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4월 통권 제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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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깊이 들여다보기]
『빨간 머리 앤』의 매력 <2>

이지호 | 2007년 04월

이어붙이는 말

우리는 지난번에 앤의 수다를 한 차례 분석해 보았는데, 그에 대해서 조금만 부연하겠다. 먼저 앤의 수다는 솔직하면서도 무례하지 않다. 이는 앤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앤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속에 가둬 놓지도 않지만 그것을 왜곡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자신에게 솔직한 것이 상대에게는 무례한 것일 수도 있는 법이다. 앤 또한 이를 잘 알고 있어서 앤은 자기 생각이나 느낌, 그에 관한 자기 말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지려 한다. 제 말을 들어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제 말에서 화제가 된 사람까지 배려하는 앤 특유의 화법이다. 이에 관한 좋은 예가 있다. 마릴라 아주머니가 앤을 되돌려 보내려고 스펜서 아주머니한테 데리고 가며, 앤을 키워 준 분들이 잘 보살펴 주었는지를 묻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아, 그 분들은 저한테 잘해 주려고 했어요. 될 수 있는 대로 잘해 주려고 했다는 걸 알아요. 누군가 저한테 잘해 주려고 애쓰기만 한다면 항상 잘해 주지 않더라도 괜찮아요.(…뒤 생략…)”(1권 70쪽)

이 말을 들은 마릴라 아주머니는 더 묻지 않았다. 물론 알고자 했던 것은 다 알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아주머니가 몰랐던 것이 하나 있다. 아주머니의 질문은 앤으로서는 대답하기가 쉽지 않은 것임을. 자신을 키워 준 두 아주머니를 나쁘게 말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마릴라 아주머니에게 거짓으로 말하거나 무안하게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앤이 이 대답을 하기 전에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는데, 마릴라 아주머니가 그것을 보았다면 앤의 딜레마를 금방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앤은 두 아주머니가 자신에게 잘해 주려 했음을 강조하는 방법으로 그 딜레마에서 간단하게 벗어난다. 이 장면에서 돋보이는 것은 앤의 화법보다는 마음 씀씀이다. 마릴라 아주머니는 이런 앤을 보고 무례하거나 속되지 않으며 고상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앤의 수다에서 두 번째로 눈여겨볼 것은 다채로우면서도 어지럽지 않다는 것이다. 앤은 수다의 화제를 일단 자신이 보고 듣고 겪은 데서 찾는다. 그러나 그것은 앤에게는 화제의 씨앗일 뿐이다. 앤은 자신의 상상력으로 그것을 싹 틔워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게 한다. 앤이 잠시도 입을 다물 수 없었던 것도 그에게는 말할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앤의 수다는 화제 전환이 빠른데도 듣는 이는 쉽게 그 수다의 졸가리를 잡을 수 있다. 이는 앤의 수다가 내적으로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앤이 이 화제에서 저 화제로 건너뛰면서도 그것들을 서로 촘촘하게 엮어 내는 것을 보면 앤의 이야기 구성 능력이 남다르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사실, 앤의 언어 감각은 또래 아이들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앤의 상상과 그 상상의 실재화

다음은 『빨간 머리 앤』에서 찾을 수 있는 앤의 상상력에 관한 첫 번째 자료로, 지난번에 이어 다시 한 번 거론한다. “초록 지붕 집의 매슈 커스버트 아저씨죠?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혹시 아저씨가 데리러 오지 않을까봐 걱정하면서, 아저씨가 오실 수 없는 갖가지 상황을 상상하고 있었어요. 만약 오늘 밤에 아저씨가 데리러 오지 않는다면, 기찻길을 따라 내려가 저 모퉁이에 있는 커다란 양벚나무 위에서 밤을 지낼 생각이었어요. 저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하얀 벚꽃이 활짝 핀 나무에서 달빛을 받으며 잠자는 것도 멋진 일이잖아요? 대리석으로 꾸민 홀에서 묵는다고 상상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죠? 그리고 아저씨가 오늘 밤에 못 오신다고 해도 내일 아침에는 틀림없이 오실 거라고 생각했어요.”(1권 27쪽)

앤의 상상력은 참 놀랍다. 매슈 아저씨가 늦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갖가지로 상상한다거나 달빛이 쏟아지는 양벚나무 위를 은은한 조명이 비치는 대리석 홀로 상상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앞엣것은 어떤 결과로부터 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원인을 탐색하는 상상이고, 어떤 사물을 형상이나 기능 또는 속성이 유사한 다른 사물로 대체하는 상상인데, 이러한 상상은 일정 수준 이상의 사유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앤의 상상력이 놀랍다는 진짜 이유는 이것이 아니다. 이 정도 상상력의 발휘는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 앤처럼 자신이 상상한 것을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앤이 상상 세계와 현실 세계를 혼동하는 것도 아니다. 앤은 단지 필요에 따라서 상상 세계를 현실 세계와 분리하거나 통합했을 뿐이다.

