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4월 통권 제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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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작가 이야기]
아주 작은 것들에게서 삶을 배운다

권혁도 | 2007년 04월

생명까지 작은 것은 아니다

『세밀화로 그린 곤충도감』(보리, 2002) 작업을 하며 6년 넘게 들로 산으로 쏘다니다보니 자연스레 살아 있는 곤충들을 오래 관찰하게 되었다. 곤충의 일생은 알에서부터 성충까지 오직 살아 남기 위한 몸부림이며 그 방법은 곤충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생김새와 무늬와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라 꼭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우연한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보통은 그까짓 벌레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하겠지만 나는 곤충들을 통해 참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안다는 것은 어디까지며, 또한 바르게 알고 있기나 한 것인가?

우리는 늘 인간 중심적인 틀 안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분별하며 때로는 오만해지기도 한다. 나는 자연생태 그림책에서 ‘주관적 관점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려고 노력한다. 곤충 그림책을 통해 신기하고 재미있는 지식 정보를 보여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곤충의 몸은 비록 작지만 결코 생명까지 작은 것은 아니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들판에 나가서 움직이는 곤충들을 오랫동안 관찰해 보는 것이다. 곤충을 어떻게 관찰해야 할까? 누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내 몸을 낮추면 곤충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 숨소리를 죽이면 곤충의 소리가 들립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으면 곤충도 나와 똑같음을 깨닫게 됩니다.”

『세밀화로 보는 곤충의 생활』은 들판에 나가 곤충을 관찰하기 위한 기초 입문서이다. 오랫동안 『세밀화로 그린 곤충도감』 작업을 하며 늘 아쉬웠던 것은 기본적인 자료조차도 찾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곤충의 다양한 생활 모습을 종합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곤충들의 생활은 너무도 다양하기 때문에 간략하게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사계절의 환경 변화에 따라 적응하며 살아가는 시간적 흐름과 서식지마다 다른 공간적 차이점 속에 다양한 곤충의 생활 모습을 간추려서 구성해 보려고 노력했다.

불빛에 모이는 곤충을 채집하려고 여름 내내 다녔지만 큰 소득이 없었다. 그런데 시골집에 갔다가 밤늦도록 식지 않는 더위를 피해서 소백산맥 정상에 있는 주유소로 갔다. 가을 바람처럼 시원했다. 그런데 깜짝 놀란 것은 넓고 넓은 주유소 바닥에 이름도 다 알지 못하는 나방들이 새까맣게 깔려서 죽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사슴벌레나 하늘소 종류들도 많이 모여들었다. 밤마다 그렇게 많은 나방들이 죽는다고 했다. 아침마다 청소하기가 무서워 가끔 주유소에서는 불을 끄기도 한단다. 우리나라에 이런 주유소가 몇이나 될까……. 등의 밝기를 규제하든지, 뭔가 대책이 있어야겠다. 『세밀화로 보는 곤충의 생활』에 나오는 불빛에 모이는 곤충들은 모두 이날 밤에 채집된 것들이다.

겨울 곤충을 찾아서 양지바른 곳을 찾아다니며 쓰러진 통나무들을 큰 드라이버로 쑤시고 다녔지만 모두 허사였다.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양지바른 곳에는 곤충이 없다. 왜냐하면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심하여 적응하기가 더 힘들고 나무들도 말라서 못을 쳐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딱딱하다. 그 속에서는 곤충들도 당연히 말라 죽기 때문이다. 무당벌레도 그늘진 곳에 있고 통나무 속의 곤충들도 따뜻한 남쪽보다 눈이 잘 녹지 않는 북쪽 산기슭에 모여 있다. 물가에 반쯤 잠겨서 꽁꽁 얼음이 된 통나무 속에서도 예상과 다르게 여러 곤충들이 겨울을 난다.

우리도 나비처럼 변해 가는가?

