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통권 제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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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책 이야기

[그림책 읽어 주는 의사 선생님]
완성을 꿈꾸는 우리의 반쪽

이나미 | 2008년 04월


제 잘난 맛에 먹성 입성 까탈을 부리며 살고들 있지만, 과연 우리가 소비하여 황폐화시키는 이 지구에 부끄럽지 않을 자격을 가진 이들이 얼마나 될까? 지구 환경까지 들먹일 것 없이, 그동안 건강한 신체를 갖고 살면서 알게 모르게 누렸던 것들을 우리가 주위에게 얼마나 잘 되갚으며 살아왔는지. 옛날 할머니들 말투를 흉내 내자면, 어차피 세상 뜰 몸, 신주단지 모시듯 아끼며 살면서 이들과 환경에 대한 배려는 왜 그리 인색한지. 피부 관리에, 성형 수술에, 명품으로 포장한다 해서 늙지 않고 썩지 않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주 운 좋게 헌헌장부, 천하일색으로 태어나 흠잡을 데 없는 몸이라 치자. 그 몸 가진 사람 역시 남들과의 건강한 관계 없이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 터, 어찌 보면 우리들은 서로 의지하며 기대야 삶이 완성되는 초라한 반쪽일 뿐이다. 빛나는 외모와 재능도 누군가 알아 주는 사람 없으면 다 소용없는 것이니 일도, 사랑도, 예술도, 알아 주는 상대방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삶 자체도 그렇다. 탄생 이전과 죽음 이후가 있기에, 유한한 삶은 그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니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사랑해야 겨우 삶의 끄트머리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 너머의 시작과 끝에 대해 삶이 끝나는 그 날까지 완전하게 파악할 도리가 없으니, 삶에 대한 인식 역시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 반쪽일 수밖에 없다. 삶에 대해 반쪽밖에 알지 못하고, 내 인생의 나머지 반쪽, 즉 ‘당신’이 없으면 꼼짝 못하는 우리이니 부족함을 채워 줄 죽음과 남의 삶에 대해 좀 더 겸손해야 한다. 옛 민담 반쪽이 이야기에는 반쪽인 우리 존재에 대한 깊은 문제제기와 치유가 담겨 있다. 장애아의 성장 동화쯤으로 단순화시키기보다는 이야기에 들어 있는 여러 신화소(神話素 : mythologem)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그 상징을 이해하면 훨씬 더 풍요로운 자기 성찰이 가능하다.

우선 자식이 없어 외로운 할머니 할아버지가 산신령께 빌어 우물 속 잉어를 먹고 회임하는 부분부터 살펴보자. 늙은 부부가 신령한 힘으로 잉태에 성공하여 아들을 낳는 이야기는 성경의 아브라함뿐 아니라 제주의 무속신화인 초동 삼형제 본풀이 등 많은 신화와 민담의 시작에 등장한다. 늙은 부부의 ‘아이 없음’은 희망과 순수한 마음, 열정 등 살아나가는 데 필요한 정신적 에너지의 고갈과 쇠락을 의미한다. 다행히 반쪽이의 부모는 신령님의 분부대로 우물 속 잉어 세 마리를 먹고 수태에 성공한다. 잉어는 특히 동아시아에선 영험한 기운을 갖고 있어 하늘로 올라갈 수 있거나 혹은 승천을 도와주는 영물로 간주되었다. 이규보의 『삼국사기』 동명성왕 편에서는 하백이 해모수와 싸움을 벌일 때 잉어로 변신하는 장면을 마치 판타지 소설처럼 묘사한다. 잉어와 자라를 함께 과서 만든 용봉탕을 임산부에게 먹이는 민간요법도 아마 이런 신화와 관련 있을 것이다. 잉어가 용으로 물살을 헤치며 거슬러 올라가다 변하는 그림을 어변성룡(魚變成龍)이라 한다. 등용문이란 말도 잉어와 관련 있다.

그런데 잉어 세 마리 중 한 마리를 고양이가 끌고 가서 반쪽을 먹어 치우는 플롯은 반쪽이에게 주어진 인간적 과제의 시작을 예고한다. 고양이는 나라마다 그 의미가 달라, 일본과 불교 켈트 족 신화에서는 주로 나쁜 징조와 악마의 상징으로 생각하지만 힌두, 이집트,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성스러운 인류의 보호자로 믿는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홉 개의 목숨을 갖고 있으면서 악귀와 질병을 물리치는 동물이라고 믿기도 한다. 분석심리학의 관점으로는 고양이가 갖고 있는 철저한 자기중심적 자발성, 자기 보호 본능, 민첩함 등을 강조해서 꿈 해석에 적용하기도 한다. 고양이는 삵, 혹은 살쾡이와 같은 종류이지만 집안에서 길들여져 있기에 야생동물의 특성과 가축의 특성을 모두 함께 지니고 있다. 그런 고양이가 잉어 반쪽을 먹어 치웠다는 설정은 무엇인가. 신체가 온전하지 못한 반쪽이가 고양이처럼 외부로부터 받는 억압과 조종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기를 찾기 위한 자발성을 지니면서도 잉어와 같은 영리함과 힘을 습득하게 되는 힘든 과정을 미리 알려 준다.

