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통권 제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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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교과서 알아보기]
사람에 대한 정감을 담아낸 모딜리아니

엄소연 | 2008년 04월

「어깨를 드러낸
잔느」, 1919
한 번쯤은 보았을 이 그림…… 우울한 분위기와 기다란 얼굴, 코, 목선, 갸우뚱한 자태, 조그만 입, 눈동자 없이 파란 눈, 과장되게 긴 손가락으로 턱을 받친 기묘한 인상.

그렇다. 이 초상화의 작가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이고, 그림의 주인공은 그의 제자에서 사랑하는 연인이자 아내가 된 14살 연하의 잔느 에뷔테른(Jeanne Hebuterne, 1898~1920)이다. 이들의 사랑은 ‘세기의 연인이 나눈 불멸의 사랑’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얼마 전 이들의 사랑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있었다. 고양 아람미술관에서 열린 ‘열정, 천재를 그리다─모딜리아니와 잔느의 행복하고 슬픈 사랑 전’에서는 모딜리아니가 그린 유화 및 드로잉, 잔느의 작품, 모딜리아니의 편지 등 유품, 그리고 잔느의 머리카락 등이 전시됐었다.

잊고 있던 모딜리아니가 생각나 서점을 찾았는데, 어린이가 볼 만한 책은 많지 않았다. 『한눈에 반한 서양미술관』에서는 요점 정리식이나마 모딜리아니를 찾을 수 있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풍부한 도면과 개괄적 내용이 장점인데, 누드화1)가 ‘외설’이 아닌 ‘아름다움의 표현’을 의도한 것임을 이해한다면 기꺼이 볼 만한 책이다.

당시 모딜리아니 누드화의 모델들은 대개 그의 애인들이었지만, 잔느는 모딜리아니의 예술적 영감과 작품 활동을 위해서 그의 바람기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1917년 열린 모딜리아니의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의 누드화는 너무 관능적이어서, 그는 풍기 문란이란 죄목으로 일시 체포되었고 누드화 다섯 점이 철거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원래 누드화는 르네상스 시기의 인본주의를 배경으로 인간의 아름다움을 이상화하기 위해서 등장한 이후, 각 시대의 가치관·이념·도덕·종교 등의 영향으로 성행하고, 비판 받은 그림이다. 예술시장의 경제적 가치에 치중하는 현대에는 같은 작가의 그림 중에서 누드화가 더 비싼 게 일반적이다.2)

병약한 ‘미남화가’의 파리 입성기

미남화가 모딜리아니
모디(모딜리아니의 애칭, ‘저주받은 화가’라는 뜻)는 1884년 이탈리아 리보르노의 유대계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장티푸스, 늑막염, 결핵, 폐렴 등을 앓아 병약했던 그는 어느 날, 예술가로서의 장래를 암시하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요양차 로마, 나폴리 등지를 여행하면서 살펴본 고대 로마 유적의 건물, 조각상 등은 조각가의 꿈을 품게 하였으며, 이후 그의 작품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피렌체와 베네치아의 미술학교에서 수학하며 꿈을 키우던 모디는, 드디어 22세(1906년)에 예술가들의 집결지였던 파리 몽마르트르에 정착하게 된다.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

당시 파리는 이른바 전위예술(아방가르드)3)의 선봉에 있었고, 예술가들의 파리 생활은 고독하거나 때론 강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모디는 상징주의4)에 관심이 많았고 입체파(큐비즘)의 거장 피카소와 야수파인 마티스 등과 교우하였다. 그는 술과 향락에 젖은 ‘주정뱅이 화가’라고 손가락질 받기도 했으나, 예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20세기 초 유럽 미술계를 주도했던 전위예술과 다른 독창적 예술 세계를 이뤄 나간 ‘최후의 진정한 보헤미안’이었다.

