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4월 통권 제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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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나무를 심은 사람, 희망을 심은 사람

윤석연 | 2007년 04월

“1953년 처음 발표된 이래 약 50년에 걸쳐 여러 말로 옮겨져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는”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은 “끊임없이 나무를 심어 황폐한 땅을 숲으로 바꾸어 가는”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소설 속의 노인은 오로지 나무를 심는 일에만 일생을 바친다.

한 사람의 인격이 얼마나 훌륭한지 알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그 사람의 행동을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그 행동이 조금도 이기적이지 않고 더없이 고결한 마음에서 나왔으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면, 그 때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인물을 만난 것이다. (『나무를 심은 사람』 3쪽)

그리고 또 한 사람, 조금도 이기적이지 않고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여성이 있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한 손에 묘목을 든 여성이 숲을 향해 걸어 들어가자 경찰들이 막아섰다. 1999년 봄, 나이로비 시내의 작은 공원에 62층짜리 빌딩을 세우겠다는 정부에 맞서 그이는 목숨을 걸고 나무를 심었다. 케냐에서 나무를 심는다는 건, 정부와 맞서는 저항이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다. 여의도 공원보다 작은 공원을 지켜 내기 위해, 케냐 정부의 도시 재건축 사업을 막기 위해 나무를 심은 사람, 왕가리 마타이. 케냐 사람들은 그이를 ‘마마 미티’, 즉 ‘나무들의 어머니’로 부른다.

폐허이긴 해도 오래된 말벌집처럼 집들이 모여 있으니, 한때는 이곳에도 샘이나 우물이 있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샘이 하나 있었지만, 바닥은 말라붙어 있었다.

비바람에 시달려 지붕이 없어진 집 대여섯 채와 종탑이 무너져 내린 작은 성당이 마치 사람 사는 마을의 집과 성당처럼 자리잡고 있었으나, 생명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무를 심은 사람』 7쪽)

아프리카에서는 여성들이 무슨 작물을 심을지 결정하고, 밭을 갈고, 식량을 수확한다. 우물이 마르면 새로운 우물을 찾아 나서는 사람도, 또 멀리까지 걸어가서 물을 길어 와야 하는 사람도 여성이다. 숲 가까이에 살았을 때는 땔감을 마련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또 멀리까지 우물을 찾아 나설 필요도 없었다. 농사짓는 흙이 비에 쓸려가는 일도 없었다. 숲이 사라지자, 샘이 사라지고, 비도 내리지 않고, 가축들이 먹을 풀도 사라졌다. 우물과 그 주변을 땅을 서로 차지하려고 부족 간의 다툼과 갈등도 끊이지 않았다.

케냐는 2차 세계대전 말 이래로 평균 4년에 한 번씩 가뭄을 겪어 왔다. 2004년에는 2백만이 넘는 주민들이 식량 보조에 의존해야 했다. 케냐의 가뭄 지역들은 수단 남부 지방이나 에티오피아의 가뭄 지역들과 다르지 않다. 나이든 여성들이 움막 옆에서 죽어가면서 누워 있고 곡물 창고와 물통은 텅 비어 있다. 2004년 8월 나이로비에서 몸바사 방면으로 두 시간만 차를 타고 가면 마쿠에니 지역에서 충격적인 장면들을 볼 수 있었다. 남북으로 2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해변 가에 관광객들이 누워 있다. 그러나 마쿠에니에는 다섯 살 미만의 아이들 중 3분의 1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나무들의 어머니, 왕가리 마타이』 127쪽)

고지의 산마루에는 네다섯 개의 마을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었는데, 모두 마차길이 끝나는 참나무 숲에 자리잡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숯을 구워 먹고 살았다. 그런 곳에서는 누구나 살아가기가 힘겹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견디기 힘든 날씨 속에서, 어떤 희망도 없이 서로 부대끼며 이기심만 더해 간다. 오직 그 곳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만 커져 갈 뿐이다. (『나무를 심은 사람』 13쪽)

케냐는 극단의 나라다. 이곳에는 하룻밤 숙박비로 1천 유로를 받는 호텔들이 있는가 하면 먹을 것을 찾아 거리의 쓰레기 통을 뒤지는 사람들과 단돈 50센트가 없어 아기에게 말라리아 약을 사 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엄청난 부자들이 사파리에서 포르세를 타고 달리는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 우물을 향해 또는 6킬로미터나 떨어진 일자리를 향해 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나무를 베어 땔감을 만들고, 부패한 정부는 무분별한 개발로 농지를 넓히고 자원을 캐 내어 물을 오염시킨다.

