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통권 제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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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세상 이야기]
세밀화로 그린 자연책들

손영운 | 2007년 11월

석류

아이와 함께 집 근처 산책로를 걸어가는데, 아이가 갑자기 손가락으로 나무를 가리키며 “엄마, 저 나무 이름이 뭐야?”라고 물었을 때,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 어’만 하며 허둥거리며 당황했던 적이 많았을 것이다. 이런 일은 갯벌에서, 산길에서, 논두렁에서, 냇가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호기심을 많이 가지는 아이일수록 질문의 횟수는 많고, 범위가 넓다. 아이 교육에 관심이 많은 부모일수록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한 마음앓이를 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도 한 때 그런 사람이었다. 이 글이 호기심 많은 아이들과 그 부모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기 바란다.

추운 겨울을 꿋꿋하게 이겨 내고, 가난한 이들에게 양식이 되어 주는 보리를 닮고 싶어서 이름을 ‘보리’라고 붙인 출판사가 있다. 이 출판사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도감을 만드는데, 사진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세밀화만 사용한다. 책을 보면 그냥 대충 그린 그림이 아니고, 또한 멋만 부린 그림도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어떻게 이렇게 자연과 꼭 닮은 세밀화를 그렸는지 알아 보았더니 나름대로 비결이 있었다. 세밀화를 그리는 화가들은 생생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 직접 식물을 채취하여 살아 있는 모습을 그리다가 시들면 다음 해를 기다리고, 동물을 잡아서 집에서 직접 기르다시피 하면서 관찰하고 그렸단다. 그 그림 작가들의 끈기와 흘린 땀방울에 경의를 표하며, 그들이 작업한 결과물을 몇 권 소개한다.

짐승과 함께 어울려 살기

『세밀화로 그린 동물 흔적 도감』의 머리말을 보면, 왜 짐승 흔적을 세밀화로 그려 책을 냈는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아주 먼 옛날에는 짐승 흔적을 알아야 먹고 살았어요. 짐승의 똥이나 발자국을 가려낼 줄 알아야 뒤를 쫓아서 사냥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요즘은 짐승과 함께 어울려 살기 위해서 흔적을 배운답니다. 짐승에 대해서 잘 알아야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으니까요.

조금 가슴이 저며 오는 이야기지만 사실이다. 불과 반세기 만에 우리 땅에 일가를 이루며 살았던 많은 생물들이 사라졌고, 지금도 사라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세밀화로 그린 동물 흔적 도감』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 되었다. 그들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후라면, 그 다음은 우리 흔적이 사라질 날도 머지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세밀화로 그린 동물 흔적 도감』에서 핵심 되는 내용 가운데 하나가 동물 배설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물은 똥과 오줌으로 제 땅임을 알리는 영역 표시를 한다. 그래서 생물학자들은 동물들의 똥과 오줌을 소중히 여긴다. 특히 새똥이 그렇다.

풀이나 나무 열매를 먹는 새들은 주로 원통형 된똥을 싼다. 왜가리나 갈매기 똥은 물찌똥이어서 똥만으로는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없다. 똥에 허옇게 묻어 있는 것이 오줌이다. 새는 똥오줌을 따로 싸지 않고 한꺼번에 싼다.

책을 읽으면서 ‘펠릿’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펠릿은 새가 짐승 고기를 먹은 뒤 입으로 토해 낸 찌꺼기 덩어리이다. 얼핏 보면 육식 동물이 싼 똥 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냄새가 똥처럼 고약하지 않다. 또 짐승 털이나 뼈 부스러기가 들어 있어서 무엇을 먹었는지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책의 부제가 ‘야생 동물을 찾아가는 어린이 현장학습 길잡이’로 되어 있는데, 이 책을 들고 아이 손을 잡고 들길과 산길을 걸으며 열심히 땅과 풀숲을 관찰해 보면 좋겠다.

