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8월 통권 제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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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옛이야기 세상 이야기]
처녀귀신과 밴댕이선비
――귀신 이야기와 현실, 또는 귀신을 보는 눈

서정오 | 2007년 08월

날도 덥고 하니 오늘은 귀신 이야기나 하나 해 볼까. 옛날 한양에 한 선비가 살았는데, 한번은 볼일로 먼 길을 가게 됐어. 가다가 날이 저물어 주막에 들었지. 아, 그런데 그 주막집 처녀가 문틈으로 이 선비 풍채를 보고 그만 첫눈에 반해 버렸네. 처녀가 어지간히 담이 컸던지, 그날 밤에 선비를 찾아가 자기 마음을 털어놨어.

“서방님, 낮에 서방님을 한 번 뵌 후로 그 모습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만약 저를 데려가 주시면 평생을 두고 모실 것이나, 그게 어려우면 하룻밤 말동무라도 되게 해 주십시오.”

제 발로 찾아가 이만한 말을 하자면 그 얼마나 큰마음을 먹었겠나.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용기를 내지 않았겠나. 이쯤 되면 그 정성에 탄복이라도 할 만한데, 이 선비는 생긴 것과 달리 소갈머리가 똑 밴댕이였던지 그걸 못 봐 줬네.

“이런 요망한 것이 있나. 천한 것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왔느냐? 어서 물러가거라.”

그쯤만 하고 말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 길로 안채에 찾아가서 또 호통을 한 바가지 늘어놨겠다.

“도대체 이 집 주인은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켜 놨기에 저토록 버릇이 없는가? 처녀의 몸으로 장부 방에 들어온 것도 해괴하거늘, 할 말 못할 말을 가리지 않으니 양반을 우습게 보지 않고서야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야단을 쳐 놓으니 참 기가 막히는 일이로세. 처녀는 선비한테 무안을 당한 것만 해도 쥐구멍을 찾을 지경인데, 부모한테 야단맞고 온 동네 남우세까지 하고 보니 이러고도 살 마음이 있을 텐가. 그만 대들보에 목을 매어 숨을 끊고 말았구나. 그 일이 있고 나서 선비는 볼일을 다 보고 한양으로 돌아가게 됐는데, 가는 길에 스님 한 분을 만났어. 스님이 선비 얼굴을 이리 보고 저리 보고 한참 뜯어보더니 하는 말이,

“잘 생긴 얼굴에 살기가 끼었으니 해괴합니다. 죄가 있으면 씻어내고 잘못이 있으면 빌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크게 뉘우칠 날이 있을 것입니다.”

하거든. 그래도 선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한양으로 올라갔어. 한양 올라가서 곧 벼슬을 얻었는데, 무슨 벼슬인고 하니 장군 벼슬을 얻었어. 마침 나라에 난리가 나서 군대를 이끌고 싸움터에 가게 됐지. 적군과 마주쳐 진을 치고 나서, 큰 싸움을 하루 앞두고 잠을 잤거든. 자는데 꿈 속에 그 처녀가 나타났어. 그때 대들보에 목매달고 죽은 그 처녀 말이야. 나타나서 하는 말이,

“서방님, 그때 저를 잘 깨우쳐 주신 보답으로 한 가지 귀띔을 해 드리러 왔습니다. 내일은 물가에서 싸움을 벌여야지, 만약 벌판에서 싸움을 벌이면 반드시 질 것이니 명심하십시오.”

이런단 말이야. 그것도 한 꿈에 내리 세 번을 나타나 똑같은 말을 하니, 이걸 그냥 지나칠 수 없겠거든. 그래서 그 다음날, 처녀가 시킨 대로 물가에서 싸움을 벌였어. 그래서 이겼느냐고? 천만의 말씀. 단박 지고 말았지. 벌판에서 싸웠더라면 이겼을 것을, 물가에서 싸우는 바람에 진 거야. 싸움에 져서 죽을 때, 언뜻 보니 공중에 그 처녀가 머리를 풀고 나타나 크게 웃더래.

“아하, 꼴 좋다. 그래, 남의 눈에 눈물 내고 네 눈에 피눈물 나지 않을 줄 알았더냐?”

하면서 말이야.

