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4월 통권 제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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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옛이야기 세상 이야기]
시아버지가 만든 효부
――윽박지르기와 이끌어 주기

서정오 | 2007년 04월

옛날 어느 곳에 홀아비가 하나 살았는데, 젊어서 아내 잃고 아들 하나 있는 것 애지중지 잘 키워서 장가까지 번듯하게 보내 놨것다. 비록 홀아비 신세지마는 아들 상투 트는 것 보고 며느리 폐백까지 받았으니 누가 봐도 트인 팔자라, 고생 끝에 낙이 온다더니 늘그막에 호강할 일만 남지 않았나. 하지마는 그건 남의 사정 잘 모르고 하는 소리. 알고 보면 호강은커녕 늙어갈수록 고생문이 훤하니 이 일을 어찌할꼬.

무슨 사연인고 하니, 늦게 본 외동며느리 성질이 못되어서 하나뿐인 시아버지 대하기를 도붓장수 개 후리듯 한단 말씀. 늘그막에 딴 사람도 아닌 며느리한테 허구한 날 들볶이게 생겼으니 이게 고생이 아니면 뭐가 고생일까. 아닌 게 아니라 며느리 짓을 보니 그놈의 성질머리는 범 아가리에서 나왔는지 사나워도 예사로 사나운 게 아닐세그려. 구박이 아예 입에 붙어서 자면 잔다고 구박, 놀면 논다고 구박, 먹으면 먹는다고 구박, 나가면 나간다고 구박, 시도 때도 없이 구박을 일삼으니 이것 참 환장할 노릇이 아닌가.

하루는 아들 며느리 일 나간 사이에 노인네 혼자서 집을 보는데, 건넛마을에서 기별이 오기를 아무개네 잔치에 놀러오라고 그러는구나. 가기는 가야 할 텐데 당최 입고 갈 옷이 있어야 말이지. 바지저고리고 두루마기고 무엇이고 번듯한 옷은 며느리가 죄다 빼앗아 감춰 두고 입으라고 준 옷은 다 해어진 누더기뿐이니, 아무리 가고 싶어도 누더기를 입고 어찌 잔칫집에 갈 것이냐.

‘노인네가 생각다 못해 슬그머니 안방에 들어가서 장롱 문을 열어 봤겠다. 하, 그랬더니 아니나 달라 그 안에 아주 포르르 날아가는 새 옷 한 벌이 착 들어앉아 있거든. 이놈의 것을 좀 빌려 입고 갔다가 며느리 오기 전에 도로 갖다 놓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서는 영감님이 그 옷을 입고 건넛마을에 갔것다.