반쪽이로 태어난 아이는 항상 불편하고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언가 새롭게 만들어 내는 창조 정신은 항상 결핍과 장애로부터 시작한다. 중국의 기서(奇書) 『산해경』은, 기굉국(奇肱國)에 손재주가 뛰어나 날아다니는 수레를 만든 외팔이 종족이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의 유명한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는 절름발이이고, 리그 베다의 신 바루나는 팔이 넷, 노스(Norse) 신화의 대장장이 신 오딘은 눈이 한 쪽뿐이고, 티르는 팔이 하나였다. 신화 속의 신체 결함은 지식과 힘의 대가로 감수해야 될 부분이자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필수 조건인 것이다. 헤파이스토스가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밀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절름발이지만 그물 만드는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딘은 지혜를 얻기 위해 현인 미미르에게 눈을 하나 바쳤고, 위그드라실(생명의 나무)에 매달려 몸을 스스로 찔렀다.

사실 우리의 머리와 몸이 너무나 많은 자원들을 넘쳐나게 가지고 있다면 벌을 받을 수도 있다. 재승박덕(才勝薄德), 재능이 많으면 덕이 부족하고, 미인박명(美人薄命), 너무 아름다우면 명이 길지 못하다지 않던가. 반쪽이는 몸 한 쪽이 없는 대신 힘이 장사이고 꾀도 많다. 형들이 나무와 바위에 묶어 놓으면 그것들을 통째로 뽑아 집으로 가져오고, 묶인 상태에서 호랑이들과 대적해 호랑이 가죽을 몽땅 벗겨 올 정도니 그야말로 천하무적! 하지만 반쪽이는 다른 신화 속 장애를 가진 신들과 마찬가지로 외로움을 많이 타서 자기를 따돌리는 형들을 따라가고도 싶고 장가도 가고 싶다. 마침내 부자 영감과 내기를 해 부잣집 외동딸과 결혼을 도모한다. 물론 신화 속 모든 영웅들은 그들을 방해하는 적들을 물리쳐야 한다. 대문을 지키는 하인들, 아들과 며느리, 영감 부부는 모두 반쪽이가 딸을 데려가지 못하도록 눈을 부릅뜨고 지키는 방해 세력이지만 역시 반쪽이의 적수는 되지 못한다.


우선 반쪽이는 대문 앞 하인들의 상투를 묶어 버린다. 장래의 배우자가 있는 집을 지키는 수문장들의 ‘상투’는 반쪽이의 성스러운 결혼(Sacred marriage)으로 향한 첫 번째 관문이다. 상징적으로 볼 때 상투는 남자로서의 쓸데없는 자존심, 조직에 대한 지나친 충성, 또는 이성애로 넘어가기 전 단계인 동성애적 형제애 혹은 퇴행적 동지애 등에 대한 비유로 이해한다. 결혼을 하고도 여전히 가족은 소홀히 한 채 오로지 출세와 명예에만 집착한다든가 친구들과 술자리 하느라 아내를 소홀히 하는 카우보이 같은 남자쯤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두 번째 방해세력인 아들의 손에 맨 ‘북’은 무엇을 의미할까. 반쪽이를 잡으려 팔을 허우적대 보지만 부잣집 아들은 묶여 있으니 결국 북만 둥둥 울려 대는데, 이는 실속 없이 말만 많고 허풍만 떠는 미숙한 남자들의 행동을 의미한다. 시루를 뒤집어쓴 채 무서움에 벌벌 떠는 며느리는 또 무슨 뜻인가. 여성에게 시루는 큰 잔치와 제사를 위해 꼭 필요한 부엌도구이자 그릇이다. 예전 종가 제사와 집안일에 치여 살던 종부들은 스스로를 ‘국솥에 빠져 죽고 시루떡에 엎어져 죽는다.’는 말로 자조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그 가족을 먹이고 입히느라 몸도 마음도 황폐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반쪽이가 묶어 놓은 부싯돌에 수염이 홀라당 타 버린 부자영감과 소맷자락 속의 자갈로 영감 얼굴만 퍽퍽 때린 부인은 또 무엇을 상징하는가. 진정한 자신의 길을 가며 창조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때로 전통과 권위(수염), 혹은 개성화를 훼방하는 이기적 가족주의(소맷자락) 역시 극복해야 한다는 뜻이 아닌가.

이렇게 모든 관문을 다 해결하고 난 후에야 반쪽이는 부잣집 딸을 가뿐히 업고 집으로 돌아와 결혼에 성공해서 오래오래 잘 살게 된다. 지구 반대편 미국의 샤이엔(Cheyenne) 인디안 부족에는 반쪽이와 유사하지만 다른 민담이 있다. 두 개의 머리와 긴 팔다리의 귀신이 살았는데 어디든 갈 수 있는 데다 힘도 장사였지만, 부인이 없어서 행복하지가 않았다. 부모와 사는 예쁜 아가씨에게 반했지만 귀신에게 딸을 내주고 싶지 않은 처자 아버지와 한 내기에서 지는 바람에 두 머리 귀신은 그냥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반쪽이는 몸이 온전치 못해도 꾀가 많아 무사히 장가 들 수 있었지만, 두 머리 귀신은 머리도 하나 더 많고 팔 다리도 더 길었지만 지혜롭지가 않았다. 무의식 깊은 곳의 여성과 남성이 통합되어 하나의 인격이 완성되는 성스러운 결혼에 꼭 필요한 것은 이처럼 단순한 육체적 힘이 아니라 지혜와 통찰인 것이다. 보다 완전한 삶을 동경하는 이들이 정말로 챙겨야 할 것은 남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껍데기가 아니라 우리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마음의 힘이라는 얘기다.
이나미│서울대학교에서 정신의학을, 뉴욕에서 분석심리학과 신학을 공부한 정신과 의사입니다. 단편 소설 「물의 혼」으로 『문학사상』에서 등단하였고 2002년에는 『때론 나도 미치고 싶다』를 펴냈습니다. 꿈과 신화,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을 분석심리학 측면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