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통권 제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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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 만드는 이야기]
옛이야기 그림책의 매력을 찾아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보여주는 이야기로 거듭나기

김문정 | 2008년 02월

얼마 전 책 만드는 몇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그 중 초등학교 다니는 딸과 어린이집을 다니는 다섯 살 아들 남매를 둔, 말하자면 시공주니어의 독자를 자녀로 둔 사람이 내게 물었다. (그는 아니, 그의 자녀들은 평소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의 훌륭한 모니터링 대상이었다.) “시공주니어에서도 옛이야기 그림책이 나오던데, 그걸 왜 또 만들어요?” 책을 만들면서 받는 질문 중 가장 빈도수 높으면서도 난감한 것 한 가지가 그 책을 왜 만들었냐는 질문일 게다. 그것도 못마땅함, 소위 안티 기운을 마구 풍기며 달려오는 질문엔 어떤 최선의 답변을 해도 질문자를 만족시키거나 이해시키기란 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도망가고 싶은 경우, 날아온 물음표에 무작정 답변을 하지 않고 생략된 불편한 이유를 먼저 물으며 나 역시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 숨고르기 방법이다. 역시 이번에도 그 필살기가 필요한 때라고 여겼다. “왜요오, 옛이야기 그림책이 어때서 그러는데요?” 기다렸다는 듯이 그는 천편일률적인 이야기 구성, 잔혹한 묘사의 빈번한 등장, 선과 악의 대척점에 서 있는 캐릭터들의 융통성 없음에 대한 비판을 주욱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최근 들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생기고, 다문화 가정까지 생긴 마당에 일례로 새엄마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조장한다는 우려까지. 거기에 덧붙이길, 무엇보다 그림도 재미없어서 아이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거였다. 재.미.없.어.서.라. 그의 말을 들으면서 머릿속으로는 답변을 마련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듣고 있자니 그릇된 가치관, 글로벌 시대에 역행하는 인성, 창의력을 길러 주기는커녕 싹 자체를 틔우지 못하게 하는 그 모든 요소를 담은 것이 옛이야기, 그 옛이야기를 담은 책이란 말인가, 라는 질문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 했다. 결국 뭐라 제대로 답변을 못하고, “아이가 재미없어 한다고요, 왜일까. 때가 되면 옛이야기를 재미있어 할 거예요. 아, 우리도 그러지 않았나?” 웅얼거리며 화제 돌리기에 급급했다. 애꿎은 목만 따끔따끔 아파온다.

주지하다시피 옛이야기 그림책은 꾸준하게 출간되어 왔다. 특히 전집에서 강세를 보였다.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꾸려 보통 수십 권 한 세트로, 집집마다 한 질씩은 꽂혀 있으리라. 그럼에도 최근 몇 년 우리를 비롯해서 몇몇 출판사가 새로 기획해서 내놓기도 하고, 손을 보기도 해서 독자들에게 선보이며 다시금 붐(?)을 이룬 바 있다. 이는 단순한 컨텐츠의 재생산 차원은 아니다. 왜냐하면 옛이야기는 재생산, 아니 재화될 때 다시 한 번 진보하고, 새로운 컨텐츠로 탈바꿈해 읽혀질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래전 옛날 옛적에는 입을 통해 재화되었고, 현재는 책이라는 그릇을 통해 재화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우리가 네버랜드 그림책 시리즈를 꾸준히 출간하면서도 늘 염두에 두던 것이 옛이야기 시리즈였다. 다만 이미 여러 시리즈가 출간된 마당에 얼마나 많은 독자에게 닿을 수 있을까 하는 기능성 때문에 선뜻 준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케팅 팀과 시장 분석을 하면서 지금이 그 시기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옛이야기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할 때, 독자층이 형성되었을 때가 오히려 책을 출간하기에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그때가 2004년 가을이었다. 그런데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게 문제였다. 그림책 한 권의 작업에 들어가는 기본적인 시간을 무슨 수로 극복할 수 있을까. ‘늦어도’ 2006년 봄에는 출간을 해 달라는 것이 마케팅 팀의 요청이었다. (결국 2006년 여름에 출간되었으니 거의 2년 걸렸다.) 그리고 서른 권 이상이 동시에 출간되길 바란다는 것. 작업 기간 내내 달리기를 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든 포기하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포기를 해도 후회, 진행을 감행하기로 해도 후회. 그럼 까무러치더라도 해 보아야 더 큰 후회를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 옛이야기 스무 권, 세계 옛이야기 열 권을 1차 출간 리스트로 잡았다. 이후에는 한 권, 한 권 덧붙여 나갈 시리즈로 계획하며. 또 일단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덜 알려진 옛이야기를 발굴하는 것이 기획 취지가 아니라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우리가 출간하면, 다시 말해 다른 아무개 작가의 재화된 글과 그림으로 표현되면 이 이야기는 또 어떻게 새롭게 읽혀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리고 편집부 내부의 손과 머리가 부족했던 탓에 기획사 호박별과 함께 작업해 나가기로 했다. 큰 틀을 짜서 호박별과 논의를 한 후 기획 자문 회의, 리스트 선정 회의, 화소(話素) 회의를 하고, 작가들을 선정하는 회의, 구성안 회의를 하는 순으로 일정을 잡았다.

옛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미 여러 작업에 도움을 주셨던 김중철, 오진원, 이송이, 최인학 선생을 한 분씩 모시고 편집자, 디자이너 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하였다. 그 회의를 통해 얻은 결론은 민담을 기초로 만들어진 옛이야기를 꾸리는 것이므로 우리 옛이야기 그림책 시리즈에서 신화와 전설은 배제하고 가자는 것이었다. 전설은 보편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고, 신화는 열등감을 불러일으킨다는 부작용이 제외 이유였다. 타출판사의 책들도 분석하고, 또 마땅히 재차 재화되어야 하는 이야기들을 추려서 이야기 하나하나씩, 이야기 속 화소 하나하나씩을 짚어 가며 점검해 나갔다.

