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통권 제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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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읽었어요]
바닷가에서

최종득 | 2007년 11월

“선생님. 날씨도 너무 좋고, 바람도 시원한데 우리 바닷가에 가면 안 되나요? 1학기 때 선생님이 바다 보러 간다고 약속해 놓고 바빠서 못 갔잖아요. 오늘 가면 안 돼요? 예?” 현빈이가 1학기 때 약속한 것을 용하게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럴 때 난 참 난감하다. 내가 강조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약속을 했으니 안 지킬 수는 없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수업 시간에 바닷가로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편하게 아이들이랑 바닷가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놀고 싶지만 어디 대한민국의 교사가 그럴 수 있는가?

얼른 국어 책을 꺼냈다. 살펴보니 2단원 공부할 내용이 ‘좋아하는 시를 분위기에 맞게 낭송하는 것’이었다. 순간 바닷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에 관한 시를 낭송하면 되겠다는, 나름 옹색한 생각이 들었다. 내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한테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 오늘 국어 수업은 바닷가에서 하자.”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벌써 복도에서 신발을 챙기고 있었다. 운동장에서 잠깐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하고 나는 책꽂이에 꽂혀 있는 안학수 동시집 『낙지네 개흙 잔치』를 챙겼다. 혼자 읽으면서 미리 표시해 두었던 동시 가운데 오늘 분위기에 맞을 것 같은 동시 세 편을 급하게 복사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바다로 출발하였다. 5분만 걸으면 바다에 갈 수 있는 거리인데, 길가에 핀 코스모스와 강가에 자란 갈대에 눈이 팔려 15분이나 지나서야 바다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바다를 보자 눈 오는 날 강아지처럼 좋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서로 부둥켜안으며 좋아했다. 사실 바다가 가까이 있어도 요즘 아이들로서는 마음 놓고 바다에서 놀기가 참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감상에 젖고 있는 사이 아이들은 갯벌에 내려가 고둥도 줍고, 게도 잡으면서 즐겁게 놀고 있었다. 큰 갯돌을 뒤집어 그 밑에 있는 게를 서로 잡으려고 밀치기도 하고, 멋진 소라 껍데기를 주워서 귀에 대고는 파도 소리가 들린다고 자랑도 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바다에 익숙해질 때쯤 아이들을 한 곳에 불러 모았다. 모두 다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자세로 앉게 하고는 「개펄 마당」 「갯돌」 「참갯지렁이」, 이렇게 시 세 편을 나누어 주었다. 먼저 각자 시 읽는 시간을 가졌다. 조용히 바위를 때리는 파도 소리, 저 멀리 갈매기 울음 소리, 그리고 바다 앞에 앉아 시를 읽는 아이들의 소곤거리는 소리가 너무 잘 어울렸다. 혼자서 읽고 난 후 다 같이 큰 소리로 「개펄 마당」을 낭송했다.

밀릉슬릉 주름진 건 / 파도가 쓸고 간 발자국, / 고물꼬물 줄을 푼 건 / 고둥이 놀다 간 발자국.
스랑그랑 일궈 논 건 / 농게가 일한 발자국, / 오공조공 꾸준한 건 / 물새가 살핀 발자국.
온갖 발자국들이 모여 / 지나온 / 저마다의 길을 펼쳐 보인 개펄 마당.
그 중에 으뜸인 건 / 쩔부럭 절푸럭 / 뻘배 밀고 간 할머니의 발자국, / 그걸 보고 흉내낸 건 /
폴라락 쫄라락 / 몸을 밀고 간 짱뚱어의 발자국. (「개펄 마당」 전문)


바닷가 갯벌을 자세히 살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갯벌에 난 수많은 무늬를. 땅에만 붙어서 살 것만 같은 고둥이 지나가면서 어지럽게 그어진 선, 몸이 가벼워 지나간 흔적도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은 게가 남긴 총총한 발자국, 군데군데 도장처럼 찍힌 새의 묵직한 발자국, 작은 물고기가 이리 저리 헤엄친 자국들. 그냥 멀리서 바다만 바라보면 볼 수 없는 수많은 흔적들이 갯벌에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이들은 이 시를 참 좋아했다.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본 갯벌의 모습이 시에 잘 나타나 있고, 흉내 내는 말이 재미있게 표현되어 읽기에도 좋다고 한다. 갯벌에서 게도 잡고, 바지락도 캐고, 고둥도 줍고 한 것이 이 시를 보다 더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리라. 다음에는 「갯돌」을 같이 읽었다.

