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2월 통권 제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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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그림책 작가 이야기]
도시 속 작은 생명을 보다

이태수 | 2007년 02월

2000년 5월 초, 점점 답답해져 오는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서 시골로 내려갔다. 더 이상 개발이 되지 않을 만한 곳을 찾아 충북 괴산군에 있는 산골, 삼송리에 집을 얻어 들어갔다. 인공물로 가득 찬 도시가 싫었거니와 오랜 바람이었던 자연을 그리는 일과 삶터를 함께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집은 옛날 집 그대로였다. 부엌에는 군불 때는 아궁이 위에 가마솥이 걸려 있고, 방문은 창호지를 바른 문, 옛날 마루가 그대로 있었다. 집 뒤로는 40평 남짓한 텃밭이 있었다. 특별히 장을 보지 않아도 텃밭에 가지, 오이, 열무, 참외며 호박, 고추, 옥수수, 고구마, 부추 따위를 심어 먹으며 살 수 있었다. 어렴풋이 남아 있는 어릴 적 시골 생활이 손 끝에서부터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굳이 취재를 한답시고 어디를 찾아가지 않아도 자연은 늘 내 곁에서 서서히 움직이며 있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꿈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골 생활을 그만두어야 했다. 내 앞에 놓여 있던 현실 문제들은 반 년을 조금 넘긴 내 시골 생활을 거두고 나를 다시 빡빡한 도시로 밀어 넣고 말았다.

겨울을 앞두고 예전에 살던 일산으로 다시 올라왔다. 마흔 살이 넘어서 처음 작업실을 얻었다. 2001년 2월, 모 어린이 신문으로부터 자연 그림을 연재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2주마다 한 번씩 신문에 그림을 싣고 나중에는 우리교육에서 책으로 펴내기로 약속했다. 지금까지는 사람손이 덜 미친 곳을 찾아서 그림을 그렸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사는 도시 속에 있는 자연을 그려 보기로 했다. 그림 꼴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은 연필 흑백 그림으로 그리고, 살아 있는 생명들만 수채화 물감으로 채색하기로 했다. 어차피 사람이 만든 도시는 자연색을 갖지 못할 뿐더러, 도시 속 생명들을 좀 더 잘 드러나 보이도록 그릴 생각에서였다.

자연 본래 모습을 그림으로 담는 일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 속 자연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는 일도 아주 뜻있는 일이라고 여겨졌다. 우리는 좀 더 나은 생활을 하려고 논과 밭을 갈아엎어 집을 짓고, 산을 파헤쳐 도시를 만들고 있다. 그 자리가 논이었는지 산이었는지 알 수 없게 만들고 사람들 눈에 맞게 다시 꾸민다. 그리고는 늘 ‘자연 친화적인 도시’라고 말한다. 그러나 결과는 자연을 닮기보다는 사람들이 만든 또 하나의 크나큰 조형물이 되고 만다.

처음부터 잡초나 해충이 있었을까? 사람이 길러먹는 무밭에 민들레가 있으면 잡초고, 무를 갉아먹는 벌레가 해충이다. 거꾸로 민들레꽃이 핀 들판에 무가 몇 포기 있다면 무가 잡초가 된다. 잡초니 해충이니 하는 것은 사람 기준이다. 잡초든 해충이든 자연 안에서는 서로 갖는 몫이 있고, 서로 돕고 다투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살아간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필요해서 집을 짓고,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나무나 풀을 심는다. 도시에 민들레나 엉겅퀴가 있으면 뽑아 버린다. 하지만 맨드라미나 백일홍이 있다면 뽑아 버리지 않는다. 맨드라미나 백일홍은 오래 전부터 사람이 꽃밭에 심어 길렀기 때문에 귀하게 여기고, 민들레나 엉겅퀴는 들판에서 제 멋대로 자랐기 때문에 뽑아 버린다. 그런데 어느 누가 맨드라미나 백일홍이 민들레나 엉겅퀴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 할 수 있을까.

『가로수 밑에 꽃다지가 피었어요』 작업을 하면서 도시 속에서 푸대접받는 풀벌레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도시를 만들면서 몰아냈던 작은 생명들이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람이 애써 심어 놓은 나무나 화려한 꽃보다는 시멘트 틈바구니로 찾아와 꽃을 피운 들풀과 작은 들풀을 찾아온 벌레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2주마다 큰 그림을 한 장씩 그려 내야 하는 어려움도 컸지만 도시 속에서 새록새록 보이는 작은 생명을 만나는 즐거움이 더 컸다.

2000년 말미부터 2001년 초에 걸친 겨울은 보기 드물게 많은 눈이 왔다. 아이들 새 학기를 시작하는 3월 초에도 산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도시도 추위가 가시지 않은 채 쓸쓸했다. 썰렁한 도시 속에 무엇이 살아 있을까? 처음 도시 속 생명을 찾아 나설 때는 막막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얼마 걷지 않아서 걱정은 사라졌다. 땅바닥으로 눈을 조금만 낮추고 들여다보면 작은 생명들이 움트고 있었다. 아주 작은 틈새로 흙만 있으면 풀이 뿌리를 내렸고 벌레들이 찾아왔다. 보도 블럭 틈새, 돌담 사이나 놀고 있는 빈터, 가로수 밑에 좁다란 흙에서 달맞이꽃, 망초, 꽃다지, 돌나물…… 그리고 무당벌레며 네발나비를 비롯한 수많은 벌레를 만날 수 있었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봄, 여름으로 다가갈수록 더 많은 생명을 만날 수 있었다. 도시 틈바구니에 숨어 있던 풀들이 키가 커지고 꽃을 피울수록 훨씬 눈에 잘 띄었다. 여름에는 너무 많아서 무엇을 그릴지가 걱정일 정도였다. 도시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모습이 저마다 아름답고 소중한데 뭘 그려야 할지? 어차피 학문으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기에 가장 흔하고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생명들을 그렸다.

