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4월 통권 제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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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책 이야기]
낯선 과학 나라로 떠나는 여행

김연희 | 2007년 04월

딸아이가 고학년이 되었습니다. 4학년 언저리부터 글자도 좀 많고 재미보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을 권했는데,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습니다. 여전히 책하고 뒹굴기를 좋아하지만 그 아이가 보는 책들이란, 어렸을 때 제가 어머니한테 지청구 꽤나 들었던 ‘소설 나부랭이’들뿐입니다. 심지어 불 끄듯이 말리는 판타지 동화 읽기에 탐닉하는 것을 보자면, 그리고 사 달라고 졸라 대는 것들을 보자면 ‘속에서 천불’이 입니다. 그러면 은근히 눈에 힘 팍 주고 목소리 깔고서 역사와 과학, 철학 책들을 권해 보지만 돌아오는 답은 ‘재미없어!’입니다.

왜 재미없을까요? 엄마는 왜 재미없는 책들을 강권하는 걸까요? 세상을 보는 눈은 다양할 수록 좋겠지요. 어떤 장르든, 책을 통해 감동과 분노와 슬픔과 기쁨 등을 간접 경험이나마 아이들이 함께 겪어 보기를 기대하지요. 하지만 엄마란 존재의 욕심은 끝이 없나 봅니다. 엄마가 권하는 책 한 권에는 이러한 것들을 넘어 더 많은 욕심이 붙어 있기 마련입니다. 일석삼조. 엄마가 책 한 권 사 주고 잡으려는 첫 번째 ‘새’는 컴퓨터나 TV 시청을 못하게 하는 것, 정말 매력적인 새입니다. 두 번째 ‘새’는 세상 보는 눈을 좀 키웠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새’는 차마 입에는 못 올리지만 정말 어떤 새보다 큰 새인, 학교 공부에 도움을 주거나 그 분야로 진출할 계기를 찾는 것입니다.

이런 욕심을 가장 많이 부리게 되는 분야가 과학입니다. 책 한 권 사 주고는 그것으로 아이가 자연의 이치를 훤히 꿰뚫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합니다. 과학 책은 일단 쓰인 말들이 재미없습니다. 좀 건너뛰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 그러니 긴장하며 읽어야 해 재미가 없지요. 그보다 더 심각한 이유도 있습니다. 도대체 책에서 이야기하는 부분이, 과학이라는 낯선 나라의 어느 구석인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좀 헤매다가 금방 포기합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책들도 없지 않습니다. ‘스쿨버스’ 시리즈처럼 카툰 형식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접근하기 쉽고, 내용도 나름대로 줄거리, 등장인물, 사건이 있어 재미있게 읽히고 또 도입 부분에서 책이 다루는 부분을 조망해 주기도 해 언뜻 쉬워 보이는 책들 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이 장점은 시간이 지나면 곧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줄거리와 등장 인물, 그리고 사건은 생각이 나는데 무엇을 다루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만물과 주변의 생활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기는 했지만 왜 그것이 필요한지를 모르니 곧 잊어버릴 밖에요.

사실 과학은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저술하기가 매우 어려운 영역이 아닐까 합니다. 따라서 굳이 이 어려운 책들을 읽어 내는 일이 정말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과학은 무섭고 두려운 자연 환경 속에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이해하고 소통하고자 애쓰는 방식이었고, 인류 발전의 주축이었으며, 더 나아가 21세기 인간 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분야이므로 지나쳐 버리거나 외면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과학자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과학을 외면하지는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과학 분야에 친근하게 접근하기 위한 방법을 하나 제시해 볼까 합니다. 과학이라는 낯선 나라를 여행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여행 준비물을 갖추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모처럼의 여행을 위해 방문하려는 나라를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기에, 과학 영역을 탐구해 보자는 것이지요. 아는 만큼 보인다던가요.

먼저 일반적인 여행이 그러하듯이 그 나라의 전반적인 역사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은 흐른다』(청년사)는 이 준비에 적합한 책입니다. 이 책은 인간이 자연에 깃들여 살기 시작했던 석기 시대부터 18세기 즈음까지 인간이 자연을 이해했던 방식을 만화로 보여 줍니다. 저자들이 욕심이 많아 정보가 넘치지만 시대와 사회가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과학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돌도끼에서 우리별 3호까지』(아이세움)는 우리 조상들 역시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 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쌓아 왔음을 알려 줍니다.

주요 소통 언어가 수학이고, 사회 활동의 방식이 실험인 이 과학 나라의 큰 행정 구역을 살펴보지요. 현대의 과학 국가는 크게 천문학, 지구 과학, 생물학, 물리학, 화학과 같이 덩치 큰 지방으로 나뉩니다. 비록 이렇게 구분하더라도 공통적으로 운동, 에너지, 힘과 같은 개념을 가지고 있고, 이 개념들은 지금과 비슷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을 갈릴레오, 데카르트, 뉴튼의 시대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이런 공통 개념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특성이 규명되는 분야가 물리학입니다. 즉 물리학이 과학 국가의 중요한 수도 역할을 담당합니다. 과학 국가의 수도인 물리학도 작은 행정 구역들, 즉 빛, 전기, 자기, 역학 등으로 나뉘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중심 개념은 역시 앞에서 말한 운동, 에너지, 힘 등입니다.