모디는 주변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바탕으로 자신이 이해하고 교감한 상대의 심리와 개성, 삶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모디의 초상화 대부분이 눈동자가 없거나 한쪽 눈이 의도적으로 생략된 경우가 많은데, 그는 상대방의 영혼을 알기 전에는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조화롭고 아름다운 형태에 대한 관심

「카리아티드」,(그리스 아케네의 에레크테이온 장식 여인상 기둥),기원전 451년
몽파르나스로 옮겨간 1909년부터 모딜리아니는 인체의 순수함에 관심을 갖고 1914년까지 조각에 몰두한다. 그의 조각 작품(석조 25점, 목조 1점)은 이탈리아 고전 미술, 아프리카 조각5), 그리고 추상 조각의 선구자인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우아하고 절제된 기하학적 형태의 영향을 받게 된다.

모딜리아니는 조각을 일러 “정감 있는 기둥”이라 했는데 그의 대표적 조각품인 「카리아티드」6)는 아프리카 콩고의 조각품 발루바와 고대 그리스 건물의 여인상 기둥에서 연상된 것이다.

「여인상 기둥 두상 드로잉」과 「두상」의 표현을 보면, 길쭉한 얼굴에 기러기형 눈썹과 연이은 아몬드형 눈, 기다란 코와 그 폭만큼 조그만 입 등, 형태의 왜곡이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형태적 특징은 그대로 초상화의 인물 표현에 적용되어 모디 그림의 전형을 이루게 된다.

예를 들어,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의 뚜렷한 윤곽선, 살짝 갸우뚱한 머리, 조각적으로 표현된 길쭉한 신체, 우수에 찬 표정 등은 단순한 색채와 세부적 묘사가 생략된 배경을 통해서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 결과, 모디는 자신만의 형식으로 대상을 단순화시킴으로써 인물의 개성과 심리를 명확히 표현할 수 있었으며, 이것이 바로 37세에 요절한 모디의 예술적 탁월함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기 위한 그림, 초상화

‘부타데스의 딸’이란 전설에 따르면 그림은 초상화로부터 시작되었고, 초상화는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나 기억 속에서 항상 존재하기를 원하는 마음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기원전 6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시키온에 살던 도공(그릇 굽는 장인) 부타데스의 딸은, 사랑하는 연인이 전쟁터로 떠나기 전, 호롱불을 비추어 벽에 생긴 연인의 그림자 윤곽선을 따라 벽에 그림을 그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것을 진흙으로 빚어 가마에 구워내 막새기와 장식으로 썼다고 하니, 초상화는 조각의 기원과도 밀접하다. 물론 이 전설을 모디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오늘 아이와 초상화를 그리는 시간을 가져 보자. 언제나 함께하고 싶고 기억하고픈 사람이 있는지, 있다면 누구인지, 그 사람의 성격은 어떤지, 또한 그 성격은 얼굴의 어느 부분에 잘 드러나 있는지 이야기 나누면서 말이다.

1) 모딜리아니가 누드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16년경부터이며 1919년까지 많은 작품을 그렸다.
2) 모딜리아니의 1917년 작 「흰 천 위에 옆으로 누워있는 여인」은 2003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318억 원에 팔려 그의 작품 중 최고가를 경신했다.
3) 아방가르드(avant-garde) : 미국·영국의 모더니즘과는 다른 계열에 속하는 것으로서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전개된 상징주의·입체파·초현실주의·표현주의를 총칭한다. 아방가르드는 원래 군사용어로서 전투할 때 선두에 서서 돌진하는 부대를 뜻하며, 19세기 초에 계급투쟁의 선봉에 선 정당과 당원을 가리키는 정치용어로 사용되었고, 19세기 중반부터 미지의 문제와 대결하여 지금까지의 예술을 변화시키는 혁명적 예술경향이나 그 운동을 뜻하는 예술용어로 정착되었다.
4) 상징주의 : 인간심리의 무의식적 측면을 강조한 예술운동과 경향을 뜻한다.
5) 아프리카 조각품들은 제국주의 침략의 전리품으로 유럽에 들어오게 되었다.
6) 카리아티드(caryatid) : 여인상으로 된 돌기둥을 뜻한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전쟁이 끝난 뒤, 그리스는 페르시아 편을 들었던 카리아이의 여자들을 노예로 삼아 평생 무거운 짐을 지는 벌을 주었고, 이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공공건물의 기둥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남성상의 돌기둥은 아틀란트라고 한다.
엄소연│철학, 박물관학, 한국 미술, 미술 비평을 공부하였습니다. 홍익대학교에서 ‘동물 상징’으로 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