대게와 홍합, 지중해담치

『세밀화로 그린 갯벌 도감』은 우리 나라의 동해, 서해, 남해 바닷가에 사는 동식물 179종을 세밀화로 그려낸 도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대게’의 이름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오류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그동안 대게의 ‘대’자가 ‘大’자인 줄 알았다. 다른 게들보다 몸집이 크다는 뜻으로 말이다. 그런데 대게는 다리가 대나무처럼 곧게 쭉 뻗었다고 대게라고 한다. 40여 년이 넘게 잘못 알아온 정보를 바로 고치는 기쁨이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혹시 ‘홍합’과 ‘담치’를 확실하게 구별할 줄 아는지 모르겠다. 아마 80~90%가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홍합은 우리 나라 토종 조개로 물 흐름이 세고 맑은 바다에서 산다. 조갯살이 붉다고 해서 홍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몸에서 실같이 생긴 족사를 내어 바위나 돌에 단단히 몸을 붙이고 산다. 반면에 지중해담치는 갯바위에 무리를 짓고 다글다글 붙어산다. 바닷가 방파제나 그물에도 많이 달라붙는다. 몸에서 족사를 내어 바위에 단단히 붙어 있지만 어린 것은 갈매기나 고둥의 먹이가 되고 좀 큰 것은 불가사리가 많이 잡아먹는다.

지중해담치는 이름처럼 지중해가 고양이다. 다른 환경에 금세 적응하고 기르기도 쉬워서 일부러 많이 기른다. 홍합과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껍데기가 홍합처럼 두껍지 않고 매끈하며 윤이 난다. 크기도 홍합보다 작다. 우리가 홍합으로 알고 먹는 것이 지중해담치일 때가 많다.

홍합(왼쪽)과 지중해담치(오른쪽)


아직 홍합과 지중해담치를 구별하지 못하는 이는 이 책의 88쪽, 89쪽 그림을 보길 바란다. 그러면 식당 등에 가서 홍합이라고 요리를 내어오면, ‘이것은 홍합이 아니라 지중해담치라는 것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큰소리를 칠 수 있을 것이다.

‘맹 ― 꽁 ― 맹 ― 꽁’

양서류는 온 세계에 4,550여 종이 산다. 크게 개구리 무리, 도롱뇽과 영원 무리, 무족영원 무리로 나눈다. 개구리 무리는 다리가 네 개 있고 다 크면 꼬리가 없어진다. 도롱뇽과 영원 무리는 다리가 네 개 있고 다 커도 꼬리가 그대로 있다. 무족영원 무리는 다 커도 다리가 없어 지렁이처럼 생겼다. 우리 나라에는 개구리 무리가 15종 살고, 도롱뇽 무리가 6종 산다.

한편, 파충류는 온 세계에 6,500여 종이 산다. 크게 여섯 무리로 나누는데 거북 무리, 도마뱀 무리, 지렁이도마뱀 무리, 뱀 무리, 옛도마뱀 무리, 악어 무리가 있다. 우리 나라에는 거북 무리와 도마뱀 무리와 뱀 무리가 산다.

우리 나라 양서 파충류는 다른 척추 동물보다 종이 적고,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보다도 훨씬 적다. 양서 파충류 종은 많지 않지만 해로운 벌레나 동물도 잡아먹고 새나 짐승의 먹이가 되면서 우리 나라 생태계 먹이 사슬에서 중요한 연결 고리 구실을 한다. 개구리와 뱀이 충분히 살지 않으면 생태계는 균형을 잃어 사람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요즘에는 환경이 더러워지면서 양서 파충류 수가 예전보다 크게 줄어들고 있어 사람들이 이들을 보호하려고 애쓰는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세밀화로 그린 양서 파충류 도감』에 나오는 동물들의 모습이 안쓰럽게 보였다. 마치 얼마 지나지 않으면 영원히 볼 수 없는 친구들처럼 느껴졌다.