하지만 물리학이 생물학이나 천문학, 혹은 지구 과학처럼 쉽게 서술될 수 있는 분야가 아니고, 중요 개념의 잘못된 이해로 인해 오히려 많은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인지 물리학을 어린이들이 읽기 쉽게 설명한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물리가 물렁물렁』(주니어김영사)이나 『퀴리 부인이 딸에게 들려주는 과학이야기』(자음과모음), 『과학공화국 물리법정』(자음과모음) 정도가 비교적 물리학을 쉽게 서술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쉽게 이해되는 책은 아닙니다.

이런 책들의 안내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에는 개념의 함정이 여기저기 수두룩해 이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인내심입니다. 막히면 돌아가고 힘들면 쉬어야 합니다. 큰 숨 한번 몰아쉬고 다시 돌아가서 개념을 이해하고 쉬어 가는 것이지요. 이 때 『교과서와 함께 보는 어린이 과학사전』(열린어린이)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정리된 언어로 개념의 혼란을 정돈시켜 주고 앞으로 이끌어 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과학 나라에서 이 물리 지역을 호기심의 끈을 놓지 않고 지날 수 있다면 생물 지방, 화학 지방, 지구 과학 지방, 천문학 지방은 쉽게 긴장하지 않고 두루두루 살펴보며 지날 수 있습니다. 이들 지방을 여행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시시콜콜 외울 것이 너무 많아 싫다고 합니다만, 그 지방의 특징 몇 가지와 이와 관련된 간단한 원리 몇 가지만 이해했다면 굳이 외우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지방들에 대한 책들은 어린이 과학 도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고, 이들 책들은 대부분 어렵지 않기에 굳이 만화가 아니더라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 과학이라는 나라에는 이상한 편견이 있습니다. 여자들이 과학 국가 시민으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 근거로, 여성 과학자들이 많이 늘어났음에도 여전히 의학, 생물학, 화학 분야에서뿐이고 가장 중요한 이론 물리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이 적다는 점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과학 국가 시민으로서 적합한 사람이 따로 있을 리 없습니다. 이런 편견 때문에 괜히 의기소침해 하는 여자 어린이들에게 권할 만한 책으로는 『나는 과학자의 길을 갈 테야』(창비)와 『소녀들의 과학 책동무』(또문소녀)가 있습니다.

보이저 2호에서 본 목성의 모습과 위성들
이 낯선 나라를 아이 혼자 헤매게 할 수는 없지요. 하다못해 옆 동네에 가는 일도 처음에는 훈련이 필요하듯이, 아이에게 사전 정보를 충분히 주어 과학 나라에 겁먹지 않도록 배려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엄마가 동행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처음 가 본 도시이기도 할 것이며 전에 가 봤지만 기억이 가물가물, 이 길인가 저 길인가 싶은 곳도 있을 겁니다. 아이와 같이 헤매며 지도를 보고, 안내서를 보면서 둘러보면 아이는 과학 나라에 훨씬 더 친숙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도 저도 어렵다면 과학에 대한 고전을 함께 읽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는 과학 나라로 이끌어 주는 흥미진진한 안내자들이 꽤 있습니다. 『해저 2만 리』(대교출판 ; 파랑새), 『지구에서 달까지』(아이세움), 『우주전쟁』(푸른숲 ; 옹기장이), 『지킬박사와 하이드』(파랑새) 같은 소설들은 읽는 재미가 요즘 SF 소설 못지않을 뿐만 아니라 작가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쓴 책들이어서 과학의 역할과 지평에 대해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줍니다.

과학이라는 이 낯선 나라, 아이들은 우리보다 이 나라와 좀 더 깊은 연관을 맺게 될 것입니다. 점점 더 강대해지는 이 나라의 힘이 우리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앞으로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전적으로 이 나라에 달려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해 아예 이사할 수도 있고 그냥 훑고 지나갈 수도 있겠지요. 이 나라의 여행 결과가 어떻든 간에 아이들이 이 나라를 좀 더 친근하게 여기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 딸아이는 『과학은 흐른다』와 같은 과학사 책 몇 권을 보고 나서는 무거운 것이 아래로 떨어지는 현상을 “원래 본성이 그래.” 하고 아리스토텔레스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설명 방식이 주는 매력, 단순하고 명쾌함에 푹 빠져 있습니다. 저와 제 딸아이는 과학 국가 탐방을 위해 여행 사전 준비만 너무 열심히 한 모양입니다.

※ 이 글에 실린 그림은 『교과서와 함께 보는 어린이 과학사전』(열린어린이, 2006)에서 가져왔습니다 ━ 편집부.
김연희│서울대 과학문화연구센터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사람들이 과학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연세대와 서울시립대학에서 강의하며 공기, 부력, 공기의 성질을 공부하는 6학년짜리 딸에게 좀 더 쉽게 이런 말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