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통권 제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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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우리 동화 깊이 들여다보기]
내 꿈이 뭐냐구요?

손향숙 | 2008년 02월

『마시멜로 이야기』로 우리에게 친숙한 호아킴 데 포사다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많은 사람들은 결국 꿈 대신에 현실을 선택하고 만다. 꿈을 이루기 위해 현실 조건을 변화시키기보다는, 현실을 위해 꿈을 포기하는 쪽이 한결 쉽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꿈은 현실 지향적이기보다는 미래 지향적이며 지금의 만족보다는 훗날의 성취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눈앞에 놓인 마시멜로의 유혹을 뿌리치지 않고서는 꿈을 이루기 힘들다는 의미이리라. 이렇듯 꿈은 많은 사람들에게 눈앞에 놓인 작은 유혹들을 뿌리치고 어려움을 극복함으로써 지금 간절히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의미한다. 현실의 즐거움을 부정함으로써만이 현실의 소망을 이룰 수 있다는 역설이야말로 꿈의 속성이며 그만큼 이루기 어려운 것이 꿈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꿈을 이루지 못한 어른들은 흔히 어린이에게서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의 가능성을 보며 아이의 무한한 잠재력에 찬사를 보낸다. 때로는 아이를 통해 자신의 꿈을 성취하고자 하기도 한다. 어린이를 이야기할 때 꿈과 희망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따라 나올 수 있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에게 꿈이 아름다운 미래인 것은 아니다. 꿈은 미래지향적이요 가능태이기에 무엇이든 소망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아이들이 꿈꾸는 대부분의 미래는 어른들에 의해 ‘부질없는, 쓸데없는, 헛된’ 것으로 부정된다. 때로는 힘든 현실을 비켜갈 수 있는 미성숙과 비이성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지향해야 할 미래라기보다는 지양해야 할 과거이기에 오히려 한(恨)의 정서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는 경우도 있다. 2007년에 발표된 『꿈의 다이어리』, 『은하철도 999의 기적』, 『구젱기닥살』은 각기 이를 보여 주는 예로, 천진난만한 핑크빛 미래일 것만 같은 아이들의 꿈이 현재, 과거와 교통하는 양상을 그린다.

『꿈의 다이어리』에 화자로 등장하는 하은이는 파파라치, 가수, 미용사, 캐릭터 디자이너, 도우미 등 꿈이 다양하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하고 싶은 건 뭐든 나쁘게만” 말한다. 파파라치나 미용사가 안 좋은 백 가지 이유를 댈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엄마가 수긍하고 응원해 줄 수 있는 하은이의 꿈은 무엇일까? 돈을 많이 버는 것? 그럴 듯하다. 신용불량자가 된 이모 때문에 자기 집 옥탑방에 세 들어 사는 신세가 되어 버린 하은이 가족에게 돈은 현실적으로 너무나도 중요하다. 하지만 어른들은 하은이가 ‘내 꿈은 돈을 많이 버는 거에요’라고 말하는 것 역시 허용하지 않는다. 너무 세속적인 것이다. “돈 많이 버는” 게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하는 하은이의 대답을 듣고는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는” 나비 아저씨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꿈을 원하면서도 그 꿈이 동시에 너무 세속적이지 않기를 바라는 어른들의 이중성을 나타낸다. 아이들에게는 두 겹의 굴레인 셈이다. 하은이의 꿈이 사실은 모순적일 수밖에 없는 어른의 욕심을 표현하고 있다면 『은하철도 999의 기적』에 등장하는 문석이의 꿈은 어른들의 욕심에서는 비켜나 있으나 일정한 시기 동안에만 유효할 수 있는, 결국은 넘어서야 할 유아적 공간이다.

『은하철도 999의 기적』의 화자인 문석이의 소원은 의사가 되어 식물인간으로 병원에 누워 있는 아빠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너무 어린데다가 아빠가 자기랑 놀아주지 못하고 누워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문석이는 지하철을 타고 아빠의 병원과 축구장을 오가면서 은하철도 999를 타고 메텔을 찾으러 다닌다고 생각한다. 신비스런 여인 메텔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얻으러 안드로메다를 향해 가는 철이의 여행을 그린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의 구도를 빌려 현실을 해석하는 것이다. 철이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문석이는 메텔을 찾는다는 엉뚱한 소망에 집중하며 현실을 만화의 틀로 받아들임으로써 현실의 아픔을 견딜 힘을 얻는다.

