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통권 제63호
속 깊은 책 이야기
사진과 시
책 세상 나들이
즐거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책 세상 나들이

[교과서 미술 알아보기]
조선 시대 사람들을 생생하게 담아낸 신윤복

엄소연 | 2008년 02월

1. 신윤복은 누구인가

신윤복(호는 혜원, 1758?~1813 이후)은 김홍도(호는 단원, 1745~1806 이후), 장승업(호는 오원, 1843~1897)과 함께 ‘삼원(三園)’으로 조선 시대 회화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화가이다. 그는 김홍도와 비슷한 시기에 도화서1)의 화원으로 활동했으나, 당시 정조의 총애는 물론 예술계에 큰 영향력을 끼쳤던 사대부 강세황(1713~1791)의 높은 평가로 두각을 나타냈던 것은 김홍도였다.

사실 신윤복에 대한 기록은 한 줄이 전한다.

자(字) 입부(笠夫), 호(號) 혜원(蕙園), 고령인(高靈人) 참사 신한평(申漢枰)의 아들, 벼슬은 첨사(僉使)다. 풍속화를 잘 그렸다.2)

이밖에 ‘점잖지 못한 그림으로 도화서에서 쫓겨났다.’는 것3), 본명은 신가권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 신말주(1429~1503)의 11대손이라는 것 등이 구전될 뿐이다.

그가 잘 그렸다던 풍속화는 현재 국보 제135호인 『혜원전신첩』4)과 「미인도」, 『신위구장화첩』 중 소폭5)과 『여속도첩』6), 그리고 개인 소장품 등 50여 점 정도가 남아 있다.

이처럼 전하는 기록이나 작품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신윤복이 주목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러했듯 기존의 틀을 벗어나 시대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그 역시 ‘풍속화’라는 새로운 형식의 그림을 주도하였고, 특히 여성·유흥·남녀 간 애정 등 조선 왕조 오백 년 동안 유례가 없는 주제를 풍부한 색채와 유려한 필세로 그렸으며, 이후의 풍속화와 민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더욱이 신윤복은 이례적이고 비제도권적인 화풍을 표현하면서도 대부분의 작품에 자신의 관지(그림에 글을 씀)와 도인(그림에 쓰는 도장)을 치고 때때로 찬문(글을 지음)을 덧붙여 스스로를 당당히 드러냈다.

2. 새로운 수요자들을 위한 그림, 풍속화

「금강전도」, 정선,
16세기경
조선 시대의 풍속화란 어떤 그림일까? 미술사에서 풍속화는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로 구분된다. 먼저 넓은 의미의 풍속화는 일정한 시대의 세정(世情)과 풍습을 나타낸 그림으로 사회 각 층의 생활상을 소재로 하되, 생활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의례·신앙·놀이·잔치·생업 장면 등이 모두 포함된다. 아울러 조선 시대 전반에 걸쳐 꾸준히 제작되었던 의궤도(궁중 제반 행사를 담은 그림) 등의 기록화, 계회도(문인 사대부들의 모임을 그린 그림) 등도 여기에 속한다.

한편 좁은 의미의 풍속화는 조선 후기 영조(1724~1776)에서 순조(1820~1834)까지 진경산수화7)와 더불어 유행하였고 ‘풍속화의 3대 화가’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호는 긍재, 1764~1822)이 주도하였다. ‘우리 것을 있는 그대로 직접 관찰’하여 그리는 새로운 형식의 그림인 진경산수화와 풍속화는, 조선 후기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실학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하지만 풍속화는 당시에 ‘속화(뜻을 모르는 자가 그린 속된 그림)’로 평가 절하된다. 그 이유는 기존의 그림이 ‘아름다움(美)’의 추구보다는 ‘그리는 자(대개 문인·관료)’의 ‘깨달음(道)’에 따른 ‘시서화일률(아취·학문·그림의 깊이가 같음)’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8) 따라서 지배층이 볼 때 속화는 그들의 문화 코드를 취했으되 이상적인 의미를 저속하고 통속적으로 만들어 맘에 들지 않은 그림이 된다. 즉 풍속화는 기존의 산수화·인물화 등을 포함하면서도 등장인물의 행위나 사건의 현장성과 장면성 표현에 중점을 두며, 무엇보다 ‘보는 자’의 즐거움이나 특정한 필요로 제작된 그림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배층의 전유물이던 그림과 다른 새로운 형식의 풍속화를 원했던 수요자들은 누구일까? 바로 그들은 조선 후기 시장의 활성화에 따라 부를 축적하거나 신분상승을 이룬 새로운 집단, 즉 서울·근기(近畿) 지역의 경화세족(서울 지역에 거주하는 양반 중에서 부와 권세를 갖춘 집단)과 신흥계층9)이다.

