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통권 제65호
속 깊은 책 이야기
사진과 시
책 세상 나들이
즐거운 책 읽기
열린어린이 서평
주목 받는 새 책
열린어린이가 권하는
이 달의 책

속 깊은 책 이야기

[옛이야기 세상 이야기]
떡나무와 꿀강아지
――속이는 세상, 속는 사람

서정오 | 2008년 04월

옛날 어느 시골에 건달이 하나 살았는데, 한번은 서울 구경을 갔다가 노름판에 끼게 되었던 것이다. 본디 노름판이라는 게 인정사정없는 곳이라, 한 푼 잃고 두 푼 잃다 보니 수중에 돈을 죄다 잃고 빈털터리가 되었네그려. 본전은 고사하고 당장 집에 갈 노자 한 푼 없으니 딱하게 되지 않았나. 하릴없이 돈 딴 서울건달한테 사정사정을 해서 노잣돈 백 냥을 꾸었구나. 똥마려운 놈 지푸라기 찾는 격으로, 급하니까 한 달에 이자를 자그마치 백 냥씩 붙여 갚기로 하고 꾸었던 것이다.

그러고 난 뒤에 서울건달은 이제나저제나 시골건달이 돈 갚으러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석 달이 지나도록 돈 꾸어 간 놈은 코빼기를 안 뵈네그려. ‘이놈의 것 안 되겠다, 제가 안 올라오면 내가 내려가서 받아내는 수밖에.’ 이렇게 생각하고서, 서울건달이 두루마기 떨쳐입고 갓망건 고쳐 쓰고 두 팔을 휘휘 내저으며 시골로 내려갔것다.

이때 시골건달은 서울건달이 돈 받으러 내려올 줄 미리 알고 일을 꾸미는데, 어떻게 꾸미는고 하니 세상에 둘도 없는 떡나무를 만들었구나. 찹쌀가루 곱게 빻아 인절미 경단 절편을 보기 좋게 쪄내어서 앞마당 대추나무 가지에 소담하게 꽂아 놓으니, 이리 봐도 떡이 주렁주렁 저리 봐도 떡이 주렁주렁, 영락없는 떡나무일세. 그렇게 차려 놓고 있으니 서울건달이 헛기침도 요란하게 사립문을 들어선다.

“여보게 아무개서방, 세상에 이런 경위도 다 있는가. 아쉬울 때 사정하여 돈 꿔 갈 땐 언제고 자빠져 나 몰라라 할 땐 또 언젠가. 당장 원금 백 냥에 이자 삼백 냥 합쳐 사백 냥을 내놓게나. 안 내놓으면 내 이 집 안방 아랫목에 아예 드러눕고 말 테니 그리 알게.” “석 달 만에 보는 사람 인사치고는 별나군그래. 안 그래도 내 자네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네. 어쨌거나 우리 집에 온 손님인데 박대할 수 있는가. 마침 떡나무에 떡이 많이 열렸으니, 따서 맛이나 보고 얘길 하세.”

앞마당에 썩 나가 떡나무에 열린 떡을 한 소쿠리 따 오거든. 서울건달이 먹어 보니 맛도 쓸 만한데, 그놈의 것 보면 볼수록 욕심이 나네그려. 아 이런 나무 한 그루만 있으면 평생 떡 실컷 먹어 좋아, 남는 건 팔아서 돈 벌어 좋아, 이러니 욕심이 안 날 수 있나. 그만 몸이 달아 수작을 건다.

“빚 사백 냥을 몽땅 탕감해 줄 터이니 이 나무 나한테 팔게.”
“이 떡나무가 그래 자네 눈에는 사백 냥어치로밖에 안 보인단 말인가?”
“아, 알았네. 그럼 내 백 냥 더 얹어 줌세.”
“어림없는 소리.”
“그럼 이백 냥.”
“안 돼.”
“알았네, 알았어. 삼백 냥 줄 테니 못 이기는 척하고 팔게.”
“어허, 이건 참 오그랑장사인걸.”

