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4월 통권 제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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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이야기]
대학민국 청소년들의 삶을 담다

여은영 | 2007년 04월

나는 상세한 지도가 아니고서는 위치를 확인할 수 없는 외딴 섬에서 태어났다. 때문에 내 또래의 다른 이들과 달리 동화책라고는 구경도 못해 보고 대학에 들어갔다. 그런 내가 어쩌다 이렇게 어린이 책을 만들고 있을까? 막연하게 어린 조카들의 행동을 보고 예뻐하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리고 대학에서 동화를 처음 접하고 나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동화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동화 동아리에서 닥치는 대로(?) 동화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내 도서 구입 목록의 80% 이상은 외서였는데, 창작 동화는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창작 동화들 일부는 재미있었지만(일부가 아닌 나머지 것들은 계몽 투여서 모두들 싫어했다.) 나와 혹은 내 조카들과 너무 먼 이야기라 공감이 덜 갔다. 동화 책이 이런데 청소년 소설은 오죽했을까. 청소년 소설은 찾기조차도 힘들었고 『빨간머리 앤』 『소공녀』 등 몇몇의 청소년 소설들 역시 삶의 의미보다는 독서의 즐거움을 주는 정도에 그치고 있었다.

청소년 소설이라는 말이 조금은 생소했던 2003년, ‘바람의 아이들’을 알게 되었다. 평소 최윤정 선생님의 글을 좋아하면서, 어린이 문학에서 다양성이 부족한 까닭을 궁금해 했던 나는 막연히 최윤정이라는 사람에게 뭔가를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입사했을 때는 이미 시리즈 명이 정해져 있었다. ‘청소년을 위한 반올림 시리즈.’ 반을 올리면 어른이 되고 반을 내리면 어린이가 되는 청소년. 선생님은 청소년들이 반올림 도서들을 통해 잘 놀기를 바란다고 했다. 잘 노는 것과 청소년……. 하루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고 학업과 입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는 청소년들. 그들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놀까?

책은 청소년들이 가장 손쉽고 유익한 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당장 출판가를 살펴보면 문제집, 어학서와 같은 실용서, 세계 문학, 고전 문학 따위, 기성 세대가 좋아할 만한 추천 도서들뿐이었다. 간혹 이름난 청소년 소설들이 있다 하여도 전쟁, 가난 등 진부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외모와 성적, 이성 친구나 교우 관계 등에 대해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허전한 마음은 채워 주지 못했다.

곰곰 생각해 보면 어른이 되어서 부닥치는 여러 어려움 속에는 내 안의 욕망, 내 자신을 스스로 다스리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가 많다. 어렸을 때, 혹은 청소년이었을 때 내가 당장 살아가는 데서 오는 불만과 고민들을 함께 해 주는 책이 있었다면. 그런 책을 통해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익혔다면, 나는 좀 더 스스로를 잘 다스렸을지도 모른다.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제 안의 욕망을 해소하고, 자극 받고, 통제하고, 위로 받고, 타인을 이해하면서 책에서 발견하는 수많은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어 나가는 것, 나아가 열린 인간으로 발전하는 것. 이것이 잘 노는 것이다.

반올림 시리즈를 열다

어린이 책 작가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과는 사뭇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 아이들의 삶을 그리기 위해 좀 더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과 관찰력을 요구받는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를 쓴 이경혜 선생님은 딸아이에게 들은 어느 십대 남자 아이의 죽음을 가슴에 품고 품었다가 청소년 소설로 풀어냈다. 원고를 읽고 최윤정 선생님도 나도 울었다. 일단 개인적 감상은 접어 두고 우리는 기존에 없었던 이 작품이 다양한 사람들, 무엇보다 소설의 주독자인 청소년들에게 읽힐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모니터링을 석 달이 넘도록 해 보았다. 청소년 아이들은 입을 모은 듯 모두 재미있다고 했지만, 몇몇 어른들은 “애들이 쓴 거냐?”, “재미는 있는데 내 아이에게는 못 읽히겠다.” 등 책 속에 드러나는 몇 가지 사건들에 불만을 나타냈다. 이 책이 어떻게 될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시장에 반올림 시리즈의 첫 책으로 펴 냈을 때 기자, 작가, 교사, 평론가, 독자 등 정말 많은 사람들이 호감을 보냈다. 좋은 책은 첫 느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잡아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지금은 우리 출판사의 베스트 셀러이자 대표 도서가 된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이 책은 반올림의 선두가 되어 뒤에 태어나는 동생 책들을 잘 이끌어 가고 있는 효자이다.

우리 아이들의 삶을 그리는 우리 작가들

주변의 편집자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작가를 어떻게 배출해 내냐는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출판가에서 청소년 소설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였다. 따라서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작가도 드물었을 뿐더러, 작가들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고민에 막혀 선뜻 청소년 소설을 쓰지 못했다. 그래서 청소년들을 위한 문학서는 주로 외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추측하건대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가 청소년 소설을 쓰고자 하는 작가들의 고민을 덜어 주었으리라 본다. 그래서 청소년 대상 원고를 쓴 작가들이 원고와 맞는 출판사로 우리를 생각했는지 여러 편의 원고가 투고되었다. 우리의 역할이란 작가의 역량을 깊이 들여다보고 최선을 다해 그의 조력자가 되어 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의 그녀』 『나』 『프루스트 클럽』 『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 우리 작가의 창작물이 많이 출간되었다.

