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통권 제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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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보물을 찾아 떠난 여행]
손 없는 색시 <3>
――버림받은 딸의 자기 실현

김환희 | 2007년 11월

유럽과 우리 나라의 「손 없는 색시」에서 딸이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손이 잘리는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그것은 그림 형제 본에서처럼 아버지의 물질적인 욕망일 수도 있고, 유럽 구전 설화 본에서처럼 아버지의 근친상간적인 욕망일 수도 있고, 우리 설화에서처럼 부녀 사이 유대감을 시기한 계모의 질투와 소유욕일 수도 있다. 심리학자들은 아버지에게 딸의 손을 자르라고 꼬드기는 그림 형제 본의 악마와 우리 설화 속 계모를 모두 한 아버지와 한 어머니의 부정적인 모습으로 풀이한다. 내 생각에도 그러한 견해는 일리가 있는 것 같다. 「백설공주」와 「헨젤과 그레텔」의 계모는 1812년에 출간된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이야기』 초판본에서는 모두 친어머니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손 없는 색시」 설화에서 아버지 또는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딸은 손이 잘린 상태에서 굶주림과 목마름과 절망감과 싸우면서 홀로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하필 손 또는 팔을 자른 것일까? 다른 나라에서는 혀와 발까지 자르는 이본이 있기는 해도 대부분 절단되는 부위는 한 손 또는 두 손이다. ‘손 없는 색시’의 손이 지닌 상징성에 대해서는 몇몇 학자들이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정신의학과 교수인 알랜 치넨은 손을 절단한다는 것은 거세 개념 또는 성년 의식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 신체의 한 부분을 절단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며 성교를 불가능하게 하고 또 여러 가지 병원균에 무방비 상태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1) 제주도의 「손 없는 색시」에 대해서 분석심리학적인 해석을 시도한 국문학자 김헌선도 ‘손 절단’ 모티프를 여성의 꿈에 구현된 거세 불안과 근친상간의 심리 상태로 풀이한다. 즉 “여성들의 성기를 질이 막히도록 꿰맨 뒤에 이어서 음핵과 음순을 절단”하는 할례 의식과 연계지은 것이다.2)

이러한 남성 학자들의 해석과는 달리 에스테스나 이유경 같은 여성 심리학자들은 ‘손 절단’을 여성이 온전하게 살 수 있는 능력, 즉 소통과 수행과 치유의 능력을 잘라 낸 것으로 풀이한다. 에스테스는 “심리의 손이 잘린 여성은 자기 위안이나 자기 치유의 수단을 상실한 채 다른 사람들이 걸어온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3) 또 이유경은 결국 “‘손’이 없으면 외부의 것을 취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게 되고, 또한 내면에서 생겨나는 것을 외부의 무엇으로 실현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손’의 상실은 내부와 외부의 세계를 소통하면서 구체화할 도구를 상실한 것에 해당한다.”고 말한다.4) 다시 말하여 에스테스나 이유경은 주인공의 손이 잘렸다는 것은 한 여성으로서 ‘홀로 서기’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능력을 상실하고 지하 세계에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본 것이다.

「손 없는 색시」를 입말로 전한 대부분의 화자들이 여성들이었고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여성인 탓인지, 치넨이나 김헌선보다는 에스테스와 이유경의 해석이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만약에 ‘손 절단’이 거세 또는 할례 의식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손 없는 색시’가 손이 잘리고도 상실하지 않은 여성적인 기능이 성 관계와 임신이라는 사실을 해석할 길이 막연해진다. 부모가 딸의 손을 절단한 것은 딸을 자신의 의지대로 독립적으로 살 수 없게 만든 것 또는 딸이 자신에게 다시는 매달리지 못하도록 무참히 버린 것으로 풀이해야 조금 더 이치에 닿는 것 같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홀로 설 수 있는 능력도 지니지 못한 ‘손 없는 색시’가 어떻게 삶을 견딜 수 있었을까? 그림 형제의 ‘손 없는 색시’는 하느님과 자연의 품에 안김으로 살 길을 발견한다. 굶주림과 피곤에 지친 소녀가 정원에 이르렀을 때 하얀 옷을 입은 천사가 나타서 물을 건네주고 배나무의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도록 돕는다. 또 그곳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돌보아 줄 남자를 만난다. 한국의 ‘손 없는 색시’의 삶에는 그 어떤 초월적인 조력자도 개입하지 않는다. 굶주림과 목마름에 지친 소녀가 글방 도령을 과일 나무 아래서 만난 것은 거의 우연에 가깝다. 그런데, 유럽에서나 우리 나라에서나 ‘손 없는 색시’가 배우자를 만나는 공간이 과일 나무, 특히 배나무 근처라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이다.

