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4월 통권 제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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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누구 나랑 얘기 좀 하자’부르짖는 절규

최은희 | 2007년 04월

유난히 겁이 많았던 나는 급기야 열두 살 때는 몽유병에 시달렸다. 한밤중 정신이 들어보면 솜이불을 둘둘 말고 맨발로 토방에 서 있곤 했다. 감각이 없어진 발로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면 옆에서 낮게 흐느끼는 소리. “괜찮다, 괜찮어. 응?” 양말조차 신지 못하고 맨발로 쫓아 나온 엄마는 그렇게 내 등만 하염없이 쓸어내렸다. 내 병은, 속병을 심하게 앓던 엄마가 서울 병원에 가서 한참을 지내다 온 뒤 생긴 버릇이었다.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던 산골 외딴 집에서 긴긴 밤 얼마나 엄마를 그리워했던지. 혹시나 엄마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마다 소리죽여 울었다. 불안이, 외로움이 내게 남긴 병은 그 해 겨울 내내 나와 엄마를 아프게 했다. 그 때 나를 견디게 한 건 내 등에 닿았던 엄마의 따뜻한 손 기운이었다. 문득 그 때 일이 떠오르면 삼십 년도 더 되었지만 휑한 등 어디쯤에 아직도 따뜻한 기운이 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모자란 엄마를 닮아서인지 우리 집 큰 아이는 겁이 많아 아직도 제 방을 비워 둔 채 내 날개 밑에서 잠을 잔다. 남편은 다 큰 녀석을 너무 유약하게 기른다고 불만이지만, 어린 시절의 날 떠올리며 모른 체한다. 벌어먹고 살겠다며 늘 비워 두는 빈 집 열쇠를 꽂고 들어서는 아이에게 잘 때만이라도 품어 주며 외로운 마음을 달래 주고 싶기 때문이다. 내 날개 밑이 버거워질 때면 말하지 않아도 제 공간을 만들어 날아갈 텐데, 무에 그리 서두를 필요가 있겠는가? 아직도 자다가 깜짝깜짝 놀라고 화들짝 놀라 일어나는 아이를 품어 주며 나 역시 우리 엄마가 했듯 꼭 껴안고 하염없이 등을 쓸어 준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 옆에 있어.’ 주문을 외며 아이의 표정이 풀릴 때까지 안아 준다.

『벽 속에 늑대가 있어』를 처음 본 순간, 나는 단박에 삼십 년 전의 나를 떠올렸다. 구멍이 난 벽 안쪽에서 쏘아보듯 나를 응시하는 정체불명의 눈동자.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아이의 얼굴. 소름이 돋았다. 한참을 책 표지만 바라보았다. 마음이 쿵쾅거려 도무지 책장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반 녀석들은 달랐다.

“벽 속에 풀밭이 있나 봐. 거기 늑대가 사나 봐.”
수군거리며 책 앞으로 바짝 다가앉는다.
“니들 안 무섭냐?”
“아뇨. 뭐가 무서워요.” “선생님은 저게 무서워요?”
의기양양한 원재. 나를 보고 히죽 웃기까지 한다.
“나는 무서운데. 저 늑대가 나한테 확 달려들 거 같어.”
혜인이가 옆에 앉은 수희에게 팔짱을 끼며 한 마디 한다.

