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통권 제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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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책·그림책 이야기]
친구 같은 나무, 스승 같은 나무

조남주 | 2008년 02월

한 후배가 올 봄에 둘째 아기가 태어날 거라면서 이름을 ‘나무’로 지으면 어떻겠느냐고, 모임에서 사람들 의견을 물어 왔다. 나무라는 이름을 그 후배의 성에 붙였을 때 산뜻하고 참신한 느낌이 덜하기에 난 좀 말리는 쪽이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후배의 마음은 이미 나무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던 듯했다. 어차피 나무로 부르게 될 걸 괜히 나서서 안 어울린다고 말한 건 아닌지 후회가 된다. 후배가 아이이름을 나무로 짓고 싶다고 했을 때, 그 자리의 누구도 이유를 물어 보지는 않았지만 이름으로는 아주 괜찮다고들 했다. 아마도 나무의 미덕 때문일 것이다. 나무 하면, 푸근하고 반듯하고 믿음직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나무는 첫눈에 사람을 사로잡는 화려하거나 매력적인 이야깃거리는 많지 않지만 곱씹을수록 깊은 맛이 느껴지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을 것 같으니까.

수수하고 정적인 이미지 혹은 속성 때문에 나무를 소재로 한 책은 만들기가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작가로서든 편집자로서든 나무 또는 식물을 다루는 책에는 선뜻 손대려고 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 나무와 비교해, 오리나 애벌레 책을 떠올려 보라. 보송보송하고 귀여운 그 작은 생명체들의 움직임만 따라가 보아도 뭔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오리나 애벌레 책에 견주면 가만히 한 자리에 서 있는 나무에 대한 책은 우선 소재 면에서 독자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힘이 아무래도 부족하지 싶다. 그렇다면 나무에 대한 이야기에는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나무에 대한 지식, 정보를 주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책을 꾸밀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무는 식물이다’와 같은 제목의 책을 만든다고 해 보자. 나무가 어떻게 자라는지, 언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지, 가을이 되어 나뭇잎 색이 변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겨울은 어떻게 나는지, 그리고 곤충이나 다른 여러 동물들이 나무에 어떻게 기대어 살고 있는지를 친절하게 알려 줄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다양한 정보 중에서도 어느 한두 가지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부각하고 다른 내용들은 과감히 생략할 수도 있다. 두 번째로는 나무를 ‘경험’하게 해 주는 책이 있다. 나무를 대할 때 어떤 마음을 갖게 되며 어떤 시선으로 보게 되는가에 더욱 관심을 두는 책이다. 나무에 대한 지식과 나무로 인한 정서 경험, 이 두 가지가 언제나 뚜렷하게 구분되지는 않겠지만, 둘 중 무게중심이 쏠린 쪽이 있게 마련이다.

‘독자’ 관점에서는 과학적 사실이나 정보를 담고 있는 지식책을 읽을 때 그 책에 실린 정보나 사실의 조각을 가능한 한 많이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니다. 특히 어린 독자들이 지식책을 읽어야 하는 첫째 이유는, 이를 통해 새로운 사고 과정을 경험할 수 있고 또한 대상에 대한 나름의 ‘태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새로운 정보를 끊임없이 받아들이면서 매우 능동적으로 자신의 지식 체계를 구축해 간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어른도 마찬가지이지만) 여러 지식책들에서 경험한 바 있는 다양한 사고의 유형들을 시험해 보기도 하고, 동의하거나 질문을 던지며 세상에 대한 시선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무는 알고 있지』는 ‘태도’를 다루는 지식책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나무의 숭고한 삶에 대한 이야기는 책에 열거되는 모든 과학적 사실을 넘어 독자의 마음에 끝까지 남는 무언가가 된다. 표지 그림을 보면 나무 그림책을 상상할 때 쉽게 떠올리게 되는, 녹음이 짙은 여름 나무가 아니다. 밖을 보기보다는 내면을 들여다보기에 더욱 적당할 것 같은 겨울, 잎은 모두 떨어지고 새둥지가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나무다. 그리고 ‘나무는 알고 있지’라는 제목. 여느 나무 책과는 좀 다른, 어쩌면 나무의 속내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준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표지와 면지를 넘기면 속표지에 앞서 프롤로그 같은 성격의 면이 나오는 것이다. 눈 내리는 겨울 풍경이 색채 없이 침착하게 펼쳐지며 느티나무 한 그루가 오른쪽 화면 가득 듬직하게 서 있다. 글은 이 책에서 나무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할 거라고 알려 준다. 그림과 어울려 글의 어조는 나지막하고 관조적이다.

