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통권 제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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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누군가 나를 집으로 부르는 소리

윤석연 | 2008년 04월

“말해요, 말해! 서로 말해요!”

『하늘을 달리는 아이』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전설인지, 사실과 그 뒤에 숨은 진실이 섞이지 않도록 아주, 아주 조심하라고 말한다. 이 책은 매니악 매기라는 한 소년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사실, 한 입 건너면 전설, 또 한 입 건너면 눈덩이가 되기 마련인 어떤 인물의 역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매니악(원래 거칠게 행동하는 사람이나, 열광적인 사람을 뜻하는 말로 이 책에서는 무엇이든지 다 해 낼 만큼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다.) 매기가 쓰레기더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밤새도록 달리고 또 달린다고 한다. 그러나 매니악 매기는 쓰레기더미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아주 평범한 집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제프리였다. 제프리라는 이름 대신 매니악 매기로 불리고 밤새도록 달리고 달리다 쓰레기더미에 쓰러져 자게 된 사연은 이렇다.

그는 세 살 때 고아가 되었다. 어린 제프리는 부모의 죽음으로 가장 가까운 친척인 숙모에게 보내졌다. 숙모와 숙부는 말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를 미워해서 물건도 더 이상 함께 쓰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제프리도 둘로 나누려고 했다. 예를 들어 월요일에는 숙모, 화요일에는 숙부와 저녁을 먹는 식으로. 8년이 흐른 뒤 제프리가 다니는 학교에서 봄 음악회가 열리는 밤. 공연도 한 번, 강당도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숙모와 숙부는 할 수 없이 한 사람은 강당 오른쪽에 또 한 사람은 왼쪽에 앉았다. 제프리는 음악회에서 합창을 하다 말고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말해요, 말해! 서로 말해요! 말해! 말해!” 그리고 제프리는 강당을 뛰쳐나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는 화장실이 두 개가 있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제프리가 밤새도록 달려서 도착한 곳은 웨스트엔드(동쪽 끝)와 이스트엔드(서쪽 끝)로 나뉜 동네였다.

세상에 한 종류가 아닌 두 종류의 종족이 존재한다고 느꼈다. 두 종족은 모두 같은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각각은 다른 쪽을 전혀 생각해주지 않았다. 한쪽은 소리 지르고 놀고 뒤쫓으며 웃었고, 다른 한 쪽은 길을 잃고 말없이 수백만 명에 의해 죽어가고 있었다……. (『하늘을 달리는 아이』 193쪽)

세상에 존재하는 두 종류의 종족은 서로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물건도 함께 쓰지 않았고, 가능하다면 제프리를 둘로 쪼개고 싶어했다. 한 종류가 아닌 두 종류 종족을 왔다갔다하며 말을 시키고, 그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느라 제프리는 밤새 달려야만 했다. 또 같은 종류의 종족 안에서도 신문을 돌리는 아이가 절대 배달을 하지 않는 집 계단에 앉아 책을 읽고, 도시에 혼자 사는 할아버지에게 글을 가르치기 위해 어느 날은 웨스트엔드에 나타났다가 또 어느 날은 이스트엔드에 나타나느라 밤새 달릴 수밖에 없었고, 그런 제프리를 사람들은 매니악이라 부르게 되었다.

신뢰와 우정의 동맹

『가족 부활이냐 몰락이냐』는 혼자 살지 말라고 경고한다. 특히 독신 남성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말한다.

영웅! 전통적 레퍼토리에 따르면 영웅은 항상 고독한 전사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우리의 교육과 인습은 혈혈단신의 전사가 위기를 가장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심어주었다. 160년 전에 눈 폭풍을 만나 길을 잃었건, 오늘날 산속에서 차가 고장이 났건 관계없다. 무엇보다 혈혈단신이라는 사실이 그의 강점으로 비쳐진다. 타인에 대한 책임은 분명 그를 약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 영웅은 젊은 여자를 만나게 될 것이고, 그녀와 함께 인생을 헤쳐 나갈 것이다. 당연히 그들의 인생은 성공할 것이다. 그것이 이상적인 영웅상이다.(『가족 부활이냐 몰락이냐』 25쪽)

하지만 1846년 돈너 계곡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제프리는 매니악 매기라는 전설적인 이름으로 기억되었지만 영웅 전설은 현실에서는 더 이상 전설도 사실도 아니다.