시골건달이 마지못한 척 승낙하니 서울건달은 횡재했다고 좋아라 하며 떡나무를 뽑아 들고 서울엘 갔지. 가서 자기 집 뒷마당에 심어 놨것다. 아,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일세.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 떡 아니라 떡 비슷한 것 열릴 낌새 하나 안 보이거든. 그제야 속은 것을 안 서울건달, 그 길로 또 부리나케 시골건달을 찾아간다.

시골건달은 일이 이렇게 될 줄 미리 알고, 이번에는 꿀강아지 한 마리를 만들어 놨구나. 어떻게 했는고 하니, 강아지 한 마리를 여러 날 굶긴 다음에 꿀만 잔뜩 먹인 것이지. 이놈의 강아지가 빈속에 꿀만 연거푸 먹어 놨으니 어쩔 것인가. 똥을 싼다는 게 꿀똥만 쌀 것 아닌가. 그렇게 마련해 놓고 있으니 서울건달이 기세가 등등하여 사립문을 들어선다.

“예끼 사기꾼 같으니. 사람을 속여도 유분수지, 아니 그 무슨 나무에 떡이 열린다고 속여서 멀쩡한 사람 바보를 만드나 그래. 내 이번엔 결단코 속지 않을 테니 아무 말 말고 돈이나 내놓게. 안 내놓으면 당장 관가로 끌고 갈 터이니 그리 알게.”

“그 떡나무에 떡이 안 열린다고? 그럴 리가 있나. 아마 건사를 잘못 해서 그럴 테지. 그나저나 멀리서 손님이 왔는데 대접을 안 할 수야 있나? 마침 꿀강아지가 똥을 안 싼 지 오래니 꿀이나 받아 먹고 얘길 하세.”

데리고 있던 강아지 배를 꾹 눌러 꿀똥을 한 접시 받아 내놓거든. 서울건달이 먹어 보니 과연 꿀맛인데, 그놈의 것 보면 볼수록 탐이 나네그려. 아 이런 강아지 한 마리만 있으면 평생 꿀 실컷 먹어 좋아, 남는 건 팔아서 돈 벌어 좋아, 이러니 탐이 안 날 수 있나. 그만 몸이 달아 수작을 건다.

“내 돈이고 뭐고 달란 말 안 할 테니 이 강아지 나한테 팔게.”
“안 되지. 이 강아지로 말하자면 내 평생 살림밑천인데 그럴 순 없네.”
“삼백 냥이면 되겠나?”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럼 오백 냥.”
“그래도 안 돼.”
“내 눈 딱 감고 천 냥 낼 터이니 적선하는 셈치고 팔게.”
“어허 참, 그렇게까지 하자는 데야.”

시골건달이 마지못한 척 승낙하니 서울건달은 이게 웬 떡이냐며 강아지를 안고 입이 귀에 걸려 서울엘 올라갔지. 가서 온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아 놓고 꿀 대접을 하겠다고 큰소리를 친 다음에 강아지 배를 꾹 눌러 봤것다. 아, 그랬더니 이게 웬일. 나오라는 꿀은 안 나오고 진짜 똥만 한 무더기 나오네그려. 꿀 대접 받으려고 모인 동네사람들이 그걸 보고서,
“콩 보리 못 가린다는 말은 들어 봤지만, 꿀 똥을 못 가리는 사람은 처음 본다.”
면서 뿔뿔이 흩어지더라는 이야기.

우리 옛이야기 중에는 속임수를 다룬 이야기가 많다. 오죽하면 ‘속이고 속기’가 옛이야기 유형으로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을까(조동일 외, 『한국구비문학대계』 별책부록 1 『한국설화유형분류집』 참조). ‘속이고 속기’에 드는 이야기 주인공들은 대개 꾀를 써서 위기를 벗어나거나 상대를 물리쳐 목적을 이룬다. 이때 쓰는 꾀나 속임수는 주인공이 맞닥뜨린 어려움 때문에 정당화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쨌든 거짓말이나 속임수가 수단이 되었다는 점 때문에 좀 꺼림칙할 수도 있다.