그 가운데 하나가 맹꽁이다. 맹꽁이는 어릴 때, 시골에서 밤중에 논두렁을 걸을 때면 징그러울 정도로 귀찮게 울어 대던 놈들이었다. 특히 맹꽁이는 비가 오거나 비 온 다음 날 많이 울었다. 낮에는 안 울고 해거름에 울기 시작해서 밤새도록 운다. 물풀이나 돌 밑에 숨어 몸을 물에 반쯤 담그고 운다. 울음주머니가 청개구리처럼 한 개이고 풍선처럼 크게 부풀리면서 ‘맹, 맹, 맹, 맹’ 하고 운다. 한 마리가 ‘맹’ 하고 울면 옆에 있던 맹꽁이가 더 크게 ‘꽁’ 하고 운다. 떼로 울어도 서로 울음소리가 안 겹쳐서 ‘맹 ― 꽁 ― 맹 ― 꽁’ 하고 들리는 것이지 한 마리가 우는 소리가 아니다. 아주 조그만 소리에도 놀라 울음을 그치고 물 속으로 쏙 숨는다. 그런데 이놈들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니, 마음이 무겁다.

생물의 소중함과 존엄함

우리 나라에는 먹을 수 있는 나무 열매가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 도토리를 들 수 있다. 10월 전후 산에 가면 아주머니들이 빈 자루를 들고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빈 자루는 한 나절이 지나면 도토리로 가득 찬다. 그런데 산에 가서 도토리를 주워 본 사람이면, 도토리 모양이 참 여러 가지라는 것을 알 것이다. 산갈나무 도토리, 떡갈나무 도토리, 갈참나무 도토리, 굴참나무 도토리, 졸참나무 도토리, 상수리 등등.
상수리



혹시 아이들과 함께 도토리를 주우러 산에 갈 일이 있다면, 『나무도감』을 가져가길 권한다. 도토리는 한 종류가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이 아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도토리 열매를 통해 생물의 다양성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의 다양성을 아는 것은 생물의 소중함과 존엄함을 아는 토대가 되는 일이므로, 자라는 아이들이 생명 철학을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옛날부터 우리 겨레는 나무로 집을 짓고 살았다. 나무가 많은 산골 마을에서는 통나무로 귀틀집을 짓고 살았다. 귀틀집뿐 아니라 초가집이나 기와집도 뼈대는 다 나무로 지었다. 큰 궁궐이나 절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나무가 다 같은 나무는 아니다. 줄기의 겉모양도 다르고 속모양도 다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다. 나무면 다 똑같은 나무인 줄 알기 때문이다. 『나무도감』의 45쪽 그림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가문비나무, 상수리나무, 오동나무 등 줄기의 겉과 속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서점에서 팔리는 도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사진을 찍어서 만든 도감이고, 또 하나는 세밀화로 만든 도감이다. 둘 중에서 세밀화로 만든 도감에 더 마음이 간다. 사진은 사진기로 찍어 낸 것이지만, 세밀화는 사람이 손으로 일일이 그려 낸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기는 기계이기 때문에 초점을 한 곳에 맞출 수밖에 없다. 반면에 사람 눈은 무엇을 볼 때 초점을 수없이 옮긴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서도 두루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세밀화의 큰 장점이다. 흘려 지날 수 있는 정보를 한눈에 보여준다.

‘식물 세밀화는 식물의 특징을 살려 실물을 더욱 실물답게 그리는 과학입니다.’ 산림청 국립수목원 세밀화 팀에서 일하는 권순남 선생의 말이다. 즉, ‘세밀화는 예술을 이용한 과학’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국립수목원은 지난 2003년부터 국내 기관 가운데 최초로 세밀화 실을 운영하고 있다. 잎의 뒷면이나 꽃 속 수술 등 사진에 담지 못하는 부분을 식물체와 함께 그림 한 장으로 표현해 자료로 보관하기 위해서이다.

아름답고 섬세한 세밀화가 가득한 책들을 보면서 자연에 대한 동경심을 아이들에게 심어 주기 좋은 계절이다.
손영운│과학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재미있는 과학 책 쓰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펴낸 책이 많습니다.

이 글에 나온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