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통권 제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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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이야기]
과학과의 즐거운 조우
――웅진주니어 똑똑똑 과학그림책

박은호 | 2007년 11월

올해 신간이 많이 나온 까닭에, 똑똑똑 과학그림책의 역사가 짧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다. 하지만 2002년 11월 첫 책이 나온 이후 2004년까지 총 9권이 출간되어 있었다. 작년 3월, 이미 출간된 9권의 개정판을 내고 21권의 그림책을 개발하는 임무를 맡게 된 나는 걱정과 기대로 밤에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림책 만드는 건 재밌지만, 나는 과학 지식도 그리 많지 않고, 과학을 하기엔 머리도 그다지 좋은 것 같지 않은데……. 이런 내가, 과학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그림책을 만들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나의 모자란 점이 똑똑똑 과학그림책을 만드는 데 큰 힘이 된 것 같다. 내 머릿속의 어설픈 지식을 믿지 않고, 필자를 괴롭히며 몇 번이고 묻고, 찾아 보고, 확인하고, ‘아하’ 이런 거구나 과학 원리를 깨닫게 되면 어린이처럼 기뻐하면서, 그렇게 책을 만들었던 것 같다. 이런 마음이 나뿐이랴? 그림책에는 전문가이지만, 과학 분야는 생소했던 화가와 디자이너도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며 학생이 된 것처럼 한 권 한 권 작업해 나갔다. 이제 작가, 화가, 디자이너, 편집자가 어우러져 고민과 즐거움, 고생과 보람을 함께 나누며 똑똑똑 과학그림책을 만들어 온 여정을 간략하게 얘기하고자 한다.

똑똑똑 과학그림책은 유아용 과학책이 지나치게 번역물 위주로 출간되고 있는 현실과, 픽션에 치우쳐 있는 유아들의 독서 편식에 대한 문제 인식에서 기획된 시리즈이다. 작년 초 똑똑똑 과학그림책 후속권 기획 당시, 이미 출간된 물리 영역에 한정하지 말고 영역을 확장해 과학 전 영역을 골고루 다루기로 하였다. 이미 출간된 9권의 책 역시 ‘마찰력’ ‘중력’ 등 그림책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물리 영역을 다루어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물리, 4원소-에너지, 자연, 물질, 지구 -우주, 인체의 6개, 아이 주위의 친숙한 것부터 아주 먼 우주까지, 인공적인 것부터 자연 생태까지 과학을 폭넓게 보여 주고자 했다. 단행본 과학책이 동물 생태에 치우쳐 있는 현실에서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었다.

글 작가 역시 그림책으로는 이례적으로 각 분야 과학 전문가에게 의뢰하였다. 과학은 어렵고 재미없기 때문에 유아를 위한 과학책은 이야기로 포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야기로 푼다고 해서 과학이 더 쉬워지는 것도, 더 재미있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야기 요소 때문에 과학 사실을 혼동하기도 한다. 좋은 과학책은 어린이의 머리를 사실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당연하게 여기던 현상을 과학 원리를 통해 새롭게 발견하며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한 치의 미심쩍음도 없는 명확한 원리 설명이 과학그림책의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똑같은 과학 사실을 글로 옮기더라도 전문가는 과학 사실을 꿰뚫는 통찰력으로 그 사실에 숨은 과학 원리를 명확하게 집어낸다.

실제로 작업을 하며 겉핥기로 알던 내 과학 지식과 전문가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리 영역 필자인 곽영직 선생님을 뵈러 갔던 수원대학교 물리학과 과장실에서 선생님한테 에너지 강의를 듣던 시간이 떠오른다. 대학생들에게 물리학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이지만, 나의 어린애 같은 질문에 칠판에 그림까지 그리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어설픈 과학 지식이 뒤죽박죽 섞여 혼란스럽던 머릿속이 일시에 맑아진 시간이었다. 신기했던 점은,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과학 원리가 명확하고 쉽다는 것이다. 잘 모르는 것을 설명하려니까, 더 어려워지고 복잡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과학 전문가를 필자로 섭외한 것은 과학책은 잔재미가 아닌, 과학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똑똑똑 과학그림책의 컨셉을 확고히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똑똑똑 과학그림책도 역시 ‘그림책’이다. 필자의 글을 어떻게 그림책으로 풀어내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픽션 그림책과 마찬가지로 서두의 흥미와 호기심이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초고에서 재고로, 삼고로, 작가와 글을 다듬어 가면서 어느 정도 컨셉을 잡았지만, 각 소재와 글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그림책으로 매력 있게 풀어낼 수 있는 구체적 컨셉은 화가와 디자이너와 회의를 통해 잡아 나갔다. 특히, 글로 정보를 다 풀어내기보다 그림으로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아이디어도 내고 자료도 제시하지만, 실제 그림을 그리는 것은 화가이기에 화가는 누구보다 과학 원리를 철저히 이해해야 했고 더 많은 책을 봐야 했다. 과학적 오류가 없도록 그림은 스케치 단계와 채색이 완성된 단계, 이렇게 두 번에 걸쳐 작가의 감수를 받았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열정으로 만든 똑똑똑 과학그림책이 모두 30권이다. 그 중에서 특히 기억나는 책이 몇 권 있다.

