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2월 통권 제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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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이야기]
장한 우리 역사, 그 의미의 현재화

박혜신 | 2007년 02월

성의 나라, 고구려

“고구려 사람들의 성 쌓는 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아세요?” 귀가 솔깃했다. 두 권짜리 기획물을 함께 끝낸 지 얼마 안 되어 자축하는 자리에서 만난 ‘현무와주작’(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사랑하는 동화 작가들의 모임)이 불쑥 이렇게 말을 건넸다. 내가 머릿속으로 고구려 역사를 더듬는 사이, 현무와주작 최 선생님은 본격적으로 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아예 지도를 펼치더니 오녀산성을 시작으로 국내성, 비사성, 요동성, 안시성을 넘나들었다. 우리의 빛나는 삼국 프로젝트는 이렇게 고구려로부터 시작됐다.

700년 동안이나 중국을 위협한 나라, 고구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의 말대로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이기에, 우리 삼국의 역사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특히 아이들에게 주는 의미를 재해석하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 삼국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찾는 책을 만들자! 나와 현무와주작의 즐거운 고구려 여정이 시작됐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막 불거져 나온 때라 마음은 더 바빴다.

1권 고구려 집필을 맡은 최 선생님은 ‘고구려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가 될 수 없음을 알려 주는 책을 꼭 쓰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문제는 그것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보여 주느냐였다. 고구려의 역사를 담으면서, 그 역사가 중국의 것이 아님을 효과적으로 드러내 줄 제재가 필요했다. 그건 바로 ‘고구려의 성’이었다. 고구려는 옛 이름인 ‘구려’가 성에서 나온 말인 데다가, 일찍부터 ‘성의 나라’라고 불렸다. 성은 일상생활의 터전인 동시에 전쟁이 났을 때는 적과 싸우는 요새가 된다. 따라서 성은 고구려를 대표하는 말인 동시에 고구려 사람들이 북쪽 유목 민족은 물론 중국과 맞서 싸운 현장으로, 고구려의 역사가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님을 보여 주는 데 가장 적합한 제재였다. 기본 컨셉을 토대로 자료를 모으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구려의 유적은 대부분 중국 땅에 있고, 남아 있는 것조차 대부분 파괴되어 연구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현무와주작이 집필에 몰두하는 동안, 나는 고구려의 기상과 성 축조 과정을 시각화해 줄 그림 작가를 찾아 나섰다. 내로라하는 역사책 화가들이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방대한 작업량과 부족한 자료 탓이리라. 전래 동화를 함께 작업했던 신진 작가 이우창 씨가 떠올랐다. 그의 디테일한 표현력에 기대를 걸었다. 삽화 제작 기간은 기획 기간만큼이나 오래 걸렸다. 화가는 고구려 역사 공부부터 시작했다. 현무와주작이 역사 선생님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다. 관련 서적과 자료는 물론 방송 다큐멘터리까지 고구려와 관련된 거라면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섭렵했다. 화가는 스케치 단계에서의 수정은 물론 채색한 후에도 여러 차례 수정을 거듭하는 고된 과정을 무던하게 견뎌 주었다. 70컷가량의 고구려 그림을 얻기 위해 무려 그 다섯 배가 넘는 350여 컷의 그림을 그려야 했다. 고구려 사람들의 성 축조 과정을 화가 특유의 디테일한 표현력으로 잘 드러내 주었으며, 또 거듭되는 전쟁 이야기에 각 전투마다 특성을 살려 현장감을 더해 주었다.

디자인을 맡은 솔트앤페퍼는 동화와 특집 기사, 지도, 성 축조 과정, 역사 정보 등 다양한 코너로 이루어진 전혀 새로운 컨셉의 역사책 분위기를 잘 살려 주었다. 옛 인장을 모티프로 한 시리즈 로고와 오방색을 주축으로 한지와 고서의 느낌을 살려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을 살린 역사책 디자인을 완성해 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타이포 디자인으로 정평이 나 있는 솔트앤페퍼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타이포 디자인을 포기하고 그 몫을 서예가에게 맡겼다. 서예가의 힘 있는 필체가 더해진 『중국을 물리친 고구려 성』이 드디어 완성됐다.

남은 것은 시리즈 제목 정하기! 1권 고구려 편의 제목은 기획 단계에서 이미 정해진 터라 수월했지만 시리즈 제목은 쉽게 정할 수 없었다. 1년 가까이 고구려 역사에 푹 빠져 있다 보니 우리의 고구려사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자랑스러운 역사를 아이들에게 빨리 알려 주고 싶었다. 시리즈 제목을 고민하던 즈음 최 선생님과 전화 통화를 하던 차에 내가 이렇게 자랑을 늘어놓았다. “선생님, 우리 삼국의 역사가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정말 장해요. 장하다, 우리 삼국!” “맞아요. 장하다, 우리 삼국!” 이리하여 시리즈 제목이 정해졌다.

장하다, 우리 삼국!