3. 신윤복 풍속화의 특징 알아보기

신윤복의 이해와 더불어 조선 시대 생활상을 엿보게 해 주는 책으로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과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나오다』를 들 수 있다. 여기서는 「미인도」와 마치 연극의 한 장면 같은 『혜원전신첩』을 중심으로 알아 보자.

여성도 그림의 주인공이다

「문효공 하연과 정경부인 영정」
신윤복, 15세기경
이전 그림에서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 남편의 지위가 높은 부부 초상화에 등장하여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거나, 일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정도였다. 그런데 신윤복의 「미인도」에서는 여성이 단독으로 그려졌을 뿐만 아니라, 여성미도 표현하게 된다. 당시에 유행했던 큰머리(트레머리), 좁고 짧은 저고리, 상대적으로 부푼 치마(항아리치마), 옷고름·동정·반회장의 자주색과 담청록색 치마빛 등은, 노리개를 수줍게 잡고 한 쪽 버선만 살포시 내민 앳된 모습과 어우러지고 있다. 혹시 신윤복이 연모했던 여인이었을까? 그의 「미인도」는 미인상의 전형을 이루어 이후에도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삶의 한 장면을 그림에 담는다

『혜원전신첩』은 마치 연극처럼 구성되어 있어 그림마다에 이야기(희곡)와 등장인물(배우), 배경(무대)이 있다. 그림의 주인공은 수요자인 경화세족이며 또한 이들은 그림을 ‘보는 자’(관객)이기도 하다.10) 결국 그들의 관심사와 행위가 그림의 소재가 되는데, 온갖 볼거리와 풍류며 옷맵시, 술과 여인과 연애 사건, 그리고 기방에서 벌어지는 행태 등으로 대부분 기녀와 짝을 이루게 된다. 원래 의례적 성격이 강했던 신라 시대의 풍류(玄妙之道)는 조선 시대에 세속화하여 음주가무와 화류(꽃놀이) 등 절기별 놀이 및 오락, 춘의(남녀 간의 욕정), 행려풍속(유람하며 보는 풍광과 세상) 등을 포괄한다. 이를 보는 일반 서민들에게는 ‘하는 일 없이 술 먹고 여자들과 질탕하게 노는 것’으로 비춰졌을 테지만 말이다.