『웅덩이 관찰 일기』는 과학적 오류뿐 아니라, 글에서는 다 드러나지 못한 정서와 자연의 살아 있는 모습을 담기 위해 작가와 화가와 함께 답사를 가기도 했다. 아침부터 해가 쨍쨍 내리쬐던 작년 8월 어느 날, 작가인 북한산 국립공원 생태연구원 황보연 선생님과 화가 윤봉선 선생님, 디자이너 고선아 실장님, 편집자가 북한산 기슭에 모였다. 『웅덩이 관찰 일기』의 모델이 된 북한산 자락의 웅덩이를 답사하기 위해서였다. 웅덩이 주변을 관찰하면서 황보연 선생님이 즉석에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는 참 재미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이런 과정이 그림책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생명의 역사를 다룬 『옛날 옛적 지구에는…』은 중학교 생물 선생님인 윤소영 선생님이,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편안하고 재미있게 써 주셨다. 글을 더욱 빛나게 한 것은 화가 조경규 씨의 그림! 한 공간이 시간에 따라 변천해 가는 설정으로, 글과 그림 공간을 분리하고 그림의 프레임을 같게 유지하여 한 편의 모션 픽쳐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로 했는데, 화가는 각 화면마다 큰 동물에서 작은 동물, 나무 한 그루까지 글에서 다 담지 못한 정보를 구석구석 담아냈다. 어렸을 적부터 백과사전 보는 것이 취미이고, 공룡과 동물을 사랑하는 화가 조경규 씨의 역량이 물 만난 고기처럼 제대로 발휘된 작품이었지 싶다. 화가가 관심 없던 분야였다면, 편집자가 아무리 자료를 제시하고 설명해도 그만큼 풍부하게 담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평소 화가의 관심 있는 분야를 잘 파악해서, 소재에 맞는 화가를 찾는다면 이야기가 더 재미있고 풍부한 그림책으로 살아날 것이다.

『고무랑 놀자』 『플라스틱 공장에 놀러 오세요』 등 물질 영역의 책들은 소재 면에서 특별했다. 금속, 유리, 플라스틱, 나무, 고무는 아이들이 생활에서 수없이 만나는 물질이지만, 아이러니하게 이것에 대해 알려 주는 책은 거의 없다. 아이들은 멀고 먼 별나라 이야기, 밀림 속의 동물들도 궁금해 하지만 자기 주위의 것에도 궁금한 것이 많다. 특히 물체와 물질은 어린이들이 혼동하기 쉬운 개념이다. 물질 영역은 생활 속 경험을 끌어들인 친근함으로 독자를 주인공으로 불러들여 각 물질의 속성을 흥미롭게 발견할 수 있게 했다.

인체 영역의 책들은 인체의 유기적인 메커니즘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 아이들은 자기 몸에 대해 관심이 많다. 눈에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지만, 보이지 않는 내 배 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궁금해 한다. 『일하는 몸』은 우리 몸의 장기가 하는 일을 우리 옛글 「규중칠우쟁론기」의 형식을 빌려 신체 장기들이 누가 제일 열심히 일하는지 뽐내는 설정이었는데, 어린이들에게는 생경한 장기들을 그림으로 풀어내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이 숙제를 훌륭하게 풀어낸 분이 봉제 인형 화가로 유명한 이진아 선생님이다. 이진아 선생님은 각 장기를 봉제 인형으로 직접 만들어 캐릭터로 창조해 냈다. 밥통 역할을 하는 위의 푸근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어머니가 입던 나긋나긋해진 잠옷을 과감하게 오려 위를 만들고, 큰창자와 작은창자의 기다란 느낌은 물들인 스타킹에 역시 물들인 솜을 넣어 표현했다. 특히 작은창자에서 큰창자로 가면서 음식찌꺼기가 똥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솜뭉치의 색깔 변화로 재미를 주었다. 이렇게 만든 각 장기를 사진 작가가 촬영하고, 과학 원리와 정보를 보여 주는 부분은 석판화로 작업하여 디자이너가 이것을 디자인하여 구성하였다. 이렇듯 책마다 한 권의 그림책으로서 개성과 재미를 살려 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림책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따뜻한 감성과 정서를 품게 되듯이, 과학 그림책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로 자라고, 과학을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 내 어린 시절, 그 나이에 맞는 과학그림책이 있었다면 학창 시절 과학 시간이 그렇게 지루하지만은 않았으리라.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이 ‘과학’이라는 말을 들을 때 딱딱하고 머리 아픈 공부가 아니라,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흥미롭고 재미있는 과학 원리가 존재하는 세상을 떠올리면 좋겠다. 똑똑똑 과학그림책을 만들면서 내가 그런 세상과 만났으니까.
박은호 | 웅진주니어에서 논픽션 그림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잊고 사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그림책으로 풀어내고 싶습니다. 자신이 편집자라는 사실에 하루의 반은 한숨지으며, 반은 신나하며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