메텔을 찾아 지하철을 헤매고 다니다가 만나는 본드 아저씨, 호떡 아저씨, 강 아저씨, 네모 아줌마 등도 문석이에게는 메텔과 연결되어서만 의미를 지닌다. 특히 앞을 보지 못해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 가는 강 아저씨는 문석이의 마음속에 “우주를 떠도는 작은 행성”으로 그려지며 앞을 보지 못하는 대신 빛을 볼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된다. 어렵고 구질한 현실을 떠나 빛을 보는 작은 행성이 된 강 아저씨. 그는 문석이의 메텔 이야기를 이해해 주는 유일한 인물이다. 아들이 전과자이기에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가판대의 네모 아줌마는 문석이에게 메텔의 목걸이를 걸고 있는 여인이 된다. 문석이는 은하철도 999와 메텔이라는 미성숙하고 비이성적인 틀을 통하여 자기 주변의 현실을 해석할 뿐 아니라 이 틀을 통하여 소외된 이들과의 교감을 경험한다.

의사가 되어 축구 경기 도중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어 버린 아빠를 일으키고 아빠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고 싶은 문석이의 꿈은 문석이의 미성숙한 마음속에서 안드로메다와 메텔로 표현된다. 이는 문석이가 현실을 견디며 살아가는 힘을 주는 동시에 주변 사람들과 교감을 이루어 나가는 통로가 된다. 물론 은하철도 999를 통해 이해한 현실은 많은 부분 왜곡되어 있을 수밖에 없기에 성숙이 전제되지 않은 문석이의 꿈은 유치한 환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은하철도 999가 지하철에서 뭉게구름으로 바뀌고 아빠의 죽음이 암시되는 작품의 말미는 아빠의 죽음을 영원한 생명으로 치환하여 받아들여야 하는 문석이의 미래를 예견한다. 여행의 종착역인 안드로메다에 도착함으로써 문석이의 여행은 곧 끝날 것이며 문석이에게 이는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틀을 마련해야 할 과제가 주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하은이의 꿈이 현실적이면서도 세속적이지 않아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다면 문석이의 꿈은 미성숙하기에 안락하지만 오래 머물 수 없는 유아적 공간이다. 두 작품 모두 성숙을 전제함으로써만이 이해할 수 있는 아이들의 꿈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꿈과 성숙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그려야 할 단계에서 작품이 마무리되는 듯한 아쉬움을 남긴다. 이에 비해 『구젱기닥살』은 과거의 한으로 남아 있던 주인공 솔뫼의 꿈이 미래와 세상을 향해 열려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구젱기닥살』의 배경은 마라도이다. 지도상으로 가장 남쪽에 위치한 우리 나라 땅이라는 특성상 끝이자 시작으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마라도는 작품의 주인공 솔뫼에게도, 또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찾은 성재 아저씨, 그리고 하나 가족에게도 끝이자 시작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주인공 솔뫼는 다리를 저는 5학년 남자아이이다. 작품에 처음 등장할 때 솔뫼는 마라도로 들어오는 여객선이 보이는 장군바위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장군바위는 그 위에 사람이 올라가면 파도가 세진다는 전설이 깃든 바위이건만 솔뫼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성내는 바다도 자신을 나무라는 어른들의 목소리도 개의치 않는 솔뫼에게서 독자는 세상을 향한 솔뫼의 적개심과 외로움을 느낀다. 물론 이런 솔뫼에게도 꿈이 있다. 솔뫼의 꿈은 엄마를 만나는 것이며 이는 솔뫼가 장군바위에 자주 올라가 앉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객선에서 내리는 사람들 물결 속에 혹시 그리운 엄마의 얼굴이 섞여 있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 솔뫼의 꿈인 것이다.

스킨 스쿠버를 하던 서울 학생을 구하려다가 영영 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아빠, 그런 아빠를 그리워하며 앓다가 어느 날 훌쩍 사라져버린 엄마. 이렇게 엄마와 아빠를 모두 데려가 버린 바다를 버리지 못하고 언제나 바라보며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 어린 솔뫼의 현재이다. 솔뫼에게 엄마를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꿈은 미래를 향해 있다기보다는 과거를 향해 있으며 소망이라기보다는 한(恨)에 가까운, 세상과 등진 아이의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솔뫼가 세상을 향해 자기를 열어 가지 않은 채 끊임없이 과거를 향한 그리움에 갇혀 버린다면 솔뫼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제주도 4ㆍ3사건 때 폭격을 피하려다가 어린 아들을 자기 품 안에서 질식해 죽게 한 맹순 할머니는 과거를 향한 한을 결국 풀지 못하고 바다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세상을 하직하고 만다. 살아 있는 아들의 숨결을 다시 느끼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을 맹순 할머니. 결국은 세상과 미래를 위해 열린 꿈을 꾸지 못했기에 어두운 바다 속에서 생을 마감한 것이다.

