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통권 제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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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나하고 친구하자!

김정미 | 2007년 12월

“자, 이제부터 심리테스트를 할 거야! 생각나는 대로 바로 대답해야 돼! 알았지?”
“그래, 알았어. 그런데 무슨 심리테스트야?”
“그걸 먼저 말해 주면 재미없지. 눈 감고. 자, 시작한다. 넌 지금 오솔길을 걷고 있어. 반나절 내내 걸었지. 드디어 저어기 큰 성이 보이네. 커다란 성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방이 있어. 이제 문제, 거기 의자가 몇 개 있어?”
“음……. 다섯 개!”
“오호, 그럼 넌 진정한 친구가 다섯 명이라는 뜻이야. 서로 진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 말이야. 그 정도면 평범한 편이지.”

점심시간에 하나 둘 모여 앉아 심리테스트하는 것이 유행일 때가 있었습니다. 단순히 재미로 즐기는 것이었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은근히 진지하게 받아들이곤 했지요. 의자가 곧 친구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모른 척하며 다시 “의자가 셀 수 없이 많은데?”라는 대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유치하게도 친구가 많은 게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다섯 명은 그럭저럭 평범, 열 명 이상은 꽤 괜찮음, 한두 명은 친구가 없어서 불쌍함. 이런 공식은 누가 정해 놓은 것도 아닌데 아무런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암암리에 퍼져 있던 해괴한 테스트 증후군에 심각하게 감염되었던 게지요.

그 질문을 다시 하게 만든 오묘한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제목은 『친구는 좋아!』. 단순하면서도 명쾌합니다. 노란 표지에 빨강과 초록으로 큼직하게 쓴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고, 주르륵 책장을 넘기니 단어가 제목만큼 큼직하게 서 있는 모습에 ‘보통 녀석이 아니네.’ 싶었습니다. 등장인물은 딱 둘입니다. 피부색이 다른 두 아이. 한 아이는 검정색 피부에 헐렁한 옷을 입고, 이런! 운동화 끈도 제대로 묶지 않았습니다. 다른 아이는 하얀색 피부에 깔끔한 옷을 입고, 이런! 바지를 추켜올려 입었네요. 불량스러움과 단정함이 공존하지만 알 수 없는 어울림이 묻어나는 공간입니다. 책을 펼치면 왼쪽과 오른쪽, 자신만의 자리에서 말이 오갑니다. 먼저 말을 내뱉은 건 왼쪽 까만 소년입니다. “야!” 저쪽으로 가던 아이가 등짐을 지고 슬쩍 돌아보며 작은 소리로 대답합니다. “뭐라고?”

이제 본격적인 친구 사귀기가 시작됩니다. 왼쪽 소년은 하늘로 손가락을 찌르며 마이클 잭슨을 연상시키는 몸짓으로 다시 크게 말합니다. “나 좀 봐!” 다른 아이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네요. ‘나는 저 아이를 모르는데, 쟤는 누구한테 말하는 거지?’ 이런 표정 말입니다. 그리고 시종일관 왼쪽 아이는 커다랗고 분명하게 대화를 이끌어 나갑니다. 이름도 모른 채로 “잘 지내니?” 안부를 묻고, “별로.”라는 대답에 이유를 묻지요. 오른쪽 아이는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친구가 없거든.” 스리슬쩍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그림책의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합니다. 마음속에 있는 말이 아무 것도 거치지 않은 채 다시 튀어나옵니다. “나하고 친구하자!” 반대편에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던 아이들은 벽처럼 두었던 책 가운데를 허물고, 금세 한 덩이가 되어 웃습니다.

친구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 책을 보여 주었습니다. 테스트 증후군에 걸렸던 아해들은 뭐라고 할까 궁금했거든요. “두 아이가 만나서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린 꽤 괜찮은 책이네.” “그래, 아이들이 나이가 어린데 멋지네. 먼저 다가갈 줄도 알고, 다가오는 친구를 받아들일 줄 알고.” “좋아, 그럼 하나만 더 묻자. 너희 방에 있던 셀 수 없이 많은 의자들 말이야. 지금은 몇 개나 있어?” 친구들은 십여 년 전이 떠올랐는지 깔깔대며 웃다가, “그러게…….”라며 한참 생각했습니다. 저도 생각의 늪에 빠져 버렸지요. 앉으면 편한 의자, 왠지 나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의자, 삐걱대는데 고치지 않는 의자, 내 방에 놓기에는 조심스러운 의자……. 기분 좋은 그림책을 보았는데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은근슬쩍 이 페이지를 보시는 분들께 질문을 넘기지요. “자, 여러분의 방에는 의자가 몇 개 놓여 있나요?”
김정미│오픈키드 컨텐츠팀. 도대체 의자가 뭔지……. 방에 의자를 몇 개 놓아야 할지 아직도 망설이는 이상한 아해입니다. 우리의 생김새는 모두 다르지만 누구나 다른 이에게 기분 좋은 의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