이런 이야기에서는 누가 누구를 속였느냐가 상황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이를테면 어려움에 빠진 약자가 자신이나 이웃을 구하기 위해 거짓말이나 속임수를 선택했다면 거의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만약 강자가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거짓말을 하거나 속임수를 쓴다면 결코 동정을 받지 못한다. 토끼가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호랑이에게 ‘입을 딱 벌리고 있으면 새가 입속으로 날아들 것’이라거나 ‘꼬리를 개울에 담그고 있으면 물고기가 낚일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은 아무에게도 비난받지 않는다. 그러나 호랑이가 자신의 정체를 의심하는 오누이에게 ‘감기에 걸려 목이 쉬어서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고 밀가루 바른 앞발을 문틈으로 들이미는 따위 속임수를 쓴 것은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산다.

위 이야기는 어떨까. 애당초 정당하지 못한 이득을 노리고 돈을 꾸어 준 서울건달에게도 잘못은 있지만, 얄밉도록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수법으로 남을 속이고 곯린 시골건달에게도 죄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어찌 보면 서울건달은 어수룩해서 속아 넘어가는 것 같고 시골건달은 너무 약은 짓을 해서 동정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왜 이야기는 은근히 시골건달 편을 드는 것처럼 보이는가?

이 이야기의 초점은 시골건달의 속임수가 정당한가 아닌가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실없는 속임수에 너무나 쉽게 넘어가는 서울건달의 어처구니없는 짓에 더 눈길이 간다. 그는 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는가? 욕심 때문이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면 아무리 유치한 거짓말도 그럴 듯해 보인다. 그래서 능청 떠는 시골건달에게 애원하다시피 하여 떡나무와 꿀강아지를 사 간 것이다. 서울건달은 어수룩해서 당한 것이 아니라 욕심 때문에 당한 것이다. 말하자면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며 ‘제 무덤 제가 판’ 꼴이다. 이야기는 바로 그것을 풍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순진하고 착한 약자가 탐욕스런 강자의 거짓말에 속는 일이 더 자주 일어난다. 이것이 이야기와 현실이 다른 점이며, 그래서 우리는 더 슬프다. 보기를 들라면 밤새 얘기해도 끝이 없겠지만 두어 가지만 들겠다.

몇십 년 전 일제는 이 땅의 순진한 백성들을 거짓말로 꾀어 전쟁터에 끌고 갔다. 그리고 총알받이로, 노리개로, ‘나쁜 짓 대역’으로 부려먹었다. 요새 와서 그 후손들이 발뺌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 뒤 이 땅에 전쟁이 터졌을 때, 이 나라 정부는 ‘서울시민들은 동요하지 말라.’는 녹음 방송을 남겨 놓고 몰래 부산으로 도망을 갔다. 그리고 나중에 전쟁이 끝나자, 그 방송을 믿고 서울에 남아 있다 죽을 고비를 넘긴 시민들에게 ‘부역자’라는 혐의를 씌워 온갖 괴로움을 주었다.

요새도 이 땅의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있는데도 없다고 하고 했는데도 안 했다고 하며 많은데도 적다고 한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백성들도 이제는 하도 속아서 웬만한 거짓말에는 끄덕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로 슬픈 일은 백성들끼리도 서로 속이고 속는 것인데, 이런 일은 세상이 온통 ‘돈’에 지배당하면서 더 심해졌다. 이런 세상에서는 거짓말할 줄 모르는 정직한 사람들끼리 굳게 뭉치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래서 거짓말과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도록 서로 경계하고 깨우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슬픈 일이지만,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다.

※ 이 글에 실린 그림은 『방귀쟁이 며느리』(홍선주 그림, 최성수 글, 한겨레아이들, 2004)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 편집부.
서정오│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이 지역 초등학교에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1984년에 소년 소설을 발표하면서 동화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특히 옛이야기를 새로 쓰고 들려주는 데 애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쓰고 펴낸 책이 아주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