초석을 쌓는 이 작업은 개인적으로 적잖이 자극이 되고, 많은 생각을 담을 수 있는 과정이었다. 또 어떤 판본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맛과 질감이 달라지는 것이기에 그 원형 선택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림책이라는 틀을 이미 갖추어 놓았기에 그림책에 부려 넣었을 때 알맞은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은 제약인 동시에 기준이 되기도 해서 형식적인 측면에서 많은 공부가 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우리 옛이야기의 경우 판본은 임석재 선생의 것으로 결정하고, 서사 구조가 뛰어난 순으로 이야기를 정리해 나갔다. 옛이야기들 중에는 이야기 중간에도 물론 그렇지만 결말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것들이 여럿 있다. 그 중 『콩중이 팥중이』, 『선녀와 나무꾼』 등도 다른 그림책들이 언급하지 않은 뒷이야기를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세계 옛이야기 경우에는 이미 네버랜드 걸작 그림책 안에도 『브레멘 음악대』, 『요정과 구두장이』, 『장화 신은 고양이』 등이 출간되어 있어서 그런 부분들은 제외하여 좀 덜 알려진 이야기라 하더라도 재미있고, 앞서 우리 옛이야기의 기준으로도 제시한 바 있는 서사 구조의 완성도 부분에 비중을 두고 이야기를 선택하였다. 중국 이야기인 『신기한 비단』이나 노르웨이 이야기인 『해의 동쪽 달의 서쪽』 등이 그 예이다. 또 채록한 사람이 명확한지를 살폈다. 이 부분은 많은 외국 자료를 가지고 계신 최인학 선생의 도움을 받았다. 오래된 자료에서 거듭 확인 작업을 하여 주신 노학자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다. 짧지 않은 거리를 오가며 들고 오시던 묵직한 가방 안에는 선생의 손때 묻은 자료들이 한가득했다.

리스트 선정을 마친 후에는 작가 선정이 필요했다. 기존에 옛이야기 재화 작업을 했던 작가들은 물론이거니와 자신만의 독특한 입말체를 잘 살려내리라는 믿음을 주는 작가들까지 이야기와 작가의 개성을 맞춰 나가면서 선정 작업을 해나갔다. 간결하게 푼다는 것이 길게 풀어나가는 것보다 더 힘든 작업이었다. 그림 작가의 경우는 일정이 여의치 않은 점이 가장 큰 숙제였다. 개성 있는 비주얼을 책임져야 하는 몫이라 욕심을 버릴 수도 없었다.

세계 옛이야기의 경우 러시아, 프랑스 화가들을 섭외하는 대안도 마련해 보았다. 다른 역사와 문화의 느낌이 더 잘 표현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작가의 포트폴리오를 충분히 접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한정된 자료를 가지고 가능성을 점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과감한 연출이나 기법 사용이 특장점인 부분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작업 방향을 잡았다. 꼴라주 작업과 입체물 작업은 탁월한 면이 있었다. 다만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작업진들의 만남이었기에 영어, 불어, 러시아어 등으로 오가면서 혹여 행간의 의미가 잘못 전달될까 노심초사하는 것은 작업 마지막 단계까지도 계속되었다. 이 부분에서 에이전트는 제2의 편집자요, 디자이너였다.

출간 순서를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으나 첫 번째 이야기를 『팥죽 할멈과 호랑이』로 가는 것은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화소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옛이야기 하면 떠오르는 것이 할머니가 아닌가.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 적 할머니에게 내가 옛이야기를 들었었던가, 아슴아슴하다. 실재했든 그렇지 않았든 유년기와 할머니와 옛이야기는 늘 오버랩 되는 우리네 정서가 아니겠는가. 백희나 선생의 입체 작업은 사진 촬영과 디자인 후속 작업의 품도 많이 들었지만, 『구름빵』 이후 단행본 그림책으로 독자와 만나는 첫 책으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옛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모던한 느낌을 담뿍 담아낸 비주얼과 더불어 특유의 입담이 빼어난 박윤규 선생의 말맛(글맛)은 묘한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이 년 만에 30권이 출간되었다.

이후 세계 옛이야기의 경우 우리가 글, 그림 작업을 새로 꾸리는 작업과 좋은 외국 그림책을 찾아내어서 발간하는 작업을 병행하기로 했다. 재화의 틀을 조금 더 폭넓게 살피자는 취지만 살려서 가기로 한 것이다. 하여 마샤 브라운이 재화한 프랑스 옛이야기 『돌멩이 스프』, 폴 갈돈이 재화한 『빨간 암탉』, 『아기 돼지 삼 형제』 등이 출간되었다. 해설은 김서정, 최인학, 노제운 선생이 나누어 맡아서 문화적, 역사적, 심리학적 등으로 해석하여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도록 하였다.

이제 옛이야기 책을 왜 만들어요, 질문했던 그에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옛이야기는 우리가 먼 옛날부터 잊지 말아야 할 보편적인 가치와 철학을 이야기를 통해 일깨워 주고 있으며, 그를 통해 심리학자 브루노 베텔하임이 말했듯이 인간 내면 문제들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고, 어린이가 처한 난관에 알맞은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다른 그림으로, 다른 목소리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그 속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는 것이라고.
김문정│다양한 어린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얻은 것들은 일에서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데서도 소중한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시공주니어 주간으로 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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