가서 잘 먹고 잘 놀았지. 잔칫집에 갔으니 얼마나 놀기 좋을까. 밥이야 술이야 떡이야 주는 대로 받아 먹고, 늙은이고 젊은이고 한데 어울려 노느라고 이 어른이 그만 시간 가는 줄 몰랐구나. 어느덧 해가 설핏 기울었는데, 이 때 무심코 밖을 내다보니 아뿔싸 이것 참 큰일이 났네. 저 멀리서 며느리가 씩씩거리며 달려오는데, 한 손에 몽둥이를 들고 서슬이 아주 퍼렇거든.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며느리 오기 전에 집에 가서 옷을 도로 넣어 놓는다는 것이 노는 데 정신이 팔려 그만 깜빡했네.’
‘며느리 달려오는 품을 보니 화가 나도 단단히 난 것 같은데, 아마 자기 몰래 장롱을 뒤져 옷을 꺼내 입은 것 때문에 그러는 게지.’
‘그나저나 이 일을 어쩌나. 몽둥이 든 품으로 봐서 아주 큰 소동을 피울 듯한데, 사람 많은 잔칫집에서 남우세스러운 꼴 나게 생겼구나.’ 생각 끝에 영감님이 꾀를 하나 내서, 잔칫집에 모인 사람들 다 들으라고 큰 소리로 외쳤것다.
“여보게들, 저기 저것 좀 보게나. 우리 며느리가 제 시아비 마중을 오네그려. 늙은이가 혹 넘어질까 지팡이까지 챙겨들고 오지 않나.” 그 말을 듣고 동네사람들이 죄 돌아보니 과연 그 집 며느리가 지팡인지 몽둥인지 작대기 하나를 들고 달려오거든.
“거참 시아버지 모시는 정성이 지극한 며느리로군. 저런 사람을 그냥 보내서야 안 되지.” 씩씩거리며 문지방을 넘는 며느리를, 잔칫집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꽃방석에 앉히고 잔칫상을 한 상 차려 대접을 하느라 난리가 났구나.
“세상에 나이도 어린 사람이 어찌 그렇게 효성스러울 수가 있나 그래.”
“자네야말로 우리 동네 귀감일세. 어서 많이 들고 천천히 놀다 가시게.”
며느리가 얼떨결에 칭찬을 받고 보니 참 무안하거든. 아, 자기는 몰래 새 옷 훔쳐간 시아버지 혼내 주려고 몽둥이까지 꼬나들고 달려온 판인데 , 그런 꼴을 보고도 나무라기는커녕 효성스럽다고 칭찬을 해 대니 이게 대체 웬일인가. 어리둥절하기는 하다마는 기분 나쁠 일은 아니란 말씀. 그렇게 온 동네사람 칭찬을 한 몸에 받고서 새삼 시아버지를 구박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울며 겨자 먹기로 몽둥이를 건네면서,
“아버님, 이 지팡이 받으세요.”
하니 시아버지는 한 술 더 떠,
“지팡이야 받는다마는, 개울 건널 때 너 전에처럼 날 업어 건넬 생각일랑 말아라. 아직은 나 혼자 건널 수 있다.”
이러니 어떻게 해? 개울 건널 땐 저도 모르게,
“아버님, 제 등에 업히세요.”
하고 말았지. 효도도 알고 보니 버릇이더라고, 한번 그렇게 하고 나니 다음부터는 절로 말씨도 공손해지고 대접도 극진해져서 그 뒤로 얼마 안 가 며느리는 아주 딴사람이 되더라네. 나중에는 둘 사이가 웬만한 친부녀 사이보다 더 좋아져서, 집안에 아주 웃음꽃이 끊이지 않더라는 얘기. 덩지 덩지.

많은 사람들이 효도에 얽힌 옛이야기라고 하면 고리타분하거나 딱딱하고 재미없을 거라고 여긴다. 가령, 초등학교 조회 시간에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치자. “어린이 여러분, 이제부터 효도에 관한 재미있는 옛이야기를 들려주겠어요.” 그럴 때 기대에 부풀어 눈을 반짝이는 건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1학년 아이들뿐이다. 2학년만 되면, 아이들은 대개 그런 말에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우리 교장 선생님이 또 잔소리를 시작하시려나 보다.’ 그리고, 이 예상은 거의 빗나가지 않는다. 교장 선생님의 옛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갈수록 교훈이 앞서 잔소리처럼 딱딱하고 지루해질 것이다.

여러분은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자기 살점을 베어 아버지 병을 고친 효자 이야기나 아들을 희생시켜 시아버지를 구한 며느리 이야기, 또는 송아지를 지붕에 끌어올리라는 아버지 명령에 군말 없이 복종하는 자식들 이야기를……. 이런 이야기는 교훈이 담겨 있긴 하되, 솔직히 말해서 썩 재미있다고 할 수는 없다. 왜 그런가?

이야기의 재미는 공감에서 오며, 공감은 이야기꾼과 듣는 이가 같은 자리에 있을 때 쉽게 일어난다. 높은 자리에서 근엄하게 꾸짖는 이야기는 공감하기 힘들고, 따라서 재미를 느끼기도 어려운 것이다. 많은 효자 효녀 이야기가 ‘부모에게 효도해라. 어떤 경우든, 핑계를 대지 마라. 효도는 자식의 의무니라.’ 하고 외친다. 좀 심하게 말하면, 이것은 가르침이라기보다 윽박지름이다. 무조건 그렇게 하라는 윽박지름. 여기에 토를 달면 당장 호통이 날아올 것 같지 않은가? 그러니 재미없을 수밖에. 세상 어떤 사람이 자신을 향한 호통과 윽박지름에 재미를 느낄 수 있겠는가?