단 한 사람의 육체적, 정신적 능력만으로 이 불모지에서 가나안이 솟아난 것을 돌이켜보면, 인간에게 주어진 힘이란 아무래도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위대한 영혼으로 오직 한 가지 일에만 일생을 바친 고결한 실천이 없었다면, 이러한 결과를 낳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신과 다름없는 일을 훌륭히 해낸 사람, 배운 것 없는 그 늙은 농부에 대한 크나큰 존경심에 사로잡힌다. (『나무를 심은 사람』 47∼48쪽)

숲과 자연의 유산을 지켜내기 위해 자유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 왕가리 마타이는 동아프리카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존재입니다. 그녀는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했습니다. 그녀는 감옥에서 고통을 견디었으며 신체에 가해진 공격도 참아냈습니다. 왕가리 마타이는 범상치 않은 용기와 도덕적 확신을 지닌 여성입니다. (『나무들의 어머니』 239쪽)

왕가리 마타이는 1977년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무슨 작물을 기를지 결정하고, 샘이 마르면 새로운 우물을 찾아내던 여성들은 나무심기 운동이 왜 중요한지 금방 깨달았다. 숲을 되살리지 않고서는 가뭄도 기아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입니다. 내가 한 모든 일들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어요.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 도모한 것이죠.”(『나무들의 어머니』 178쪽) 나무를 심는 운동은 아프리카에서는 여성 운동이었고 환경 운동이었으며 부패한 정부를 상대해야 하는 정치 운동이기도 했다.

그녀를 도와준 사람들을 세기 위해서라면 고된 일로 분주한 그녀의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녀를 방해한 사람들의 숫자는 62층짜리 고층 건물 하나를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나무들의 어머니』 241쪽)

그이는 단지 나무만을 심은 것이 아니다. 지난 30년 동안 30개 이상의 국제적인 상을 수여한 이 여성은 2004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수상자이다. 또한 그이는 현재 케냐의 환경부 차관이기도 하다. 그이는 오늘도 나무를 심는다. 가난한 여성들과 함께, 희망을 심는다.

“모든 것이 변했다. 심지어 공기마저. 예전에 나를 맞이하던 세차고 건조한 돌풍 대신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향기를 싣고 불어 왔다. 저 높은 곳에서는 물소리 같은 것이 들려 왔다. 숲 속에 부는 바람 소리였다. 마침내, 더욱 놀랍게도 연못으로 흐르는 진짜 물소리까지 들렸다. 사람들이 만든 샘에 물이 넘치는 것이 보였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샘가에 심어 놓은 보리수로, 벌써 네 살쯤 되어 잎이 무성한 그 나무는 명백히 부활의 상징이었다.” (『나무를 심은 사람』 39쪽)

오로지 나무만을 심었던 아주 특별한 노인, 엘제아르 부피에는 단지 소설 속의 인물이 아니다. “내일 당장 변화가 오지 않더라도 약간의 차이는 분명 생긴다. 작은 차이의 첫 걸음은 나무를 심는 것이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변할 것이다.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행동한다는 것이며, 희망을 품는 일이며, 부활을 믿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더 좋은 세상, 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생존의 최전선에 선 인간들이 신을 대신해서 지구를 다시 창조하는 유일하고도 위대한 일이기도 하다.

“무한한 지혜를 가진 신은 지구를 창조할 때 다른 피조물들을 창조한 후에 맨 나중에야 인간을 창조했다. 신은 알고 있었다. 인간을 제일 먼저 창조하면 화요일이나 수요일쯤에 죽는다는 것을. 수, 목, 금요일에 만든 것이 없으면 인간은 스스로 생존할 수가 없다. 인간에게는 맑은 물, 깨끗한 공기, 땅 속 무기질이 필요하다. 따라서 인간에겐, 지구가 허락하는 마지막 날까지 피조물들과 조화롭게 살 의무가 있다.”(왕가리 마타이, 노벨평화상 수상 소감에서)
윤석연│세상의 많은 작은 것들을 좋아하고, 좋은 이들과 수다 떨기를 좋아하고, 격식이나 예절, 서열, 질서 따위를 싫어합니다. 늘 싫고 좋음을 분명하게 말해 버려 가끔 미움도 받지만, 언제나 씩씩하고 즐겁게 살고자 애씁니다. 그리고…… 혹시 글 쓰는 걸로 이 세상 선한 일들에 보탬이 된다면 꾸역꾸역 하겠다고 맡고 나서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