2001년은 가뭄이 심했다. 농촌에서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내고 물이 모자라서 농사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7월에 들어서야 장맛비가 내렸다. 그런데 참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작업실 옆에 건물을 짓지 않은 큰 빈터가 있었는데, 그 빈터에 빗물이 잦아들지 않고 고였다. 곧 물풀이 돋아나고,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청개구리들이 몇 날 며칠을 울어댔다. 소금쟁이가 날아들고 잠자리들이 짝짓기를 하고 물 속에 알을 낳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어린 청개구리들이 땅위로 기어올라 와글거리고 있었다. 황로와 백로도 날아들었다. 이 일들이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일어났다. 일산 새 도시는 논밭을 갈아엎고 만들었다. 그 빈터가 습지습성을 간직하고 있어서 일어난 일일 수도 있지만, 물이 생명을 부르고 생명을 낳았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아주 널따란 호수공원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새 한 마리 날아들지 않는 죽은 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도시에는 생태 도로가 없고, 그저 자동차를 위한 길들만 사방으로 나 있는 것이 더욱 안쓰러웠다. 그렇게 많던 청개구리가 어디로 갔을지 궁금하다.

2001년 12월로 작업을 마칠 때까지 200가지가 넘는 크고 작은 생명을 만났다. 반도 되지 않는 생명들을 그림에 담고 작업을 마쳤다. 우리는 자연이 살아야 할 땅을 빼앗으며 집을 짓고 도시를 만들어 간다. 그렇지만 자연은 늘 우리를 품으려 하고 도시 구석구석으로 돌아오고 있다. 사람에게 크나큰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굳이 내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도시가 깨끗해 보이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가꾸어 놓은 꽃밭에 좀 다른 꽃이 피었다고 뽑아 버리고 몰아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생명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제 몫을 다하며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 길로 여겨진다.

2004년 8월, 그날그날 도시 속 생명들을 본 대로 느낀 대로 적어 두었던 글을 정리해서 그림과 함께 책으로 펴내게 됐다. 하지만 책으로 정리 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떤 형식으로 책을 만들어야 할까? 전체를 이끌어 가는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감으로 엮는 것도 문제가 많았다. 그림은 2주에 한 번씩 그렸기 때문에 보았던 생명 모두를 담지 못했고, 글은 화가 눈으로 본 대로 느낀 대로 적어 놓은 글이었다.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림책이란 것이 정해진 틀이 있을까? 정해진 틀이 있다면 꼭 그 틀에 맞추어서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 새로운 틀로 만들면 안 되는 것인지?

처음 시작할 때는 우리 둘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명을 그림일기 쓰듯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쓰는 것도 뜻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많은 고민 끝에 처음 생각대로 책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전체 흐름 속에서 꼭 필요한 그림 장면을 더 그렸다. 그리고 글을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으며 수없이 고쳤다. 글을 고치는 과정에서 편집부원들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서로 뜻이 잘 맞기도 했지만, 때로는 얼굴을 붉히면서 싸우듯이 이야기를 나눈 적도 많았기 때문이다. 3년이나 지나서 글과 그림을 정리하느라 어려움도 많았지만, 처음 작업할 때나 지금이나 마음은 한 가지이다. 우리 곁에서 살고 있는 생명에 관심을 갖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책을 보는 이와 함께 하고픈 마음이다.

‘도시 속 생명이야기’로 딱히 몇 권을 해 보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가로수 밑에 꽃다지가 피었어요』를 낸 뒤로 아파트 화분 받침대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워 낸 황조롱이 이야기 『늦어도 괜찮아 막내황조롱이야』를 2005년 10월에 냈다. 뒤이어 새 도시를 만들면서 몇 백 년을 그 자리에 서 있는 『회화나무 이야기』(가제)를 해 보려고 준비하고 있다. 어차피 도시를 만들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학문적인 접근은 아니지만 그저 화가 눈에 비치는 대로 도시 구석구석에 있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지금도 요리조리 둘러보며 살고 있다.
이태수│서울에서 태어나 경기도 백학 마을에서 자랐고 서양화를 전공하였습니다. 길가에 핀 풀 한 포기, 개미 한 마리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유심히 살펴 세밀화로 그려내, 아이들을 자연으로 이끄는 데 큰 힘을 쏟고 있습니다. 다양한 그림 세계를 보여 주기 위해 늘 노력하는 작가입니다. 대표 작품으로 『개구리가 알을 낳았어』 『잃어버린 구슬』 『가로수 밑에 꽃다지가 피었어요』 『잘 가, 토끼야』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