앤은 먼저 매슈 아저씨가 제 시간에 올 수 없는 상황을 상상했고, 그 상상 속의 상황을 실제 상황으로 간주한 다음, 이를 굳게 믿어 버린다. 이제 앤은 안도할 수 있다. 아저씨가 제 시간에 오지 않는 것은 오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올 수가 없어서라고 자신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내일 아침에는 틀림없이 올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이 같은 자기 설득에 따른 것이다. 또 앤은 양벚나무 위에서 밤을 새는 것도 오히려 멋진 일이라고 하는데, 이도 그곳을 대리석으로 꾸민 홀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상의 실재화는 앤에게 일종의 방어 기제였다. 앤이 고단하고 팍팍한 현실에서도 밝고도 맑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앤 스스로 이렇게 말한 바도 있다. ‘거기 ― 해먼드 아주머니 집을 가리킴 ― 는 무척 외로운 곳이었어요. 제게 상상력이 없었다면 도저히 그곳에서 살 수 없었을 거예요.’(1권 68쪽)라고. 앤은 상상의 친구도 가지고 있었고, 그들과의 추억을 진심으로 소중하게 여겼는데, 이 또한 앤이 기죽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의 하나였다. 그러나 앤이 이 상상의 친구에 탐닉하는 것은 아니었다. 앤의 말을 빌면, ‘진짜 친구를 사귀고 나면 꿈속의 조그만 아이들한테 만족할 수가 없’(1권 196쪽)는 것이다.

이제 앤의 상상과 그 상상의 실재화가 지닌 실제적인 힘을 살펴보기로 한다. 앤이 마릴라 아주머니한테서 자신이 초록 지붕 집에서 원하던 아이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절망하던 날, 앤은 밥도 먹지 못하고 울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의 앤은 달랐다. 앤이 잠자리에서 막 일어났을 때는 어제의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나서 괴로웠다. 그런데 창 밖으로 보이는 초록 지붕 집의 아침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살 수가 없다고 생각하자 앤은 더 괴로웠다. 앤은 이곳에 살 거라는 상상으로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그것은 애시당초 가당찮은 것이었다. 그러한 상상으로, 앤 자신의 말마따나, 위안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지만 믿음까지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에 위배되는 상상이니까. 앤이 활기를 되찾은 것은 초록 지붕 집의 창에서 바라본 아침 풍경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초록 지붕 집의 아침 풍경은 원래 아름다웠는지도 모른다. 작가 또한 ‘이곳은 앤이 꿈꾸던 어떤 곳보다 아름다웠다.’고 직접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앤의 상상을 거쳤기 때문에 완벽한 아름다움이 될 수 있었다. 앤은 저 멀리 보이는 덤불 속에서 자라고 있을 고사리와 이끼와 온갖 숲 속 식물들도 머리 속에 그릴 수 있었고, 마을을 끼고 흐르는 시냇물의 즐거운 웃음소리도 창가에 앉아서 들을 수 있었다. 그것도 마치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직접 듣는 것처럼. 앤의 상상력은 원체 남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초록 지붕 집은 앤의 상상을 한껏 부추기는 곳이었다. 작가의 말을 빌면, ‘여기 ― 초록 지붕 집을 가리킴 ― 는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앤의 상상은 초록 지붕 집의 아침 풍경에서 아침 그 자체로 옮겨간다. 아침에 대해서 상상할 것이 무지무지 많은 앤에게 아침은, 특히 맑은 날의 아침은 정말 재미있는 것이다. 이토록 아름답고 재미있는 아침에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앤은 배고픔도 느낄 수 있었고 밥 먹은 다음에는 설거지도 할 수 있었다. 물론 이 같은 상상이 초록 지붕 집에 살 수 없는 슬픔을 없애 주지는 못했지만 꿋꿋하게 견디게는 해 주었다.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앤의 상상은 그 이상의 힘을 발휘했다.

