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통권 제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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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책 이야기]
작은 움직임이 큰 몸짓 될 수 있도록
――나비 효과

박미연 | 2008년 04월

새 학기가 시작되고,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행사에 행사가 몰아친다. 과학의 달을 맞이하여 4월은 그야말로 대회 잔치다. 포스터, 그리기, 글쓰기, 물 로켓, 과학 상자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종목은 왜 그리도 많은지……. 이렇게 투덜대는 사이에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고무동력기와 글라이더 만들기 대회 전날, 대회에 나갈 아이들에게 준비물을 챙겨오라는 이야기를 깜빡 잊고 안 한 것이다.

엄연히 내 실수임이 분명한데도 은근히 짜증이 밀려왔다. “전에도 이 대회에 나간 적이 있니?” 하고 물으니 둘 다 처음이라고 했다. 어느 정도 기술이 필요한 분야고 아이들이 대회에 나간다고 해서 상을 탄다는 보장도 없는지라 나가지 말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하마터면 여자애가 무슨 글라이더며 고무동력기냐는 아주 몰상식한 말까지 내뱉어 아이들 마음에 평생 씻지 못할 상처를 남길 뻔도 했다. 천만다행으로 나는 선생님이고, 선생님은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얼른 입을 다물었다. 정신을 차린 뒤 얼른 학교 앞 문구점으로 뛰어가서 고무동력기와 글라이더를 사 가지고 왔다.

『그림 도둑 준모』의 준모는 뜻하지 않게 그림 도둑이 된다. 준모는 교실에 수학 익힘책을 가지러 갔다가 불조심 행사로 그려 낸 그림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너무 못 그린 자신의 그림을 구겨 버린다. 마침 예린이 그림에는 이름이 없었고, 준모가 무슨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선생님이 들어온다. 준모가 처음부터 예린이 그림을 자신의 그림으로 만들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바빠서 준모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지 않은 것은 선생님이고 예린이의 그림에 준모의 이름을 쓴 것도 선생님이다. 만약 선생님이 조금 늦게 들어왔다면 준모가 예린이의 그림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을까?

『찢어 버린 상장』의 나래는 뜻하지 않게 구설에 휘말리게 된다. 나래는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상을 탄다. 그런데도 반 친구들과 수연이 엄마는 인정하지 않는다. 나래가 더 크게 상처를 받게 된 것은 따지러 온 수연이 엄마에게 아무 말도 못하는 선생님을 봤을 때이다. 그건 선생님조차도 나래의 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받은 상장이라는 꿈에 부풀기도 전에 나래는 친구와 선생님, 그리고 일상생활까지 모두 빼앗겨 버린다.

글라이더의 ‘글’자도 모르는 나였지만 아무리 봐도 모양이 이상해서 그렇게 얘기해 줬더니, 민경이가 대뜸 선생님이 불량품을 사다 줘서 모양이 이렇게밖에 안 된 거라고 쏘아붙인다. 내 돈 써서 준비물 사다 줘, 송곳에 가위에 칼까지 빌려주고 내가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가. 순간 어이없고 괘씸한 마음에 절대 그럴 리 없으니 잘 만들어 보라는 말을 쏘아붙이고 돌아섰다.

『그림 도둑 준모』에서 선생님은 주목할 만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글에서 나타나지는 않지만 준모 엄마가 선생님께 이야기해서 일이 해결되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선생님이 준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것에 대한 미안함이나 예린이에 대한 준모의 미안함은 모두 생략된다. 단지 이 일로 인해 준모가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된 것에 초점을 맞춘다.

