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4월 통권 제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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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시의 마음

최선숙 | 2007년 04월

봄입니다. 이제 봄은 오는 게 아니라 가는 것이라 말하려다가, 봄이라 말합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이성부), “천금으로도 못 살 이 좋은 때에, 술 익는 어느 집에 꽃은 피는고.”(정이오) 이런 시구들이 마구 튀어나온 때문입니다. 생래의 봄 흥에다 스멀대는 봄 시름을 더해, 어느 게 더 깊은가 묻습니다. 이래저래 변덕스런 봄 마음입니다.

새로 나온 시집을 폅니다.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시조들이 차곡차곡 갈피를 잡았습니다. 시조는 우리 나라 고유의 정형시로, 근 8백 년을 두고 우리 민족의 얼과 정서를 담아 줄기차게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오랫동안 시조를 써 온 정완영 선생이 어린이들을 위해 묶은 시조집(이 책에선 ‘동시조집’이라 했습니다)입니다. 4부로 나누어, 계절별로 자연과 서정을 3장 6구 4음보를 기본으로 하는 형식 안에서 자유롭게 노래합니다.

형식 안에서 자유롭다? 말하고 보니 서로 어긋나는 것 같지만, 사실 시조는 노래에 가깝습니다. 율격에 맞춰 가락이 생기니 절로 노래가 되지요. 시조창 들어보셨어요? 이렇게 시조는 우리의 가락, 우리의 노래입니다. 시조라 하면, 얼핏 오래되고 어려운 것으로 느낄 수 있는데, 과연 그런가 찬찬히 살펴보지요.

책 제목부터 볼까요? “가랑비 가랑가랑 가랑파 가랑가랑.” 벌써 리듬을 타지요? 게다가 퍼뜩 떠오르는 이미지 있으시지요? 공중에선 실비 내리고 땅에선 실파가 손짓하는……. 제목의 ‘가랑파’는 실파의 경상도 방언이랍니다. 시집의 1부는 ‘울 엄마 봄’입니다. ‘엄마의 아침’을 비롯하여 11편의 봄 시가 담겼습니다. ‘엄마의 아침’을 읽어 보겠습니다.

화선지 한 장보다 / 더 얄팍한 이 봄 밤을 // 그것도 반만 자고 / 일어나신 우리 엄마 // 꼭지 튼 / 수돗물 소리가 / 목련처럼 흔들린다.

먼저 소리 내어 읽어 보세요. 가락이 붙지요? 짧디 짧은 봄 밤에 푹 자지도 못하고 일찍 일어난 엄마가 물 틀어 밥 짓는 소리가 잠결에 들려옵니다. 참 편안하고 아련한 풍경 하나 떠오르지요? 거기다 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니, 이 시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럴 겝니다. 가족을 위해 애쓰는 엄마에 대한 안쓰러움과 거기에 비례하는 전폭적 신뢰지요. 일찍 일어나신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신뢰로 바뀌며 아침 잠결은 더 달콤하고 편안해지던 기억들 있지 않나요? 이렇게 시는 사물이나 상황에 빗대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냅니다.

2부는 ‘연잎 우산, 아주까리 우산’입니다. 여름날 읽기 좋은 11편의 시가 담겼습니다. ‘들길에서’라는 시를 읽어 보겠습니다.

바람결에 실려 온 물, 물에 실려 오는 바람 / 개구락지 한 마리가 하늘 업고 놀고 있다 / 하늘도 물 속에 내려와 개구락지 업고 논다.

3장으로 된 평시조입니다. 4음보의 율격이 입에 착착 감겨옵니다. 여름날 들길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입니다. 바람이 실어 나른 물 웅덩이에 바람이 와 해찰합니다. 그 웅덩이에 개구리 한 마리가 하늘 등지고 앉았는데, 그 아래 물에 비친 하늘은 개구리를 업고 노는 것만 같습니다. 한가하고 무심한 풍경에서 자연을 봅니다. 만물이 서로를 즐기는 아름다움에 마음이 열리는 순간이지요. 

3부는 ‘고추잠자리’입니다. 가을을 노래한 시 11편이 꽃과 하늘과 식구들을 노래합니다. 4부는 ‘눈 내리는 밤’으로, 11편의 정겨운 겨울 시와 ‘섬마을 아이들’ 연작 3편이 재미납니다. 아이의 마음이 만난 이 시들은 율격에 얽매이지 않고 율격을 집 삼아 편안하고 사랑스런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도 어려울 것 없지만 시에는 시의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을 잘 알아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건 시를 많이 읽는 거, 내 마음을 자꾸자꾸 표현해 보는 걸 겁니다. 세상 모든 것에 마음도 열어 놓고 말입니다. 시와 함께한 그림들이 슬픈 듯 소탈하여 어여쁩니다.
최선숙│오픈키드 컨텐츠팀장. 시 읽기를 좋아합니다. 재미나는 일이 더 많아지는 세상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