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4월 통권 제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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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읽었어요]
이해하며 더불어 살아가기

신미희 | 2007년 04월

오랜만에 재작년 졸업생들과 만났다. 부쩍 커 버린 아이들과 농담도 하고 이야기도 하며 즐겁게 지냈지만, 항상 돌아오는 길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나니도 함께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니는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아이였다. 배려심도 많고 명랑하여 친구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고, 수업 태도도 바르고 책임감이 강해 선생님들도 나니를 예뻐했다. 웃기도 얼마나 잘 웃는지. 그런데 중학교 1학년 때 뇌종양으로 2차 수술까지 받고, 오른쪽 신경에 마비가 왔다. 2차 수술을 마치고 본 나니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웃음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퉁퉁 부은 얼굴, 오랫동안 걸은 적이 없는 걸 여실히 보여 주는 삐쩍 마른 다리, 연방 아프다며 신음을 내는 허옇게 마른 입술. 하지만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것은 나니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마른 몸에 유치원생 아들을 업고 있는 어머니는 무척이나 지쳐 보였다. 아픈 딸을 보는 어머니의 심정이 오죽하랴. 밤낮으로 간호하면서 몸도 많이 지쳤을 것이고, 만만치 않은 수술비 걱정에 마음도 지쳤을 게다. 그러나 어머니가 정말로 걱정하고 힘들어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런 딸을 세상에 내 놓을 일이 제일 걱정이란다. 평생 저렇게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단다. 학교는 어떻게 다닐 것이며, 직장은, 결혼은……. 모든 것이 너무 막막하단다. 또한 자신들을 바라볼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고도 하셨다. 그래, 아직 세상은 장애인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힘든 곳이다. 사회 구조도, 사람들의 인식도 말이다. 우리는 얼마나 장애인을 이해하고 있을까?

『마티유의 까만색 세상』은 시각 장애인 아이, 마티유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반 지연이는 이 작품을 읽고 가장 좋았던 점이 우울하지 않아서란다. 장애인을 다루는 작품은 슬프고 우는 것이 많은데 이 작품은 전혀 우울하지 않고 오히려 밝게 그리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이 작품의 매력은 바로 그런 분위기에 있다. 표지부터 평온하다. 까만색 바탕에 강아지를 안고 미소 짓는 마티유의 모습이 알록달록한 선으로 그려져 있다. 마티유는 자신의 세상 속에서 그렇게 미소 지으며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장애인이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며 살아가는지를 화자인 마티유를 통해 매우 담담하게 보여 준다.

마티유는 앞을 볼 수 없는 시각 장애인이지만, 눈을 무려 서른세 개나 가지고 있다. 손가락, 발가락, 귀, 눈, 코, 입, 모든 감각 기관으로 세상을 만난다. 볼 수 없어도 아버지가 수염을 깎았는지 알 수 있고, 볼 수 없어도 민들레가 피어 있는 곳인지 전나무가 있는 곳인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손 감각을 통해 점자로 적힌 글을 읽기도 하는 것이다. 마티유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보다 더욱 상상력이 풍부하다. ‘보스무리 빛깔과 밤비스리 빛깔을 띤 물고기들’을 만들기도 하고 ‘방울새보다 더 귀여운 방그르르 색과 깃털보다 더 가벼운 포르르르 색과 호수보다 더 깊은 꼬르르르 색’을 생각하기도 한다. 또한 마티유는 부엌이든 학교든 얼마든지 갈 수 있다. 머릿속에 가고자 하는 곳의 지도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하면서 마티유는 절대로 기죽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냥개보다도 냄새를 잘 맡을 수 있는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며, 혼자서도 얼마든지 학교를 잘 갈 수 있다며 씩씩하게 걸어간다. 이런 마티유의 모습이 이야기를 신선하게 만든다. 또한 부모님께 어떤 선물을 받을지 기대하는 마티유의 모습이 이야기 전반에 그려져 있어 독자들도 같이 궁금해 하게 한다. 안내견을 선물로 받고 기뻐하는 마티유의 모습에 독자는 흐뭇하다. 강아지를 고르는 마티유를 보고 두 아이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오빠, 저 애 눈이 안 보이는 거야?” “아니, 내가 보기에는 아닌 것 같애……. 제일 예쁜 강아지를 골랐잖아!”