전무한 줄 알았던 청소년 소설 작가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여러 곳에서 관심을 보였다. 우리 10대의 이야기여서 그런지 청소년 소설 독자와 학교 도서관 선생님들이 특별히 많은 관심을 보여 주고 있다. 안타까운 건 그래 봤자 창작 소설이 다섯 권이다. 이 다섯 권만으로도 많은 독자들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 물론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새삼 우리 청소년 소설이 헤쳐 나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다는 생각이 든다.

또, 책을 내는 동안에는 몰랐던 사실을 한 독자가 말했다. “창작물이 대체로 이혼, 죽음 등 너무 부정적인 내용만 다뤘어요.” 살펴보니 그렇다. 내가 작가가 아니니 당장 밝은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펴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원래 누군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불만, 욕망, 상처, 슬픔부터 분출되기 마련이라 생각하며, 좀 더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싶다. 바람의 아이들을 비롯해 여러 출판사에서 청소년 소설 작가를 배출해 내고 있으니 앞으로 밝고 명랑하고 웃기고 유쾌한, 보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터져 나올 것이다.

다양성을 보여 주는 외서들

앞서 말했듯이 청소년 아이들의 삶을 다양한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무궁무진하게 풀어 낼 한국 작가들은 아직도 드물다. 그래서 비록 다른 나라 아이의 삶이지만 청소년 공통의 공감대를 외서에서 찾곤 한다. 『뚱보, 내 인생』은 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지는 많은 청소년과 어른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고, 『중학교 1학년』은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1학년이라는 독자들만으로 한정된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에 맞는 구체적인 이야기가 있어 새 학기를 시작하는 많은 중학생들의 친구가 되었다.

『악마와의 계약』은 마약의 위험성과 마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의 삶을 강렬하게 담아 내 독자들의 마음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대학이 이런 거야?』는 초등학교 때부터 무조건 대학만 목표로 하는 청소년들에게 대학 생활의 여러 가지 모습을 알려 주기 위해서 출간했다.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인생의 목표인 대학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해 보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던 것이다. 하지만 내용이 어려워서일까? 이 작품을 이야기하는 청소년들은 드물다. 이 책이 앞으로 더 많은 독자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를 바란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반올림 책들은 각기 다른 숨소리로 좀 더 치밀하게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반올림 시리즈는 많은 마니아 층을 형성하였고 독자들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고 있다.

앞으로도 우리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권투 선수, 감옥에서 매일매일 편지를 쓰는 장기수 이야기 등을 들려주며 청소년 아이들이 호감을 보이고 무척이나 궁금해 하는 삶의 다양한 모습과 넓고 넓은 세상을 보여 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이 작품들 안에서 잘 놀 테니까. 바람의 아이들이니까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를 펴 냈을 때 귀걸이와 화장을 한 채 학교에 가는 날라리, 담배 피고 술 마시는 중학생. 작품 안에서는 아주 사소하지만 실제로 아이들이 따라할까 봐 걱정하고 불편해 하는 어른들이 많았다. 하지만 작가는 교육적으로 술, 담배, 화장에 대한 올바른 의견을 담아 냈고, 또 우리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우려하는 것과 달리 학생 신분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나의 그녀』에서 남학생이 자위하는 장면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어른들은 작품 전체를 보고 참았고, 실제로 공감하는 청소년들의 모습에서 아이들을 다시 보곤 했다.

『악마와의 계약』은 원고의 양보다는 작품의 질에 의미를 두고 펴 냈는데 ‘세상에!’라는 탄식과 함께 서점으로부터 많은 문의 전화를 받았다. 독자들은 “어떻게 마약 이야기를 청소년들에게 읽힐 수 있으며, 가출한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더구나 여자 애가 남자 집에서 자다니요?” 서점은 “이거 청소년 소설 맞아요? 두께로 보면 동화인데.”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가 잘못 판단을 했나 되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이내 사기를 북돋워 주는 독자의 반응, 분명 아이들은 반올림을 읽고 있고 그 안에서 문학 작품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음을 발견하는 게 즐겁다.

청소년의 정체성, 나아가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동성애 이야기를 다룬 『나』를 펴 냈을 때는 웬일로 못마땅해 하는 독자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마케팅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이제 서점이나 독자들이 “바람의 아이들인데 뭐.” 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청소년들은 공감했지만 어른들은 꽤나 낯설어 했던 반올림 시리즈가 그 동안 어른과 청소년의 거리를 좁혀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바람의 아이들은 청소년들이 반올림 안에서 잘 놀 수 있도록 어디선가 불어오는 청소년들의 숨소리와 이야기들에 관심을 놓지 않을 것이다.
여은영│6명의 조카를 둔 이모와 고모로서 조카들을 볼 때마다 그 존재성에 탄성을 지릅니다. 어린이 책을 생각하면 신나고, 즐겁고, 슬프고, 피곤해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까지 어린이 책과 함께 하고픈 욕심을 가지고 있지요. 바람의 아이들에서 4년째 어린이 책을 만들면서 많은 것들을 얻습니다. 이것들은 살아가는 데 많은 고민거리와 에너지를 주며 삶의 밑거름이 되어 줍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