내 작업실은 아주 작은 아파트이다. 비좁은 베란다에는 산초나무, 조팝나무, 좀깻잎나무, 쥐방울덩굴, 족두리풀 등 주로 나비 애벌레를 기르는 풀과 나무들이 있다. 다 자란 애벌레들은 구석구석 돌아다니다 벽이나 천정 또는 화분 옆에 붙어서 번데기가 되었다가 가끔씩 우화(羽化)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처음에는 애벌레가 탈피하는 장면이나 번데기가 우화하는 순간을 놓치기 일쑤였다. 모두 잠깐 사이에 이루어진다. 밤 열두시가 넘어서 우화하는 제비나비 때문에 밤새 흥분하여 잠을 못 이룬 적도 있고, 번데기의 변화 상태가 수상쩍어서 카메라를 준비하고 몇 시간을 기다리다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 나비가 우화하여 참 허탈하고 아쉬운 적도 많다. 그러나 이제는 언제쯤 탈피하고 우화할 것인지 대충은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비가 우화하여 날아가는 것을 처음 본 것은 아주 어렸을 적이다. 할아버지가 지고 오시던 땔나무 위에 진달래 꽃이 한줌 꽂혀 있었던 걸 생각하면 아마 이른 봄이었을 것이다. 시골집은 외양간을 마주하여 여물을 끓이는 큰 가마솥이 있었고 옆에는 항상 땔나무를 조금 쌓아 두었다. 햇볕을 받아 제법 따끈따끈해진 마루 끝에 앉아 놀다가 땔나무 속에서 뭔가 꿈틀거리며 나뭇가지로 기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한참 후에 날개를 펴고 날아간 것은 호랑나비였다.



그 때는 이런 일들이 뭐 그리 대단하거나 신기한 일이 아니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제비들이 집을 짓고, 텃밭에서 콩잎을 먹던 산토끼 새끼가 마당으로 들어오고, 함박눈이 수북이 쌓이는 밤이면 노루가 내려와 외양간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일들이 대단하고 신기하게 들릴 만큼 우리들의 삶은 자연과 멀어진 지 오래되었다.

여느 동네처럼 우리 동네에도 누구나 오를 수 있는 낮은 산이 하나 있다. 물통 든 사람들이 늘 오르내리는 길가에 어른 키만큼 큰 산초나무가 진달래와 떡갈나무들 사이에 몇 그루 끼어 있다. 10월 어느 날 이 산초나무 잎사귀에서 긴꼬리제비나비 애벌레 세 마리를 발견했다. 작은 바람에도 쉴 사이 없이 흔들대는 잎사귀에 애벌레 한 마리가 새똥처럼 붙어 있었고 그 주변에 크기가 조금씩 다른 두 마리가 더 있었다.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다가도 애벌레들이 잘 있는지 궁금해지면 며칠에 한 번씩 가서 확인했다.

어느새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던 날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애벌레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그 날부터 나는 매일 오전에 하나 남은 애벌레를 더 싱싱한 나뭇잎으로 옮겨 놓았다. 11월 4일 아주 쌀쌀한 겨울의 문턱에서 애벌레는 무사히 진달래 나뭇가지에 매달려 실 감기를 마쳤다. 그 때 내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기뻤지만 내가 더욱 놀란 것은 이틀 후 완벽하게 감춰진 번데기의 위장술이었다. 그 작고 약하게만 보이던 애벌레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다는 것이 들여다볼수록 감탄스러울 뿐이었다.

이마에 수북한 눈을 이고 추운 겨울을 꿋꿋하게 견디는 번데기의 멋진 모습을 상상하며 함박눈이 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 해 겨울이 다가고 봄이 올쯤 서울에도 함박눈이 내렸다. 그런데 내가 카메라를 들고 다시 찾았을 때는 이미 텅 빈 나뭇가지뿐이었다. 너무나 허무한 순간이었다. 나는 눈을 한 덩어리 뭉쳐서 날아다니는 새들에게 던졌다. “아무도 찾지 못할 줄 알았는데…….”

수많은 알 중에서도 나비가 될 수 있는 것은 한두 개뿐이며 대부분은 애벌레 시절에 다른 천적들의 먹이가 된다.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면 미처 번데기가 되지 못하여 굶어 죽는 애벌레들도 있고, 기생당한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더라도 몸 속에서 다른 곤충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서 나비가 되지만 작다는 이유로 우리는 하찮은 것으로 여겨 왔다.

보일 듯 말듯 작은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가 나비로 변해 가는 과정을 관찰해 본다면, 알에서 나비가 되듯이 우리도 나비처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작은 생명체가 주는 그 감동은 대단히 큰 것이다.

책 한 권으로 그 감동을 다 전할 수야 없지만 누구나 용기를 내어 나비를 한번 길러 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를 만들었다.
권혁도│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나, 농사일을 거들며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답니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공부하였고 한 뒤 『세밀화로 보는 곤충의 생활』 『세밀화로 보는 호랑나비 한살이』 『세밀화로 그린 곤충도감』 등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 사는 여러 작은 생명들을 세밀화로 그리는 일에 열심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산과 들로 곤충을 만나러 다닌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