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4월 통권 제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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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린이 문학의 부끄러운 유산]
부왜의 이중 억압 기제
――부왜 문학 <4>

어린이문학회 콩세알 | 2007년 04월

부왜 문학은 물론 부왜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되는 문학이다. 부왜란 말 그대로 우리로 하여금 일본에게 무조건 아부하게 하는 것이기에, 결국 우리 자신을 왜곡하면서까지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하게 된다. 그런데 부왜의 억압 기제는 ‘우리(조선) ― 남(일본)’의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즉, 여성을 겨냥한 부왜 문학에서는 여성에 대한 왜곡과 억압이, 어린이를 겨냥한 부왜 문학에서는 어린이에 대한 왜곡과 억압이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왜곡과 억압을 수단으로 삼을 때 왜곡과 억압을 목적으로 하는 부왜의 정신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자 어린이를 독자로 상정한 부왜 문학은 가장 악랄한 부왜 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민족(또는 국가)과 어린이와 여성에 대한 삼중의 억압 기제가 작동한다. 물론 이러한 억압 기제는 차별화된 형상화 전략을 통해서 교묘하게 은폐된다.

부왜 작가는 남자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때는 부왜의 목적과 방법을 직설적으로 표출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독자에게 주입시키기 위한 선동 전략을 구사한다. 동화 「전쟁노름」(김효식, 『매일신보』, 1941년 12월 21일과 28일 2회 분재)에서는 전쟁 놀이를 통해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적의 개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고, 동화 「개구리도 숨었건만」(『방송소설명작선』, 조선출판공사, 1943)에서는 농사가 호미로 적과 싸우는 전쟁 같은 것임을 강력히 설득하고 있다. 어린이의 놀이와 일을 전쟁 상황에 대입하는 의도는 물론 뻔한 것이다.

이에 반하여, 여자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울 때는 정서에 호소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였다. 동화 「숙이의 적성」(김호영, 『매일신보』, 1941년 5월 26일)을 보자. 숙이는 인단(‘은단’으로 이해하면 된다)을 팔러 다니는데, 지원병인 오빠에게 위문대를 보내기 위해서다. 우리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숙이가 과연 오빠부터 챙길 마음의 여유가 있을까, 의심하게 되는데, 작가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이야깃거리가 된다고 생각한다. 아니나 다를까, 우연히 마주친 어느 여의사는 숙이의 사정을 듣고는 크게 감동하여 자신의 병원에 숙이의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 작가는 어린 숙이가 오빠에게 위문대를 보내기 위해 비를 맞으며 인단 파는 모습을 애상적으로 묘사하여 독자의 동정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숙이의 행동은 일본 군인을 돕는 일이고, 그것은 곧 부왜이다. 숙이가 아침마다 신사에 가서 일본 군대가 승리하여 오빠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비는 것도 부왜이다. 그래서 독자가 숙이의 행복을 바라는 것 또한 부왜가 된다. 방심하고 있던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부왜에 동참하게 된다. 이 작품의 음험함이 여기에 있다.

여자 아이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또 다른 동화인 「가을하늘」(임인수, 『아이생활』, 1943년 11월)을 보자. 영자는 지원병으로 나간 오빠 대신 농사일을 한다. 가을의 풍경은 아름답지만, 영자는 그것을 즐길 새도 없이 바쁘게 일한다. 영자의 머릿속에는 들국화를 좋아하던 오빠 생각뿐이다. 영자는 오빠에게 위문대를 보내고, 위문대를 받고 전장의 병사들이 다들 반가워했다는 오빠의 편지를 받고 또 위문대를 보낸다. 작가는 전체 분량의 절반 정도를 가을 풍경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데 썼다. 그리고 전쟁터에 있는 오빠를 낭만적인 소년으로 그렸다. 들국화와 억새를 보며 고향 생각을 하고 ‘들국화’란 노래를 지어서 부르는 오빠의 모습은 가을 풍경만큼이나 아름답기만 하다. 이와 같은 형상화 전략은 감수성이 예민한 영자 또래의 여자 아이를 파고들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지원병으로 나서는 남자의 발목을 잡는 사람은 어머니와 누이와 같은 여자이기가 십상인데, 이들의 두려움과 거부감을 덜어 내기 위해서는 일본 군인을 미화할 필요도 있었던 것이다.

위의 몇몇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여자 어린이를 겨냥한 부왜 문학에서 여자 어린이는 어린이로서는 어른의 보조자로, 여자로서는 남자의 보조자로 그려진다. 그런데 독자로서는 이러한 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그것을 효율적으로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나이와 성에 따른 역할 분담이 차별적이더라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그와 같은 역할 부여를 차별이 아닌 배려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무서운 것은 이런 왜곡이 부왜와 상관없이 우리 내면으로 스며들 수 있다는 점이다.

개화기 이래로 어린이와 여자의 권익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더디지만 꾸준히 신장되어 왔다. 그런데 부왜 문학은 그것을 완전히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뿐 아니다. 부왜 문학은 어린이와 여자의 권익은 다른 어떤 것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유보될 수 있는 것임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부왜 문학의 해악이 부왜에만 그치지 않음이 우리로서는 섬뜩할 뿐이다.
어린이문학회 콩세알│어린이와 어린이 문학을 사랑하는 진주 지역의 교사와 학부모, 대학생들의 모임입니다. 콩 한 알을 심을 때도 짐승들의 몫까지 생각했던 옛어른의 넉넉한 마음으로 어린이 문학을 소개하고, 창작하고, 비평하는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