본문이 시작되면, 작가는 나무가 하지 못하는 것과 나무가 알고 있는 것을 계속 대비시킨다. 나무는 보지도 듣지도 냄새 맡지도 못하고, 동물처럼 움직이지도 못하고, 사람처럼 말을 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나무는 언제 잎 내고 꽃 피우고 단풍이 들게 할지, 어떻게 열매를 맺고 그 씨를 퍼뜨리며 나무답게 살지 ‘알고 있다.’ 여기서 나무가 갖지 못한 능력은 동물이나 사람의 감각 기관이 하는 일이다. 나무는 자기 이익을 좇거나 세상에 대한 얄팍한 지식을 자랑하는 일 따위는 할 줄 모른다. 나무가 아는 것은 DNA에 새겨진 제 삶의 과정대로 살게 되리라는 것이다. 즉 이 책에서 ‘알고 있지.’는 머리로 이해하는 지식이 아닌, 나무의 운명으로 읽힌다. 이 책에서 나무는 정적이고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기 운명을 아는 삶의 주인공이다. 이는 나무가 ‘보여 주고 내어 주고 먹여 주고 키우고 길들인다.’고 하는 표현으로도 드러난다. 그런데 오래도록 내 머릿속에 있었던 나무는 대개 배경이거나 아니면 동물 대조군으로서의 식물일 뿐이어서,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서의 나무와 개념상 자꾸 충돌이 일어났다. 그 탓에 나로서는 독서가 아주 편하지는 않았지만 읽는 이에 따라서는 이런 충돌이 신선한 자극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나무는 알고 있지』는 앞서 언급한 대로 나무의 ‘삶’ 전반을 다룬다. 나무의 생명 작용 전부와 생태계에서의 역할을 겨울에서 시작해 봄, 여름, 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로 이어지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 설명한다. 비록 나무에 대해 능동적인 언어 표현을 사용하긴 했지만 글의 전체적인 어조는 한결같이 차분하고 평온하다. 그런데 나무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모두 담다 보니 매 장면마다 정보의 밀도가 아주 높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책의 내용은 크게 나무의 생장, 동물과의 관계, 번식, 겨울나기 순서로 되어 있다. 그런데 매 펼친면마다 계속 새로운 정보가 나온다. 예를 들어, 본문 두 번째 펼친면은 봄이 되면 나무가 새잎과 꽃을 피운다는 내용이다. 이어 세 번째 면은 잎의 생장과 양분을 만드는 이야기이고, 네 번째 펼친면은 나무의 뿌리를 다룬다. 다섯 번째 펼친면에서는 내용을 전환하여 나무가 크고 작은 동물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준다는 이야기를 한다. 꼭 필요한 내용만 추린 것일 수 있겠지만, 어쩌면 그 때문에 ‘알지’와 ‘모르지’만으로 대응해서 이야기를 이어가기에는 정보의 양이 버겁게 느껴진다. 지식 그 자체를 전달하는 것이 이 책의 본래 의도는 아닐진대, 나무의 운명을 알기 위한 과정이 다소 어려운 듯하다. 내용의 밀도가 너무 높으면 독자의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는 그만큼 줄어드는 것 아닐까.

꽤 오랜 된 책이긴 하지만 나무를 다룬 외국 그림책으로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나온 책이 있다. 1956년에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나무는 좋다 A Tree is Nice』라는 책인데, 한 마디로 나무 예찬이다. 나무가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하는지, 나무가 있으면 아이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놀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 준다. 여름이면 동물과 사람들이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쉴 수 있어서 좋고, 또 나무가 있으면 거센 바람에 지붕이 날아가지 않게 막아 주니까 좋다고 말한다. 이 책은 채 40행이 안 되는 문장으로 나무가 있어서 좋은 점들을 어찌 보면 아주 사소한 것들로만 나열하고 있다. 고양이가 개를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갈 수 있어서 좋다거나 심지어는 일하다가 쉴 때 괭이를 걸쳐 놓을 수 있어서 좋다거나 하는 식이다. 사소하지만 구석구석 새로운 발견이어서 나무가 있어서 정말 좋구나 하고 쉽게 공감하게 된다. 그리하여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내가 이 나무를 심었어.”라고 할 때에는 그 속에 담긴 뿌듯함까지도 읽을 수 있게 된다.