책의 첫 장면엔 루시네 집 현관이 펼쳐져 있다. 붉은 꽃이 어지럽게 꽂혀 있는 꽃병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불안하다. 집 안을 뒤흔드는 무언가가 있기라도 하듯 벽에 비쳐진 그림자 역시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금세 쓰러져 와장창 소리가 날 것처럼 위태롭다. 무엇이 루시네 집에 기묘한 불안감을 주고 있는 걸까? 뒷짐을 진 채 집 안을 서성이는 루시의 뒷모습에 짙은 외로움이 묻어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은 루시가 바라보는 문 밖까지 길게 뻗쳐 있다. 루시의 얼굴 표정이 얼마나 막막해 보일지 짐작할 수 있다. 금방이라도 뒤틀려 버릴 것 같은 고요. 보는 사람 마음이 갑갑해진다. 엄마는 잼을 만들고, 아버지는 일하러 나갔고, 남동생은 비디오 게임에 빠져 있다. 누구 하나 루시와 눈을 마주쳐 주지 않는다. 소통이 없는 집. 모든 게 벽으로 둘러싸인 이 숨 막힐 듯한 집에서 루시는 소통을 꿈꾼다. 벽 속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쓸쓸한 루시를 보는데, 또다시 떠오르는 열두 살의 겨울. 책 한 장을 넘기기가 참 힘들다.

사진을 찍어 콜라주로 처리한 잼 병은 또 얼마나 불안하게 쌓여 있는지. 벽 속에 늑대가 있다는 루시의 말에 엄마는 말도 안 된다며 놀라는 시늉도 하지 않는다. 눈 한 번 마주쳐 주지 않고 무심히 하던 일에 몰두한다. ‘언제 그런 소릴 들었어?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묻지 않는다. 눈을 내리 깔고 뭔가에 열중하는 엄마를 뒤로 한 채 강아지 인형 포실이를 안은 루시는 입을 앙다물고 있다. 어둑어둑한 조명 때문에 루시의 모습은 한층 더 외로워 보인다. 밤에도 낮에도 벽에서는 늑대들의 음산한 소리가 들린다. 심지어는 벽에 걸린 그림의 눈동자를 빌려 루시를 보기까지 한다. 그러나 아빠 역시 루시의 말을 듣지 않는다. 아니 들으려조차 않는다. 아빠의 관심은 오로지 튜바 연주뿐이다. 커다란 튜바에 가려진 아빠의 모습을 보라. 외로움과 두려움에 떠는 루시는 아빠가 연주하는 튜바보다도 작게 그려져 있지 않은가? 동생 역시 루시의 말을 비웃는다. 아무도 루시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는다.

그 날 밤 벽 속에서 늑대들이 튀어 나온다. 날카로운 이빨을 세우고 달려드는 늑대 떼. 벽 속에 늑대가 있다는 말에 콧방귀도 뀌지 않던 식구들은 놀라 달아난다.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식구들이 있는 집에서 루시의 영혼은 더 이상 쉴 곳이 없었다. 그래서 루시는 달아난다. 외롭고 궁핍하고 소외된 영혼은 판타지 세계로 떠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루시가 달아난 판타지 세계에는 식구들이 모두 모여 있다. 식구들은 정원에 둘러앉아 늑대를 피해 도망갈 궁리를 한다.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곁에 있는 식구들 얼굴엔 표정이 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무서운 늑대에게서 달아날 방법을 찾는다. 당황해 하는 식구들과 달리 루시는 무척 침착하다. 사람이 살지 않는(소통이 없는 식구들은 한 공간에 있어도 함께 사는 것이 아니기에) 집안에 들어갈 용기를 내는 것 역시 루시다.

사람들이 달아난 집안을 엉망으로 만드는 늑대들. 늑대는 루시의 침실을 점령하고 동생의 비디오 게임 기록을 갈아 치우고 엄마가 가장 아끼는 잼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는다. 식구들은 더는 참지 못하고 늑대를 물리치기 위해 힘을 합친다.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이야기 앞에서 에너지 많은 우리 아이들이 숨을 죽이고 있다. 늑대들이 파티를 벌이는 그림을 보던 선홍이가 “으으…… 피가 튀는 거 같어.” 하며 진저리를 친다. 난장판이 된 거실 한 쪽에 위태롭게 자리 잡고 있던 꽃병의 꽃은 대궁만 남아 있다. 어찌 보면 마음의 벽이 높인 쌓여진 우리네 집 역시 꽃잎 다 떨어진 대궁처럼 쓸쓸한 것은 아닌가? 훈기가 사라진 식구들이 모여 있는 집이라는 공간은 파괴와 상처만 남는 야생의 터전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늑대들이 판치는 루시의 집을 들여다보며 자꾸 묻게 된다.

