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통권 제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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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하여

채정은 | 2007년 11월

여기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코끼리를 삼키고서 소화시키는,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구렁이의 그림입니다. 『어린 왕자』에서 이 그림은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이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그림은 모자를 그린 것에 불과하니까요. 책 속에서 사막에서 만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말합니다. “비밀을 가르쳐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은하철도 999의 기적』의 주인공 문석이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의 첫머리에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를 따로 풀어 놓습니다. 친구들은 “나는 문석이야.”라고 말하면 별 문제 없이 알아듣지만, 어른들은 “어디 사니?” “몇 살이니?” “엄마는 어디 계시니?” “아빠는 무얼 하시니?” 하고 꼬치꼬치 묻기 때문이라며 미리 몇 가지를 밝히고 난 뒤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합니다. 책의 첫 부분은 이렇듯 문석이가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에 나오는 주인공, 검은 옷을 입고 노란 머리를 늘어뜨린 메텔을 찾아 가는 과정에 함께 동참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합니다.

문석이가 메텔을 찾으려 하는 건 아빠 때문입니다. ‘은하철도 999’에서 철이가 메텔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여행을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메텔을 찾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면 아빠도 다시 ‘살’ 수 있을 테니까요. 축구 선수였던 문석이 아빠는 경기 중에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어 병원에 누워 있습니다. 문석이는 아빠가 단지 쉬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빠가 누워 있는 병원 의사 선생님들은 아빠 앞에서 ‘마치 아빠가 없는 것처럼 자기들끼리만 이야기를 하’고, 아빠 팬들과 친구들은 아빠를 잊었는지 더 이상 꽃을 보내지 않습니다. 문석이는 사람들에게 잊힌 존재,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아빠를 사람들 앞에 다시 살려 내고 싶습니다.

그런 문석이가 메텔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유일한 사람은 앞이 보이지 않는 강 아저씨입니다. 지하철역에서 만난 강 아저씨는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입니다. 강 아저씨는 문석이에게 세상에는 눈으로 보지 못하는 많은 것이 있다는 것과 빛을 볼 수 있는 오른쪽 눈으로 보는 세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줍니다. 강 아저씨가 메텔을 찾아 나선 문석이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도움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볼 수 없기에 더 잘 볼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석이 주위에는 강 아저씨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호떡을 파는 청각장애인 부부, 지하철역에서 매점을 하는 네모 아줌마……. 그토록 찾던 메텔은 알고 보니 아빠와 같은 병원에 있는 508호 할머니였지요. 할머니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대신 문석이 가족의 소원을 한 가지씩 들어 주겠다고 합니다. 문석이는 소원대로 의사가 되어 축구장에 갑니다. 아빠가 쓰러지던 그 날의 경기장입니다. 문석이는 쓰러진 아빠의 심장을 살려 내고 아빠는 다시 일어나 뜁니다. 잠시 후 축구장은 병원으로 바뀌고 아빠는 축구복 대신 환자복을 입고 누워 있습니다. 이제 아빠는 문석이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냥 누워 있는 걸로 보이지만 지금 아빠는 인생이라는 긴 축구를 하고 있는 거라고, 최선을 다해 골문을 향해 달리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작가는 아빠의 오랜 투병 생활에도 의젓한 모습이던 한 아이를 만나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문석이 아빠의 실제 모델은 롯데 자이언츠의 포수였던 임수혁 선수입니다. 야구장에서 쓰러진 후 ‘돌아오지 않는 2루 주자’가 된 임수혁 선수 이야기가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문석이에게 들려준 아빠의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임수혁 선수를 마음으로나마 응원합니다. 현실이 힘든 만큼 우리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찾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어른이고 싶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요.
채정은│오픈키드 컨텐츠팀에서 일합니다. 책 고르고 읽고, 글 쓰는 일을 좋아합니다. 책을 친구 삼아 지내는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