이 책에 그림을 그린 마르크 시몽은 뛰어난 순간 포착과 재치 있는 묘사로 이야기에 생기를 더해 준다. 그는 이 책으로 칼데콧 메달을 받았는데, 이 그림책에서 특히 재미있는 것은 색채 그림과 흑백 그림이 번갈아 나오는 점이다. 자유로운 선도 그렇지만 색채와 흑백의 극적인 전환이 한층 강렬한 인상을 준다. 후반부에서는 거의 비슷한 장면을 흑백으로 한 장 채색 그림으로 한 장 드러나게 짝을 지어 놓아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나무는 좋다』의 큰 장점은 소소한 일상을 다루고 있는 쉬운 글과 빽빽이 채우지 않은 그림으로, 독자들에게 상상하고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준다는 것이다. 다만 번역 책이어서 정말 아쉬운 것이, ‘나무는 좋다.’라는 문장이다. 평범하고 쉬운 영어 단어 nice를 비슷한 뜻과 뉘앙스를 가진 우리말 ‘좋다.’로 일관되게 옮기면서 독립된 우리말 문장으로는 약간 어색한 표현이 되어 버렸다.

『나무는 알고 있지』에서 한성옥의 그림은 글의 버거움을 얼마간 누그러뜨려 주면서 이 책의 성격이 훨씬 분명하게 드러나게 해 준다. 작가 자신이 말한 바대로, “그(나무) 안에 담긴 생명력의 역동성을 힘 있게 전달하기 위해 색, 크기, 구도 등 시각 요소를 적극적으로 대비시”킴으로써 마치 나무가 직접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한성옥, 「정다운 옛친구와 호젓하게 나눈 이야기」, 『열린어린이』 2007년 12월, 29쪽) 그런데 글이 나무의 모든 숭고한 미덕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그림도 한껏 대상을 넓혀 간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들에서 시작해 친근한 숲을 담고 나아가 울창한 침엽수림과 열대우림까지도 모두 아우른다. 글 없이 침엽수림과 열대우림으로 가득 채운 두 펼친면은 나무라는 숭고한 존재에 경외감을 갖게 하지만, 공간이 전 지구적으로 너무 확 열려 버려서 처음 읽을 때는 바로 뒤에 이어지는 단풍 장면으로 돌아오는 게 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무는 알고 있지』와 『나무는 좋다』는 둘 다 나무와 자연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가까이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고 즐거움을 주는 친구 같은 나무(『나무는 좋다』)가 있는가 하면, 묵묵히 제 삶을 살며 다른 생명들에게도 삶을 마련해 주는 큰 스승 같은 나무(『나무는 알고 있지』)도 있다. 이 두 가지 외에도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나무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린 독자들이, 흔히 말하는 발달 전개 결말 같은 이야기 구조를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이야기를 귀로 듣고 책으로 읽는 동안 이야기의 구조도 학습하게 된다. 예컨대 영웅 이야기에 세 번의 시련이 있는 것처럼 지식책 또한 특정한 패턴과 구조를 통해 아이들에게 생각하는 과정을 가르쳐 준다. 이것이 다양한 지식책을 읽어 주고 보여 주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며, 작가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서술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아기 이름을 ‘나무’라고 부르고 싶어 한 후배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직접 듣고 싶어졌다. 이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렇다, 뭐 이런 대답을 할 거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그런데 뜻밖에도 후배는 아기에게 나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싶었던 이유가 나무의 미덕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오래 전부터 목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답하며 여전히 그 꿈을 간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후배는 나무라는 이름이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바람에, 그 새 나무에서 마루로 태명을 바꾸어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조남주│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어린이 책 만드는 일을 하다가, 미국 럿거스 대학 대학원에서 어린이 서비스를 전공했습니다. 지금은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고, 그림책 중에서도 특히 지식책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