에스테스는 배의 상징성에 대해서 매우 상세히 설명한다. “배는 지하 세계를 여행하는 이들의 허기를 덜어 주기 위한 과실이다. 전통적으로 배는 사과, 무화과, 복숭아, 그리고 알 등, 안팎이 있고 그 안에 나중에 자라서 새 생명이 될 잠재력을 지닌 씨, 즉 생명체 속에 생명체를 담고 있는 여러 가지 물체와 같이 자궁의 상징이었다. 이 이야기에서 배는 원형적으로 새 생명의 탄생, 새로운 자아의 씨를 상징한다.”5) 이러한 속성 이외에도 배에는 물이 많기 때문에 물의 치유력과 여성성을 떠올릴 수 있다. ‘손 없는 색시’가 배를 먹는다는 것은 자연의 어머니 품에서 그 자양분을 섭취해서 상처를 치유하고 삶을 새롭게 시작할 힘을 얻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손 없는 색시’는 배나무에서 자신을 돌보아 줄 남자를 만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 새로운 삶은 온전한 자기를 실현하는 과정의 시작이지 끝은 아니다. ‘손 없는 색시’와 왕(또는 글방 도령)의 만남을 현실적인 차원과 심리적인 차원에서 조금 달리 해석할 수 있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볼 때, 이 만남은 부모의 품을 떠난 여성이 홀로 설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남편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심리적인 차원에서 볼 때, 분석심리학자들이 풀이하듯이, 두 남녀의 만남을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눌려 살았던 한 여성이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 자신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남성성인 아니무스(animus)를 발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손 없는 색시’가 남편 또는 아니무스와 맺고 있는 관계는 유럽 설화에서든 우리 설화에서든 불완전한 형상을 하고 있다. 우리 설화에서 글방 도령은 ‘손 없는 색시’를 당당하게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게 병풍 뒤에 숨겨 놓고 아기처럼 먹이고 씻기면서 돌보았던 것이다. 그림 형제 판본에서 왕은 주인공을 궁전으로 데려가 은 손을 만들어 주고 결혼을 한다. 왕은 불구인 아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없어서 쓸모도 없는 가짜 손을 만들어 준 것일 수도 있고, 유럽 사회에서 왕은 온전한 신체를 지닌 여자하고만 결혼할 수 있기 때문에 은 손을 만들어 준 것일 수도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왕이나 글방 도령은 모두 가부장제 사회의 가치관에 정면 도전할 용기와 배짱은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능력을 지니지 못한 여자와 사랑하는 여자의 불완전한 모습을 당당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남자가 우연히 만나서 하게 된 결혼이 ‘고생 끝, 행복 시작’이 될 수는 없다. 스스로를 돌볼 능력이 없는 여인에게 남편이 떠난 시댁은 더 이상 무풍지대가 아니다. ‘손 없는 색시’는 아들을 낳았지만 다가오는 시련 앞에서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많은 이본에서 시어머니가 자애로운 인품을 지닌 것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그 어머니 역시 조작된 편지에 쓰인 아들의 명령을 거부하지는 못한다. 자신의 목숨도 이어 갈 능력이 없는 ‘손 없는 색시’에게 아이까지 딸렸으니 그야말로 죽음의 땅으로 추방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서 구전되는 설화에서 ‘손 없는 색시’는 대부분 쌍둥이를 낳았기 때문에 시댁에서 내쫓긴 뒤 한 아이는 등에 업고 한 아이는 가슴에 안고 숲 속을 헤맨다.

절망의 늪에서 ‘손 없는 색시’가 구원을 받는 과정은 그림 형제 판본과 한국 구전 설화에서 매우 다르다. 그림 형제 판본에서는 주인공이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리자 천사와 하얀 옷 입은 처녀가 나타나서 숲 속에 은둔처를 마련해 주고 칠 년 동안 보살펴 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림 형제 판본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전해지는 대부분의 구전 설화에도 성모 마리아, 천사, 베드로, 요한, 바울, 라자로와 같은 성자들이 구원자로 등장한다. 내가 읽어 본 유럽의 「손 없는 색시」 설화들은 대부분 그 밑바탕에 기독교 정신이 짙게 깔려 있지만, 성모 마리아나 성자 대신에 나이 많은 노인들이 조력자로 등장하는 설화도 몇 편 있었다.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려다 아이를 떨어뜨려 망연자실한 주인공 앞에 어느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가 나타나서 강물에 손을 넣어 아이를 건지라고 일러 준다. 또 아프리카와 아랍의 「손 없는 색시」 설화에서는 주인공의 은혜를 입은 뱀이 손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일본 설화에서는 주로 부처님 또는 스님이 약물이 있는 곳을 가르쳐 준다.