「주유청강」, 신윤복
『혜원전신첩』의 각 장면이 현장감 있고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신윤복의 예리한 관찰력과 이를 뒷받침해 주는 뛰어난 기량 덕분이었다. 즉 덤덤한 얼굴 표현은 역설적으로 섬세하고 아름다운 필선, 특별히 빛깔이 곱고 화면에 강세가 주어지는 채색 기법(그는 우리나라 최고의 색채 화가로 칭송된다), 주변 배경의 치밀한 설정 등과 어우러져 그림의 주제와 구성을 긴밀하게 해 줌은 물론 등장인물의 심리까지 읽게 해 준다. 이러한 배경에는 그가 시정의 기녀나 한량들과 어울리며 체험한 그들의 생활상과 여성에 대한 관심이 한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화면 밖 어딘가에 있을 신윤복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본문에 실린 그림들
「연정계회도」(부분) 보물 제871호, 신윤복, 16세기경, 비단에 담채, 94×59cm, 국립중앙박물관
「금강전도」 국보 제217호, 정선, 1734년, 종이에 담채, 130.7×94.1cm, 호암미술관
「단원풍속화첩─자리짜기」 보물 제527호, 김홍도, 종이에 담채, 39.7×26.7cm, 국립중앙박물관
「문효공 하연과 정경부인 영정」 시도유형문화재 제81호, 신윤복, 15세기경, 개인 소장
「나물캐기」(부분) 윤두서, 18세기 초, 비단에 담채, 30.2×25cm, 개인 소장
「미인도」 신윤복, 19세기 초, 비단에 수묵담채, 114×45.2cm, 간송미술관
「쌍검대무(雙劍對舞)」 신윤복, 국가소속(장악원) 악공과 가무에 능한 기생을 불러 즐기는 장면. 집 주인의 세도가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상춘야흥(賞春野興)」 신윤복, 진달래꽃 만발한 봄날의 기운을 즐기려는 음악회가 열렸다. 차림새로 보아 권세 있어 보이는 초대 손님은 특히 거문고 소리에 푹 빠져 있는 듯하다.
「주유청강(舟遊淸江)」 신윤복, 양반들이 뱃놀이를 나온 모습이다. 차일아래 양반의 흰색 술띠는 상중(喪中)을 뜻하는데, 삼년상을 지내고 나면 이를 축하하는 잔치를 열었다고 한다.
「쌍륙(雙六)놀이」 신윤복, 원래 궁중·사대부의 안방놀이였던 쌍륙놀이가 집 밖에서 벌어지고 있다. 기녀에게 지고 있는 것일까. 망건도 팽개치고 배자만 걸친 양반의 모습이 초조해 보인다. 복건을 갖춘 양반이 그들을 재밌게 바라보고 있다.
「월하정인(月下情人)」 신윤복, 남녀 한 쌍이 통금을 어기고 밀회하는 장면이다. 초롱불을 든 남자 발의 방향을 보면 쓰개치마를 쓰고 주저하는 여인을 가자고 재촉하는 듯하다. 이들의 마음을 신윤복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달은 기울어 삼경인데,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이 안다.”
「정변야화(井邊夜話)」 신윤복, 복숭아꽃 핀 어느 봄밤, 춘소화월(봄밤의 꽃과 달)을 즐기던 양반이 집 밖 우물가에서 담소중인 여종들을 돌각담 너머로 훔쳐보고 있다.

1) 그림을 관장하는 국가기관으로 지금의 서울시 중구 외환은행 본점 건너편 뒤에 있었다.
2) 오세창(1864~1953)이 1928년에 한국미술사를 총정리한 『근역서화징』이란 책에 나온다.
3) 1930년대의 대표적 민족주의 사학자인 문일평(1888~1936)이 1938년 말한 내용이다. 한편 신윤복은 아버지 신한평이 정조 때 화원이므로 상피관행(부자, 형제 등 가까운 친족은 같은 곳에서 벼슬할 수 없음)에 따라 도화서를 나와야 했을 수도 있다.
4) 1938년 조선인에 의해서 최초로 개관한 간송미술관의 초대 관장 전형필이 1930년 오사카의 고미술상으로부터 입수한 30점으로, 구입 후에 새로 표구하고 오세창이 표제와 발문을 달았다.
5) 1910년 이왕가박물관이 일본인에게 구입한 화첩 속에 포함된 「아기 업은 여인」 등 2점을 말한다.
6) 「연당의 여인」, 「처네 쓴 여인」, 「저잣길」, 「전모를 쓴 여인」, 「거문고 줄 고르기」, 「장옷 입은 여인」의 6점이다.
7) 조선 후기에 우리나라의 산천을 그린 실경산수화로 정선(호는 겸재, 1676~1759)의 「금강전도」, 「인왕제색도」 등이 유명하다.
8) 그림은 중국·한국·일본에서 화(畵)·도(圖)·도화(圖畵)·서화(書畵) 등으로 지칭되다가 1882년경부터 일본에서 서구적 가치관에 기반을 두고 채색을 뜻하는 ‘회(繪)’자와 선묘를 의미하는 ‘화(畵)’자를 합쳐 만든 ‘회화’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신분에 따라 문인화·원체화, 소재에 따라 인물화·산수화·영모화·화훼화, 재료 기법에 따라 수묵화·채색화·담채화, 용도에 따라 일반화·기록화·불화·민화, 화법에 따라 남종화·북종화 등 여러 종류로 나눌 수 있다.
9) 이들은 ‘양반’이란 호칭을 사용하며 갓을 쓰고 도포를 입었던 서민, 상인 등이다. 반면에 기존의 양반인 조관, 사대부, 유생 중에는 생계를 위해 농·공·상업에 참여하는 일도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10) 연극의 4대 요소인 희곡(극적 행위), 배우, 관객, 무대에 견주어 볼 수 있다.
엄소연│철학, 박물관학, 한국 미술, 미술 비평을 공부하였습니다. 홍익대학교에서 ‘동물 상징’으로 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