이 이야기는 신립 장군에 얽힌 전설 중 하나이다. 주로 중부 지방에서 전승되는데, 여러 유형이 있지만 공통된 줄거리는 버림 받고 원한 품은 처녀의 훼방으로 신립이 탄금대 싸움에서 크게 진다는 것이다. 각편에 따라서는 신립이 처녀를 만날 때 괴물 또는 간부 퇴치 화소가 나타나기도 한다. 비슷한 이야기로, 양반 댁 도령을 사모한 이방 딸이 상사병에 걸렸다가 끝내 거절당하고 죽은 뒤 상사뱀이 되어 그 집 식구들을 괴롭힌다는 조월천 전설이 있다. 조월천 이야기 또한 신립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양반인 남자가 처녀를 배척하는 까닭은 신분 차이에 있다. 즉 ‘상것’이 감히 양반에게 마음을 두니 괘씸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을 품은 여인이 끝내 자신을 버린 남자를 용서하지 못하는 비극을 만나지만, 이것은 단순히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여자의 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거꾸로, 양반 집 아낙이 여염의 남정네에게 마음이 끌렸다면 어땠을까? 그런 경우에는 전혀 다른 까닭으로 고난을 겪을 것이다. 어쩌면, 남자가 아낙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고서야 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이 이야기가 말하는 한은 여자의 한이라기보다 서민의 한이요 약자의 한이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을 향한 절절한 저항을 담은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서 양반 선비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은 처녀는 박절하게 내몰리는 신세가 된다. 존재 자체를 거부당하는 것이다. 그 까닭은 딴 데 있는 게 아니라 신분의 차이에 있다. 선비가 거부한 것은 처녀의 사랑은 물론 인간의 존엄성까지 포함된다.(강진옥 외, 『한국구비문학의 이해』, 131쪽. 월인, 2002년.) 같은 맥락에서 여인의 한이 끝내 상대 남자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은, 단순한 복수라기보다 자신의 존재와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나라 귀신 이야기에는 크게 네 가지 꼴이 있다. 첫째 꼴의 이야기에서 귀신은 사람을 도와 준다. 과거 문제를 알려 주거나 어려운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을 주거나, 가난한 집 살림을 보태 주기도 한다. 이 경우 귀신은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 줄 뿐, 특별한 대가는 바라지도 요구하지도 않는다. 둘째 꼴의 이야기에서 귀신은 주로 장난을 한다. 귀신들끼리 어울려 놀거나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되풀이하여 사람을 놀라게 하지만 별다른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이 경우에도 귀신은 저희들끼리 놀거나 사람과 친해지려고 할 뿐, 다른 별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셋째 꼴의 이야기에서 귀신은 한을 품고 나타난다. 살아생전 풀지 못한 한이 있기 때문에, 혼백이 저승에 들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다가 산사람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이때 귀신이 사람에게 바라는 바는 자신의 한을 풀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제풀에 놀라 도망가거나 정신을 잃기 때문에 이 소망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주 담이 큰 사람이 나타나 한을 풀어 주기 전까지는 그렇다. 경상도 밀양 지방에서 전해 오는 ‘아랑 전설’이 이런 이야기의 대표가 되는 것인데, 이 경우에도 귀신은 사람을 굳이 해치려고 들지 않는다. 자신의 한을 푸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한이 풀어지면 고분고분 물러난다. 한을 풀지 못하더라도 상대가 간절하게 호소하거나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면 단념하고 물러서는 것이 보통이다. 넷째 꼴의 이야기에서 귀신은 허세를 부린다. 사람이 자신을 두려워하고 놀라기를 바라지만, 사실은 그다지 용감하지 못해서 담이 큰 사람이 나타나 야단을 치면 주눅이 들어 도망가기 일쑤다. 이때 귀신이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차려 준 음식을 받고, 사람들에게서 인정받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뿐으로, 만약 사람들이 자신을 섬겨 주지 않는대도 앙심을 품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렇게 살펴보니 우리 귀신은 매우 인간답다는 것을 알겠다. 악하거나 독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인정 많고 마음이 여린 편이다. 한이 맺혀 풀기를 바라지만, 그 한이 풀리는 순간 얌전하게 물러선다. 슬퍼하며 잘 울지만, 때때로 장난도 치며 허세도 부린다. 우리 이야기에 유독 처녀귀신이 많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처녀는 여자이면서 나이가 어리니 약자 중의 약자이다. 옛글을 읽다 보면 귀신을 보는 눈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지배층이나 식자층에서는 귀신을 미신에서 비롯된 헛된 망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말하자면 어디까지나 물리쳐야 할 대상이지, 거두어들일 값어치는 없다고 본 것이다. 귀신은 ‘있다고 하면 있고 없다고 하면 없는’ 것이란 게 이 경우 대표가 될 만한 시각이다.

일반 백성들은 귀신을 자신의 삶 가까이 두었다. 멀리하기보다는 동일시했고, 미워하기보다는 오히려 가엾어했다. 물론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그 두려움은 분위기에서 오는 낯설음일 뿐이었다. 자신(또는 자신과 동일시된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닥칠 해를 두려워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들이 귀신 이야기를 좋아하는 심리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정말로 귀신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무서운 분위기를 즐기는 것이다. 아이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를 때 가장 난감한 것은, 우리 옛이야기에 무서운 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으스스한 귀신 이야기라도 다 듣고 나면 무섭다기보다는 슬프거나 안타깝다는 느낌을 줄 때가 많으니 말이다. 요새 들어 끔찍한 장면이 걸러지지 않은 채 국적도 모를 희한한 귀신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는데, 이건 정말 아이들에게 해로울 것 같다.

※ 이 글에 실린 그림은 『장화홍련전』(김윤주 그림, 김회경 글, 한겨레아이들, 2007)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편집부.
서정오│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이 지역 초등학교에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1984년 『이 땅의 어린이 문학』에 소년 소설을 발표하면서 동화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특히 옛이야기를 새로 쓰고 들려주는 데 애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옛이야기 들려주기』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옛이야기 백가지』 ‘옛이야기 보따리’ 시리즈 등 쓰고 펴낸 책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