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8월 통권 제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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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작가 이야기]
자유로움과 명랑성을 담고 싶다

김세현 | 2007년 08월

<1>

백석 시인은 1957년 4월 동화시집 『집게네 네 형제』를 통해 「준치가시」를 발표한다. 1956년 5월과 1957년 6월에는 『조선문학』을 통해 동화의 단순성은 큰 시정(詩情)에서, 철학에서, 가장 큰 기교에서 오는 것임을 역설한다. 그래서 묘사의 단순화와 음악적 율동성과 운율적 구조의 필요를 강조한다. 그리고 웃음의 철학에 흥건히 젖을 수 있도록 풍자와 해학의 철학을 해득하는 수련이 필요함을 이야기했다.

「준치가시」는 운명에 대해 농담하고 익살을 부린다. 찍어누르는 현실의 갑갑함과 실의를 시인답게 벗어던지고 「준치가시」를 뽑아 올린다. 시나위 가락의 흐드러짐으로, 산조의 몰아가는 신명으로, 휘몰이의 절정으로 준치와 더불어 실컷 놀다, 느린 마감으로 잣아 드는 한바탕 굿으로 구조를 세웠다. 그런 것이 아닐지……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시인이 말한 단순성과 익살의 의미를 통해 준치가시의 형상을 구하고……


<2>

……아울러 한국적인 미를 조형적으로 헤아리려 노력했다. 한국적 이미지와 정서를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품고서 내 나름으로 문화 유산을 찾아 발품 파는 즐거움을 가져 왔다.

은근함 속에 스민 구수한 멋과 익살, 바람이 닿는 곳 어디나 생명으로, 기운으로, 일구어 냈던 선인들의 손길. 모질고 굳센 듯 못나고 덜된 듯 비균제적이고 자연순응적으로 무심하게 고요와 익살을 끌어냈던 맑은 심성. 기교를 버려 현란함보다는 질박 단순한 멋을 아꼈던 대교약졸(大巧若拙)의 그 자유로움과 명랑성을 닮고 싶었다.

내 붓을 이끌었던 시인의 마음과 전통 문화의 아름다움은……

<3>

……내 지금의 열렬함으로 닿을 수 있는 경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끼고 그리워함은 결코 부족함이 없다.

맑은 날이면 볕이 잘 드는 곳에 물 떠놓고 옷을 풀어 헤치고 질펀히 앉아 먹을 갈았다. 그리고자 하는 것을 오랜 시간 마음속에 담고 있다가 비로소 하나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면 바로 붓을 들어 며칠이고 쉬지 않고 그려 나갔다. 처음에는 대상에 대한 생각이나 의도에 따라 화면을 구성해 나가지만 작업이 일정한 정도에 이르면 그림 자체가 새로운 것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면 대상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고 힘차고 단순한 필선과 질펀한 색채만 남아 평면적 자유로움과 독창성을 향해 내면이 폭발하는 즐거움 가운데 있게 된다.

<4>

준치가시는 닮음과 닮지 않음 사이로 헤엄치게 하려 했다. 사실에 천착해 들어가다 어느 순간 사실이 사라지고 과장과 생략, 때로는 왜곡이 남았다. 측면이 주된 표현이나 두 눈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과장하여 정면과 측면의 인상을 결합시켜 표현했다.

평면성에 기초를 두고 졸함으로 생각을 모았다. 기교적이고 복잡한 꾸밈의 욕구가 생겨나면 초심으로 물리치고 못나고 덜된 단순함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거듭하다 보니 생활과 그림을 하나의 단순함으로 가져가는 것이 살아가는 모든 존재의 본성에 닿는 일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껄껄……그냥 한번 웃었다.

<5>

『준치가시』를 그리면서 전통을 바탕으로 한 현대적 표현에 골몰했다. 아름다움의 진정성은 그 시대를 담고 있다. 내용뿐 아니라 형식도. 전통으로 들어가 한국적 미감과 특질을 익히려 노력했다면, 옛것에 머물지 말고 담대하게 깨치고 나와 지금의 시대를 담아낼 독창적 표현 형식을 찾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그림 그리는 일에 법은 없다. 그러나 전통에 대한 정성스런 이해와 기본 공을 갖추는 것은 자신만의 우물을 파는 데 꼭 필요한 것이 아닐는지……. 그런 이후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꽃을 피우듯, 전통의 바탕 위에 시대의 벽을 밀어 부딪는 힘을 가질 수 있고 그 접점에서 새로움이 창작된다는 생각이다.


그리는 일은 매번 새로운 형식과 색을 필요로 하고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연이 변하듯이 말이다. 비 그치면 뜰 앞에 파초를 심고 넓은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더욱 가깝게 즐기고 싶다.

이천칠년 칠월 장마 중에 세월리 작업실에서
김세현│대학에서는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동양화와 수묵화 작업에 더 천착하면서 우리 조상들의 삶과 정신, 그림 그리던 방식을 그림책으로 계승하고자 애씁니다. 여러 걸개그림들과 이른바 민중 미술 활동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따뜻한 필치와 뛰어난 데생으로, 글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성과 시대상을 잘 나타내 보여 줍니다. 그림 그린 대표적인 어린이 책으로 『만년 샤쓰』와 『부숭이는 힘이 세다』 『준치가시』를 꼽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