이 ‘작은 몽상가’를 지켜본 마릴라 아주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린다. “저런 애는 평생 듣도 보도 못했어. 오라버니 말처럼 재미있는 아이야. 나도 벌써 얘가 이제 무슨 얘기를 할까 기다려지잖아. 저 애는 나한테도 마법을 걸 거야. 오라버니한테처럼 말야.”(1권 62쪽) 결국 마릴라 아주머니는 앤이 초록 지붕 집에 살도록 하는데, 이는 마법에 걸렸기 때문이라고 말할 만한 일이었다. 이와 같은 감화력의 원천이 바로 앤만이 할 수 있었던 상상의 실재화였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앤의 상상의 실재화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감화력을 발휘하여 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을 덜어 주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앤의 상상이 앤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했는데, 유일한 예가 바로 ‘유령의 숲’에 관한 상상이다. 앤과 앤의 친구 다이애나가 보기에 시내 건너편의 가문비나무 숲은 너무 평범했다. 그래서 둘은 아주 끔찍한 이야기를 상상해 낸다.

“(…앞 생략…) 바로 이맘때쯤에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두 손을 꽉 쥐고 울부짖으며 강가로 걸어가고 있었어요. 가족 중에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여자가 나타나죠. 그리고 한가한 황야 한구석에는 살해당한 어린애의 유령이 나타나요. 그 유령이 뒤에서 점점 다가와 차가운 손가락을 갖다 대는 거예요. (…뒤 생략…)”(2권 34쪽)

이리하여 가문비나무 숲은 ‘유령의 숲’이 되고, 앤과 다이애나는 그들 자신이 상상해 낸 이야기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특히 밤에. 유령은 캄캄할 때 다니니까. 이처럼 상상의 실재화는 역기능을 발휘하기도 했다. 앤은 이 상상 때문에 벌을 받기도 하고 꾸지람을 듣기도 한다. 앤은 이 사건을 통해 상상에도 나쁜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어떤 점에서 보면, 앤만큼 행복한 아이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앤 스스로는 상상력이 풍부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상상한 바를 실제로 느낄 수 있는 감성도 풍부했다. 그리고 앤의 주변 사람은 앤의 아름다운 상상에는 스스럼없이 동참하고 아름답지 않은 상상에는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앤이 훌륭한 숙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다 그만한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앤의 언어 감각

우리는 앞에서 앤의 이야기 구성 능력이 탁월하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여기서 엉뚱한 질문을 하나 해 보기로 한다. 과연 11살 나이의 여자아이가 앤과 같은 이야기 구성 능력을 지닐 수 있을까? 답은 뻔하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빨간 머리 앤』 속의 앤의 수다는 작가의 이야기 구성 능력으로 생산된 것이 아닌가. 물론 이것이 시빗거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신 지체아가 동화의 서술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해도 그것을 시비할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이다. 동화의 ‘서술 관습’이 그런 것이다.

그런데 『빨간 머리 앤』을 읽다 보면 앤의 수다는 바로 그 11살난 주근깨투성이의 빨간 머리 앤이 직접 구성한 이야기로 여겨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빨간 머리 앤』 여기저기에서 앤의 뛰어난 언어 감각을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또한 작가의 계산된 서술 전략에 따른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작가는 앤의 언어 감각을 다양한 양상으로 보여 주는데, 그 각 양상은 우리 주변의 11살 여자애한테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앤처럼 그렇게 다양한 양상의 언어 감각을 함께 보여 주는 11살 여자애는 흔치 않을 것이다. 앤의 언어 감각이 남다르다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앤의 언어 감각을 판단할 수 있는 첫 번째 자료는 앤의 낱말 의식이다. 앤이 구사한 낱말을 모아 보면 그 목록이 꽤 길어질 것이 틀림없다. 물론 앤이 자신의 낱말 목록에 들어 있는 낱말을 모두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앤은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는데, 이는 앤 자신의 낱말 목록을 확충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예컨대, 앤은 ‘설화 석고·기병대·미디안·단두대’ 같은 낱말은 그 뜻을 잘 모르면서도 읽거나 쓰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모른다는 사실만큼은 잘 알고 있었기에 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은 그 뜻을 알게 된다. ‘설화 석고’의 경우, 앤은 그 낱말을 입에 올린 지 2년이 지나서야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한다.(2권 92쪽 참고)

앤의 낱말 의식은 참 유별난 것이었는데, 그에 따르면 낱말에도 거창하고 멋지고 감동적인 것이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앤은 ‘무한하고 영원하고 불변하시며’와 같은 말이 멋진 말이고 장엄한 말이라고(1권 81쪽 참고), 또 ‘근사하다’는 멋진 표현이라 하였다.(1권 154쪽 참고) 사실, 엔에게는 ‘거창한 말·멋진 말·감동적인 말·장엄한 말’은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것은 아이가 일상 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이 아닌 말을 가리키는 듯하다. 굳이 분류한다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말, 화려하고 아름답고 번잡한 말 그리고 격식의 말이나 어려운 말이 그러한 말에 해당할 것이다. 앤은 이러한 낱말을 배우는 데 아주 열심이었다. 시험 공부를 하느라고 친구가 빌려준 책을 보지 못함을 안타까워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 책에 감동적인 낱말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1권 204쪽 참고) 이와 같은 낱말 의식은 앤의 언어 구사 능력을 크게 끌어올리는 원동력으로 작용했을 것이 틀림없다.