뾰룩뵤룩 뾰루지 / 따개비는 부스럼
찌덕지덕 생딱지 / 눌어붙은 굴딱지
새까맣고 얼룩진 / 울퉁불퉁 못난이
그래도 그 품에 / 아기 달랑게를 품었다.
그래도 그 등에 / 꼬마 갯강구를 업었다. (「갯돌」 전문)


바닷가에 있는 돌이 이 시를 들으면 참 행복해 할 것이다.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는 못 생기고 보잘 것 없는 갯돌한테 의미를 부여한 시인의 따뜻한 눈을 아이들도 느끼는지 시가 참 따뜻하고 좋다고 한다. 그러면서 조금 앞에 자기는 아무 생각 없이 돌 위에서 장난치고, 돌을 뒤집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아기 달랑게와 꼬마 갯강구의 보금자리를 빼앗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이런 미안한 마음을 담아 갯돌과 아기 달랑게, 꼬마 갯강구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갯돌」을 한 번 더 낭송했다. 마지막으로 「참갯지렁이」를 다 같이 소리 내어 읽었다.

진흙 속에 살아도 / 나는 안다.
점점 흐려지는 수평선 / 그 길이가 몇 리인지,
자꾸 탁해지는 바닷물 / 그 깊이가 몇 길인지,
갈수록 좁아드는 갯벌 / 그 남은 넓이도 얼마인지 / 다 안다.
길쭉한 내 몸은 줄자. / 총총한 지네발 눈금으로 / 똑바로 재어 보아 / 아주 잘 안다.
(「참갯지렁이」 전문)


처음에 읽을 때는 분명히 큰 소리로 읽었는데 끝나갈 때쯤에는 소리가 작아진다. 시를 읽으면서 아이들도 시의 분위기를 한껏 느끼는 것 같았다. ‘갯지렁이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을까? 아니면 나처럼 바다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까?’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광일이가 한마디 한다.

“선생님, 학교 올 때마다 바다를 보는데 바닷물이 자꾸 더러워져요.” 광일이 말을 듣고 보니 바닷물이 그리 맑지가 않다. 국가에서 지정한 청정 해역이 이 정도면 다른 바닷물은 더 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과 좀 더 이야기를 깊게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어 시간 두 시간이 다 지났기에 바다를 멀리하고 교실로 돌아오는 내내 아이들도 마음이 무거운지 장난을 치지 않았다.

다행히 다음 시간이 도덕 시간이어서 아이들과 자연을 어떻게 이용하면 더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잘 보전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자연을 개발해 사람이 살아가는 데 보다 편리하게 변화시키는 것이 좋을지 서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였다. 나름대로 이유와 근거를 들어 자기 생각을 말하는 아이들한테 조심스럽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자연을 개발하는 것도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전하는 것도 둘 다 중요해요.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욕심 때문에 아무 잘못도 없는 동물이나 식물들이 피해를 입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아이들과 다시 한 번 「참갯지렁이」를 읽었다. 참갯지렁이가 갯벌에서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를 마음으로 빌었다.

이 책은, 거제도에 사는 우리 아이들같이 바닷가 아이들한테는 참 의미 있는 시집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바다를 볼 때 그냥 아름다운 푸른색 바다가 아니라 조개, 고둥, 게, 갯지렁이, 낙지, 갯강구, 갯가재가 서로 어울려 열심히 살아가는 삶의 터전인 바다로 생각해 주길 바란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머리로 대충 생각하는 바다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스스로 느끼는 바다를 마음에 담아가길 바란다.

“소라가 기어간다. / 고불고불 지름길 / 소라가 간 길을 따라 가 보니 / 두 마리가 만나 있었다.”(「소라」) 동익이는 바닷가에 갔다 와서 이 시를 썼다. 동익이는 다음에 어른이 되어서도 분명히 소라 두 마리가 행복하게 살고 있을 바다를 생각할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동익이처럼 자기만의 바다를 만들기 바란다. 그래서 다음에 어른이 되어 힘들거나 어려울 때 바다를 바라보며 힘을 얻을 수 있기 바란다. 자기만이 느끼는 자기만의 바다를 우리 아이들이 품기를 나는 꿈꾼다.
최종득│거제도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시 공부를 함께 하며, 산과 바다를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친구 같은 교사가 되기 위해 즐겁게 놀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거제도의 아이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선생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