‘장하다, 우리 삼국!’ 프로젝트의 1탄 『중국을 물리친 고구려 성』 출간과 동시에 언론의 관심이 쏟아졌다. ‘삼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해서 보여 주는 책’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동시에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집필을 맡은 ‘현무와주작’이 누구냐는 질문이 이어졌고, 어린이 정보 책 전문 작가가 드문 우리 출판계에 ‘현무와주작’은 역사 전문 작가로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런칭 성공에 들뜰 겨를이 없었다. 백제와 신라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제와 신라가 현재에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백제는 지금의 한류 열풍 못지않게 일본 열도를 달궜던 ‘뛰어난 문화 전수’로, 신라는 일찍이 세계화에 눈을 돌려 외부로의 진출을 꾀한 신라 사람들의 활약상을 담은 ‘세계와의 교류’로 컨셉을 잡았다. 백제의 문화가 어떻게 일본에 전해졌고 일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통해,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 주고자 했다. 그래서 『한류의 원조 백제 문화』는 시리즈의 다른 두 권과는 달리 백제의 문화재를 강조하는 구성과 디자인으로 완성했다. 일본에 있는 문화재 사진을 구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또 『세계화를 이끈 신라 사람』은 신라가 고구려, 백제는 물론 인도, 서역과도 교류하고 교역했음에 토대를 두고서, 신라가 일찍부터 열린 나라였음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신라의 세계 진출 경로를 보여 주기 위해 다른 두 권보다 훨씬 많은 지도가 편성됐다. 덕분에 화가는 그 많은 지도를 그려 내느라 고생이 심했다. 2권과 3권의 출간으로, 한류 열풍과 세계화가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것만이 아님을 아이들에게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장하다, 우리 삼국!’이 만들어졌다. 세 권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완간된 지 어느덧 1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도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 가장 돋보이는 책’, ‘삼국의 역사적 가치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한 책’이라는 칭찬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현무와주작은 역사책 전문 작가 모임으로 우뚝 섰으며, 이우창 씨는 섭외 1순위의 화가로 인기를 얻고 있다. 또 서점을 나갈 때마다 솔트앤페퍼의 삼국 디자인 컨셉을 차용한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사고(?)를, 그것도 아주 대형 사고를 치기는 친 모양이다. 2년을 꼬박 매달리며 그렇게 우리의 속을 썩였기에 우리끼리 ‘장하다’가 아닌 ‘징하다’라고 부르던 때도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만들어 낸 ‘장하다, 우리 삼국!’이 그렇게 장할 수가 없다.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

2006년 봄이 되자 그간의 고생은 눈 녹듯 사라지고, 시리즈를 이어 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마침 고구려연구회는 발해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기정사실화하는 중국 역사학계의 침공에 대항하고자 2006년을 ‘발해사 지키기의 해’로 정했다. ‘삼국’ 팀도 다시 뭉쳐 발해의 역사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발해의 역사가 소원하게 다루어져 왔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라만을 우리 민족의 줄기로 생각해 온 풍토가 발해에 대한 무관심으로 나타난 것이다. 또다시 마음이 조급해졌다. 고구려를 계승하고 한반도를 넘어서 중국을 호령했던 발해의 기상을 아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어서였다.

‘장하다, 우리 삼국!’의 번외편을 발해로 정했다. 『대륙을 호령한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하고 드넓은 영토를 호령했던 발해 사람들의 문화와 외교력을 컨셉으로 잡았다. 현무와주작은 이번에도 말갈족과 함께 나라를 세운 대조영에서부터 발해의 마지막 왕인 애왕까지, 번성했던 발해의 역사를 한 권에 깔끔하게 정리해 냈다. 멸망 후에도 200년 가까이 계속된 발해 사람들의 흔적도 놓치지 않았다. 문화에 있어서는 고구려 문화를 계승한 발해 문화재를 중심으로 편성했으며, ‘손끝기와’와 같이 발해만의 독특한 문화도 소개했다. 외교에 있어서는 때로는 강한 힘으로 때로는 협상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이끌어 나간 발해의 활약상을 중심으로 편성했다. 일본과 신라와의 관계에서도 실리를 취했으며 ‘검은 담비길’이라는 무역로를 통해서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세상과도 만남을 가졌던 발해의 진출상을 지도와 사진으로 적절하게 드러내는 데는 화가와 디자이너의 노력이 뒷받침했다.

이렇게 해서 중국까지 호령했던 발해가 한민족의 역사임을 증명하는 『대륙을 호령한 발해』가 출간됐다. 2004년에 시작한 ‘장하다, 우리 삼국!’은 2005년에는 완간, 2006년에는 번외편 출간으로 이어졌다. 2007년에는 또 어떤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을지 나도 궁금하다.
박혜신│어린이 책 기획을 시작하고서 어느덧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남을 만큼의 시간을 책과 함께해 왔습니다. 지금 몸담고 있는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는 ‘소중한 우리 것 재미난 우리 얘기’(전 50권)를 완간했으며, ‘장하다, 우리 삼국!’, ‘만약에 우리 역사에 이런 일이 없었다면?’ 등 독특한 주제의 역사 도서를 주로 기획했습니다. 올해부터는 딱딱한 수·과학책으로 학습에 흥미를 잃은 어린이들에게 말랑말랑하고 재미있는 어린이 책을 선사하고자 여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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