마티유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두 아이의 모습에 코끝이 찡했다. 이 책을 읽고 우리도 마티유의 방법으로 세상과 만나기로 했다. 장애인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먼저 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기 위해 눈을 감고 자기 자리로 찾아가기를 했다. 마티유처럼 우리 반이 그려진 지도를 머릿속 서랍에서 꺼내서 말이다. 교실 배치는 단순했지만 아이들은 매우 곤란해 했다. 잔걸음으로 하염없이 걷는 아이, 사물함에 부딪혀 아파하는 아이, 엉뚱한 곳에 가서 이성 친구를 안을 뻔한 아이도 있었다. 경험한 아이들의 소감을 들어봤는데, 창문으로 떨어질까 봐 겁이 났다는 아이도 있었고 어디가 어디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아이도 있었고 너무 답답해서 혼났다는 아이도 있었다. 보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봤자 오 분을 넘지 않는데도 이리 힘든데, 평생을 보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이번에는 마티유 방식으로 사물을 알아 보기로 했다. 보지 말고, 시각과 촉감과 후각을 사용해서 친구 알아맞히기를 했다. 눈을 감고 더듬더듬 거리며 친구 앞에 선 아이, 처음으로 친구의 얼굴을 자세히 만져 보았다. 이렇게 해서 누구인지 알아채는 아이는 흔치 않았다. 그만큼 우리는 보는 것에만 익숙했으니깐. 생전 처음으로 친구의 얼굴을 자세히 만지면서 친구의 볼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코가 얼마나 높은지 알았을 게다. 우리는 보았기 때문에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얼마나 많은 부분을 놓치면서 보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입으로 걷는다』는 누가 장애인이고, 누가 비장애인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다치바나는 자신의 힘으로 사지를 가눌 수 없기에 평생 누워서 남의 도움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다. 외출을 하려고 집 밖에 이동식 침대를 두고 누워 있다. 그곳에서 자신의 침대를 끌어 줄 사람을 기다린다. 외출에서 다치바나는 여러 사람을 만난다. 그러나 다치바나의 눈을 통해 바라본 사람들의 모습은 썩 정상적이지 않다. 입시에 괴로워하는 삼수생, 다치바나의 몸을 고칠 수 있는 신이 있다며 믿음을 전파하려는 광신도 아주머니, 자식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며 하소연하는 치매 노인, 왕따를 당해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 자신이 낸 세금으로 일 안하고 살아간다며 다치바나에게 화를 내는 장사꾼 아저씨 등, 비록 이들은 신체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정신적으로는 다치바나보다 더 나약하다.

장애라고 하면 신체 장애만을 떠올렸는데, 등장 인물들을 보면서 장애란 신체 장애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폐한 정신, 그것 또한 장애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신체 장애가 없는 사람을 정상인이라 여기며, 정상인이 신체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항상 도와 주는 입장에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 일반적인 생각에 작가는 반대를 표한다. 작가는 다치바나와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서로 어떻게 도움을 주고받는지 보여 준다.

이 작품을 읽고 우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에 대한 경험을 해 보기로 했다. 마침 도서관 개강식을 한 날이라 도서관 구경도 할 겸 두 명씩 짝을 지어 도서관에 갔다 오기로 했다. 한 명은 눈을 감고, 다른 한 명은 눈 감은 친구를 안내하면서 말이다. 돌아올 때는 입장을 바꾸기로 했다. 평소에는 아무 문제없이 가던 길, 오늘은 안내해 주는 친구가 있어도 넘어지고 부딪히고 야단법석이다. 나도 해 보고 싶어 눈을 감고 민재의 손을 잡았다. 한 발 한 발 떼기가 얼마나 겁이 나던지. 그 때 민재의 원래 짝지였던 재민이가 급하게 혼자 눈 감고 가다가 큰일이 날 뻔했다. 남녀 화장실 가리개용으로 세워두었던 판을 건드려 그 밑에 깔려 넘어진 것이다. 재민이가 왼쪽 팔에 깁스를 하고 있는 상태여서 더욱 큰일 날 뻔했다.

교실에 돌아와서는 경험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눈을 감고 갈 때는 너무나 무서웠단다. 특히 계단을 내려올 때는 엉덩이가 절로 뒤로 빠지더란다. 또 안내해 주는 친구가 너무 서둘러서 잘 알아듣지 못해 여러 번 넘어졌다는 거다. 그런데 우습게도 안내해 줄 때의 이야기를 해 보라니 친구가 너무 늦게 와서 답답하기도 했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헤맸다고 한다.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길인데도 이렇게 많이 넘어진 이유를 물어 보니 안내자가 불성실해서란다. 훌륭한 안내자는 눈을 감고 따라오는 사람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임을 아이들은 몸소 배웠다.

요즘에는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보다는 후천적인 질병이나 사고로 장애를 가진 사람이 많다고 한다. 내가 언제 장애인이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장애인을 이해하고, 더불어 살려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 두 권의 책과, 오늘의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앞장서는 우리 아이들이 되기를 희망한다.
신미희│선생님도 나이에 따라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격 수양을 더 해서 나이가 들어서는 인자하고 푸근한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과 신나게 노는 것을 제일 잘할 수 있기에 김해 영운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열심히 어울려 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