하지만 엄마를 만나고 싶어 장군바위에 앉아 있는 솔뫼에게는 붓과 화폭이 있다. 그리고 서울에서 엄마, 아빠, 그리고 두 동생과 함께 마라도로 이사 온 친구 하나의 존재는 솔뫼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 미래를 향한 꿈을 꾸게 만든다. “난 꿈과 희망 같은 건 잘 모르는데…….”라고 말하는 솔뫼에게 하나는 “전에 니가 그랬잖아.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그림을 그리는 거라고. 그게 꿈이지 뭐야?”라고 말한다. 이는 솔뫼의 인생에서 엄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이외에 이루고 싶은 소망이 생기는 순간으로, 솔뫼가 서울 소년원 담장에 벽화를 그리자는 하나 엄마의 청을 받아들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다리를 절뚝거리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솔뫼. 하지만 하나 가족과의 만남은 솔뫼에게 세상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이로써 솔뫼가 하나를 통해 만난 세상은 하나에서 하나 가족으로, 서울 소년원의 사람들로, 그리고 신문을 통해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로 확장된다. 완성된 벽화를 본 소년원 소장님이 “마치 섬 한가운데 소년원이 들어가 앉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은 솔뫼의 벽화가 의미하는 것이 단순히 그림이 아닌 인간들 사이의 소통임을 암시한다. 결국 꼭꼭 숨어 있던 엄마도 솔뫼가 나온 신문 기사를 보고 솔뫼를 찾는다.

하지만 이미 재혼해서 돌이 된 아기를 갖게 된 엄마는 솔뫼 곁에 머무를 수 없는 상황이기에 솔뫼는 울음을 토해 내며 엄마를 떠나보낸다. 엄마를 만나고 싶다는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과거를 향한 한으로서의 그 꿈을 버려야 하는 순간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솔뫼는 엄마 생각이 날 때마다 꺼내서 냄새를 맡곤 하던 엄마의 로션을 바다에 던진다. 로션과 함께 엄마, 아빠, 원망, 그리움의 모습으로 솔뫼에게 있던 꿈은 사라지며 그 자리에는 벽화와 함께 시작된 또 다른 꿈이 들어선다. 솔뫼의 또 다른 꿈은 양부모가 된 큰엄마, 큰아빠와 함께 이루어나갈 꿈이며 자기 안의 벽을 허물고 세상을 향해 열려 가는 다리로서의 꿈이다.

붉게 물든 노을을 큰엄마, 큰아빠와 함께 바라보며 솔뫼는 마라도를 “바다 한가운데를 둥실둥실 떠가는 배 같”다고 느낀다. 솔뫼에게 세상의 끝일 수밖에 없던 마라도가 세상을 항해하는 거대한 배로 거듭나는 이 순간 솔뫼는 마라도의 모든 사람들과 생명들이 자랑스럽다고 느끼게 된다. 세상의 끝이던 마라도는 이제 솔뫼에게 세상의 시작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어른의 욕심이 투사된 하은이의 꿈, 극복되어야 하는 어린 공간으로서의 문석이의 꿈, 그리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면서 주인공과 함께 커감으로 세상과 미래를 향하는 길이 되어 주는 솔뫼의 꿈. 전혀 다른 배경과 성향의 주인공들을 다루었음에도 ‘꿈’이라는 각도에서 함께 읽을 수 있는 『꿈의 다이어리』, 『은하철도 999의 기적』, 『구젱기닥살』 이 세 편의 이야기는 어린이 문학에서 꿈이 그려지는 양상을 다채롭게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손향숙│영국 아동문학을 전공하였고, 서울대 초빙교수로 있습니다. 주요 논문으로 「소년과 제국 : 19세기 중엽 이후의 모험소설과 학교소설」, 「피터팬 신화의 현대적 재생산」, 「해리 포터는 아동문학의 고전으로 남을 것인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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