총인원 81명 대부분 독일과 오스트리아 출신의 제법 재산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신천지를 찾아 떠나온 그들이 토네이도 때문에 돈너 계곡에 갇히고 말았다. 독신은 대부분 사망했다. 생존을 좌우한 유일한 이유는 가족과 함께 있었느냐, 혼자 있었느냐 였다. 또한 돈너 계곡의 생존을 좌우한 힘은 여성이었다. 여성들은 네트워크를 조직하며, 사회 자산이 소비되거나 파괴된 곳에서 사회 자산을 축적한다.

“가망 없는 상황, 궁핍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에서도 여성들은 비축된 식량은 물론 사회 자산까지 나눌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싸움을 말렸고 남자들의 살인이나 폭력 충동을 진정시켰으며, 몇 사람이 굶어죽은 상황에서도 공평하게 식량을 나누었고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심지어는 남의 식구들까지 돌보았다. 한마디로 가족의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도 모든 것을 걸고 신뢰와 우정의 동맹을 맺었다.”(『가족 부활이냐 몰락이냐』 158쪽)

1973년 3천 명의 휴가객들이 대형 호텔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갑자기 호텔에 불이 났을 때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 함께 휴가를 즐기던 사람들은 대부분 사망했거나 부상을 당하였고, 가족과 함께 휴가를 즐기던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남았으며 가족과 함께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갑자기 재난이 닥쳤을 때 생존을 좌우하는 기준은, 누군가는 반드시 자기를 기다릴 것이며, 누군가는 꼭 자기를 찾을 것이라는 신뢰였다.

신뢰의 생산지는 가족 그 자체이다. 하지만 반드시 완벽한 가족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엄마와 자녀, 혹은 할아버지와 손자로 구성된 가족일 수도 있다. 특별한 경우에는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좋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가족은 개인에게 무사히 살아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다. (『가족 부활이냐 몰락이냐』 60쪽)

이 책에서 하늘을 달리는 아이, 매니악 매기의 역할을 담당하는 이는 여성이다. 가망 없는 상황에서 싸움을 말리고,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공평하게 식량을 나누고, 전혀 다른 남을 가족으로 대하는 매니악 매기 전설을 여성이 이어받는다. 매니악 매기는 있다. 다만 사람들이 그 진실을 외면할 뿐이고 인정하거나 믿지 않을 뿐이다.

이것이 매니악 매기의 전설을 들려주기 전에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전설인지, 사실과 그 뒤에 숨은 진실이 섞이지 않도록 아주, 아주 조심하라.’고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동쪽 끝과 서쪽 끝으로 나뉘어 있는 동네이거나 혹은 언제 구조될지 모르는 돈너 계곡의 그 어디쯤일지 모른다. 누가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가?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밤새 달리는 사람도 없고, 싸움을 말리는 사람도 없고, 다른 이에게 식량을 나눠 주는 이도 없다면 우리 모두는…….

우리의 임무는 사라져가는 가족의 이타주의를 과잉 부담으로 인해 파괴시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 직접적인 친족은 상실하겠지만 의붓 친척이나 선택적 친족을 추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가족 부활이냐 몰락이냐』 153쪽)

매니악 매기 그는 “마침내 진실로 오랜 기다림 끝에 누군가가 자기에게 집으로 오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윤석연│세상의 많은 작은 것들을 좋아하고, 좋은 이들과 수다 떨기를 좋아하고, 격식이나 예절, 서열, 질서 따위를 싫어합니다. 늘 싫고 좋음을 분명하게 말해 버려 가끔 미움도 받지만, 언제나 식씩하고 즐겁게 살고자 애씁니다. 그리고…… 혹시 글 쓰는 걸로 이 세상 선한 일들에 보탬이 된다면 꾸역꾸역 하겠다고 맡고 나서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