하지만 우리 설화에서는 초월적인 조력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손 없는 색시’가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고 물속에 팔을 넣자 저절로 한 순간에 손이 다시 새로 나온다. 까치, 동자, 꿈 속 어머니, 뇌성벽력, 쌍무지개가 손을 재생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본들도 있지만, 그러한 존재들은 손을 치유하는 데서 보조적인 역할을 할 따름이다. 요컨대, 우리 설화에서 ‘손 없는 색시’의 손을 치유하는 신비의 약물은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는 주인공의 강렬한 모성애라고 말할 수 있다. 분석심리학자들은 ‘손 없는 색시’의 아이를 현실 속 아이가 아니라 여성 내면에 존재하는 ‘심리의 아이’로 해석하기도 한다. 즉, ‘손 없는 색시’가 아이를 구하려 한 행위를 가부장제 사회에서 깊은 상처를 입은 여성이 자신의 내면에서 새롭게 태어나려는 창조적인 자기를 살리려는 몸짓으로 풀이한다. 한국 여성의 모성애는, 「나무꾼과 선녀」와 「백조처녀」를 비교하면서 살펴보았듯이, 외국 여성들에 비해 유별나게 강렬하다. 모성애란 양면성을 지닌 것이어서 자기 성찰이 따르지 않으면 소유욕으로 변질되기 쉽다. ‘현실 속 아이’를 향한 모성애와 ‘내면 속 아이’를 향한 모성애가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공생의 길을 걸을 때 비로소 한국 여성의 짙은 모성애는 자신과 아이의 삶을 모두 풍요롭게 하는 생산적인 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을 것이다.

스무 편이 넘는 외국 설화와 우리 나라의 「손 없는 색시」를 비교하면서 내가 우리 설화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은 대단원이다. 독일의 ‘손 없는 색시’들은 신성한 존재의 도움으로 손이 재생된 뒤 숲 속 오두막에 은둔한 채 천사 또는 성자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고요하게 산다. 특히 그림 형제 판본에서 ‘손 없는 색시’는 육신의 아버지에게서 버림받고 영혼의 아버지 품에서 안식을 얻은 것이다. 일본의 「손 없는 색시」는 우리 설화와 매우 비슷하지만 손이 재생된 뒤 모자가 주로 절에 머물면서 지낸다는 점이 다르다. 반면에, 한국의 ‘손 없는 색시’들은 대부분 마을로 내려가서 동네 사람들과 어우러져 주막의 허드렛일을 돕거나 길쌈을 하면서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면서 산다. 마고할미의 집에 머무는 주인공도 베 짜는 일을 능숙하게 해낸다.

또 ‘손 없는 색시’의 남편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읽어 보아도 우리 설화의 마무리가 매우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배나무 아래서 ‘손 없는 색시’를 처음 만났을 때 글방 도령은 가부장적인 유교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뛰어 넘지 못해 자신의 사랑에 자신 없던 변변치 않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글방 도령은 아내와 아들을 잃게 되었을 때 선비의 허울을 과감히 던져 버리고 엿 장수, 붓 장수, 길쌈 도구 장수가 되어 세상을 떠돌면서 산다. 과거에 급제한 글방 도령이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수직적인 위계 질서에서 가장 높은 위치로부터 가장 낮은 위치로 자발적으로 내려간 것이다. 다른 한편, 그림 형제 판본에서 왕은 아내와 아들을 찾을 때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칠 년 간 하나님의 은총으로 목숨을 기적적으로 이어 가면서 지난한 여행을 한 끝에 아내를 찾는다. 그러한 왕의 모습보다는 등짐 장수가 되어 민중의 세계로 들어가 자신의 힘으로 가족을 되찾는 글방 도령의 모습이 훨씬 진취적이고 아름답다. 여성과 남성의 자기 실현에 초점을 맞추어서 그림 형제 판본과 우리 민중의 옛이야기가 지닌 가치를 저울질할 때 우리 것을 더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1) 알랜 B. 치넨, 공경희 옮김, 『젊은 여성을 위한 심리동화』, 황금가지, 1998, 160쪽.
2) 김헌선, 「제주도 <손 없는 색시>의 각 편 비교와 여성 심리적 해석」, 『탐라문화』 25호, 2004, 98쪽
3) 클라리사 P. 에스테스, 손영미 옮김,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고려원, 1994, 433쪽.
4) 이유경, 「민담 <손 없는 색시>를 통한 여성 심리의 이해」, 『심성연구』 21 : (1), 2006, 21쪽.
5) 에스테스의 책, 445쪽.

※ 본 글에 실린 그림은 포드(H.J. Ford)가 「한손이(The One-Handed Girl)」라는 아프리카 민담에 대해 그린 것입니다. 이 민담이 수록된 책과 인터넷 사이트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Lang, Andrew, ed., The Lilac Fairy Book, 1910 New York: Dover, 1968.
김환희│미국 남가주 대학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한 후 지난 십여 년 동안 서울과 수도권 여러 대학에서 아동문학, 전승문학, 비교문학 등 다양한 문학 강의를 해 왔습니다. 어린이와 어른,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문학을 자유롭게 공부합니다. 지금은 ‘옛이야기’를 화두로 삼아 우리 나라와 다른 나라의 옛이야기를 비교하면서 우리 옛이야기가 지닌 보편성과 특수성을 살펴보고 옛이야기의 현대적인 변용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 『옛이야기의 발견』과 『국화꽃의 비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