『찢어 버린 상장』에서 나래의 선생님은 수연이 엄마에게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대처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나래가 상장을 찢은 것을 알고는 나래의 이름이 ‘나례’로 잘못 인쇄되었다며 다시 상장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나래의 재능에 대해 얘기하고 결코 나눠 주기 식으로 받은 상이 아니란 것을 설명해 준다. 하지만 나는 나래의 담임선생님 같은 감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유치한 선생님이 되어서 학생이랑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엄마들은 늘 괜찮다고 한다. 공부를 못해도 괜찮고 상을 못 타도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은 괜찮지가 않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옆집 누군가가 상을 탔다고 하면 속상하고 화가 난다. 그래서 그 화를 엉뚱한 곳에 푼다. 양말을 뒤집어 벗어놓았다거나,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공부방을 보고 갑자기 더럽다거나 하면서 말이다.

『그림 도둑 준모』의 준모 엄마나 『찢어 버린 상장』의 나래 엄마도 앞서 말한 평범한 우리 엄마들이다. 자식이 상을 타 오는데 싫은 부모가 어디 있으며 자식이 상을 못 타는데 기분 좋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더욱 상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준모와 나래가 상장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치르는 것도 실은 엄마를 기쁘게 해 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다. 준모는 예린이가 상 탄 것에 속상해하는 엄마를 보고 상이 타고 싶어지고, 나래는 상장을 들고 있는 자신과 옆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는 엄마를 그린 4년 전의 그림일기를 늘 간직하며 상 타기를 고대한다.

하지만 결국엔 상보다 자식이 더 귀한 게 우리 엄마들이다. 이번 일이 준모 엄마에게는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또 상이 아닌 나래가 최고의 선물이라는 엄마의 말에, 나래도 엄마의 마음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식의 그림을 대신 그려 준 수연이 엄마는 어떻게 될까? 수연이가 깨달았으니 수연이 엄마도 곧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겠지?

준모는 결국 엄마의 도움으로 일을 해결한다. 조용히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학교에서 상 받은 그림들을 전시하면서 일이 커진 것이다. 준모는 용기 있게 선생님께 사실을 이야기하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나무를 타고 교실로 들어가 그림을 가져오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래는 실력으로 제 상을 되찾는다. 처음부터 자기 실력으로 상을 받았지만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던 나래는 그까짓 상장 따위는 찢어 버린다. 그리고 ‘전국 어린이 캐리커처 만화 그리기 대회’에 나가 실력을 발휘한다. 그리기도 종류가 다양하고 글쓰기도 종류가 다양하다.

수연이는 그림 그리기에 소질이 있고 나래는 캐리커처 그리기에 소질이 있듯이 각기 다른 분야에 재능이 있는 것이다. 말 많은 재혁이가 ‘학년 토론 대회’에 나가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상, 상, 상! 이야기하다 보니 상이 우리 아이들 생활에서 무척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만 학교에서 주는 상이 능력을 인정받는 하나의 기준이 되었기에 나래처럼 적극적인 아이나 준모처럼 소극적인 아이 할 것 없이 다들 상에 목매게 된 것이다. 꼼꼼하게 색칠하지 않았거나 맞춤법이 좀 틀렸다 하더라도 그 속에 담긴 아이들의 생각에 귀 기울인다면 더 많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맞는 걸음으로 자랄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아이들을 똑같은 인간으로 양성해 내야 직성이 풀리는 듯 옭아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무동력기와 글라이더 대회에 나갔던 수진이와 민경이가 나란히 상을 타 왔다. 비록 장려상이지만 대회 경험도 전혀 없고 전에 만들어 본 적도 없던 아이들이 설명서만 보고 만들어서 하늘에 날렸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것도 불량품(?)으로 말이다.

요즘 들어 내가 진심으로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가 아이들과 점점 멀어지고 아이들이 꺼리는 선생님으로 변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의 작은 움직임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무시하거나 아무 뜻 없이 한 말과 행동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자라나는 새싹이 싹을 틔우기도 전에 꾹꾹 밟아 버린 건 아닌지, 선생님도 엄마도 반성해야 한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약간은 뽐내는 표정으로 상장을 흔들어 보이며 교실을 나서는 민경이 뒷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그래, 축하한다.’
박미연 | 김해 영운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가르치고 배우며 지냅니다. 아이들을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여러 벗들과 더불어 어린이 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이루어야 하는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입니다.