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통권 제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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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책 이야기]
‘인간’에 이르는 최상의 길, 역사

이정후 | 2008년 02월

예전에 어느 학생에게 싫어하는 과목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역사라고 대답하며 ‘역사에는 미래가 없다’는 이유를 들더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별로 우습지 않다. 혹시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는가? 역사란 미래가 없는 죽은 학문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살아있는 학문이다.

2천여 년 전에 ‘로마’라는 나라가 있었다. 천 년을 넘게 존속하였으며, 지금의 유럽의 토대가 되고 서양 문명의 기틀이 된 아주 대단한 나라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주사위는 던져졌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등 격언처럼 쓰이는 로마와 관련된 말들을 모두 다 들어 보셨으리라 생각한다. 아니 이러한 말들을 은연중에 쓰시는 분들도 많으리라. 하지만 ‘벤허’ ‘쿠오바디스’ 등 할리우드 영화 속의 로마 모습만 알고 있다면 위의 격언들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 혹시 로마를 떠올리면 영화에서처럼 기독교인들은 네로 황제의 폭정 속에서 신앙을 지키려 원형 경기장에서 굶주린 사자의 먹이가 되거나 십자가에 묶여 화형을 당하고, 로마의 군인들은 부와 노예를 얻기 위해 침략 전쟁을 일삼는 장면만 상상되시는가? 영화가 전부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은 아니겠지만, 로마가 이러한 모습만 가지고 있었다면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을 존속한 단일 국가가 될 수 있었을까? 당시 동시대인들은 로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 목소리를 들어 보도록 하자.

이제는 나 같은 그리스인도, 아니 다른 어느 민족도,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신분증명서를 신청할 필요도 없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원하는 곳으로 여행할 수 있다. 로마 시민권 소유자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아니, 구태여 로마 시민일 필요도 없다. 로마의 패권 아래 함께 사는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자유와 안전이 보장된다.

일찍이 호메로스는 노래했다. 지상은 만인의 것이라고. 로마는 시인의 이 꿈을 구현했다. 당신들 로마인은 산하에 들어온 모든 땅을 측량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그 후에도 하천에는 다리를 놓고, 평지는 물론 산지에도 가도를 건설하여, 제국의 어느 지방에 살든 쉽게 왕래할 수 있도록 정비했다. 게다가 제국 전역의 안전을 위한 방위체제를 확립하고, 인종과 민족이 달라도 함께 살아가기 위한 법률을 정비했다. 이런 모든 일을 통하여 당신들 로마인은 로마 시민이 아닌 자에게도 질서 있고 안정된 사회에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가르쳐주었다.(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9권 『현제의 세기』 419쪽, 한길사, 2000년)


이것은 서기 143년 4월 21일 로마 건국 기념제에서 당시 26세였던 철학자 아리스티데스가 했던 연설 내용이다. 이 찬사는 기득권 세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소아시아에서 태어나 아테네에서 학식을 인정받기 시작한 소장 학자, 즉 다음 세대를 살아가야 하는 젊은 세대의 입에서 나온 찬사였다.

자! 시간을 2천 년 전으로 돌려보자. 2천 년 전 유럽은 어떠한 곳이었을까? 부족들 간의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 승자는 모든 것을 얻고, 패자는 죽거나 노예가 되었으며, 부유한 부족이나 마을을 침략하여 약탈을 하는 것이 떳떳한 직업이 될 수 있었던 시대였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에 로마는 도로를 만들고, 하천에 다리를 놓고, 로마 전역에 방위 체제를 확립하여 안전하고 평화로운 환경을 만들었으며, 법률을 정비했다.

로마라는 나라는 어떻게 그토록 시대를 앞서 갈 수 있었을까? 로마의 영토는 광대하다. 지중해를 둘러싼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전역이 로마의 패권 아래 있어 당시 로마인들은 지중해를 ‘우리 내해(內海)’라고 불렀다. 수도였던 도시 로마의 인구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백 만에 이르렀으며, 도시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 수십 킬로미터 밖에서 수도교를 통해 식수를 조달했다.

로마가 말 그대로 ‘세계 제국’을 일구어 내고, 로마 문명을 천 년 동안 꽃피울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관용’과 ‘공생 정신’이었다. 로마는 인종, 민족, 종교의 차이를 인정할 줄 알았다.

이민족의 신을 받아들이고, 정복당한 민족과 로마인의 협력을 바탕으로 효율적인 행정 조직을 정비해 나갔다. 로마인들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며 적을 포용하는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로마의 지도층은 사회지도층의 공적인 책무, 작금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불리는 바를 몸소 실천해 보였다. 수많은 로마의 공공건물들과 도로가 개인의 재산으로 지어졌으며, 전쟁터에서는 원로원 의원으로 대표되는 사회 지도층이 앞장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잘 정비된 도로와 하천, 법률 등 외적 체계는 로마인들의 공존 공영 정신과 어우러져 세계 역사상 가장 찬란한 시대, 로마에 의한 평화 ‘팍스 로마나’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로마가 멸망한 지 천 오백 년이 지났지만, 라틴어, 민주주의 정치 제도, 법체계 등 다양한 로마의 문명은 서양 문명의 근간을 이루며 오늘날까지 우리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나는 이 로마사를 접하면서 이전에 몰랐던 로마의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과 대적하고, 갈리아와 게르만에서 야만족과 맞서 싸우며, 이집트에서는 클레오파트라와 피라미드를 바라본다. 로마군의 백인대장이 되어 율리우스 카이사르 휘하에서 전투를 치르거나, 원로원 의원이 되어 하얀 토가를 두르고 원로원에서 연설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로마를 예로 들었지만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이나 경험은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지혜가 되고 평생을 살아갈 가치관을 형성한다. 지금까지 틀에 묶여 있던 나의 사고를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로마에 관한 책을 두 권 소개한다. 『어린이 로마인 이야기』는 영국 로마인 요새 유적지에서 발견된 요새 사령관 부인 클라우디아의 파티 초대장을 토대로 상상을 더해 이야기를 구성한 책이다. 국경 군단기지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병사들의 일상, 기지의 모습, 주변 정착촌, 화장실과 공중 목욕탕, 여자들의 옷차림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 재미있는 글과 그림이 로마에 대해 흥미를 돋워줄 책이다.

『로마 제국과 로마 인 이야기』는 여러 가지 화보와 그림으로 로마의 역사를 보여준다. 커다란 판형에 생생한 사진과 지도 등 풍부한 자료가 담겨 있어, 정치와 문화, 종교, 경제 활동, 예술 등 로마의 모습을 한눈에 두루두루 살필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로마를 접한다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무엇을 느끼게 될까? 우선은 아이들이 세계 역사에서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로마라는 국가를 만나 보길 바란다. 그리고 거대한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인간’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꿰뚫는 안목을 기르기 바란다. 과거에는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듯이, 역사야말로 ‘인간’에 이르는 최상의 길이므로.
이정후 | 예전엔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건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지금은 밥벌이를 위해서만 열심히 사는 것 같아 조금 서글픕니다. 가수인 아내와 아내를 똑 닮은 아홉 살 딸아이와 함께 알콩달콩 삽니다. 눈사람, 겨울바다, 이런 아이디를 사용하는, 나이 들어도 늘 젊은 청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