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통권 제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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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내 마음에도 천 개의 태양이

윤석연 | 2008년 02월

대중에게 공개된 사진들 가운데 심하게 손상된 육체가 담긴 사진들은 흔히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찍힌 사진들이다. 저널리즘의 이런 관행은 (다시 말해서 식민지의) 인종을 구경거리로 만들던 1백여 년 묵은 관행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비록 적이 아닐지라도 타자는 (백인들처럼) 보는 사람들이 아니라 보여지는 사람 취급을 당한다.(수잔 손택, 『타인의 고통』, 112~113쪽, 이후, 2004)

두 권의 책을 집어 들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고통의 현장이 독일의 초등학교이든, 전쟁이 끊이지 않는 아프카니스탄이든 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기웃거리듯이 고통을 대상으로 삼는 관행을 여전히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잠깐 생각해 봅니다. 내가 거기, 그 현장에 있지 않다는 안도와 혹시라도 내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느긋하게 물어보는 걸로 책을 덮는 것은 아닐까? 고통이 관행처럼 읽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아야, 할아버지는 언제나 사는 게 즐거웠단다. 그러니 눈을 감을 때도 즐겁게 눈을 감을 거란다.” 증조 할아버지는 항상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어요. 그리고 증조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모두들 슬퍼했어요. 하지만 미아는 증조할아버지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는 것이 기뻤어요. 미아는 증조할아버지가 언제나 쓰고 계셨던 모자를 가져와서 머리에 썼어요. “할아버지는 언제나 제 곁에 계세요.”(『썩은 모자와 까만 원숭이』 8~9쪽)

아름다운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리암은 대부분의 삶이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마지막 스무 걸음을 걸으면서 조금 더 살았으면 싶었다. 라일라를 다시 보고 싶었다. 그녀의 웃음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녀와 같이, 별들이 떠 있는 하늘 밑에서 차를 마시고 먹다 남은 할와를 먹었으면 싶었다.(『천 개의 찬란한 태양』 504~505쪽)

‘썩은 모자’ 미아와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불쌍하고 유감스러운 일이었던’ 마리암에게서 누군가의 삶을 내 것으로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 타인의 고통을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봅니다.

『썩은 모자와 까만 원숭이』에는 두 명의 아이가 등장합니다. 할아버지의 낡은 모자를 쓰고 다니는 미아를 아이들은 ‘썩은 모자’라 놀려대고, 피부가 검은 아바디를 ‘까만 원숭이’라며 따돌림을 합니다. 그렇지만 미아는 아바디를 보면서 “눈 속에 별이 들어 있는 것처럼 눈이 반짝거리는” 멋진 아이라고 생각하고, 아바디의 눈에도 미아의 낡은 모자가 멋있어 보입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는 두 여성이 등장합니다. 천한 시골 여자의 하라미(후레자식)로 태어나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마리암과 전쟁으로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라일라입니다. 마리암은 어찌보면 태어날 때부터 더는 잃을 것이 없던 처지의 여성이었고, 라일라는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두 오빠가 죽지 않았을 테고, 어머니의 사랑을 잃지 않았을 테고, 아버지와 사랑하는 사람을 잃지 않았을 여성입니다. 한 남자를 남편으로 둔 두 여자의 삶은 여러모로 겹쳐지는 구석이 없어 보이지만 마리암은 라일라를, 라일라는 마리암을 서로의 마음속에 천 개의 찬란한 태양으로 간직합니다.

마리암은 라일라의 딸 아지자가 커 가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아지자가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하는 걸 못 본다는 게, 그녀의 손톱을 헤나로 칠해 주고 결혼식 날에 노쿨을 뿌려 주지 못하는 게, 아지자의 아이들과 놀아줄 수 없다는 게 슬픕니다. 늙어서 아지자의 아이들과 놀아주는 건 참 좋을 것 같은 데 그럴 수 없다는 게 슬픕니다. 그렇지만 마리암은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친구이자 벗이자 보호자로서, 어머니가 되어 드디어 중요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는 게 이렇게 죽는다는 게 그리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적법하지 않게 시작된 삶에 대한 적법한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편을 살해한 죄로 죽음을 맞는 순간에 마리암은 라일라와 라일라의 딸을 떠올립니다. 쓸모없는 존재였고, 잡초였던 자신이 사랑을 받았고, 드디어 중요한 사람이었음을 깨닫습니다.