『벽 속에 늑대가 있어』는 글보다 그림이 많은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어둡고 음산한 갈색 톤이 주조를 이루는 그림은 마치 한 편의 악몽을 꾸는 것처럼 느껴진다. 또 어두운 조명 아래 촛불에 비친 듯 일렁이는 그림자, 밀랍처럼 창백하고 날카로운 인물의 형상은 외롭고 소외된 사람의 심리를 극적으로 보여 준다.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식구들 대신 말 못하는 인형 포실이를 껴안고 꼬부라져 잠이 든 모습, 그리고 벽 속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공포에 떠는 루시의 눈가에 맺힌 눈물. 그렁거리는 눈물은 금방 툭 떨어져 흐를 것처럼 생동감난다. 현실인지 판타지인지 경계를 모호하게 하며 극도의 공포감을 주는 것은 사진과 그림을 결합한 입체적인 콜라주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 글자의 크기, 시시각각 달라지는 불안함을 여러 컷 필름으로 찍듯 잘게 쪼개 놓은 그림, 흰색과 검은 색만을 써서 인물의 불안한 내면 세계를 그리는 기법으로 극대화시킨다. 그래서 글이 들려주는 이야기보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묘한 불안과 공포가 책을 읽는 내내 따라다닌다. 마치 내가 실제 악몽을 꾸고 있는 듯하다.

“선생님, 이 그림을 계속 보니까 토할 것 같아요.” 앞에 앉아 있던 민수가 인상을 쓰며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루시의 불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곳곳의 그림이 마치 흔들리는 카메라로 찍은 듯 일렁인다. 그리고 밀랍처럼 창백하고 굳은 인물의 표정을 클로즈업해서 보여 주니 나 역시 속이 더부룩해진다. 그러면서도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아이들이나 나나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벽 속에서 늑대가 나와서라도 식구들과 함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루시의 외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표정 없는 식구들이 남의 이야기만은 아닌 듯싶어서. 여러 권의 책이 위태롭게 쌓여 있고 그 위에 떨어질 듯 불안하게 걸터앉은 포실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루시의 표정이 아직도 어두워서, 굽은 어깨가 눈에 밟혀서 책장을 쉬이 덮지 못했다.

나는 밥 예찬론자다. 그래서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소통을 원하는 사람과는 차를 마시고 교감을 꿈꾸는 사람과는 밥을 먹는다.”라고. 그러나 이 책을 읽고 함께 밥을 먹는 우리 식구들과 나는 얼마나 교감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가 자꾸 되묻는다. 텅 빈 집에 열쇠를 꽂고 들어오는 아들 녀석과 마음 속에 흐르는 강을 함께 품고 있는가, 어깨 처져 들어오는 남편에게 온기 나는 마음을 나누어 주고 있는가, 하루 종일 교실에서 함께 복닥거리는 우리 반 녀석들에게 학교 뜨락에 핀 꽃향기를 나눌 마음의 여유가 있는가 묻는다.

소통과 교감이 단절된 채 벽 속에 갇힌 우리네 삶 곁에는 늑대가 숨어 있다. 호시탐탐 혼란과 붕괴를 가져 올 야생의 복병이 살아 있다. 『벽 속에 늑대가 있어』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소통과 교감의 온기로 야생의 늑대를 쫓아 버려야 한다고. 오늘 이 한 권의 책을 들고 아이들 마음 밭을 들여다보자. 우리 아이들 마음에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 묻자. 물어 보고, 또 들어 보자.
최은희│충북 청풍에서 영혼을 살찌우며 살았습니다. 공주교육대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1990년에는 ‘오월문학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현재는 공교육 안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아산 거산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공주교육대학교에서 어린이 문학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림책을 읽자 아이들을 읽자』를 펴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