, 저학년 아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읽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책은 『파브르 평전』입니다. 마르틴 아우어라는 사람이 지은 책인데, 평생 곤충을 연구하며 “나는 살아 있는 것을 연구한다.”는 정신으로, 생명을 사랑한 생물학자 파브르의 일생을 기록한 책입니다.

파브르가 생명체 연구에 몰두하며 그린 버섯 수채화
책에는 “내 소중한 곤충들아 그들은 너희를 토막 내지만, 나는 살아 있는 너희를 연구한다. 그들은 고문실에서 작업하지만, 나는 파란 하늘 아래서, 매미의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관찰한다. 그들은 세포와 원형질을 시험관에 내던지지만, 나는 너희 본능이 최고도로 현시되는 모습을 연구한다. 그들은 죽음을 연구하지만 나는 생명을 연구한다.”는 파브르의 말이 나옵니다. 50년 묵은 작은 책상 홈 속에서 사는 작은 곤충까지 사랑한 파브르의 진정한 생명 사랑의 정신을 느끼면서 생명이란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고, 참된 과학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비비 총탄으로 매미나 잠자리를 죽이거나, 발로 개미를 밟는 아이들이 큰 반성을 하게 될 겁니다.

두 번째 책은 진화론의 과학자 찰스 다윈의 자서전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입니다. 그는 ‘관찰과 실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날이 바로 내가 죽는 날이 될 것이다!’라고 외치며 평생을 오로지 관찰과 실험으로 살았던 위대한 과학자입니다. 책에서 찰스 다윈은 “수없이 다양한 식물들과 덤불 속에서 노래하는 새들, 주위를 날아다니는 온갖 곤충들 그리고 젖은 흙 속을 기어 다니는 벌레들이 그토록 서로 다르고 복잡한 방식으로 서로 의존하면서 우리 주변에 작용하는 법칙에 의해 만들어져 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이 행성이 정해진 중력 법칙에 따라 계속 회전해 오는 동안 그렇게 단순했던 시작이 이렇게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운 무수한 형태의 생명으로 진화해 왔다는 것은 또 얼마나 장엄한 일인가?”라고 외칩니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또 우리와 더불어 사는 지구의 동식물이 얼마나 존엄한 존재인가를 깨닫습니다. 부디 우리 어린이들이 위 두 권의 책을 읽고 생명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을 갖게 되면 좋겠습니다.
손영운│1963년 부산에서 태어났고 서울대학교에서 지구과학을 공부했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과학 교사로 지내다가, 과학을 어려워하고 흥미를 붙이지 못하는지 사람들을 위하여 재미있는 과학 책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펴낸 책으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과학사』 『아인슈타인처럼 생각하기』 『꼬물꼬물 과학이야기』 『엉뚱한 생각 속에 과학이 쏙쏙』 등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주간조선』에 「과학논술」을, 월간 『뉴턴』에 「손영운의 한반도 과학 여행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