앤은 이른바 그 거창한 말을 사용하다가 사람들의 비웃음을 많이 산 듯하다. 모르긴 해도, 애 같지 않기 때문이어서였을 것이다. 앤은 이렇게 항변한다. ‘생각 자체가 거창하다면 그 생각을 표현하는 데 거창한 낱말을 쓰는 게 당연하지 않아요?’(1권 32쪽)라고. 그러나 어른이란 이런 항변조차 비웃고 나설 존재가 아니겠는가. 앤은 자신이 어른이 아니라서 그런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항상 여자 아이들에게 어른 대접을 하며 얘기할 거’라고 결심한다.(1권 216쪽) 그러나 아이가 언제나 아이로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큰다는 건 정말 기쁜 일이에요, 마릴라 아줌마. 어른 대접을 받는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요.’(1권, 216쪽)라고 했던 앤이 15살이 되자 이렇게 말한다.

“(…앞 생략…) 어쩐지 이젠 거창한 말은 쓰고 싶지가 않아요. 제가 그렇게 원하긴 했지만, 이제는 거창한 말을 해도 될 만큼 컸다는 게 참 애석해요. (…가운데 생략…) 짧은 말에 익숙해지고 보니 그게 훨씬 낫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2권 157쪽)

우리 어른더러 들으라고 한 말 같다. 이를 화두 삼아 어른으로서 아이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따로 토를 달지 않기로 한다. 앤의 언어 감각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앤의 언어 감각은 낱말의 음성 심리학적 이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앤은 마릴라 아주머니한테 자신을 우아한 이름인 코델리아라고 불러 달랬다가, 그것이 통하지 않자 Ann이 아니라 품위 있게 들리는 Anne으로 불러 달라고 부탁한다.(1권 46∼47쪽 참고) 자기 이름의 발음에 대한 앤의 집착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필립스 선생님이 앤의 이름을 Ann으로 쓰기만 했는데도, 앤은 자신의 영혼이 학대를 받았다고 생각한다.(1권 167쪽 참고) 앤은 심지어 아버지의 이름이 제데디어가 아닌 월터였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이러한 것은, 좋게 말하면, 앤은 낱말의 음성 심리학에 일찍부터 눈을 뜬 증거로 삼을 수 있는 것이었다. 장미는 다른 이름이었어도 향기가 날 거라는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할 정도였던 것이다.(1권 66쪽 참고)

앤의 언어 감각이 가장 돋보이는 것은 이름 짓기에서이다. 앤은 이름이 없는 것에는 이름을 새로 지어 주고, 이름이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 버린다. 초록 지붕 집에 있는 사과향 제라늄에게는 보니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 주었고(1권 61쪽 참고), 고아원에 있던 여자아이 헵지버 젠킨스에게는 로잘리아 드비어라는 새 이름을 지어 준다.(1권 38쪽 참고) 이러한 앤이기에 초록 지붕 집으로 오는 도중에 이미 동네 이곳저곳의 이름을 바꾸어놓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앤은 낱말의 미묘한 의미 차이도 세심하게 변별하는 태도를 가졌다는 것도 말해 두기로 한다. 예컨대, ‘보기 좋다구요? 어머 보기 좋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해요. 아름답다는 말도 적당하지 않고요. 그 낱말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아, 경이롭다. 그래요. 경이롭다예요.’(1권 38쪽)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앤은 특정의 사건·현상·사물에 가장 적합한 낱말을 찾아서 쓰려고 하는 아주 좋은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앤의 언어 감각을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서 확인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본 것이 다는 아니다. 예컨대, 앤 특유의 표현 방법 같은 것은 앤의 언어 감각을 이해하는 데는 필수적인 것이지만 여기서는 미처 다루지 못했다. 이에 대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 이 글에 실린 그림은 『빨간 머리 앤』(시공주니어, 2002)에서 가져왔습니다. 필자가 본문에서 밝힌 인용·참고 쪽수는 1996년 판(시공주니어) 1·2권에 따른 것입니다 ━ 편집부.
이지호│진주교육대학에서 어린이 문학과 국어 교육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글쓰기와 글쓰기교육』, 『동화의 힘, 비평의 힘』, 『옛이야기와 어린이문학』 등이 있고, 엮은 책으로는 동시그림책 『너는 커서 뭐 할래?』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