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통권 제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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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서평]
어와 너로구나, 관동팔경 구경 가세

서윤정 | 2008년 02월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의 첫인상은 5초 만에 결정 난다고 합니다. 만남이 한 번으로 그칠 경우에는 첫인상이 곧 전부가 되어버리기도 하는 만큼 첫인상이 끼치는 영향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첫인상, 곧 첫 만남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가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첫인상 이야기가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만 적용되는 건 아닐 겁니다. 학교에서 정말 지루하게 배웠던 내용들을 나중에 다시 접하게 되면서, ‘어, 이게 이렇게 재미있었던가?’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든 딱딱하게 만드는 교과서의 마법 때문이기도 하고, 교과서에 실린 내용이라면 당연히 따분할 거라는 선입견이 작용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제 경우 고등학교 때 배운 「관동별곡」이 특히 그랬습니다. 「관동별곡」하면, 잘 이해가 가지도 않는 선생님 설명을 들으며 ‘자연을 사랑하는 병은 천석고황, 임금을 그리는 신하의 마음을 노래한 글, 구름이 상징하는 것은 간신’ 같은 내용을 색색의 펜으로 책장 가득 필기하던 기억 밖에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화룡소의 비구름』을 읽고 난 뒤, 오랫동안 변치 않던 「관동별곡」에 대한 첫인상은 사뭇 달라졌습니다. 

‘화룡소의 비구름’은 「관동별곡」중, ‘원통골 좁은 길로 사자봉을 찾아가니 / 그 앞에 너럭바위 화룡소가 되었구나. / 천 년 묵은 늙은 용이 굽이굽이 서려 있어 / 밤낮으로 흘러 내려 푸른 바다에 이었으니 / 비구름을 언제 얻어 흡족한 비를 내리려나.’라는 구절에서 따온 제목입니다. 『초정리 편지』를 통해 우리 고전과 역사의 새로운 맛을 선보였던 작가가 이번에는 「관동별곡」을 소재로 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야기는 한 폭의 그림에서 시작됩니다. 훈이는 아빠를 따라나선 답사 여행길에서 우연히 첩첩 쌓인 산과 구름, 폭포, 소 타는 아이, 학이 그려진 두루마리 그림을 손에 넣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살아있는 듯 생생한 그림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던 훈이는 쿨렁쿨렁하던 그림 속 연못으로 빨려 들어가지요.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는 거대한 폭포에서 물줄기가 떨어지고 , 옆에서는 목청 좋은 노인이 ‘은 같은 무지개애~ 옥 같은 용의 꼬리이~’ 라며 시를 읊고 있습니다. 이 노인이 바로 관찰사로 부임하러 가던 송강 정철이었지요. 

송강 어른은 훈이가 세상 밖에서 온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누군가가 훈이를 간절히 불렀기 때문에 이곳에 오게 된 것이라며, 함께 여행을 하자고 합니다. 만폭동, 금강대, 진헐대를 지나 화룡소에 이르렀을 때, 연못에서 물덩어리 용이 나와 하늘에 오를 수 있도록 비구름을 불러와 달라고 부탁합니다. 처음에는 자기가 그런 일을 어찌 하냐며 펄쩍 뛰던 훈이도 점차 용기를 얻고, 달빛에 취해 신선이 된 정철 할아버지를 따라 학을 타고 훨훨 날아올라 마침내 비구름을 모으게 됩니다.

작가는 아이들이 옛 글이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낯설기 때문이며, 옛 작품에 숨어 있는 놀라운 재미를 아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읽는 동안 훈이와  정철 할아버지를 따라가며 금강산과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철 할아버지가 훌륭한 경치에 감탄하며 읊조리던 노래들을 통해 조선 시대 가사 문학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관동별곡」을 만나게 되지요.

아이들은 이 이야기를 읽고 난 뒤, 훈이가 그랬듯이 「관동별곡」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싶어질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 교과서에서 「관동별곡」을 만나게 되었을 때, 아이들은 따분함이 아닌 반가움을 느끼게 될 겁니다. 당쟁의 회오리 속에서 굴곡진 삶을 살다 간 정치가이자 천재 문학가인 송강 정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겠지요. 아이들이 「관동별곡」을 읽고 그윽한 묵향과 차 향기를 느끼며 절로 ‘강호애 병이 깁퍼~’를 읊조릴 날을 기대해 봅니다.
서윤정│오픈키드 컨텐츠팀. 책을 좋아합니다. 어린이를 좋아합니다. 책 읽는 어린이를 가장 좋아합니다. 이야기 속 세상을 여행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오늘도 뚫어져라 책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