할아버지의 낡은 모자를 쓰고 다니는 미아는 아바디를 까만 원숭이라고 놀리는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릅니다. “아바디는 내 친구라고!” 미아와 아바디는 이제 진짜 친구가 되었습니다. 미아와 아바디는 똑같이 생긴 모자를 쓰고 다닙니다. “내 모자는 바람이 불어도, 햇볕이 따가워도, 사고가 나도 날 지켜 줄 거야. 또 못된 말에서도.” “내 모자는 우리 증조할아버지 모자야. 우리 할아버지가 날 지켜 주시는 거야.” “우린 매일 매일 모자를 쓰고 다닐 수 있을 거야. 또 우리 부족의 다른 사람들도.” 미아와 아바디는 자기들을 놀려대던 아이들(우리 부족의 다른 사람)도 어쩌면 똑같이 생긴 모자를 쓰고 다닐 거라고 희망합니다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모두들 슬퍼했지만 증조할아버지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는 것이 기뻤다는 아이, 그리고 증조할아버지가 언제나 쓰고 계셨던 낡은 모자를 “할아버지는 언제나 제 곁에 계세요.”라며 쓰고 다니는 아이. 그 아이가 쓰고 다니는 모자와 똑같이 생긴 모자를 쓰고 다니는 진짜 친구인 또 다른 아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생긴 모자를 쓰고 다닐지도 모릅니다. 미아가 할아버지와의 경계를 허물었던 것처럼, 두 아이가 서로의 경계를 허물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라일라는 탈레반이 마리암을 어디에 묻었는지 몰라 괴로워했다. 그녀는 마리암의 무덤에 찾아가 머물다가 한두 송이의 꽃을 놓고 왔으면 싶었다. 그러나 라일라는 이제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안다. 마리암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그녀는 이곳에 있다. 그들이 새로 칠한 벽, 그들이 심은 나무, 아이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담요, 그들의 베개와 책과 연필 속에 그녀가 있다. 그녀는 아이들의 웃음 속에 있다. 그녀는 아지자가 암송하는 시편, 아지자가 서쪽을 향하여 절하면서 중얼거리는 기도 속에 있다. 하지만 마리암은 대부분, 라일라의 마음속에 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천 개의 태양의 눈부신 광채로 빛나고 있다.(『천 개의 찬란한 태양』 562쪽)

그리하여,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누군가는 천 개의 태양의 눈부신 광채로 빛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모든 경계들이 허물어지는 놀라운 일 말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마도 똑같은 모자를 쓰는 일이고, 마음속 천 개의 태양의 눈부신 광채를 품는 일일 것입니다. 두 권의 책을 덮으면서 미아와 마리암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어떤 곳을 지옥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사람들을 그 지옥에서 어떻게 빼내 올 수 있는지, 그 지옥의 불길을 어떻게 사그라지게 만들 수 있는지까지 대답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타인과 공유하는 이 세상에 인간의 사악함이 빚어 낸 고통이 얼마나 많은지를 인정하고, 그런 자각을 넓혀 나가는 것도 아직까지는 그 자체로 훌륭한 일인 듯하다.”(『타인의 고통』 167쪽)
윤석연│세상의 많은 작은 것들을 좋아하고, 좋은 이들과 수다 떨기를 좋아하고, 격식이나 예절, 서열, 질서 따위를 싫어합니다. 늘 싫고 좋음을 분명하게 말해 버려 가끔 미움도 받지만, 언제나 씩씩하고 즐겁게 살고자 애씁니다. 그리고…… 혹시 글 쓰는 걸로 이 세상 선한 일들에 보탬이 된다면 꾸역꾸역 하겠다고 맡고 나서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