하지만, 효도 이야기라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제법 재미가 쏠쏠한 것도 있고, 어떤 것은 교훈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것도 있다. 바로 위 이야기가 그렇다. 이야기를 찬찬히 다시 살펴보자. 이야기는 며느리의 효성을 다루되, 시점은 처음부터 며느리가 아니라 시아버지에 머물러 있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이야기가 말을 거는 대상이 자식이 아니라 부모라는 것이다. 자식에게 ‘효도해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 ‘자식을 효자로 만들어라.’고 일깨우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고갱이는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갈등이다. 그리고 갈등의 원인은 며느리한테 있다. 성격이 사나워 사사건건 시아버지를 구박하는 며느리가 중심에 떠올라 있지만, 이야기는 짐짓 며느리를 외면하고 시아버지에게 말을 건다. ‘며느리한테 효도 받고 싶은가? 그러면 당신이 먼저 잘 해 줘라.’ 그리고, 바로 그렇게 한 결과 갈등이 풀렸다. 고갱이는 바로 이것이다. 이야기는 효도를 자식의 끝없는 의무요 거룩한 희생이라고 말하는 대신, 효도도 고만고만한 사람 관계일 뿐이라고 말한다. 효도를 수직의 복종 개념으로 본 것이 아니라, 수평의 화해 개념으로 본 것이다.

세상에는 한때 ‘남편 사랑은 아내 하기 나름’이라는 시쳇말이 떠돌더니, 이내 ‘시어머니 사랑은 며느리 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뒤따라 나온 적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며느리 효도는 시어머니 하기 나름’이라는 말은 안 나오더라. 그 대신 요새 시어머니를 멀리하는 며느리를 비꼬는 우스개가 쏟아져 나오는데, 암만 좋게 보아도 거기에 ‘비아냥거림’ 이상의 뜻이 들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부모 자식 사이를 수직 관계로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부모와 자식을 평등한 인격체로 보면, 어느 한쪽의 ‘비위 맞춤’을 강요하는 논리나 ‘비위 맞추지 않음’을 비꼬는 우스개는 나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을 위아래로 줄세워 놓고, ‘아랫사람’더러 ‘윗사람’에게 복종하라고 윽박지르거나 비위 맞추기를 강요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우리가 ‘봉건 시대’라고 얕보는 옛날에도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는 건강한 시선이 있었고, 그런 시선이 좋은 옛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하물며 너나없이 ‘민주 시대’라고 일컫는 오늘날임에랴.

이 글을 읽는 세상의 부모님들에게 감히 제안한다. 이제부터 아이들이 뭘 잘못하더라도 덮어놓고 꾸짖는 대신 나 자신을 한번 돌아보자고. 그리하여 혹시나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조금씩 고쳐 나가자고. 우리 아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별에서 날아온 외계인이 아니다. 우리가 만든 환경 속에서, 우리가 하는 말과 몸짓을 거울삼아 자라나는, 또 다른 우리 모습일 뿐이다.

※ 이 글에 실린 그림은 『훨훨 간다』(권정생 글, 김용철 그림, 국민서관, 2003)에서 가져왔습니다 ━ 편집부.
서정오│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이 지역 초등학교에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1984년 『이 땅의 어린이 문학』에 소년 소설을 발표하면서 동화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특히 옛이야기를 새로 쓰고 들려주는 데 애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옛이야기 들려주기』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옛이야기 백가지』 『서정오 선생님의 우리 옛이야기』 ‘옛이야기 보따리’ 시리즈 등 쓰고 펴낸 책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